독서 자료

불확실한 세계를 이해하다!

[중산] 2012. 3. 9. 18:14

 

철학의 세계에 눈뜨다: 철학·심리 편(서양 편)

 

‘생각하는 나’의 탄생_ 데카르트 《방법서설》

 

데카르트의 논리법은 이성? : 우리가 논리를 전개할 때 가장 많이 사용하는 방법이 바로 귀납법과 연역법이다. 이 두 방법의 결정적 차이는 어디서 시작하느냐다. 지나치게 단순화한 것일 수 있지만 특수한 사실에서 시작하면 귀납법이고 일반적인 사실에서 시작하면 연역법이다. 가령 죽음을 예로 들면 이렇다. 특수한 상황, 즉 한 사람으로부터 귀납법을 전개하면 이런 논리를 얻게 된다. 소크라테스는 죽었다. 소크라테스는 사람이다. 사람은 죽는다. 이 논리는 소크라테스의 죽음으로부터 시작해서 사람의 죽음으로 귀결된다. 이와 반대로 논리를 전개하면 연역법이 된다. 사람은 죽는다. 소크라테스는 사람이다. 소크라테스는 죽는다. 이런 식의 논리 전개가 연역법이다. 물론 데카르트의 논리 전개가 이렇게 간단한 것은 아니다. 데카르트는 더 복잡하고 더 형이상학적인 방법을 사용한다. 그것은 진리에 다가가기 위한 노력이었다. 이제 데카르트의 《방법서설Discours de la methode》을 통해 데카르트의 철학에 다가가야 한다.

 

 

《방법서설》에는 ‘이성을 올바르게 이끌어 여러 가지 학문에서 진리를 구하기 위한 방법의 서설’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이 부제는 이 책의 의도를 잘 나타내고 있다. 데카르트의 관심은 진리를 찾는 것인데 그 방법으로 이성을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어떻게 이성을 사용할 것인가. 그것이 데카르트가 밝히고자 한 것이었다. 《방법서설》의 주요 내용에 대해 데카르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만약 이 서설이 한꺼번에 읽기에 너무 길다고 생각된다면 여섯 부로 나누어도 좋을 것이다. 그리하여 1부에서는 제반 학문에 관한 여러 고찰을 볼 수 있을 것이고, 2부에서는 저자가 탐구한 방법의 준칙을, 3부에서는 역시 저자가 그 방법에서 끌어낸 도덕의 준칙 중 주요한 몇 가지를, 4부에서는 신과 인간 영혼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여러 근거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근거야말로 본인의 형이상학의 기초를 이루는 것이다. 5부에서는 저자가 탐구한 자연학의 여러 학문 서열과, 특히 심장의 운동 및 의학에 속하는 기타 몇몇 어려운 문제의 해명과, 이어 우리 인간의 심혼과 금수의 그것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가 하는 문제도 찾아볼 수 있으리라. 그리고 마지막 부에서는 자연 탐구에 있어서 종전보다도 한 층 더 전진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요구되는가 그리고 저자가 어떤 이유로 펜을 들게 되었던가를 찾아볼 수 있으리라.

 

 

1부에서는 데카르트 자신이 이성을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하기 위해 좇아야 할 방법을 발견하게 되는 과정을 밝히고 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지적 발전사를 회고담 형식으로 쓰면서 자신이 관심을 가져왔던 여러 학문, 예를 들면 수학이나 신학 등에 대해 고찰한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이 얻은 결론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나는 거리낌 없이 말하련다. 나를 몇몇 고찰과 바른 법칙에 도달하게 한 어떤 길로 일찍이 젊은 시절부터 접어들게 된 것을 매우 행복하게 생각하는 바라고. 그 고찰과 바른 법칙으로서 나는 하나의 방법을 세웠고, 딴은 그 방법에 의거하여 점차적으로 내 지식을 증가시키며 범용한 나의 정신과 짧은 생애로도 능히 도달할 수 있는 최고봉에까지 그 지식을 끌어올릴 수단을 얻은 듯하다.

 

 

데카르트는 자신이 진리에 다가갔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보면 데카르트의 방법론은 매우 간단하다. 참과 거짓을 분별하는 것이다. 그러면 참과 거짓은 어떻게 분별되는가? 판단은 어떤 기준과 방법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여기서 데카르트는 수학과 연역의 방법을 사용한다. 2부에서 데카르트는 자신이 도달한 방법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논리학을 구성하는 수많은 원리들 대신에 나는 다음 4개 조로 충분하다고 믿기에 이르렀다. 물론 한 번도 어김없이 그것을 꼭 준수하겠다는 확고부동한 결심을 한다는 조건하에서 말이다. 첫째, 내가 자명하게 그러하다고 알고 있지 않은 어떤 것도 결코 참이라고 인정하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주도면밀하게 속단과 선입관을 피하는 것이며, 내 판단에 있어서 조금도 의심할 여지가 없을 만큼 분명하고 뚜렷하게 드러나는 것 이외에는 어떤 것도 더 보태어 이해하지 않는다. 둘째, 내가 검토하려는 곤란한 문제 하나하나를 가능한 한, 그리고 가장 잘 해결하기 위해 요구되는 한, 작은 부분으로 나누어 검토할 것. 셋째, 내 사고를 질서 있게 이끌어갈 것. 그 방법은 가장 알기 쉽고 간단한 것부터 시작해서 가장 복잡한 인식에 이르기까지 단계적으로 차츰 상승할 것이며, 또 본시 그 자체로는 선후가 없는 것들 사이에 마치 어떤 순서가 있듯이 가정함으로써 그리하자는 것이다. 끝으로, 결코 어떤 누락도 범하지 않았노라 확신할 수 있을 만큼 전적인 열거와 전반적인 재검토를 어떤 경우라도 빼지 않고 실시할 것.

 

 

데카르트에게는 의심할 수 없이 단순하고 편견 없이 명징한 것이 진리였다. 그러나 단순은 복잡으로 나아간다. 그러나 복잡함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데카르트에게는 수학적 사유라는 논리 체계가 있었다. 예를 들면 수학은 숫자로 시작하고 숫자의 연산은 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의 사칙연산이 기초를 이룬다. 사칙연산을 통해 우리는 방정식을 풀 수 있다. 수에서 사칙연산으로, 사칙연산에서 일차방정식으로, 일차방정식에서 이차방정식으로 문제가 복잡해져도 수학적 사유는 바뀌지 않는다. 단지 복잡해질 뿐, 원리가 훼손되지 않는다. 이러한 데카르트의 방법론은 피코에게 보낸 편지에 드러나 있다. 이 편지에는 나무 그림이 하나 들어 있었다. 나무의 뿌리는 형이상학이고 줄기는 수학이며 줄기에서 뻗어나간 가지는 물리학, 의학, 윤리학, 기계학 등이었다. 데카르트는 자신이 발견한 이 방법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만족감을 표시한다.

 

 

이 방법이 나를 만족시킨 점은 다음과 같다. 즉 이 방법으로 모든 것에 대해 완전무결이라고까지는 못 하더라도 적어도 내 능력이 미치는 한, 내 이성을 가장 잘 활용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는 점이다.

 

 

데카르트는 그다음으로 이 방법을 도덕에 적용하여 얻은 결론을 쓰고 있다. 그러나 데카르트 철학에서 가장 유명한 문구를 담고 있고 그의 철학의 출발점이 되는 부분은 4부다. 그는 여기서 신과 인간 영혼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한 근거를 말한다.

 

 

코기토 에르고 숨: 데카르트는 ‘나는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생각한다. 그는 자신이 신체를 가지지 않았다고 상상하고, 또 어떤 세계도 어떤 장소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상상할지라도 자기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는 가상할 수 없음을 발견하다. 그래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즉 내가 이렇듯 모든 것이 거짓이라고 생각하려는 동안 바로 그렇게 생각하는 나 자신은 필연적으로 ‘그 무엇’이어야만 할 터라고. 그리하여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이 진리야말로 매우 확고하고 확실한 것이어서 회의자들의 어떤 터무니없는 가정으로도 그 진리만은 건드릴 수 없음을 주목하고, 내가 탐구하는 철학의 제1원리로서 거리낌 없이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판단 내리는 것이다.

 

 

데카르트의 사유는 의심에서 시작한다. 그는 끝없이 의심했다. 그가 의심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의심했다. 그는 의심 속에서 기댈 곳을 찾았다. 만약 기댈 곳을 찾는다면 그것은 진리에 가까울 것이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그는 다음 단계에 이르게 된다. 의심하는 자신은 누구인가? 의심은 나의 생각에서 비롯된다. 그렇다면 생각하는 자신은 누구인가. 내가 생각하지 않는다면 의심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생각하는 나, 의심하는 나는 존재해야 한다. 내가 다른 것을 의심하고 거짓이라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그것을 의심하고 거짓이라고 여기는 나는 존재하는 것이다. 그는 여기서 부정할 수 없는 존재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사유하는 자신은 존재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말한다. “코기토 에르고 숨”이라고. 바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말이다. 그러나 이 논리 방식을 종속적으로 이해하면 안 된다. 존재의 전제가 생각이 아니라는 말이다. ‘생각하는 나’, 즉 존재와 사유는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다. 생각하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유와 존재는 동시성을 가진다.

<“철학하라”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황광우 지음 , 생각정원>

                                                               <봄의 전령사 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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