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한 미래
개인정보와 관련 있는 미래 기술들을 살펴보자. 미래에는 개인정보를 철저하게 보호할 기술과 개인정보 보호를 크게 저하시킬 기술이 공존할 것이다. 공개키 암호화는 메시지를 수령인만 이해할 수 있게 하여 대화 내용을 추적 불가능하게 만드는 기술이다. 컴퓨터 네트워크와 공개키 암호화의 조합으로 인해 인간은 온라인 세계에서 정체성과 익명성을 보장받을 수 있을 것이다. 반면 감시 기술의 발달로 모든 사람이 모기와 같은 공기역학적 특성을 가진 초소형 비디오 카메라를 값싸게 살 수 있을 때가 멀지 않았다. 결국 이는 프라이버시가 없는 사회를 만들 것이다.
공개키 암호화와 컴퓨터 네트워크가 창조한 세상은 새로운 지불 방식을 필요로 한다. 돈을 내는 사람과 돈을 받는 사람의 정체가 드러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해결책이 바로 전자화폐이다. 전자화폐는 개인적으로 생산되며 추적이 불가능한 전자식 돈이다. 강력한 개인정보 보호가 가능한 세상은 합의 사항의 확실한 이행을 요구한다. 상대방이 누구이며, 어디에 사는지 전혀 모르면서 어떻게 계약 위반으로 고소할 수 있단 말인가?
이 문제는 평판에 의한 제재가 가해지는 형태의 법적 기술로 해결될 수 있다. 어떤 기술은 법 집행을 더 힘들게 만들지만 어떤 기술은 법 집행을 너무 쉽게 만들기도 한다. 또 다른 미래 기술은 생명공학이다. 미래에는 아이들의 유전적 유산을 통제할 수 있는 기술이 등장할 것이다. 유전공학의 잘라 붙이기 기술을 사용하면 부모들은 한 세대 만에 우성인자만 가진 아이를 가질 수 있게 된다. 노화 문제도 생명공학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노화 문제는 부유하고 권력을 가진 노인들과 직결되어 있어 그 기술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실제 개발된다면 인류를 극단적으로 바꿀 수 있는 기술 3가지가 있다. 첫째는 나노 기술이다. 나노 기술을 이용하면 잘못된 인간 신체의 부분을 고칠 수 있는 신체 재생 기계부터 온 세상을 복제 생물로 뒤덮어버릴 수 있는 자기 증식 생물까지 다양한 가능성이 현실이 될 수 있다. 둘째, 인공지능이다. 컴퓨터가 우리만큼 똑똑해지고 현재와 같은 속도로 발전이 이루어진다면, 40년 후에는 우리가 인류보다 더 똑똑한 존재(인공지능)와 지구를 공유하게 될 것이다.
마지막 기술은 가상현실이다. 미래의 세상은 네트워크를 통해 두뇌에서 또 다른 두뇌로 이동하는 신호로 구성되며 신체적 행동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될 것이다. 가상현실로 인해 모든 흥미로운 일들이 사이버 공간에서 일어나고 현실의 활동은 우리 신체를 살아 있게 하는 정도로밖에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내가 묘사한 미래의 모습 중 모든 부분이 현실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내 목표는 어떤 미래가 다가올지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기술적 변혁이 우리에게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 거기에 적응하기 위해 삶과 제도를 어떻게 변화시켜야 하는지 생각해보는 것이다.
2부 개인정보와 기술
강력한 개인정보 보호의 세계
우리는 공개키 암호화라는 기술을 통해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수준의 개인정보 보호 기술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공개키 암호화는 메시지에 보안 채널을 사용할 필요없이 메시지 자체를 암호화하고 해독하는 새로운 기술이다. 공개키 암호화는 두 개의 키를 만들어낸다. 이를 A키와 B키라고 가정하자. 만약 A키를 가지고 메시지를 암호화했다면 A키만 가진 사람은 이 메시지를 해독할 수 없다. B라는 키가 필요하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친구에게 A키(공개키)를 보내면서 B키(비밀키)를 비밀로 한다면 친구는 A키를 사용해서 메시지를 암호화해 당신에게 보낼 수 있고 당신은 B키를 사용해 그 메시지를 해독할 수 있다. 만일 스파이가 A키를 복제한다면 스파이는 당신에게 비밀 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 하지만 그는 당신의 친구가 보낸 메시지는 해독할 수 없다. 당신이 아무에게도 알려주지 않은 B키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고 암호화 소프트웨어를 갖추고 있다고 상상해보자. 그리고 모두의 공개키는 모두에게 공개되어 있다.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한 가지 명백한 결과는 우리가 사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공개키로 상대에게 메시지를 암호화하여 보낼 수 있다. FBI(미국연방수사기관)는 기뻐하며 엿보려 할 것이다. 하지만 상응하는 비밀키가 없다면 우리의 메시지는 횡설수설하는 말처럼 보일 뿐이다. FBI는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른다고 해도 내가 누구에게 말을 하는지를 지켜봄으로써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 문제 또한 해결할 수 있다. 공개키 암호화와 더불어 익명처리 재발송서비스를 이용하면 된다. 당신과 의사소통을 하고 싶을 때 나는 익명처리 재발송 업체에 메시지와 당신의 이메일 주소를 보내면 된다. 그러면 그 업체가 그 메시지를 당신의 이메일 주소로 보내준다. 물론 재발송 업체에 전송하는 메시지와 이메일 주소도 암호화된다.
우리는 이제 암호화된 통신을 할 수 있다. 아무도 우리가 무슨 말을 하는지 누구에게 말을 하는지 알아내지 못한다. 하지만 여전히 문제가 남는다. 다른 사람들과 상호작용할 때는 신원을 밝혀야 하기 때문이다. 어떤 메시지가 나의 메시지이고 어떤 메시지가 나인 척하는 비밀 경찰의 메시지인지를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문제 또한 공개키 암호로 해결될 수 있다. 메시지에 전자서명을 할 때 나는 비밀키를 이용해서 암호화한다. 당신은 이를 나의 공개키를 이용하여 복호화할 수 있다. 나의 전자서명은 내가 서명된 메시지를 보낸 사람이라는 사실을 입증할 것이다. 이처럼 공개키 암호화, 익명처리 재발송업체, 전자서명, 그리고 익명이 보장되는 전자화폐를 결합하면 우리는 그 어떤 제3자도 우리를 관찰할 수 없다는 확신을 가지고 대화를 하거나 거래할 수 있다. 그로 인해 익명성을 보호받고 동시에 명성도 구축할 수 있다.
파놉티콘의 보편화
19세기 초 영국의 사상가였던 제러미 벤담은 모든 수감자들을 항상 감시할 수 있는 감옥을 설계하고 이를 파놉티콘(panopticon), 즉 원형감옥이라 불렀다. 오늘날에는 카메라를 이용한 감시가 보편화되면서 현대판 파놉티콘을 만들고 있다. 조사에 따르면 카메라는 범죄를 방지하는 데 효과적이고 경제적인 수단이다. 최근에는 신호를 무시하고 달리는 운전자를 검거하기 위해 카메라가 사용되기 시작했다. 언뜻 보기에 이러한 기술은 개인정보에 전혀 위협이 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오히려 저렴한 비용으로 치안을 확보하는 효율적인 대안이라 생각되기도 한다. 문제는 우리가 이 기술과 다른 기술을 결합할 때 나타난다. 비디오 카메라는 영구적인 기록을 남긴다. 감시 카메라에서 나온 비디오테이프가 특정인이 언제 어디에 있었는지에 대한 기록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얘기이다. 여기에 방대한 양의 정보를 추적할 수 있는 현대 정보처리 기술을 더하면, 누군가 당신의 행동을 대부분 열람할 수 있는 세상이 된다. 중요한 점은 합법이든 불법이든, 감시 기술을 개인이 사용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10~20년 후에는 모기만 한 크기에 모기와 같은 공기역학적 특성을 가진 값싼 비디오카메라가 나올 수 있다. 이러한 카메라를 수십 개 소유한 사람은 다른 사람에 대한 정보를 대량 수집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당신은 다른 사람이 당신을 염탐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떤 대안이 남았을까? 데이비드 브린은 프라이버시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거라고 주장한다. 흥미로운 점은 그가 이것을 좋은 현상이라고 주장한다는 점이다. 그는 프라이버시의 대안으로 투명한 사회를 제시했다. 경찰이 당신을 지켜보고 있지만, 누군가 또 경찰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이다. 전국적인 비디오 시스템에 누구나 접근할 수 있어 누구나 웹페이지를 클릭하면 모든 공공장소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볼 수 있다. 이처럼 투명 사회는 “감시인은 누가 감시할 것인가?”라는 문제에 해답을 제시한다. ‘로드니킹 사건’을 생각해보자. 경찰 여러 명이 용의자를 잡아 구타했다. 미국을 비롯한 세계 많은 지역에서는 완벽하게 정상적인 사건이다. 그러나 목격자가 구타 현장을 촬영했고 몇몇 경찰관은 감옥에 가게 되었다. 법 집행기관들은 이제 대중이 허용할 수 있는 한도를 어느 정도로 넘을지 결정할 때 누군가 비디오카메라로 촬영하고 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브린의 세계에서는 모든 법 집행자들이 자신이 항상 카메라에 찍힌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그에 따라 행동한다.
투명 사회는 매우 흥미로운 상상이지만 문제가 있다. 우선 투명 사회가 올 것이냐는 문제이다. 영국의 경우처럼 정부가 주도하여 카메라를 설치 및 운영하는 형태로 투명 사회가 도래한다면 브린이 생각하는 투명 사회는 가능할 것 같지 않다. 모든 정보는 정부에 의해 통제되는 시스템을 통해 흘러 들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술 발전으로 개인적 감시가 가능해지면 재미있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모든 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감시하는 모기(초소형 비디오카메라)가 벽에 붙어 자신의 주인에게 보고할 수 있다. 민간인이 전체적인 감시 시스템을 설치할 가능성은 낮기 때문에 각각의 개인은 소규모로 국한된 지역에 대한 정보만 얻게 될 것이다. 이러한 정보는 공유될 수 있기 때문에 정부는 정보가 거래되는 것을 막기 위해 애를 쓸 것이다. 결론적으로 브린의 투명 사회는 정부 감시가 아닌 개인적 감시에 의해 가능해질 것이라고 상상할 수 있다.
3부 온라인 비즈니스
전자화폐
현금은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개인정보를 보호하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유용한 방법이다. 현금의 장점은 사이버 공간에서 더 크다. 사이버 공간에서는 현실에서보다 낯선 사람과 거래가 일어날 가능성이 더 크기 때문이다. 전자화폐 시스템을 만들어내려고 할 때 첫 번째 문제는 위조되지 않는 가상 지폐를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해결책은 전자서명이다. “이 지폐의 소지자에게 미국 화폐 1달러를 지불하시오.” 은행은 이 지폐에 비밀키를 사용해 전자서명을 한다. 당신이 1달러를 가지고 은행에 가면 은행은 파일 형태의 지폐를 준다. 여기에는 큰 문제가 있다. 1달러를 내고 받는 돈은 한 장의 지폐가 아니라 무제한 복제될 수 있는 파일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해결책 하나는 은행이 각각의 지폐에 고유의 식별 번호를 매겨 어느 지폐가 사용되는지 추적하는 것이다. 이는 이중 사용의 문제(전자화폐를 불법 복제하여 무단으로 반복 사용하는 것)를 해결한다. 하지만 전자화폐가 신용카드보다 더 나은 이점들을 대부분 없애는 부작용이 있다. 이 문제에 대한 해법은 네덜란드 암호 해석가 데이비드 차움의 ‘은닉 서명’을 사용하는 것이다. 은행에 실물 화폐 1달러를 지불하는 대가로 무작위 식별 번호를 받은 사람이 은행의 서명을 받을 때, 은행이 번호를 알지 못하도록 하는 방법이다. 은행은 자신이 서명하는 식별 번호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지만, 화폐를 받는 은행과 판매자 모두 서명이 유효한지는 확인할 수 있다. 이 화폐가 사용되고 나면, 판매자는 식별 번호를 알게 되고 은행에 보고한다. 그리고 은행은 이 번호를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번호로 등록한다. 은행은 앨리스에게 1달러를 제공했다는 사실을 알고 빌에게서 1달러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지만, 그 둘이 같은 돈인지는 알지 못한다. 따라서 앨리스가 빌에게서 무언가를 샀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판매자는 지폐를 발행한 은행을 확인할 수 있지만 구매자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 필요가 없다. 전자화폐를 이용한다면 쇼핑할 때도 프라이버시를 보호할 수 있다. 지갑 속의 스마트카드에 암호화된 전자화폐는 현금의 익명성과 함께 신용카드의 편리함을 제공해준다.
사이버 공간에서의 계약
누군가를 계약 위반으로 고소하는 것은 귀찮은 일이다. 사이버 공간은 더욱 그렇다. 온라인에서 이루어진 계약은 지리적 한계가 없고 상대방은 세상 어디에든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 세계에는 법 이외에도 계약을 집행하는 방법이 존재한다. 백화점이 묻지도 않고 환불해주겠다고 약속하는 이유는 법 때문이 아니다. 백화점이 비합리적으로 환불을 거절하더라도 고객이 백화점을 고소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여기서 계약을 집행하는 힘은 바로 평판이다. 내가 백화점을 신뢰할 수 없다고 판단하면 백화점은 나를 고객으로 두지 못할 것이다. 백화점은 내가 불평을 털어놓은 내 친구도 함께 놓치게 된다. 인터넷에서는 법의 집행이 더욱 어렵지만 평판에 의한 집행은 더욱 강화된다. 인터넷은 정보를 수집하고 퍼뜨릴 수 있는 매우 편리한 도구이기 때문이다. 이베이 같은 온라인 경매 시스템에서 미국에 살지 않는 판매자가 배송을 하지 않은 데 대해 소송을 제기한다는 것은 그다지 실속이 있는 대안이 아니다. 그런데도 해외에 있는 판매자가 돈을 갖고 튀는 경우는 많지 않다. 이는 이베이가 평판 시스템을 폭넓게 지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베이에서 경매에 낙찰되어 배송을 받을 때마다 구매자는 거래를 평가하게 된다. 이러한 평가가 쌓여 구매자는 경매에 참여할 때면 해당 판매자에 대한 과거의 모든 평가 기록을 볼 수 있다. 평판 시스템은 나쁜 행동에 대한 정보를 널리 퍼뜨림으로써 작동한다. 평판 시스템이 얼마나 작동하느냐를 결정하는 한 가지는 누가 누구를 속였는지에 대한 정보를 제3자가 알 수 있도록 하는 능력이다. 따라서 평판 시스템은 제3자가 누구의 잘못인지 판단할 수 있는 틀을 필요로 한다.
당신과 나는 온라인에서 계약에 합의했다. 계약서에는 분쟁을 해결해줄 중재자의 이름과 그의 공개키가 포함되어 있다. 우리는 둘 다 계약서에 전자서명을 하고 각자 복사본을 하나씩 나누어 가졌다. 분쟁이 발생하자 당신은 내가 계약을 위반했다고 비난하며 중재를 요청한다. 중재자는 나에게 당신이 입은 피해에 대해 5천 달러를 보상하라고 지시한다. 나는 중재안을 거부한다. 중재자는 사건에 대한 보고서를 쓴다. 그는 보고서에 전자서명을 하고 당신에게 복사본을 보낸다. 당신에게는 처음의 계약서와 중재자의 보고서가 있다. 계약서에 있는 내 전자서명은 내가 그 중재에 합의했다는 서명이고, 보고서는 내가 그 합의안을 어겼다는 것을 증명한다. 앞으로 이러한 정보를 얻은 사람은 내가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결론을 내릴 것이다. 당신은 계약서와 보고서를 웹페이지에 올린다. 웹페이지에 접속한 모든 사람은 이를 바탕으로 나의 신용도에 대해 판단할 수 있다. 이렇게 전자서명 기술은 제3자가 정보를 구하는 데 드는 비용을 제로에 가깝게 만들어주고 평판 시스템을 효율적으로 만들어준다. 이와 같이 계약을 개별적으로 집행하는 것은 사이버 공간이 여러 사법 관할권에 걸쳐 있다는 사실에서 비롯되는 문제를 해결해준다.
4부 범죄와 통제
사이버 범죄의 미래
전통적인 컴퓨터 범죄 이야기 중 하나는 은행의 회계 시스템을 조작한 프로그래머 이야기이다. 프로그래머가 시스템을 설계해 모든 끝수처리 오차 금액이 자신에게 오도록 했던 것이다. 누군가 이자로 13.436달러를 받아야 한다면 계좌에는 13.43달러만 찍히고 그가 0.6센트를 가져간다. 이는 사소한 사기로 보인다. 하지만 은행에 100만 개의 계좌가 있고 이에 대해 매일 이자가 지불된다면 오차의 총합은 하루 5천 달러에 이른다. 절도보다 강탈을 선호하는 현대의 범죄자들은 액티브X 컨트롤이나 컴퓨터 바이러스, 그리고 공개키 암호화의 힘을 이용하여 컴퓨터의 데이터를 인질로 삼아 돈을 요구할 수도 있다. 많은 컴퓨터가 네트워크로 연결된 세상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한 가지는 컴퓨터 바이러스를 이용한 파손이고, 다른 가능성은 돈이 아니라 컴퓨터의 연산 능력을 훔치는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수백만 사람들의 컴퓨터에 적당한 소프트웨어를 다운로드한 후 인터넷을 이용해 막대한 연산능력의 부담을 지우는 것이다. 또 다른 범죄는 고의적 네트워크 마비 공격(디도스)이다. 이것은 엄청난 수의 컴퓨터를 일시적으로 이용하여 특정 웹페이지를 집중 공격하는 것이다.
우리가 논의하는 컴퓨터 범죄들은 웹에서 다운로드된 소프트웨어들과 관련되어 있다. 이것들은 원래 네트워크로 연결된 컴퓨터의 서버 과부하를 해결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소프트웨어가 유용하게 사용되려면 클라이언트 컴퓨터에서 작동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소프트웨어가 더 많은 것을 할수록 컴퓨터 소유자가 원하지 않는 일을 할 위험도 높아진다. 이러한 위험은 소프트웨어를 만들어낸 회사가 소프트웨어가 다운로드되는 것을 제어하고 소프트웨어의 작동에 책임을 지거나 소프트웨어의 능력에 엄격한 제한을 둠으로써 해결될 수 있다. 우리는 두 가지를 기억해야 한다. 첫째, 당신 책상 위에 놓인 것은 당신의 컴퓨터라는 점이다. 나쁜 사람이 어떤 짓을 하건 당신은 언제나 컴퓨터를 끄고 부팅을 한 후 하드 드라이버를 삭제하고 저장된 메모리를 복구한 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둘째, 지금은 새로운 세상이고 우리는 이제 막 이 세상에 도착했다는 사실이다. 대부분의 PC는 컴퓨터가 독립적인 기계였던 시절에 설계된 소프트웨어를 사용한다. 당시 환경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던 위협에 소프트웨어가 취약점을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소프트웨어가 진화하면서 현재의 많은 문제들은 점차 사라질 것이다.
법 집행의 미래
범죄자들만 새로운 기술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경찰도 할 수 있다. 집행되는 법이 선하다면 법 집행을 쉽게 만들어주는 새로운 기술 역시 선한 것이다. 하지만 법 집행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선한 법을 집행하기가 쉬워질수록 나쁜 법을 집행하기도 쉬워진다. 이런 경우 정부에 권력을 너무 많이 주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허용하지 않는 일까지 할 수 있어, 장기적으로 이름뿐인 민주주의 국가를 사실상의 독재국가로 바꿀 수도 있다. 따라서 살인이나 강도와 같은 범죄를 방지하면서도 너무 과하지 않은 권력만을 정부에 부과하기 위해서는 정교한 균형이 필요하다. 법 집행을 가능하게 하는 새로운 기술은 어떻게 그 균형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한 경찰관이 내 차를 세우더니 차를 뒤지겠다고 한다. 나는 왜냐고 묻는다. 그는 나의 얼굴이 살인 혐의로 현상수배 중인 자와 비슷하다고 대답한다. 30년 전이라면 이런 대답은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설득력이 없다. 이유는 경찰관이 너무 많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1년에 평균 2만 건의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2만 건의 살인 사건에 수천 명의 현상수배 용의자가 있으므로, 사실상 모든 사람이 한 사람의 용의자와 닮을 수 있다. 30년 전이라면 경찰관은 좁은 지역 범위 내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해서만 정보를 갖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모든 용의자가 기록된 데이터뱅크에 접근할 수 있다. 비슷한 문제가 법정에서도 나타난다. 강간이나 살인 사건에서 판사는 피고의 DNA가 범인의 것과 일치한다는 사실에 근거하여 판결을 내린다. DNA가 우연히 일치할 확률은 100만 분의 1이다. 데이터베이스에 비슷한 나이대의 남자 7천만 명의 정보가 담겨 있다면 순전히 우연만으로 그 중 70명의 DNA가 일치할 수 있다. 우리가 피고에 대해 아는 것은 70명 중의 하나이며 알리바이가 없고 범죄 현장 가까이 산다는 것이다. 이 모든 조건을 3~4명은 충족할 것이다. 따라서 피고가 그들 중 하나라는 사실은 그가 유죄라고 증명하기에는 너무 미약한 증거이다.
정보에 대한 접근이 쉬워지면서 정확한 답을 위한 증거를 찾기도 쉬워졌다. 하지만 잘못된 답을 위한 증거를 만들어내는 일도 역시 쉬워졌다. 따라서 추가 정보가 중요하다. 경찰은 현상수배된 용의자의 데이터베이스를 검토해 나와 닮은 용의자가 이곳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마지막으로 보고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나를 불러 세우지 않아야 한다. 경찰은 DNA가 일치하는 용의자 몇 명의 위치를 확인하고 그 중 하나가 유죄인지 진지하게 알아본 다음 유죄를 선고할 만한 추가 증거가 있을 경우에만 용의자를 체포해야 한다. 하지만 추가 증거는 증거를 더 쉽게 위조할 수 있도록 해준다. 내 피부색이나 다른 주의 번호판 때문에 나를 불러 세운 경찰은 내가 현상수배범의 인상과 일치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승진하고 싶어 유죄 선고율을 높이고 싶은 검사는 DNA가 일치한다는 보고를 하면서 그 정보를 얻은 경위와 실제 의미에 대한 설명을 생략할 수 있다. 이런 행동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서는 그에 적합하게 법과 관습을 바꾸어야 하며, 얼마나 많은 증거가 필요한지에 대한 기준을 높여야 한다.
5부 생명 공학
인간의 생식
우생학은 선택적인 번식을 통해 인간 종을 개선한다는 아이디어이다. 누군가(아마도 국가)가 인간 품종을 개량하기 위해 누구를 번식하게 할지 결정하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정책은 나치즘보다 나을 것이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에 대한 대안이 자유주의 우생학이다. 로버트 A. 하인라인의 『지평선 너머』라는 공상과학 소설에서 언급된 방법이다. 이 책에서 부부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아내의 난자와 남편의 정자 중 특정한 난자와 정자를 결합해 가장 갖고 싶은 유형의 아이를 생산한다. 각각의 결정은 자신의 아이를 위한 부모에게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높은 수준의 유전적 다양성이 유지된다. 국가와 달리 부모는 자기 아이의 복지에 대해 깊은 관심을 기울이기 때문에, 이 기술은 다음 세대를 착취하는 것이 아니라 이익이 되도록 사용될 수 있다.
하인라인이 언급한 기술은 현재 매우 원시적인 형태로 존재한다. 임신한 여성에게서 태아의 세포를 추출한 후 유전적 결함 여부를 확인하고, 결함이 있는 경우에는 태아를 낙태시키는 것이다. 낙태의 감정적인 비용을 제거하는 방법도 있다. 난자와 정자를 모체가 아닌 시험관에서 수정시키고 심각한 유전적 결함을 지니지 않는 수정란만 선택하여 이를 모체에 이식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는 두 가지 걸림돌이 있다. 하나는 체외수정이 어렵고 비용이 많이 든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유전자 검사가 아직 새로운 기술이라 세포에서 소수의 유전적 특성만 식별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는 기술 발전으로 10~20년 뒤 급격히 감소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일부 사람들은 자신이 생산할 수 있는 아이들 중 ‘가장 뛰어나고 똑똑한’ 아이를 계획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또 다른 미래기술은 유전공학이다. 유전자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안다면, 유전자를 조작해 두 명 이상의 성인 정자와 난자, 혹은 세포에서 유전자 물질을 추출해 결합한 후 맞춤형 유전자를 가진 사람을 만들어낼 수 있다. 유전생식은 부모에게서 유전자를 추출해 심어주는 방식이다. 유전공학은 무작위로 유전자를 물려받는 것이 아니라 어느 유전자를 누구에게서 물려받을 것인지 결정할 수 있게 해준다. 또 다른 가능성은 인공 유전자, 즉 완전히 독립된 또 하나의 염색체를 가진 유전자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런 유전자는 노화방지나 AIDS 치료와 같이 현존하는 유전자가 할 수 없는 일을 하며 세포 안에서 작동하도록 설계될 것이다.
동산 위의 신처럼
현대 농업생명공학은 선발 번식과 접목이라는 고대 기술에 두 가지 새로운 요소를 덧붙였다. 하나는 우리가 지금까지 해오던 것을 더 잘해낼 수 있는 능력을 추가한 것이다. 유전학에 대한 지식과 유전자 조작 능력이 발전하면서 우리는 특정 서열의 유전자가 특정 형질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그것을 이용하여 우리가 원하는 특징을 지닌 나무(포도덩굴이나 토마토)를 얻어낼 수 있게 되었다. 좀 더 흥미로운 가능성은 다른 종에서 유전자를 추가해 이식 유전자를 가진 형질전환식물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상업적으로 유명한 사례가 바실루스 트린지엔시스균(BT균)이다. 이것은 인간이나 다른 동물에는 무해하지만 일부 곤충에 유독한 단백질을 만들어내는 박테리아이다. 이러한 단백질을 만들어내는 BT 박테리아에서 추출된 유전자를 첨가하면 다양한 식물들을 만들 수 있다. 사실상 이런 식물들은 자체적으로 살충제를 만들어내는 셈이다. 동일한 기술을 사용해 최종 작물에 변형을 가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땅콩이나 토마토의 유통기한을 늘리고, 해바라기유의 포화지방 수준을 낮춰주는 것이다. 유전자가 수정된 박테리아가 인슐린을 만들도록 할 수 있고, 인간의 유단백질이 포함된 우유를 생산하도록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기술은 맹렬한 공격을 받고 있다. 생명을 창조하는 일은 신의 소관이지 우리 인간의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흥미로운 관점은 이러한 기술과 관련하여 진짜 문제가 생길 수 있느냐는 것이다. 대답은 예스이다. 이것은 강력한 기술이고 강력한 것은 이익이 되는 만큼 해를 가하기도 한다. 간단한 사례를 살펴보자. 우리가 먹는 식물은 이미 존재하는 야생 식물에서 재배된 것이다. 이러한 야생 식물은 어느 정도는 인간에 의해 재배되는 후손 식물들과 교차 수정되고 있다. 이는 작물에 도입된 유전적 형질이 바람에 실려 가는 꽃가루를 따라 야생 식물에 도달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제초제에 대한 저항력은 작물에 있어 매우 유용한 특징이지만 그 특징이 잡초에 유입되면 상당히 성가신 일이 된다.
6부 현실이 된 공상과학영화
위험한 동료
인간 수준의 인공지능이 가능한 미래는 현재의 법적, 정치적, 그리고 사회적 합의에 문제를 야기한다. 컴퓨터는 법적 권리를 가졌을까? 투표를 할 수 있을까? 이런 컴퓨터를 죽이는 것은 살인일까? 우리가 명백한 결론이라고 생각하는 지점에 다다랐다고 가정해보자. 즉 인간은 DNA보다 좀 더 근원적인 것에 의해 정의되고 컴퓨터는 인간의 자격을 얻는다고 말이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문제에 부딪친다. 이 ‘사람’들은 우리가 지금까지 알던 사람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인간은 불가분하게 특정 육체와 연결되어 있다. 인간은 잠을 잘 수 있지만 완전히 꺼지면 죽고 만다. 컴퓨터는 껐다가 다음 날 다시 켤 수 있으며, 소프트웨어를 다시 불러올 수 있다. 컴퓨터 스위치를 끄면 그것은 살인인가? 이는 당신이 다시 스위치를 켜려는 의도에 달려 있는 것인가?
인간은 번식을 통해 복제한다고 하지만, 사실 이는 틀렸다. 아이들은 부모와 똑같지 않다. 복제를 하더라도 DNA만 똑같을 뿐이다. 경험과 생각, 신념, 성격 등은 자신만의 것이다. 반면 컴퓨터 소프트웨어는 여러 개의 기계에 복제될 수 있다. 인간의 자격을 얻은 소프트웨어가 복제된다면, 복제된 소프트웨어 중 누가 그 인간의 자산을 소유하는가? 누가 부채의 책임을 져야 하는가? 내가 인간 수준의 지능을 갖춘 인공지능과 거래를 한다고 가정하자. 나는 그에게 자신의 복제를 전송할 수 있는 컴퓨터를 제공할 것이다. 그 대가로 그는 자신의 복제물이 하루에 12시간동안 나를 위해 무료로 일해주는 데 동의한다. 이 복제물은 우리의 합의를 따라야 하는가? “그렇다”고 하는 것은 노예제에 찬성하는 것이다. “아니다”라고 대답한다면 그 누구도 두 번째 복제물을 위해 하드웨어를 공급하지 않을 충분한 이유가 된다. 적어도 그 하드웨어의 전원을 끌 권리를 갖고 있다면 말이다.
마음먹기에 달린 현실
우리가 꿈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성공해서 뇌가 어떻게 작용하는지 충분히 이해하여 모든 감각을 느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냈다고 가정해보자. 이제 우리는 심원한 가상현실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것이다.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목 뒤에 있는 소켓을 이용하면 된다. 그 소켓에 꽂은 케이블을 통해 전달되는 신호는 우리의 오감이 경험할 수 있는 환상을 만들어낼 수 있다. 기술이 만들어내는 세상에 대해 생각해볼 때 유용한 첫 단계는 정보 전달과 물질 전달의 차이를 구분하는 것이다. 이 책을 읽는 것은 정보 전달이다. 책은 실체가 있는 물건이다. 하지만 가상 페이지에 있는 단어를 읽으며 책의 환상을 읽는 것은 실제 책을 읽는 것과 같다. 물질 전달에 있어서는 밀을 재배하는 것을 생각해보자. 당신은 가상의 밀을 재배할 수 있다. 씨를 뿌리고 잡초를 제거하고 밀을 경작하는 감각적 경험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당신이 재배한 가상의 밀을 먹고 살려고 한다면 굶어죽을 수가 있다. 충분히 발달한 형태의 가상현실은 모든 정보를 전달할 수 있으며 물질 전달을 도울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밀 수확기는 다른 곳에 위치한 운전자에 의해 작동되며 진짜 기계에 지시를 내릴 수도 있다. 하지만 진짜 결과물, 식량, 집 등을 만들어내기 위해 진짜 거래를 해야 한다면 누군가가 그것을 해야 한다.
물질은 현실에서 만들어져야 하지만, 인간은 살아 있기 위해 그리 많은 물질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음식의 경우 당신이 하루 2천 칼로리를 섭취하려면 그리 많은 비용이 들지 않는다. 당신은 탄수화물과 지방, 단백질 등이 풍부한 가장 저렴한 식단의 견적을 얻을 수 있다. 맛은 문제가 아니다. 먹는다는 것은 물질의 전달이며, 맛은 정보의 전달이다. 세계 최고 레스토랑에서 1천 개의 식사를 테이프에 녹화하면 당신이 먹는 콩은 결국 안심 스테이크가 될 수 있다. 다른 필수 물질도 마찬가지이다. 내 몸은 오직 1.5~3평방미터만 차지할 뿐이다. 정신이 자유롭게 가상 세계를 방랑할 수 있는데 누가 거실이나 더블침대를 원하겠는가? 현실 세계의 관점에서 보면 모든 사람이 가장 값싼 음식을 먹고 동전을 넣어 사용하는 보관함이나 다름없는 곳에 산다. 하지만 이들에게 가상현실은 천국이다. 모든 여자들은 아름답고 모든 남자들은 잘생겼다. 모든 사람이 대저택에 살고, 원한다면 금박 장식도 할 수 있다. 환상으로 창출될 수 있는 어떤 인생이든 즉각 발생한다. 무엇이 진실일까? 빈민굴일까, 천국일까? 무엇이 중요한지에 따라 다르다. 표면적으로 볼 때는 드러나지 않더라도 당신이 지각하는 감각이 중요하다면 그것이 바로 천국이다.
<“불완전한 미래”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데이비드 D. 프리드먼 지음 , 생각의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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