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변화하면 세계도 변화한다. 인간의 총체적인 과정이 낳은 산물이자 그 일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자기를 변화시키는 데는 자기 인식이 필수이다. 자기의 본질을 알지 못하면 올바른 사고의 토대도 이루어지지 않고, 자기를 알지 못하면 변화도 있을 수 없다. 실제의 자기를 알려면 엄청난 정신의 각성이 필요하다. 존재하는 것은 끊임없이 변모하고 변화하기 때문이다. 이 변화를 재빠르게 따라잡으려면 어떤 특정한 주장, 믿음, 행위의 양식에 정신이 매여 있어서는 안 된다.
무엇이든 따르려고 할 때는 속박이 장애가 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자신을 알려면 자각, 즉 모든 신념과 이상으로부터 자유로우며 빈틈없이 깨어 있는 정신이 필요하다. 신념과 이상은 우리에게 그럴싸한 구실만을 제공해서 참된 인식을 곡해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본질을 이해하고 싶다면, 자신의 본질이 아닌 다른 무언가를 믿거나 상상해서는 안 된다.
자기를 알지 못하면 경험을 통해 환영(幻影)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자기를 알고 나면 경험--도전에 대한 반응이다--으로 인해 우리 기억 속에 찌꺼기가 쌓이는 일은 없다.
자기인식은 자기만의 특유한 방식, 의도와 목적 생각과 욕망들을 매순간 발견하는 것이다.‘너의 경험’이니 ‘나의 경험’이니 하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다. ‘나의 경험’이라는 것은 무지를 드러내는 말이며, 환영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증거다.
자기를 인식하는데 정해진 방법은 없다. 방법을 찾는 마음속에는 언제나 어떤 결과를 달성하려는--이것은 우리 모두가 원하는 것이기도 하다.--욕망이 숨어있다. 시스템이나 이데올로기 같은 권위라도 따르는 이유는, 이처럼 안정감을 선사해줄 만족스러운 결과를 원하기 때문이다.
권위는 자기 인식을 가로 막는다. 권위자나 지도자라는 바람막이 아래에 있다보면, 물론 일시적으로는 안정감과 평온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전과정을 이해한 결과는 아니다. 권위는 그 본질상 자기에 대한 충분한 자각을 방해하고, 이로 인해 궁극적으로는 자유를 파괴한다. 창조는 오로지 자유 속에서만 가능하다. 자기 인식이 있어야만 창조도 가능하다는 말이다.
매 순간 진실을 자각해야만 시간을 초월한 영원을 발견할 수 있다. 자기 인식이 없으면 영원도 발견할 수 없다. 자신을 알지 못하면 영원은 그저 우리의 마음에 도피처를 제공하는 환영(幻影), 믿음, 공허하고 독단적인 이론, 말, 상징에 지나지 않는다.
매일 자신의 다양한 활동 속에서 ‘나‘를 이해하기 시작하면 일부러 애쓰지 않아도 바로 이런 앎 속에서 언어를 초월한 영원성을 느끼게 된다.
그렇지만 자기인식에 대한 보답으로 영원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영원은 애써 추구한다고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획득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닌 것이다. 영원은 마음이 고요할 때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며, 마음에 티가 없을 때만 고요해질 수 있다. 더 이상 무엇을 축적하거나 비난하거나 판단하거나 평가하지 않을 때. 실재를 인식할 수 있는 이런 티 없는 마음뿐이다. 말, 지식, 정보로 가득한 마음은 실재를 인식할 수 없다. 분석하고 분별하는 마음은 티 없는 마음이 아니다.
<“오늘을 살기위하여“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크리슈나무르티, 박윤정 옮김, 판미동>
* 지두 크리슈나무르티--1895~1986, 인도생. 달라이 라마가 ‘이 시대의 가장 위대한 사색가’라고 칭송. 그의 가르침에 데이비드 봄, 조셉 캠벨,
영국의 문호 헉슬리, ‘20세기의 예언자’ 칼릴 지브란 등도 포함.
작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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