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자료

자살과 카뮈문학을 생각해 보며!

[중산] 2012. 5. 22. 16:11

 

“개똥 밭에 굴러도 이승이 저승보다 낫다”는 옛말이 있다. 개똥이 온 몸에 묻으면 냄새나고 기분이 아주 나쁠 것이다. 이 말은 아무리 숨통을 조여 오는 현실일지라도 죽는 것 보다는 살아 갈 가치가 있다는 의미 일 것이다. 실존주의적 표현이다.

 

죽고 싶다. 세상이 귀찮다. 나만 죽어라 일해도 행복과는 요원한 것 같다. 삶이 무언지 모르겠다. 세상사 문제인지 나의 문제인지. 카뮈의 세 작품을 찬찬히 몇 번 읽어보자! 답을 찾을 것이다.《이방인》《페스트》《시지프 신화》

 

 

죽음, 병, 고통 등 인생의 근원적 부조리, 인간 내부의 악덕, 나약함, 또는 빈곤, 전쟁, 전체주의 같은 정치악 등을 상징하는 카뮈의 “페스트” 표현처럼 인간이 나이 들수록“부조리”에 눈을 뜨게 되거나 부조리를 알아채지 못하고 그것과 동화되거나 외면함으로써 현실에서 도피하려는 모습, 즉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부조리를 거부하는 모습은 옳지 않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명철한 정신, 절제된 반항, 진정한 자유를 추구하며 부조리 앞에 맞서 살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부조리란 인간과 인간, 인간과 세계의 관계가 조리,·도리에 맞지 않는 것이다. 즉 필연적 근거라는 것은 없고, 모든 것은 우연에 바탕 한다는 것이다.

 

신이 없어진 뒤(F.W. 니체의 <신은 죽었다>)의 인간존재는 우연이고, 인간과 세계의 관계도 우연이다. 인간의 생(生)에는 조금도 확실한 의미나 근거나 목적이 없다. 부조리한 인간은 다른 사람들(인생의 의미와 필연성을 소박하게 전제한 사람들)과 철저히 단절된 가운데 인생을 목적 없이 살아간다고 한다.

 

이 세상에는 합리적으로 설명될 수 있는 질서도 구원도 없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存在란 부조리한 것이며, 그러므로 인간의 윤리는 형이상학적인 환상을 품는 대신 부조리의 인식을 철저히 지녀 나가면서 죽음이 필연적으로 도래할 때까지 순간 순간을 최선을 다해 살아 나가야 하는 데 있다는 것이 그 주된 요지이다.

인간으로서 숙명적 부조리를 인식하고 그 안에서 종교를 통해 자신의 자아성장 및 인격형성, 행복을 누릴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일반적으로 종교도 믿지 않고 그 숙명적 부조리도 인정하지 않는 인간은 결국 자멸감에 빠져 자살하기 쉽다고 했다.

 

카뮈가 주장한 것은 첫째 숙명적부조리를 인정하지 못하고 자살하는 경우, 둘째 숙명적 부조리의 간극을 메우고자 종교에 귀의하는 경우 셋째 숙명적 부조리를 인정하고 그 한계 내에서 최대한 인간적인 실존을 찾아가는 경우의 과정 중 결국 셋째의 숙명적 부조리를 인정하는 것에 대해 가치를 표하고 있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자신도 그 과정 속에서 자신을 찾아가는 노력을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 부조리의 한복판에서 살아가고 있다. 저마다 행복을 꿈꾸며 희망을 말하지만 그것 또한 부조리한 현실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부조리를 인식하지 못한다. 만약 우리가 부조리를 인식한다면 우리는 선택해야만 한다. 부조리를 외면하고 계속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삶을 마감(자살)할 것인가.

 

특히나 20,30대는 부조리를 인식하지 못한다. 자살은 피 보지도 않고 시든 꽃과 같은 것이다. 왜 목숨을 끊어야 하는가?

 

유식한 예를 들어보자 카뮈의 시지프 신화에 나오는 시지프는 신들의 노여움을 산 나머지 산꼭대기로 커다란 바위를 끌어올리는 형벌을 받는다. 그러나 산꼭대기에 다다랐을 때 바위는 또다시 아래로 굴러 떨어지고 만다. 그러면 시지프는 다시 산 아래로 내려가 바위를 산꼭대기로 밀어올려야 한다

시지프와 너무도 유사한 우리들 삶 역시 다람쥐 쳇바퀴를 굴리며 살아간다. 우리의 운명도 시지프 못지않게 몹시 부조리하다.

 

카뮈는 “드문 순간들에 있어서만 비극적이다. 비극은 그것을 인식하는 순간에만 진정한 비극이 되니까 말이다.”라고 표현하였다.

 

그렇다면 왜 부조리를 의식해야 하는 걸까? 외면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카뮈는 진정한 자유로움을 얻기 위해서는 명철한 의식으로 부조리한 현실을 바라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야만 부조리의 노예가 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라고 하였다.

 

따라서 부조리의 세계에 대하여 인간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을 맞이하게 되므로, 좌절을 각오하고라도 인간적인 노력을 거듭하여 가치를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 바로 카뮈의 주장이다

 

그래도 산에서 굴러 떨어지는 바위를 끝없이 밀어 올리는 시지프의 운명처럼 인간은 헛일이 될 수도 있는 노고를 기꺼운 마음으로 되풀이해야 한다.

 

 

카뮈(Camus, A.) · 블랑쇼 역시 최고의 원리로서의 신을 부정하고 인간의 존재를 거기에 있다는 사실로서 파악하려고 하는 하이데거 · 야스퍼스 계열의 실존주의자이다. 같은 실존주의자라도 “인간은 무(無)이며, '무'라는 인간의 존재상황에서 절망이 아니라 미래를 창조하기 위하여 완전한 자유에 의하여 자기의 책임으로 선택한다는 것이 행동적 실존주의의 기본태도이다“란 샤르트르와는 다르며 본질과 관계없이 인간이 실존하고 있다는 놀라움과 공포로부터 신을 향하여 비약함으로써 절망을 뛰어넘어려고 한 파스칼과 키에르케고르 계열의 실존주의와도 좀 다르다.

 

“나는 실존주의자가 아니다.”(Doubrovsky 345) 이 말은 알베르 카뮈 자신이 했던 말이다. 그것은 사실이다; 카뮈는 실존주의자가 아니었다. 그렇다, 그는 실존주의의 많은 부분을 수용했지만, 전부는 아니었다. 무엇일까, 그러면, 실존주의자들은 무엇을 믿는가, 그리고 이것에 있어, 카뮈는 무엇을 거부했고, 또 무엇을 받아들인 것일까? 실존주의자들에게 있어서, 삶은 그것 안에선 그리고 그 자체로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따라서, “인생에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에는 각 개인은 스스로의 존재의미를 찾아야만 한다.”(McCarthy 202) 하여, 인간은 매일매일의 행위 속에서 그들만의 존재 의미를 규정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반면, 카뮈는 "인간은 자신의 행위을 통해, 인간 본래의 고귀함 혹은 이 불멸의 우주에서 반드시 죽을 수밖에 없을 운명에 직면하기 전까지 드러나지 않고 잠재적이지만 인간 내부에 항상 존재하고 있는 인간 스스로의 존엄성을 펼쳐 보일 수 있다."라고 말한다.(Masters 107)

 

이것을 이해하는 비결이 바로 인간의 고결함에 있다는 사실은 잘 알지 못한다. 카뮈는 무엇보다도 먼저 인간이 단순한 겉껍질 이상이라고 믿고 있는데, 그것은 인간에게는 어떤 기본적인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각 개인의 내부에, 카뮈는 오직 인간 내면에 그 자신만이 타오르게 할 수 있을, 강력한 선의지의 힘이 있다고 믿는다.

 

인간이 순수한 선의를 갖고 있다지만 카뮈가 세상에서 자주 목격한 것은 서로를 향한 무관심과 나태함이었다. 인류는 이같은 선의를 실천하지 못했다.

 

카뮈의 작품<이방인>에서는 평범한 샐러리맨인 뫼르소는, 재판과 세상의 부조리를 느끼며, 고독한 이방인으로 사형집행일을 기다리며 감방의 창을 통해 보이는 별과 하늘과 자연이 인간에 대해 무관심한 것이, 그가 인생에 대해 무관심한 것과 일치한다는 것을 깨닫고 행복을 느낀다. 카뮈가 목격했던 전쟁의 참상은 페스트라는 치명적인 질병으로 바뀌었다. 카뮈의 의도는 그 시대 유럽인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직 자신이 목격했던 `인간 상호간의 무관심과 냉담함'으로 그들의 눈을 돌리게 하는 것이었다. 그의 목표는 훨씬 위대했다. 카뮈는, 랑베르(Rambert)라는 인물을 통해서, "우리는 - 인류는 - 사랑하는 힘을 잃어버렸다"라고 말하게 한다.(Camus,149) 카뮈는 이 소설을 단지 1940년대의 유럽인들을 위해서 혹은 오직 2차 세계 대전을 겪은 사람들만을 염두 해 두고 집필하지는 않았으며, 바로 모든 인류를 염두해 두었던 것이다. 카뮈는 모든 세대의 인간들이 이 같은 싸움에 직면하게 될 거란 사실을 알았다.

 

열심히 살아가는 오늘이 있는 한 미래가 암담하지만은 않다. 염세주의 쇼펜하우어도 머리맡에 권총을 숨겨놓고 잠자면서 뻔뻔스럽게 72세까지 오래 살았고, 니체 역시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과 우울증, 시각장애, 변두통을 호소하면서도 독신으로

비극, 우울이 곁에 머물지라도 음악을 즐겨 들으면서 문학집필에 전념하였다.

 

궁핍한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나 1세에 아버지가 죽자 빈민굴에서 유년을 보냈던 카뮈 또한 ‘이방인‘에서 인간이란 남의 가치나 판단이 아니라 오직 자신의 가치와 판단에 충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하였다. 그의 관점에서 보면 감정을 헤프게 늘어놓는 것이야말로 위선이요 기만이다. 사회적 관습이나 가치는 그에게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 눈물 흘리기를 강요하지만 그는 그러한 관습이나 가치를 거부한다. 즉 자기 방식대로 살아간다는 점에서 그는 참다운 자유인이다“라고 하였다.

 

우리는 사회를 주위와 비교하면서 열등의식을 가질 것이 아니라 진정한 자유인으로 당당히 살아갈 가치가 있는 존재지 않는가? 오늘부터 나를 자유인 반열로 올려보자!!

 

"진실은 누구에게나 지겨운 것이었으며, 그들은 스스로 어떠한 습성을 기르는데 전념할 뿐이었고, 우리의 시민들은 열심히 일했지만, 오직 목표란 부자가 되기 위한 것이었다." (Camus, 4)

 

자기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인식이 없는 삶은 무의미하고 공허할 뿐이다. 그리고 그런 삶의 끝에는 불행히도 죽음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이러한 인생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패배를 무릅쓰고라도 저항하는 일이다. 어떻게 인식하고 저항하여야 할까.

 

중요한 것은 현재이고 구체적이어야 한다. 미래의 극락, 천국에 담보되어 현재를 등한시하여도 안 될 것이고 염세주의자처럼 ‘내일 자살할 사람이 가장 고통스러워하는 하루’이지만, ‘어제 죽은 사람이 그토록 갈망했던 하루’다. 오늘 하루를 소중히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카뮈는 빈곤과 병고를 철저히 체험한 소년 시절부터 끊임없이 죽음의 관념에 위협당하며 삶과 죽음, 자신과 세계와의 모순 그리고 대립에 괴로워했다. 이러한 모순된 인생에 대한 명철한 자기 사색을 거친 뒤에 절망 속에서도 종교에 의지하지 않고 이 세상의 행복을 추구하는 ‘부조리 의식’을 지니게 된다. 어둡고 괴로운 현실과 극을 이루고 있는 또 다른 세계, 곧 삶이 지닌 희열을 느끼는 현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삶의 끝이 결국 죽음이라면 인생은 부조리한 것이다. 하지만 비록 인간의 삶이 부조리한 것이라 해도, 난 계속해서 ‘오직’ 인간이기를 원한다. 다시 말해 나는 인간에게만 주어지는 ‘생각하는 능력’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내 이성을 사용해 끊임없이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이처럼 어처구니없는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인간적이지 못한’ 신의 구원을 기대하지도 않을 것이며, 미래나 영원에 대해 희망이나 기대를 갖지 않을 것이다. 다만 나는 바로 지금, 바로 여기의 삶에 충실할 것이다.”

 

카뮈는 일찍이 참으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 자살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인생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를 판단하는 것이 철학의 근본 문제라는 것. 하지만 인생의 무의미함을 절절히 묘사했던 카뮈 자신은 자살하지 않았고, 인생의 의미에 대해 철학적으로 정면승부하면서 풍부한 삶을 즐기다가 1960년 자동차 사고로 죽었다.

 

폐스트라는 전염병이 숙명적인 인간에게 닥친 부조리에 대해 의사는 묵묵히 도전하고 또 자신이 할 수 있는 한계까지 환자들을 도움으로써 그는 그가 살아있는 인간으로서의 자각을 하게 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삶에 대한 절망 없이는 삶에 대한 사랑도 없다”는 그의 말처럼 절망과 사랑을 모두 받아들이려는 부조리에 대한 인식이 그의 문학의 출발점이었다.

 

자연이 인간에게 호의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적의를 드러내거나 무관심한 태도를 보인다고 생각한 그는, 인간은 부조리의 포도주를 마시고 무관심의 빵을 먹으며 살아야 한다고 했다. 삶이 이렇게 부조리하고 아무런 의미가 없다면 차라리 스스로 삶을 마감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살은 삶에 대한 배반이다. 그것만이 인간이 가진 모든 것이기 때문이다.

 

“삶에 대한 절망 없이는 삶에 대한 사랑도 없다.”

“인간에게는 저마다 다른 운명이 있다고 할지라도 인간을 초월한 운명은 없다.”

“창조한다는 것, 그것은 두 번 사는 것이다.”

 

《이방인》《페스트》《시지프 신화》 알베르 카뮈 지음, 역자 김화영님/이혜윤님 민음사/동서문화사...

                                                                         <패랭이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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