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 모계 쪽은 기독교를 믿었으며 가족은 금욕주의자들었지만 자유사상이라는 세련됨도 갖고 있었다.
니체는 겨우 다섯 살이었을 때 아버지는 서른여섯 살에 뇌막염으로 죽었다. "내게는 그런일이 더 빨리 일어날 수도 있지 안은가."라며 니체는 자주 자신의 죽음에 대한 암시를 하곤 했다. 니체의 불안은 그의 아버지 죽음과 관련이 있다.
니체의 사상과 니체가 아버지에게 바친 애정 사이에서 시기에 따라 다소간 잠재적 갈등이 존재했다는 것은 확실해보인다.
니체는 늘 여행을 갈망했다. "삶을 견디기 위해서 나는 영원히 푸른 하늘이 필요하다" "프로방스 지방연안의 기후는 놀라울 만큼 나의 본질에 잘 맞는다. 이 해안 외에 다른 곳에서라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끝마치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수천킬로미터의 철로 여행을 즐겼다. 6개월동안 16번이나 이동한 경우도 있다.
그리고 니체는 음악광이었다. " 모든 사람처럼, 음악은 종종 나를 떨리게 한다. 도취감이 몰려오면서 흥분되고 고양된다. 나는 자제 하지 않는 것에 기쁨을 느끼기도 한다. 이유는, 이런 짧은 순간동안 광기에 빠지면, 나는 이성이나 사회생활에서의 규제나 관습따위를 지켜야 하는 의무감에서 해방되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자아 상실의 짧은 순간은 감정적 절정과 관련있다. 무한한 기쁨이나 격렬한 분노, 자기자신을 더 이상 인지하지 못하는데 이르는 '제 정신을 잃을 정도"의 격노가 일어난다면, 누구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음악이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기쁨은 어떤 유기적인 질병에 속하지 않고도 일어나는 일시적인 경조증의 순간들과 유사하다.
니체는 철저한 독신주의자로 남았는데, "결혼하기를 원하는 것, 그것은 삶의 의미를 잃게 되는것을 한다" 하였다.
1880년 이전, 그가 학생으로 성적 경험이 아주 적었던 것 같다.
"사람이 육체적인 또는 지적인 일에 몰두하다 보면, 성적본능은 줄어든다"라고 하였다
니체가 우울한 기분이 우세하던 시기에는 성적행위에 대해 혐오감을 느꼈다는 것은 사실이다. "뻔뻔스럽게 육체적 쾌락만 찾아 다니면, 그 쾌락은 혐오스러운 것이된다".라고 했다.
1880년 이후, 그의 성에 대한 관념이 변하게 된다. "욕망의 고통은 그 자체로는 그렇게 끔찍하지 않다.. 만일 사람이 그것을 무언가 나쁜 것이라고 간주하지 않을 때는 말이다. 마찬가지로 절실한 본능의 욕구가 우리에게 깊은 정신적인 슬픔을 유발하지 않을 때는 그것은 끔찍한 것은 아니다".
베르타로르와 만난지 이틀 만에 결혼하기로 결심한 경우도 있었고 루살로메를 만나지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청혼한 적도 있다.
에르빈 로데와는 "~나는 당신을 믿을 수 없을 만큼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한 환자가 당신에게 애원합니다. 제발, 바젤로 와 주세요"라고 감동적 서신을 주고 받기도 하였다.
"고상한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그는 "항상 가면을 쓰고 있는 것. 사람이 고상하면 할수록, 익명이 필요하다. 만약 신이 익명을 하나만 가지고 있다면, 그렇게 간단히 사람의 모습으로 세상에 나타날 수는 없을 것이다" 답하였다.
니체는 종종 자신에게 차라투스트라나 디오니소스의 모습을 부여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는 하찮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했다." 그의 육체적 고통은 그로 하여금 "모든 종류의 가면을 쓰도록"만들었다.
그러나 그의 오만함이 극에 다다른 것은 그가 "나의 성공 비법은 하찮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하찮게 만들려는 겸손함과 의지와 정신력에 있었다"고 말했을 때이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그는 "자신을 둘로 나누어, 그 반을 상냥함과 자선과 인내심과 어려운 처지의 사람을 받아들이는데" 사용해야 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신의 영원한 가장은 디오니소스 제전의 절정에서 현실과 초현실의 혼돈을 일으킬수 있다고 받아들인다. 니체는 초현실을 믿지 않았지만 초인의 영감과 힘을 숨기려고 한 까닭은 그것들을 파괴적인 동시에 창조적인 철학 속에서 표현하고 싶어서였다.
늘 불안정한 듯한 생활 속에서도 친구들의 도움으로 글을 받아 적게 하고 책읽기에도 도움을 받으며 역작을 남겼다.
우울과 광기는 어떻게 철학이 되었나 ? 사후 100년 만에 밝히는 니체의 새로운 병력. 니체가 어떻게 하여 창조적 영감과 우울증의 시기를 끊임없이 넘나들었는가를 살피고 이러한 병들이 니체의 천재성의 폭발 속에서 수행했던 근본 역할의 실체를 분석했다.
우울과 광기의 철학적 변주
- 자극, 신경질 그것은 불안에 속한다. 불안은 영혼을 독살시킨다.
- 니체 자신을 그토록 심하게 소진시키고, 육체적으로 괴롭히는 이상한 갈등은 자신의 직업과 적성이 충돌하는 깊은 적대감에서 비롯된다.
- 그의 기분은 정력적으로 그에게 철학적 사고를 하도록 만드는 반면, 그는 직업이 요구하는 많은 일에 의해 그의 길에서 멀어졌다. 왜냐하면 나의 진정한 일을 위해서, 필요하다면 어떤 직업이든지 희생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진정한 일은 바로 철학가로서의 일이다.
- 병이 나를 모든 것으로부터 분리시켰다 : 말하자면 병은 나의 모든 습관을 완전히 바꿀 권리를 주었다. 병은 나에게 잊어버릴 것을 허락하고, 지시했으며, 절대적인 휴식, 기다림, 인내라는 의무를 제시했다.
- 내체는 병이 싫었지만, 그것과 더불어 사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용기를 내어 고통스런 우울 단계를 견디고, 행복한 시기와 지적으로 흥분된 시기를 충분히 즐기는 것. 그로 인해 원기 왕성한 경조증이 그의 창조성의 근본적이고도 풍부한 원천이 되었던 것이다.
- 나를 그리워하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고, 나의 관심을 나누어 가지는 사람들만이 있을 뿐이다.
- 음악이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기쁨은 어떤 유기적인 질병에 속하지 않고도 일어나는 일시적인 경조증의 순간들과 유사하다.
- 평범이라는 가면은 탁월한 정신의 소유자가 채택할 수 있는 가장 행복한 가면이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 다시 말해 평범한 사람들은 그 가면을 보고 그가 변장했다고 의심하지 않기 때문이다.
- 나의 글들은 내가 개인적으로 체험한 경험만을 이야기하고 있다... 나의 육체와 정신은 그곳에서 빚어졌고, 글은 그것을 숨기기에는 아주 적당했다.
- 진정한 시인에게 은유는 수사학적인 형태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개념을 대체하는 이미지이다.
- 긍정적 힘의 의지는 자기 자신에 대한 지배이며, 자기 자신을 초월하려는 의지이며, 초월성에 복종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스스로를 초월하려는 노력이다.
- 가치 전환의 단계 : 1. 예전 가치의 전도, 2. 긍정적 힘의 의지, 3. 생성하는 것은 혼자서 행동하는 생성.... 현실의 본질은 생성이다.
- 디오니소스 신화를 공부하다 보면, 우리는 가장 원초적인 본능적 충동은 그 안에 잔인성과 죽음의 충동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 살아있는 사람이든 죽은 사람이든 내가 가깝게 느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 디오니소스 제전에서의 절정의 심리 상태는 생명의 넘쳐나는 원기 완성함으로 이해된다. 그리고 삶과 가장 관계가 먼, 그리고 가장 까다로운 문제들까지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이 모든 것을 나는 디오니소서적인 것이라 불렀는데, 내가 비극 시인의 심리에 접근하는 길을 발견하는 것은 바로 그것에서다. 그것은 공포나 동정심에서 벗어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위험한 감정으로부터 정화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이 영원한 생성의 쾌감이 되기 위해서이다.
- 힘의 의지에서 힘은 의지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의지 안헤서 힘이 원하는 것이다. 그것은 디오니소스 그 자체이다.
- 창조하는, 그리고 긍정적인 힘의 의지의 가장 좋은 이미지는 사실 그것을 제공하는 자발성, 열정적인 춤과 착란의 신인 디오니소스이다.
- 니체가 예술가의 개성이라고 정의한 그들이 지녀야 할 자질
1. 도취. 다름 아닌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느낌
2. 전혀 다른 상징적인 언어를 만들어 내는 극도로 날카로운 감각.
3.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폭팔의 상태에 이르도록 자기 자신을 해방시키려는 욕구
4. 예술에 의해 촉발된 반응을 멈추지 못하는 것.
5. 음악에 대해 정신적인 암시 작용을 수행하는 연상력
6. 극도의 흥분을 일으키는 조합 능력.
7. 외부적인 모든 것에 대해 무심할 수 있는 존재 방식.
- 행복한 삶을 살 수 없을 때는 영웅적인 삶을 누려야 한다.
정신과 의사의 관점에서 본 니체 이야기.
책의 앞과 중간 끝부분에 소설의 형식을 빌려 교수와 프랑수아즈라는 학생의 논문 내용에 대한 첨삭해야 할 이야기를 하고, 나머지 거의 모든 부분은 논문 내용인 듯 보여지는 형식으로 씌여짐.
1889년 1월 18일 정신 퇴행으로 예나 대학 병원에 입원한 니체를 현재 이 시점에서 진단을 내린다는 가정하에 환자의 병력 기록부, 측근들의 증언, 측근들과 주고 받은 편지, 자전적 요소가 강한 그의 저술들을 근거로 해서 진단을 내린다.
그리고 여기서 내린 니체의 병에 대한 진단 결과는 조울증 양극성 장애 제 2형.
조증과 울증이 교대로 나타나는 현상이며 근시, 편두통, 만성정신장애는 그를 평생 괴롭힌 질병이었다.
초기의 조증 상태에서는 일상 생활에 지장을 주지 않는 경조증 현상이어서 아주 짧은 기간에 수많은 책을 써 냈지만, 울증의 단계에 이르면 죄책감, 수치감으로 괴로워 했고, 피로, 수면장애, 무위에 시달리기도 했다.
1880년 까지는 울증이 우세, 이후에는 조증이 우세해서 1880년 이후에 많은 저술이 쏟아져 나왔다.
그렇지만 1888년경부터 조광증의 형태로 발전, 1889년 정신 병원에 옮겨졌고, 12년간 정신 퇴행증상을 보이다 1990년 사망했다.
니체의 인간적인 고통과 불행을 볼 수 있었던 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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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신드롬”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자크 로제 지음, 이혜은박사 옮김 이끌리오>
자크 로제(JACQUES ROGE)는 프랑스의 저명한 의학 교수이자 저술가로 《일상적 복통LE MAL DE VENTRE AU QUOTIDIEN》을 썼다.
흰 천위에 마치 군무를 하는 듯한 찔레꽃 자태!
신의 죽음_ 프리드리히 니체
“신은 죽었다.”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1844~1900)의 가장 유명한 말이다. 어떻게 신이 죽을 수 있을까? 신은 불사의 존재로 여겨진다. 불사의 존재는 영원히 산다. 하지만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그것이야말로 신의 죽음이 그토록 이상하게 들리는 이유이다. 여기엔 그런 의도가 개입돼 있다. 니체는 의도적으로 신이 죽을 수 없다는 생각을 이용했다. 니체는 말 그대로 신이 언젠가 살아 있었고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신에 대한 믿음이 더 이상 온당하지 않다고 말했다. 『즐거운 학문』(1882)에서 니체는 랜턴을 들고 신을 찾아 이곳저곳을 살폈지만 신을 발견할 수 없었던 인물에게 “신은 죽었다”는 구절을 말하게 했다. 마을 사람들은 그가 미쳤다고 생각한다.
니체는 주목할 만한 사람이었다. 스물넷이라는 아주 젊은 나이에 바젤 대학 교수로 임명되어 두드러진 학문 경력을 쌓을 자리에 앉은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이 별나고 독창적인 사상가는 그에 적합하지도 순응하지도 않았고, 스스로 삶을 어렵게 만들기를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니체는 1879년 건강이 나빠져 결국 대학을 떠나 이탈리아와 프랑스, 그리고 스위스를 여행하면서 당대인들 대부분이 읽지 않는 책들을 썼다. 그 책들은 지금 철학 작품뿐 아니라 문학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니체의 정신 건강은 더욱 나빠져 이후의 삶 대부분을 보호 시설에서 보냈다.
신이 죽었다면 다음에는 무엇이 오는가? 이것은 니체가 자신에게 던진 물음이다. 그는 우리가 도덕의 토대가 없어진 상태에 놓였다고 대답했다. 옳고 그름과 선악에 대한 우리의 관념은 신이 존재하는 세계에서 의미가 있다. 신 없는 세계에서는 의미가 없다. 신을 제거하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무엇이 가치 있는지에 관한 명확한 지침의 존재 가능성을 제거하게 된다. 그것은 아주 불쾌한 메시지로, 동시대인 누구도 듣고 싶어 하지 않았던 것이다. 니체는 자신을 ‘비도덕주의자(immoralist)’, 즉 의도적으로 악을 행하는 사람이 아니라 도덕을 넘어설 필요가 있다고 믿는 사람, 그의 책 제목을 빌려 말하면 ‘선악의 저편’에 도달할 필요가 있다고 믿는 사람으로 묘사했다.
니체에게 신의 죽음은 인류를 위한 새로운 가능성을 연 것이다. 이 가능성은 우리를 무섭게 만드는 동시에 유쾌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나쁜 면은 사람들이 어떻게 살거나 존재해야 할지에 대한 어떠한 안전장치나 규칙도 없다는 것이었다. 일찍이 종교가 도덕적 행동에 의미와 제한을 두었던 곳에서 신의 부재로 모든 것이 가능해졌고 모든 제한이 제거됐다. 좋은 면은 최소한 니체의 관점에서 볼 때 개인의 가치를 창조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자기 삶의 방식을 발전시켜 삶을 예술작품 같은 것으로 변화시켰다.
니체는 일단 신이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면 옳고 그름에 대한 기독교적 관점을 견지할 수 없다고 보았다. 이는 자기기만일 것이다. 그의 문화가 물려받은 가치, 즉 동정, 친절, 그리고 다른 사람의 이익을 고려하는 등의 가치가 모두 도전받을 수 있었다. 그러한 가치에 도전하는 니체의 방법은 그것이 본래 어디에서 유래하는지 성찰하는 것이었다.
니체에 따르면 약자와 의지할 데 없는 자들을 돌보는 기독교적인 덕은 놀라운 기원을 지녔다. 당신은 동정과 친절이 명백히 선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아마도 당신은 친절함을 찬양하고 이기심을 경멸하도록 교육받았을 것이다. 니체는 우리가 소유하는 사고와 감정의 양식은 역사를 지닌다고 주장했다. 일단 우리가 개념을 어떻게 갖게 되었는지 역사 내지 ‘계보학’을 알게 되면, 그것들을 영원히 고정된 것이나 우리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관한 객관적인 사실로 생각하기는 어렵다.
『도덕의 계보학』에서 그는 강력한 귀족적 영웅들이 친절과 관대함, 그리고 범죄에 대한 가책이 아니라 명예와 수치, 전투에서의 영웅적 행위라는 관념을 중심으로 자신의 삶을 구축한 고대 그리스의 상황을 기술했다. 이것은 고대 그리스의 시인 호메로스가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에서 묘사한 세계이다. 이러한 영웅의 세계에서 힘이 없는 노예와 약자는 강자를 시기했다. 노예는 질투와 원한을 강자들에게 돌려보냈다. 이러한 부정적 감정에서 그들은 새로운 가치를 창조했다. 그들은 귀족의 영웅적 가치를 뒤집어놓았다. 귀족처럼 강함과 힘을 찬양하는 대신 노예는 관대함과 약자에 대한 배려를 덕으로 삼았다. 니체가 노예의 도덕이라 일컫는 이러한 도덕은 강자의 행위를 악으로, 그들의 동료의식을 선으로 취급했다.
친절의 도덕이 질투의 감정에서 시작되었다는 생각은 도전적이었다. 니체는 약자를 동정하는 기독교적 도덕보다는 귀족의 가치를 선호했고 호전적이며 강력한 영웅을 찬양했다. 기독교와 그것에서 파생된 도덕은 모든 개인을 동일한 가치를 지니는 존재로 취급한다. 니체는 그것이 심각한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베토벤과 셰익스피어 같은 니체의 귀족적 영웅들은 대중들에 비해 훨씬 더 뛰어났다. 이로써 말하고자 하는 바는 처음에 질투에서 출현한 기독교적 가치가 인류를 억누른다는 것으로 보인다. 약자가 짓밟히는 대가를 치러야겠지만, 이는 강자의 영광과 성취를 위해 지불할 가치가 있는 대가였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1883~1892)에서 니체는 ‘초인’에 대해 썼다. 초인은 관습적인 도덕규범에 제지당하지 않고 그것을 넘어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상상의 사람이다. 아마도 찰스 다윈의 진화론에 영향을 받아 니체는 초인을 인류 발전의 다음 단계로 보았다. 이것은 조금 우려스러운데, 자신을 영웅적 존재로 바라보고 다른 사람들의 이익을 고려하지 않으며 제멋대로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더 나쁜 것은 나치가 니체의 저작에서 이 견해를 취해 인종에 관한 왜곡된 견해를 뒷받침하는 데 이용했다는 점이다. 물론 대부분의 학자들은 나치가 니체의 견해를 왜곡했다고 주장한다.
니체가 온전한 정신을 잃고 난 뒤, 그리고 사후 35년 동안 그의 작품은 여동생 엘리자베트가 통제했다. 엘리자베트는 극악한 독일 민족주의자이자 반유대주의자였다. 그녀는 니체의 노트를 샅샅이 훑어 자기가 동의하는 구절을 뽑아낸 뒤에 독일을 비판하거나 인종주의 관점을 뒷받침하지 않는 것은 버렸다. 『권력에의 의지』로 출판된 엘리자베트의 짜깁기 버전은 니체의 저술을 나치즘을 위한 선전으로 변화시켰고, 그는 제3제국의 공인된 저자가 되었다.
니체가 좀더 오래 살았더라면 그런 일을 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하지만 니체의 작품 속에 약자를 파괴하는 강자의 권리를 옹호하는 수많은 구절이 존재한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그는 우리에게 양이 맹금류를 미워하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는 양을 채가 먹어 치운다고 해서 우리가 맹금류를 싫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성을 찬양한 칸트와 달리 니체는 언제나 정감과 비합리적 힘들이 인간의 가치를 형성하는 데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의 견해는 확실히 지그문트 프로이트에게 영향을 주었다. 프로이트는 무의식적 욕망의 본성과 힘을 탐구했다.
<“철학자와 철학하다”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나이절 워버턴 지음, 역자 이신철교수, 에코리브르>
▣ 저자 나이절 워버턴
영국의 철학자. 브리스틀 대학교를 졸업하고, 케임브리지 대학교 다윈 칼리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노팅엄 대학교 교수를 거쳐, 현재 방송대학의 철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간 팟캐스트와 통합 철학 웹사이트를 운영하며, 테이트 모던에서 예술과 철학에 관한 대중 강좌를 열고 있다. 『한 권으로 읽는 철학의 고전 27(Philosophy: The Classics)』, 『철학의 주요 문제에 대한 논쟁(Philosophy: The Basics)』, 『모든 것에 대해 생각하기(Thinking from A to Z)』, 『자유언론: 아주 짧은 입문(Free Speech: A Very Short Introduction)』 등 철학에 대한 매우 대중적인 입문서를 여러 권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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