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에 대한 지혜_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다고 믿는 너에게
‘사랑이냐, 돈이냐?’ 이것은 ‘행복의 본질’과 ‘물질이 가져다주는 행복’에 대한 것이다. 즉, 물질에 의해 사람의 행복이 얼마나 좌우되는지를 논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주제를 가지고 토론하다 보면 자신이 생각하는 행복과 추구하는 행복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느냐, 없느냐?’에 대한 철학적 논란은 행복의 관점에 따라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행복은 내면에 있으므로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다고 믿는 ‘내면파’이고 또 하나는 소유에 의해 행복이 좌우된다는 ‘소유파’이다. 두 학파의 주장은 어느 쪽이 행복을 가져다주느냐를 따지는 ‘행복의 조건’이 아니라, 사람들이 느끼는 ‘행복의 본질’에 대해 논하는 것이다.
‘소유파’의 주장은 많은 물질을 통해 사람들이 더 많은 행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지 꼭 물질만이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것은 아니다. 싸구려 드레스를 입고 르 바롱 파티에 참석하는 것보다 샤넬 드레스를 입고 가는 게 더 행복할 수 있다는 얘기다. 반대로 ‘내면파’의 주장은 물질적 행복을 배척하는 게 아니다. 다만 물질만으론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한 것뿐이다. 우리는 최신형 포르쉐 스포츠카와 루이뷔통 신상품 백 같은 최고의 물건을 가지고도 행복하지 못한 경험을 해봤을 것이다. 이런 물질들이 우리를 잠시 기쁘게 해줄 수는 있어도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건 아니다.
하지만 물질적인 것을 아예 배제하고 행복에 대해 논하는 것은 인간이란 존재 자체가 가지고 있는 물질성을 무시하는 것과 같다. 인간은 정신만 있는 존재가 아니므로 정신적인 것만 가지고는 결코 행복할 수 없다. 사랑하는 연인이 있다. ‘사랑’이란 매우 주관적이고 관념적이며 내면적이다. 두 사람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오직 함께 있으며 사랑을 확인하는 것만으로 행복할 수 있을까? 배가 고프고, 목이 마르고 다리가 아픈데도 오직 ‘사랑’만으로 충만하고 행복할 수 있을까? 그것은 불가능하다.
사람들이 진짜로 궁금해하는 것은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는지 없는지가 아니라 돈으로 어느 정도의 행복을 살 수 있느냐이다. 우리는 이미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돈이 행복의 전부는 아니지만, 돈이 없는 것보다는 많은 게 행복에 더 가깝다는 것쯤은 안다. 많은 돈은 일상의 안락함을 제공해주고,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와 시간을 내 의지대로 쓸 수 있는 여유를 안겨준다. 세상에는 돈이 있어야만 가질 수 있는 행복이 많다. 따라서 사람들이 행복을 느끼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의 외적, 물질적 조건들이 필요하다. 이 점에 대해 아리스토텔레스는 외적인 조건 없이는 행복하기 어렵다고 분명하게 말했다.
“예를 들어 좋은 태생, 훌륭한 자손, 아름다운 외모를 누리지 못하면 삶의 행복이 변질된다. 실제로 못생긴 외모를 타고났거나 태생이 비천하거나 고독하게 살거나 자녀가 없으면 완벽하게 행복할 수 없다. 그러나 완전히 나쁜 자녀와 나쁜 친구만 있거나, 좋은 자녀와 좋은 친구를 가졌다가 잃는다면 아마도 더욱 행복하지 못할 것이다.” - 《니코마코스 윤리학》제1권 8장 16절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대로 물질적인 토대가 없으면 행복보다는 불행을 느끼기 쉽다. 따라서 돈은 행복을 위한 필요충분조건이다. 불안정한 생활과 언제 무슨 일이 닥칠지 모를 불안감 속에서는 절대로 행복을 느낄 수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행복의 문을 열기 위해 생활비라는 명목으로 월급의 상당 부분을 쓰고 있다. 우리는 행복을 사기 위해 이미 많은 돈을 투자하고 있다.
사실 행복은 거창한 것도 관념적인 것도 아니다. 마치 새장 속의 파랑새처럼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아서 때로는 지루하게 느껴지고, 평화롭다 못해 평범하게만 느껴지는 우리의 일상이 바로 ‘행복’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기에 동의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런 행복은 이미 자신들이 누리고 있기 때문에 그것보다 더 큰 것이 행복이라고만 생각한다. 사람들의 이런 생각들이 행복 속에 있으면서도 자신의 행복을 확인하지 못하게 만든다. 사람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 누리고 있는 것에 대한 가치와 소중함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쉽게 망각한다. 그것들이 사라지고 깨지고 나서야 깨닫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이 행복하다는 것을 확인하려고 애쓴다. 이미 행복한 상태에 있다는 사실보다 자신이 행복하다는 것을 스스로 확인하는 게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사람들은 더 많은 돈을 내고 온갖 노력을 기울인다. 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최신 전자 제품을 사기도 하고, 온갖 치장을 하면서 행복을 확인하려고 한다. 하지만 이것 역시 사람들의 착각이다. 이것은 행복이 아니라 잠깐 누리는 기쁨이나 즐거움, 충족감, 성취감, 쾌락 같은 감정이다. 이런 감정들은 곧 사라져버리는 신기루 같은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런 감정을 ‘행복’이라고 착각하며, 이 상태를 지속하기를 원한다. 현실적으로 행복한 상태를 지속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람들은 기쁨과 충만함이 가득한 상태를 계속 맛보기를 원하며 더 많은 돈과 노력을 투자하려고 한다. 사실 사람들이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는가?’를 묻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그것은 더 많은 돈이 있으면 더 오래 행복할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고 또 그 생각이 맞는지 아닌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흥겨운 일도 계속하면 재미는 반감되기 마련이다. ‘지속적인 행복’에 대한 무리한 욕심은 오히려 권태와 허무감만 가져다줄 수 있다. 다시 주장하지만, 사실 우리는 행복한 상태에 있다. 현재 슬프거나 괴롭거나 불행하지 않다면 말이다.
<“스무 살에 만난 지혜가 평생을 먹여 살린다”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로랑스 드빌레르 지음, 역자 이주희님, 명진출판>
<개화 전 모과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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