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일리치의 죽음
이반 일리치는 항소법원 판사로 재직하던 중 마흔다섯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그는 형제 중 중간 쯤 되는, 똑똑하고 활달하고 누구나 좋아하는 예의 바른 인물이었던 것이다. 법률학교 다닐 때부터 그는 이미 변치 않을 그런 성품을 보여주었다. 능력 있고, 밝고 선량하며 사교적이면서도 자신의 의무라고 생각하는 일에 대해서만큼은 철저히 해내는 그런 성품이었던 것이다.
예심판사가 되어 새로운 도시로 이사하면서 이반 일리치는 새로운 사람들과 친분을 쌓고 새로운 인맥을 만들어갔다. 그리고 처신이 전과는 조금 달라졌고 태도도 그에 걸맞게 약간 변화되었다.
새 도시에 근무한지 이년쯤 지나 그는 장차 아내가 될 여성을 만났다. 쁘라스꼬비야 표도로브나 미헬이라는, 아주 매력적이고 영리하며 이반 일리치가 어울리던 사교계에서 가장 눈에 띄는 아가씨였다. 그녀와 몇 번 춤을 추었는데 바로 이렇게 춤추는 과정에서 그는 쁘라스꼬비야 표도로브나의 마음을 빼앗을 수 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 잡아넣을 수 있다는 권력의식, 비록 외적인 것이지만 법정에 들어설 때나 부하 직원을 만날 때 분명하게 전해져오는 존경 어린 시선, 그리고 무엇보다 그 자신 스스로도 잘 느끼고 있는 탁월한 업무처리 능력 등등 이런 모든 것들에서 그는 기쁨을 느꼈다.
이번 달에도 그는 저명하다는 또 다른 의사를 찾아갔다.
입안에서 점점 더 이상한 맛이 났고 역겹고 이상한 냄새가 풀풀 나는 것 같아 식욕도 떨어지고 기력도 현저히 약화되었다. 이반 일리치가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한번 도 겪어보지 못한 그런 심각한 일이 그의 몸속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도대체 왜 제게 이런 고통을 주시나요? 왜 저를 이렇게까지 고통스럽게 만드는 겁니까? 왜 절 이렇게까지 괴롭힌단 말입니까?” 그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울었다. 대답은 없을 것이고 있을 수도 없다는 것에 더욱 눈물이 났다. 다시 통증이 몰려왔지만 그는 몸을 뒤적이지도 누구를 부르지도 않았다. 그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그래, 또 온단 말이지, 올 테면 오라고 해! 그런데 왜? 도대체 왜? 내가 뭘 잘 못했다고 이러시는 겁니까?’
그러다가 그는 조용해졌다. 울음도 그치고 죽은 듯이 숨도 멈춘채 정신을 집중했다. 그는 사람의 목소리가 아닌 영혼의 목소리, 내면에서 솟아오르는 생각의 흐름에 열심히 귀를 기울였다. ‘네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 ‘네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 그는 그 말을 반복해서 되뇌었다.
‘무엇이 필요하냐고? 더 이상 고통 받지 않는 것, 그리고 사는 것,’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사는 거라고? 어떻게 사는 거 말이냐?’ 영혼의 목소리가 물었다.
‘전에 살던 것처럼 그렇게 사는 것이지, 기쁘고 즐겁게,’
‘전에 어떻게 살았었는데? 그렇게 기쁘고 즐거웠나?’ 영혼의 목소리가 다시 물었다.
그는 기억 속에서 이전에 즐거웠던 삶의 순간들을 하나씩 떠올려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예전에 좋았던 그 모든 순간들이 이제 전혀 다르게 느껴졌다. 아주 어렸을 때의 추억을 빼고는 모든 것이 다 그랬다. 어린 시절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그리고 현재에 가까워지면 질수록 기뻤던 일들은 더욱더 덧없고 의심스러운 것으로 변했다. 우선 법률학교 시절이 그랬다. 그래도 아직 거기엔 조금이라도 진실하고 좋았던 점이 있었다. 쾌활함과 우정과 희망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고학년으로 올라 갈수록 좋았던 순간들은 점점 더 사라져갔다.
결혼...너무나 절망적이고 환멸뿐이었다. 아내의 입 냄새, 애욕과 위선, 그리고 죽은 것만 같은 공직 생활과 돈 걱정들, 그렇게 일 년이 가고 십년이 가고 이십년이 갔다. 하루를 살면 하루 더 죽어가는 그런 삶이었다.
그런데 왜? 왜 이렇게 된 것이지? ‘어쩌면 내가 잘못 살아온 건 아닐까?’ ‘ 난 정해진 대로 그대로 다 했는데 어떻게 잘 못될 수가 있단 말인가?’
석 달째로 접어들면서 이반 일리치의 병세는 아주 조금씩 서서히 악화되었기 때문에 딱히 어떻다고 설명하기가 힘들었다. 그는 잠이 점점 줄어들었다. 아편과 모르핀이 투약되기 시작했다.
사흘 동안 이반 일리치에겐 시간이란 게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이 그를 잡아 밀어 넣은 바로 그 검은 자루 속에서 고통스럽게 몸부림치고 있었을 뿐이다. 구원의 방도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는 사형수가 사형 집행인의 손아귀를 빠져 나가려고 발버둥치는 것처럼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그는 있는 힘을 다해 맞서 싸웠지만 그토록 두려운 죽음의 순간은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음을 매 순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내는 입을 크게 벌린채 코와 빰에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절망적인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내도 불쌍했다. ‘그래, 내가 모두를 괴롭히고 있구나.’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 ‘모두 참으로 안됐어. 하지만 내가 죽으면 훨씬 나을 거야.’ 그는 이 말을 하고 싶었지만 입을 움직일 힘이 없었다. 그는 아내에게 눈으로 아들을 가리키며 말했다.“데리고 나가....불쌍해 당신도....”
그러자 돌연 모든 것이 환해지며 지금까지 그를 괴롭히며 마음속에 갇혀 있던 것이 일순간 밖으로, 두 방향으로, 열 방향으로, 온갖 방향으로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그런데 통증은?’ 통증은 어디로 갔지? ‘그런데 죽음은? 죽음은 어디 있지?’
죽음 대신 빛이 있었다.
“그래, 바로 이거야!‘ ”아, 이렇게 기쁠 수가!“
쇠약할 대로 쇠약해진 그의 몸에 경련이 찾아왔다. 부글거리는 소리와 숨이 차서 쉭쉭거리는 소리는 점차 잦아들었다.
“임종하셨습니다!” 누군가 그를 굽어보며 말했다~~!.
* 살아 있을 때 가끔 ‘관에 누워보기‘ ’유서 쓰기‘ 등 죽음을 미리 체험해보기도 한다. 인생 후반부에 있는 분들은 더 나아가 똘스또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필독하기를 강추한다. 똘스또이가 종교문제에 천착하면서 참회록에 이어 58세 때 집필한 책인데 이 책만큼 삶과 죽음에 대해 통찰력 있게 그려져 있는 책은 없을 것 같다. 썩 내키지 않더라도 독서 후에는 하루하루의 삶이 더욱더 진지하게 다가올 것이라 것을 확신한다.--중산--
<“똘스또이 작,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극히 일부 발췌, 이강은교수님 옮김, 창비출판>
양산 법기 수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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