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군대가 떠난 그다음 날 오후 어디 있다가 나왔을까 싶은 프로이센 창기병 몇이 재빨리 도심을 질러갔다.
삶이 멈춘 듯했다. 상점들은 문을 닫아걸었고 거리는 말소리를 잃었다. 기다림에 지친 불안한 마음은 차라리 적이 어서 오기를 바랐다.
주민들은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완전히 얼이 빠져 버렸다. 이러한 동일한 감정은 사물의 기존 이치가 뒤집어질 때마다. 더는 안전이라는 존재하지 않을 때마다, 인간의 법과 자연의 법을 보호를 받던 그 모든 것이 무분별하고 사나운 폭력에 따라 좌우될 때마다 나타나기 마련이다.
프랑스인들은 여전히 바깥출입을 삼갔지만 거리는 프로이센 병사들로 우글거렸다. 정복자들은 돈을, 많은 돈을 요구했다. 주민들은 늘 돈을 내줬다.
침략자들이 비록 도시 전체를 그들의 엄격한 규율로 옭아매긴 했지만 개선의 행군을 해오는 내내 소문으로만 무성했던 그들의 잔학 행위들 가운데 그 어떤 것을 저지르지 않았기에, 마침내 사람들은 대담해졌고, 장사의 욕구가 다시금 그 고장 장사꾼들의 마음을 들쑤셔댔다.
사람들은 친분을 터놨던 독일 장교들의 영향력을 이용했고 총사령관으로부터 출발허가가 떨어졌다. 그리하여 네 마리 말이 끄는 커다란 승합마차가 이 여행을 위해 준비되고 열 명의 승객이 승객명부에 올라 동트기 전에 출발하기로 결정이 났다.
새벽 4시 반이 되자, 탑승 장소로 정해진 노르망디 호텔 앞 뜰에 사람들이 모였다. 아직도 잠이 한가득인 이들은 모포를 두른 채 덜덜 떨어댔다. “ 난 아내를 데려 갑니다.” “나도 그래요” 세 번째 남자 중 한명이 말했다. 프로이센군이 르아브르 근처까지 오게 되면 영국으로 뜨려고요.
마차의 안쪽 자리를 차지한 이 여섯 명이 권세를 누리는 상류사회를, 백작부인 옆으로 두 명의 수녀가 앉아서 주의 기도와 성모송을 중얼대고 있었다.
그 두 명의 수녀 앞에 있는 남자 한명과 여자 한명이 모두의 시선을 끌어 당겼다. 남자는 잘 알려진 인물로, 점잖은 사람들의 공포인 민주투사 코르뉘데였다. 그는 어서 공화정이 들어서서 그토록 엄청난 양의 혁명적 음료 소비에 걸맞을 자리를 하나 꿰찰 날이 오기를 바랐다.
여자는 화류계 여자로서, 일찌감치 살이 오를 걸로 유명했고, 덕분에 비곗덩어리라는 별명을 얻었다. 싱싱함이 보기에 즐거운 터라 인기가 많았다. 얼굴은 빨간 사과, 이제 막 피우려는 작약 송이였다. 그녀가 누군지 알아보자마자 곧 점잖은 부인네들 사이에서 속삭거림이 퍼져나갔고, “창녀", ”공공의 수치“라는 말 등이 크게 튀자 여자가 고개를 쳐들었다.
그치지 않고 내려오는 눈의 장막이 지상을 향해 펼쳐지며 끊임없이 어른거렸다. 그것은 형체를 지워버리고 사물을 얼음 거품으로 뒤덮었다.
열한 시간을 달려왔고 네 시간에 걸쳐 두 시간 동안 휴식을 취했으니 도합 열네시간이었다. 승합마차는 멈춰 섰고 마부 옆에는 환한 불빛을 받으면서 독일 장교 한명이 서 있었다. 그 독일인은 사령관이 서명하고 이름과 인상착의, 그리고 기재된 사항을 일일이 맞춰보면서 한명 한명을 찬찬히 바라봤다.
‘됐습니다“ 그러고는 사라졌다.~
여인숙 주인이 “엘리자베트 루세 양? 어느 분이신가요?”
“저 예요?”
“프로이센 장교가 지금 당장 할 얘기가 있답니다.”
“제게요?”
“가지는 않겠어요”
그녀 주위로 동요가 일어났다. 백작이 다가왔다.
“그건 잘못하는 겁니다. 부인 거절하면 심각한 곤란을 초래할 수 있어요. 부인에게 뿐만 아니라 부인의 길동무에게 까지 도요, 가장 힘이 센 사람들에게 결코 저항해서는 안 됩니다. 뭔가 형식적인 절차가 누락됐나 봅니다.”
모두가 합세하여 그녀에게 간청하고 압력을 넣고 훈계를 해댄 끝에 마침내 그녀가 넘어가고 말았다. 모두들 그녀의 즉흥적인 결정이 상황을 복잡하게 꼬아 놓을까봐 두려워했다. 마침내 그녀가 이렇게 말했다.
“이런 일을 하는 건 바로 여러분을 위해서 예요!”
백작 부인이 그녀의 손을 쥐었다. “우리 모두 정말 감사해요.”
하지만 10분 뒤 여자가 다시 나타났는데, 거친 숨을 몰아쉬고 숨쉬기가 힘든 듯 얼굴이 시뻘게져서 화를 터뜨렸다.
“오 비열한 놈! 비열한 놈!“
모두 무슨 일인지 알고 설쳐댔지만 여자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백작이 집요하게 캐묻자 위엄이 가득한 태도로 대답했다.“여러분과는 아무 상관 없는 일이에요. 말씀 드릴 수가 없군요.”
부인 이군인들, 이것들은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 돼요! 사람 때려죽이는 일이나 배우라고 우리 가난뱅이 서민들이 놈들을 먹여 살려야 하다니!
코르뉘데가 말했다.
“전쟁이란 평화로운 이웃을 공격할 때면 야만스런 짓이죠. 조국을 방어 할 때면 성스러운 의무지만요.”
“그렇죠. 스스로를 방어하는 거라면 다른 문제죠. 그런데 차라리 자신들의 즐거움을 위해 그런 짓을 하는 왕들을 모조리 죽여야 하는 게 아닐까요?”
“장교가 이렇게 말했지요. 내 명령 없이 그들이 떠나서는 안 됩니다.”
사람들이 몰려와서 장교와의 면담에서 있었던 비밀을 밝히라고 요청했다.
“그가 원하는거? 나랑 자고 싶대요!“
루아조는 프로이센 장교에게 비곗덩어리만 남겨놓고 다른 사람들은 출발할 수 있게 해달라고 제안하자는 의견이 있었다. 장교는 욕망이 채워지지 않는 한 모든 사람들을 붙잡아 두겠노라 단언했다.
루아조 부인의 상스러운 기질이 폭발하고 말았다.
‘어쨌든 여기서 늙어 죽을 수는 없잖아요. 아무 남자하고나 그 짓을 하는게 그 계집 매춘부 직업이잖아요. 왜 이자는 되고 저자는 안 된다며 거절을 한답니까? 놀랍지 않나요“ 어쩌면 오래 전부터 여자를 가까이 하지 못했을 수도 있어요. 어쩌면 그 장교는 우리 셋이 더 마음에 있었을 수도 있어요. 유부녀들을 존중하는 거죠.
그래서 다들 모여서 음모를 꾸미기 시작했다.
“부인. 그 자체로는 비난받을 행동이지만 그 행동을 낳은 생각에 의해 종종 칭송받을 만한 것으로 바뀐답니다.”
이 모든 것은 모호하고, 교묘하고, 은밀했다.
수녀의 한마디 한마디는 매춘부의 분노로 얼룩진 저항에 균열을 일으켰다. 이 프로이센 장교의 변덕 때문에 도중에 발이 묶여 있는 동안 수많은 프랑스 군인들이 죽어갈지도 모른다.
백작은 다정함으로, 논리로, 감정으로 그녀를 사로 잡았다. “이봐, 아가씨, 그자는 자기 나라에서는 예쁜 아가씨를 볼 수 없을 테니 예쁜 아가씨를 봤다고 자랑할지도 모르지.”
루아조는 “안심들 하세요. 모든 게 잘되어 갑니다.”
그녀는 살짝 불안해 보였고 부끄러워하는 듯했다.
모두가 바쁜 듯했고 마치 그녀가 치맛자락에 전염병이라도 묻혀왔다는 듯 그녀와 멀찌감치 거리를 유지했다.
모두 그녀가 보이지 않는 것처럼, 그녀를 알지 못하는 것처럼 굴었다.
비곗덩어리는 눈도 들지 못했다. 그러는 동시에 그녀는 이웃한 모든 사람들에 대해 분노를 느꼈고, 그만 중도에 껶여 이 사람들이 위선적으로 던져 넣어준 프로이센 장교의 품에 안겨 더럽혀짐으로써 모욕을 당했다고 느꼈다.
- 전쟁이라는 역사적, 시대적 배경을 제시한 후, 프로이센 군대에 점령당한 루앙에서 벗어나 아직 프랑스가 지배하고 있는 르아브르로 가기위헤 삯마차에 몸을 싣게 되는 다양한 계층의 등장인물을 소개한다. 대귀족, 부르조아. 민주투사. 창녀, 수녀 등 다양한 계급 출신을 넣어 구성한 이 그룹은 루앙 사회의 축소판인 셈이다. 프로이센 장교의 요구를 거부하려는 사회 최하층인 창녀의 자존심과 애국심, 그리고 허울뿐인 애국심을 재빨리 내던지고 개인의 잇속을 챙기기 위해 장교의 요구를 들어주도록 압력을 넣는 상류층 인사들의 위선이 맞부딪히면서 갈등은 절정을 향해 치닫는다. 결국, 일행의 끈질긴 회유와 설득에 창녀가 굴복해 버림으로써 갈등이 해소되고 사건은 결말을 맞는다.<해설>
<“비곗덩어리”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기드 모파상 지음. 정혜용님 옮김. 시공사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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