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와 베짱이의 운명을 바꾸어 놓은 교환의 비밀이 모두 풀렸습니다. 노동력의 교환이 바로 그 비밀의 열쇠입니다. 이제 노동력의 교환을 통해서 개미와 베짱이의 운명이 바뀌는 것입니다. 노동력의 매매에서 노동을 하는 사람이 바로 개미입니다. 반면 노동력의 구매자는 노동을 하지 않습니다. 바로 베짱이지요.
그런데 이 베짱이는 개미에게 지불한 가치보다 더 많이 일을 시켜 더 큰 가치를 차지합니다. 교환이 거듭될수록 양쪽의 격차는 커집니다. 가치를 만들어 내는 개미가 교환을 통해 가난해지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개미가 가치를 생산하는 것과 관련해 베짱이는 크게 두 가지 일을 합니다. 하나는 노동자를 관리 감독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공장설비나 원료 따위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개미가 가치를 만드는 것을 도와줄 뿐이지요. 개미의 노동이 없다면 이들 원료나 설비도 당연히 필요 없습니다.
OECD국가들의 연간 평균 노동시간이 1,764시간(2008년 기준)이고 우리나라 연간 평균 노동시간이 2,243시간(2009년 기준), 현대자동차 연간 평균 노동시간이 2,528시간(2007년 기준)입니다. 베짱이가 결정한 노동시간은 ‘사람이 죽을 때까지’였던 것입니다. 노동시간이 커질수록 베짱이가 챙겨가는 몫이 커집니다.
개미의 노동시간은 베짱이에게 바로 돈이거든요. 마르크스는 이 점을 베짱이의 입을 빌려 다음과 같이 지적합니다.
“1분 1초가 수익의 요소인 것이다.” (1권.345쪽)
마르크스가 보았던 혁명은 개미가 바로 이 손해 보는 교환을 그만두기 위해 ‘나, 이제 안해’라고 하는 집단행동이었습니다. 손해 보는 교환을 그만 두기 위해서는 생산수단과 자본이 필요했습니다. 개미가 모두 자본가로 변신하는 것이지요. 기업을 생산하는 협동조합 또는 종업원 지주 회사들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가끔씩 보는 사례들은 극히 예외적인 형태로 존재할 수 있답니다. 마르크스는 <자본>에서 해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개미들이 모두 자본가가 될 수 없는 이유, 그것은 개미와 베짱이가 대물림되는 자본주의 구조 속에 숨겨져 있습니다.
“노동자는 사람들을 부유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에, 노동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그만큼 부자도 많아진다.....가난한 사람의 노동은 부자의 보물창고이다.”(1권.840쪽)
개미가 자신의 운명을 바꾸기 위해서는 이들 인위적인 장치들을 바꿔야합니다.
개미가 자본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은 단 한 가지뿐입니다. 자신의 임금을 절약해서 모으는 방법입니다. 따라서 이 장치의 핵심은 개미가 돈을 모을 수 없을 정도로 임금을 주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상당한 기술이 필요한데, 이런 기술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문, 바로 경영학이라는 것이지요.
임금 중에는 노동량과 비례하는 것처럼 보이는 임금이 있지만 이것은 눈속임일 뿐입니다. 어쨌든 임금이 생계비에 근접할 정도로만 지불된다면 개미는 임금을 절약해서 자본을 모을 여유가 없을 것입니다. 개미의 대물림이 이루어지는 것이지요. 마르크스는 이에 관한 베짱이들의 얘기를 인용합니다.
“노동자들을 굶어 죽지 않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들에게 저축할 만한 가치가 있을 아무것도 주지 말아야 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자신들이 벌어들인 것을 모두 지출해야만 한다. ....일하는 사람을 부지런하게 만들 수 있는 유일한 요인은 적당한 임금이다.”(1권.840쪽)
베짱이가 궁극적으로 부를 얻는 원천은 개미, 좀 더 구체적으로는 개미의 노동시간입니다.
“나는 출세하고자하는 어떤 사람이 건실한 사업만을 고수하면서 그런 출세를 기대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그는 반드시 그 외에 투기로 건축을 해야 하고 그것도 대규모로 해야만 한다.”(3권.1034쪽)
금융 베짱이와 마찬가지로 땅 베짱이의 몫도 궁극적으로는 원조 베짱이의 몫에 기생합니다. 17세기 네덜란드의 튤립 투기 사건(금융),18세기 프랑스의 존로우 사건(금융), 1929년년 대공황(금융과 부동산), 1990년대 일본 장기불황, 2008년 리먼 브러더스 사태(금융과 부동산) 등 무수히 많은 역사적 사례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여전히 개미들의 눈을 흘리는 재테크의 유혹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마르크의 <자본>을 과학이라고 하는 까닭은 그것이 이처럼 미신의 정체를 정확하게 밝혀 주기 때문이다.
생산은 무한히 늘어나는 속성이 있는데. 소비는 이처럼 결코 뛰어넘을 수 없는 한계에 갇혀 있습니다. 생산이 소비를 앞지르게 되지요. 마르크스는 공황의 원인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현실적 공황의 궁극적 원인은 항상 자본주의적 생산의 추동력에 대비되는 대중의 빈곤과 소비의 제약에 있으며, 이 추동력은 마치 사회의 절대적 소비 능력만이 생산력의 한계인 것처럼 생산력을 최대한으로 발전시킨다.(3권.661쪽)”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공황
그런데 공황은 오래 계속되지는 않습니다. 생산물을 판매하지 못한 원조 베짱이는 금융 베짱이에게서 부도라는 사형 선고를 받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집니다. 공장은 문을 닫고, 당연히 생산도 줄어듭니다. 생산과 소비의 불일치는 완화되고 경제는 다시 작동합니다. 그래서 공황은 일시적인 것입니다.
“일정한 규모의 자본이 폐기되거나 놀려짐으로써 균형은 결국 회복될 것이다....그리하여 순환과정은 새롭게 시작될 것이다.”(3권.335,337쪽)
그런데 공황은 단지 잠깐 나타났다 사라지기만 하지는 않습니다. 가벼운 매도 자꾸자꾸 맞으면 멍이 드는 법입니다. 자본주의도 마찬가지입니다. 공황은 비록 일시적으로 지나가버리는 현상처럼 보이지만 반복해서 나타나면서 자본주의를 점점 변형시킵니다. 문제는 이 변형의 방향입니다. 그것은 곧 자본주의의 끝을 가리키는 것이지요. 자본주의도 카르타고나 로마처럼 결국은 끝을 가리키는 것이지요.
베짱이의 욕망은 자연적인 욕망과는 다릅니다. 베짱이가 얻고자하는 부는 개미의 노동, 즉 타인의 노동을 빼앗은 결과로 얻는 것입니다. 개미는 베짱이와의 관계를 통해서 이 욕망을 규제할 수 있습니다. 원래 개미와 베짱이의 관계는 베짱이가 마음대로 하는 관계였습니다. 그런데 베짱이의 욕망이 개미에 의해 규제된다면, 그것은 둘의 관계가 베짱이 마음대로 하는 관계에서 둘이 함께 결정하는 관계로 협력적이고 민주적인 관계로 바뀌는 것이지요.
‘자본’이 세상에 알려진 지 벌써 150여 년이 지났습니다.(우리나라는 겨우 20년). 그러나 이 세상 어디에도 아직 마르크스가 얘기했던 자유의 나라에 도달한 사회는 없습니다. 단지 북유럽의 나라들처럼 조금 가까이 다가선 사회만 존재합니다. 이 나라들이 있어서 그것이 해답이라는 점은 확인되지만 아직 완전히 실현된 사례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대체 왜 그럴까요?
마르크스가 제시하는 해답. ‘경제 민주주의 실현’은 개미들 자신에 의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개미들의 운명을 바꾸어 놓은 자본주의라는 경제 구조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제도입니다. 따라서 저절로 없어지거나 교체할 수 없습니다. 마르크스는 그러한 인위적인 노력에 대해서도, 개미들이 사회적으로 조직되는 것을 해답으로 제시했습니다.
사회화는 무엇보다도 개인들 간의 경쟁을 포기해야만 이루어집니다. 경쟁하는 사람들끼리는 사회화를 이룰 수 없습니다. 사회화의 원리는 협력이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에서 이루어지는 교환 가운데 노동력과 관련된 개미와 베짱이의 교환에서만은 등가 교환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개미의 노동은 베짱이에 의해 강제된 것이지 개미의 자발적인 동의나 합의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민주주의가 아닌 것입니다. 그것은 자본주의가 출발할 때의 원리와 일치하지 않습니다. 마르크스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자본주의 체제의~발전~과정에서 생기는 모든 이익을 가로채 독점하는 대자본가~, 그런데 자본 독점은 자신과 함께~ 개화한 이 생산양식의 질곡으로 작용하게 된다.”(1권.1022쪽)
개미와 베짱이의 교환은 민주주의를 배반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는 소수가 독점하고 있는 것을 다수가 나누어 가지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문제로 삼는 민주주의는 부의 독점과 관련된 ‘경제적 민주주의’입니다. 정치적 민주주의는 혁명을 통해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면 경제적 민주주의도 혁명을 통해서 달성되는 것일까요?
개미들은 개별적인 형태가 아니라 사회적인 형태로 베짱이와 교환을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개미들은 사회적 집단을 이루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노동조합과 노동자 정당이 만들어진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일은 개미들의 수가 베짱이보다 훨씬 많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들 개미의 사회적 조직은 자유의 나라를 이루는 기본 원리인 생산과 소비의 사회화를 교섭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베짱이들은 불행히도 개미들의 사회화를 위한 교섭 요구를 거부할 수 없습니다. 베짱이가 서 있는 자본주의가 바로 교환과 민주주의 위에서만 존립할 수 있는 경제 체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보다 앞서 개미들을 사회적으로 조직하고 ‘자유의 나라’에 더 가깝게 다가선 북유럽의 나라들의 경험에서 보면 방법은 한 가지뿐인 것 같습니다. 개미(개인)와 베짱이(자본가)의 뒤집힌 운명을 과학적으로 이해하고 그것의 올바른 해법을 인식하고 실천하는 길 외에는, 개미가 ‘나’를 뛰어넘어 ‘우리’로 나아가는 방법은 아직 없는 듯합니다.
마르크스도 이 문제를 놓고 많은 고민을 한 것 같지만, 결국 다음과 같은 말만 남긴다.
“이런 불리한 점에 대하여 나로서는 진리를 탐구하려는 독자들에게 미리 이 점을 알리고 각오를 다지게끔 하는 것 말고는 다른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마르크스의 자본, 판도라의 상자를 열다.’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강신준교수 지음,사계절 출판>강신준교수 : 고려대 경제학 박사, 동아대에서 마르크스를 강의, 노동운동과 관련된 일, 최근에는 <자본>을 대중적으로 소개하는 일과 저술활동을 함. 지은 책<노동의 임금교섭>,<자본의 이해>,<수정주의 연구>등과 번역한 책으로는 <자본1~3>,<임금론><마르크스냐 베버냐> 등.
*마르크스의 ‘자본’을 들여다보고, 노동자(개미,프롤레타리아)와 자본가(베짱이,부르주아)사이의 교환이 비민주적이란 것, 올바른 해법을 실천하는 길인 사회화형태로 경제적인 민주주의를 이루어야 한다는 점, 노동시간과 최저임금 등을 이해하는데 다소 도움이 되었다고 본다.<중산>
청송 주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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