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의 시인, 험프리 데이비
1806년 불과 스물일곱 살의 나이에 ‘영국 최고의 강연자 및 ’실용화학자’로 입지를 굳힌 데이비는 사회적 지위, 위신, 권력에 대한 야망이 매우 컸다. 1820년 데이비는 왕립학회의 회장으로 선임됨으로써 과학계 최고의 명예를 누렸다. 그런데 그의 왕립학회 개혁 노력이 회원들의 반발에 부딪힌 것이었다. 그 당시 학회는 ‘금수저들의 모임’으로 전략한 감이 있었다.
데이비의 상실감과 절망적인 노스텔지어는 해가 갈수록 깊어졌고, 급기야 1828년에는 다음과 같은 한탄조의 글을 쓰기에 이르렀다.
"~ 좋았던 시절의 기억이 생생히 떠오른다. 온 세상이 전부 권력으로 가득 찼던 시절에는 권력이 곧 공감이고, 공감이 곧 권력이었다. 죽은 자, 모르는 자, 동서고금을 막론한 위대한 인물들! 나는 상상력의 힘을 빌려, 이 모든 사람들을 나의 동료와 친구로 만들 수 있었다. 그리하여 그들이 가졌던 권력을 독차지 했다."
마흔 여덟 살이던 그해 말, 아버지가 같은 나이에 그랬던 것처럼 일시적인 손발마비와 다리허약증을 거쳐 마비성 뇌졸중 증상을 겪었다. 그는 왕립학회에서의 끊임없는 갈등과 세속생활의 한없는 의무감에 넌덜머리가 났다. "나의 건강은 사라지고 야망은 충족되었다. 나는 군계일학의 욕망에 더 이상 열광하지 않는다. 내가 가장 유념하는 것은 무덤 속에 있다.”
데이비가 성인기 내내 즐긴 여가생활 중 하나는 낚시였다. 낚시를 할 때만큼은 예전의 다정다감함과 진정한 자아를 회복할 수 있었다. 그는 1829년 2월 마지막이 된 치명적인 뇌졸중을 겪은 후, 시므온의 노래를 구술했다.
"나는 심각한 중풍 발작으로 세상을 떠납니다. 발작은 나의 온몸을 움켜쥐었으나, 지적인 기관만큼은 그러지 못했습니다.... 나의 지적 노동을 마무리하도록 허락하신 신을 찬미합니다."
우리 모두에게도 평생 함께할 자아이상(ego idel)이 필요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오늘날 나와 대화하는 젊은 과학자 친구들 중에는 데이비를 아는 사람이 단 한명도 없다. 많은 과학자들은 시인이나 예술가들과 마찬가지로 과거와 ‘살아 있는 관계’를 맺고 있다.
과학은 하나부터 열까지 인간이 하는 일로, 갑작스러운 분출과 정지, 낯선 일탈을 동반하며 유기적∙ 진화적∙ 인간적으로 성장한다. 과거의 티를 벗고 성장하지만 과거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않는다. 우리가 어른이 되어도 유년기에서 완전히 탈피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1887년에 태어난 카린시는 헝가리의 유명한 시인,극작가, 소설가, 만담가로, 마흔여덟 살의 나이에 뇌종양 증상을 처음 경험했다. "기차의 으르릉 소리는 크고 꾸준하고 지속적이었다. 현실 세계의 소리들을 압도할 정도로 강력했다....얼마 후, 나는 그 원인이 외부 세계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고 소스라치게 놀랐다....그 소리는 내 머릿속에서 들려오는 것이 분명했다."
나는 지금껏 많은 환자들에게 최초의 환청을 경험하게 된 과정을 들었는데, 그들의 첫 경험은 통상적으로 음성이나 소음이 아니라 음악이었다고 한다. 기차의 소음이라는 환청 현상은 이윽고 카시린의 삶에서 붙박이로 자리 잡았다.
"나는 뭔가를 꼭 붙들고 싶었다....고정점이 아무데도 없었다....아니면 내 머릿속에서 뭔가를 하나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 자신을 인식하는데 도움이 되는 이미지나 기억이나 연상을 하나만 움켜잡을 수 있으면 좋겠다. 이것도 저것도 아니라면, 단어 하나라도."
지각∙ 의식∙ 자아의 토대가 무너지면 어떤 기분이 들게 되는지를 기술한, 괄목할 만한 구절이다. 그런 상태에 잇는 사람들은 프루스트가 말한 “비존재의 심연(abyss of unbeing)“으로 침몰하며(이 기간은 아마 몇 분에 불과하겠지만, 영겁의 세월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 속에서 자신을 건져낼 수 있는 동아줄-이미지∙기억∙단어를 갈망하게 된다.
심장이나 신장의 기능은 자동적으로 진행되며, 평생 동안 거의 기계적이고 매우 획일 적이다. 그러나 뇌기능은 다르다. 뇌/마음이 결코 자동적이지 않는 이유는(지각적 수준에서부터 철학적 수준에 이르기 까지) 모든 수준에서 세상을 범주화/재범주화하는 한편, 자신의 경험을 이해하고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늘 노력하기 때문이다.
경험은 획일적이 아니라 늘 변화하고 도전적이며, 시간이 경과할수록 더욱더 포괄적인 통합을 요구한다는 게 ‘진짜 삶’을 사는 것의 본질이다. 뇌/마음은 평생 동안 탐구하고 전진해야 하며, (심장처럼) 다람쥐 쳇 바퀴 돌 듯 작동하며 획일적인 기능을 유지해서는 어림도 없다. 뇌가 건강하려면, 최후의 순간까지 활발하고 경이로워하고 놀고 탐구하고 실험해야 한다.
위험한 행복감
K는 지적이고 교양 있는 일흔 두 살의 노인으로, 패션 산업에서 잘나가는 데다 전반적인 건강 상태도 양호했다. 그러나 나를 처음 방문하기 2년 전에 관절통을 호소하자, 의사는 류마티스성다발근통으로 진단하고 프레드니솔론 10밀리그램을 하루에 두 번씩 복용하라고 처방했다.
통증과 경직은 수일 내에 가라앉았고, K는 큰 행복감을 느꼈다. 그는 나중에 내게 이렇게 말했다. “스테로이드는 내게 엄청남 활력을 느끼게 해줬어요. 이전에는 아흔 살짜리 노인처럼 걸었지만, 그 약을 먹고 나니 마치 훨훨 나는 것처럼 걷게 되었어요”
그는 복용량을 다섯 배로 늘려 복용을 했다. 약물복용 약 6개월 후 파리에서 증상이 본격적으로 나타났다. 중요한 약속을 깜빡 잊었고, 호텔 직원과 언쟁을 벌였으며, 루브르에서는 경찰에게 폭행을 가했다. 그 후 1년간의 지속적인 용량 감축 결과 K의 스테로이드 복용은 완전히 중단되었다. 그와 거의 동시에 혼동 증상이 감소하여 종전처럼 회복했다.
치매는 종종 비가역적인데 가역적인 사례가 간혹 발견된다. 그 이유는 불충분한 식사나 비타민 B12 결핍으로 인해 신경기능이 저하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역적인 치매의 초래할 가능성이 있는 그 밖의 원인으로는 대사 및 독성장해, 영양불균형, 심리적 스트레스가 있으며, 여기에 스테로이드 남용을 추가 할 수 있다.
세 번째 밀레니엄에서 바라본 신
측두엽뇌전증에 의해 야기되는 소위 발작적 황홀경에 경우, (간혹 더없는 행복감과 강력한 신적 존재감을 수반하는) 압도적으로 강렬한 환각을 초래할 수 있다. 도스토옙스키는 그런 발작을 종종 경험했으며, 그중 상당수를 기록으로 남겼다.
주변의 공간이 커다란 소음으로 가득 찬 가운데, 나는 움직이려고 발버둥 쳤다. 하늘이 땅 위에 내려앉아 나를 집어삼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신을 실제로 만져봤다. 그는 내속으로 들어왔다. “그래, 신은 존재한다.”나는 울부짖었다. 그 외에 기억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당신네처럼 건강한 사람들은....도저히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발작적 황홀경은 매우 드문 현상이며, 측두엽뇌전증 환자 중에서도 1~2퍼센트에서만 발견된다.
유체이탈체험(OBEs)과 임사체험(NDEs)은 모두 각성 상태에서 발생하지만, 종종 의식상태를 심오하게 변형함으로써 생생하고 그럴 듯한 환각을 초래한다. 이를 경험한 환자들은 ‘환각’이라는 용어를 거부하고 ‘현실성’을 강력히 주장한다. 일부 사람들은 그것을 객관적‘현실성’의 단서로 받아들인다. 유체이탈체험(OBEs)의 경우, 시험 참가자는 자기가 자신의 몸을 떠났다고 느낀다. 즉, 공중이나 방 한구석에 떠 있는 상태에서, 먼 거리에서 자신의 텅 빈 신체를 내려다 보는 것처럼 느낀다. 그런 경험은 더없이 행복할 수도 잇고, 끔찍할 수도 있고, 중립적일 수도 있다.
신경학적으로 볼 때, 유체이탈체험(OBEs)란 일종의 신체적 착각이며, 시각표상과 고유감각표상이 일시적으로 해리된 데서 비롯된다. 심장정지, 부정맥, 갑작스런 혈압/혈당 강하와 같은 수많은 질병들이 종종 불안증이나 질병과 결합하여 이를 초래할 수 있다. 내가 아는 환자 중에 난산, 기민증, 수면마비 등과 관련하여 이를 경험한 사람들이 있다. 비행 중에 강한 중력에 노출된 전투기 조종사들의 경우, 유체이탈체험(OBEs)뿐만 아니라 그보다 훨씬 정교한 의식 상태(NDEs와 유사한 상태)를 보고해왔다.
임사체험(NDEs)의 경우, 전형적 단계를 거쳐 진행하는 것이 보통이다. 사람들은 경이로운 ‘생명의 빛’을 향해 어두운 복도나 터널을 힘들이지 않고 기쁨에 겨워 통과하며, 이러한 경로를 종종 ‘하늘나라로 가는 길’ 또는 ‘생과 사의 경계‘해석한다.
영적인 느낌과 종교적 신념에 빠지기 쉬운 경향은 인간의 본성 깊은 곳에 내재하며, 사람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신경학적 기반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보인다.
임사체험(NDEs)는 종교적 성향이 강한 사람들에게는 알렉산더의 표현대로 “천국의 증거”를 제시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종교인들 중 일부는 임사체험(NDEs) 말고 다른 경로를 통해 천국의 증거를 경험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바로 예배(prayer)다. 인류학자 T.M.루어만은 <신이 응답할 때>에서 예배의 경로를 탐구했다. 신성의 핵심인 신은 실체가 없다. 즉, 신은 통상적인 방법으로는 볼 수도, 느낄 수도, 들을 수도 없다. 루어먼은 이처럼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그 많은 전도자들과 신앙인들의 삶에서 신이 어떻게 실제적이고 친근한 존재가 되는지 알고 싶어 했다. 그녀는 참여적 관찰자의 자격으로 복음주의 공동체에 가입하여, 예배와 시각화(성격에 묘사된 인물과 사건의 디테일을 매우 풍부하고 구체적으로 상상하는 것)라는 그들의 수련법을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그녀는 책에 다음과 같이 썼다.
회중은 마음의 눈으로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만지는 것을 연습한다. 그들은 이 상상된 경험에 실제 사건의 기억에서 가져온 감각적 생생함을 부여한다. 그런 과정을 거쳐, 그들이 상상할 수 있는 것은 더욱 진짜인 것처럼 느껴지게 된다.
이런 강렬한 수련을 통해, 일부 회중의 마음은 조만간 ‘상상’에서 ‘환각’으로 도약된다. 이제 회중은 신과 나란히 걸으며, 신을 듣고 보고 느끼게 된다. 그리하여 그들이 그토록 갈망했던 음성과 비전이 지각적 실체를 부여받는데, 그 원리는 환각의 경우와 동일하다. 즉, 뇌의 청각 및 시각중추를 활성화시킴으로써 신의 음성과 모습을 보고 듣게 되는 것이다.
환각은 그 내용이 계시적이든 평범하든 초자연적 현상이 아니며, 인간의 의식과 경험의 통상적 범위에 속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영적 생활에서 나름의 역할을 담당하고, 개인에게 커다란 의미를 제공할 수 있음을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다.
나는 수많은 진행성 치매 및 알츠하이머병 환자들을 봤는데, 모두 하나같이 환경에 대한 감각을 거의 상실한 상태였다. 그들은 신발 끈을 매는 방법이나 요리기구 사용법을 잊었거나 아예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약간의 묘목이 준비된 꽃밭으로 인도되자,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확히 이해했다. 그들 중에서 묘목을 거꾸로 심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
자연은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뭔가 에게 말을 거는 게 틀림없다. ‘자연’과 ‘살아 있는 모든 것‘에 대한 사랑을 의미하는 생명애(Biophilia)는 인간됨의 필수적인 부분이다. 자연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의 범위는 영적∙정서적 측면뿐 아니라, 생리학적∙ 신경학적 측면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다. 나는 그것이 뇌의 생리학은 물론 어쩌면 구조에도 심오한 변화를 초래한다는 점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모든 것은 그 자리에’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올리버 색스 지음, 양병찬님 옮김, 알마출판>
* 올리버 색스 :1933 영국 런던 출생. 옥스퍼드 대 의학 전공. 미국 베스에이브러햄병원 신경과 전문의, 뉴욕대학교를 거쳐 컬럼비아 대 신경정신과 임상교수. 2015년 82세로 타계 함.
* 고통, 불안과 무료함 등을 달래기 위해 과도한 약물이나 술에 의존하는 것도 위험한 행복감을 얻기위한 인위적이고 건강하지 못한 행위로 보여진다.
또한 신경학적으로 유체이탈체험과 임사체험이 상세히 기술되어 있어서 종교적으로나 철학적으로도 연관지어 개념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는 훌륭한 책으로 여겨진다. <중산>
<장안사 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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