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란 과거 전체의 종합이며, 어떤 사람이 생각하고 행했던 모든 것의 최종 결과가 그 속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때때로 선량한 사람이 실패를 겪고 비양심적인 사람이 성공한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이는 사필귀정에 관한 모든 도덕적 기준을 무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인간의 삶에서 정의로운 법칙이 작동한다는 사실을 부정하며, 심지어 바르지 않은 사람들이 대체로 성공한다고 단언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도덕법칙은 존재하며, 얄팍한 결론들 때문에 변경되거나 훼손되지 않는다. 우리는 모든 사람이 변화하고 진화하는 존재라는 것을 기억해야만 한다. 선량한 사람이 늘 선량하지는 않고 나쁜 사람이 늘 나쁘지는 않다.
전생까지 거슬러가지 않고 현생만 보더라도, 지금 올바른 사람이 예전에는 올바르지 않았던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현생에서 우리가 지금 보는 결과들의 타당한 원인들을 분명하게 찾을 수 없다면, 그것은 전생에서 비롯된 것이다.
어떤 존재가 수많은 탄생과 죽음을 통해서 겪는 진화의 전체적인 과정은 하나의 길고도 연속된 인과의 사슬로 간주될 수 있다. 그것은 파괴될 수 없으며 항상 성장하고 변화하면서 상승하는 하나의 삶으로 간주될 수 있다.
지금 불행 속에 허우적거리는 선량한 사람은 과거에 그 자신이 뿌렸던 사악한 씨앗의 결과물을 수확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의 개성은 고착된 마음의 습관이며 행위의 결과물이다. 수없이 반복된 행동은 무의식적이거나 자동적인 것이 된다. 그러므로 그에게는 그 행위를 하지 않는 것이 불가능한 것처럼 느껴지고, 하나의 정신적 특성이 된다.
따라서 어떤 사람의 타고난 성격은 앞선 삶들의 진화 과정 속에서 생각과 행위를 통해 스스로 형성한 습관들의 조합이다. 그리고 현생에서의 노력에 따라 그의 성격은 장차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수정될 것이다.
여기에 직장에서 밀려난 가난한 사람이 있다. 이 사람에게도 할 일이 많았던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그 일을 부담스러워했고 갈수록 나태해졌으며 편안함을 갈망했다. 아무 일이 없다면 얼마나 즐거울까 하고 생각했다. 자신에게 주어진 축복에 감사하지 않았다.
이제 편안함에 대한 욕망은 충족되었지만 너무나 달콤할 거라 생각해서 갈망했던 그 열매는 그의 입안에서 한 줌 재로 변해버렸다.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는 목표는 달성되었지만, 바로 그 지점에서 그는 자신에게 던져진 교훈을 철저히 배울 때까지 머물러 있어야 한다. 아무 할 일이 없다는 것은 불쾌한 상태이며, 일은 고귀하고 신성한 것이라는 교훈을 확실하게 배우고 있는 것이다.
반대로 그의 열망과 끊임없이 일자리를 찾으려는 그의 노력은 분명히 유익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더는 한가로움을 바라지 않기 때문에 그가 처한 현재의 조건은 곧 사라지고 일자리를 갖게 될 것이다. 만일 그의 온 마음이 일에 맞춰져 있고 다른 것보다 그것을 열망한다면, 그는 성공하게 될 것이다.
그때가 되어서도 인간의 삶에 적용되는 인과법칙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는 명백히 추구하지도 않은 일이 왜 자신에게 들어오는지 의아해할 것이다.
초대하지 않았는데 오는 것은 없다. 특정인에게 오는 것들은 그 자신이 행했던 행위들의 산물이다. 즐거운 마음으로 기울인 부지런한 노력은 더 큰 노력으로 이어져 성공을 가져다준다.
게으름을 피우거나 불만에 찬 마음으로 행한 노력은 더 낮은 수준의 노력으로 이어져 실패를 가져다준다. 이는 각자의 생각과 행위가 초래한 운명이며 결과인 것이다.
다양한 성격들 또한 마찬가지다. 성격은 행위라는 씨앗이 자라나 성장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씨뿌리기는 눈에 보이는 지금의 삶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수많은 탄생과 죽음이라는 관문을 가로지르고 무제한적인 미래로까지 이어지는 무한한 삶을 관통한다. 그리하여 각자가 뿌린 행위라는 씨앗의 수확물을 거두어 달콤한 열매와 쓴 열매를 맛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죽으면 자신의 행위에 따라 ‘천국이나 지옥에 간다’는 것은 문자 그대로 진실이다. 그 천국과 지옥은 이 세상에 있다.
부를 남용했거나 사기나 강제라는 수단으로 부를 획득했던 부자는 가난하고 수치스러운 환경에 다시 태어난다. 자신이 소유한 작은 재산을 현명하고 이타적으로 사용했던 가난한 사람은 풍요롭고 영예로운 환경에 다시 태어난다.
잔인하고 불의한 자들은 가혹한 역경 속에 다시 태어나는 반면, 친절하고 의로운자들은 친절한 마음과 부드러운 손길로 자신을 지켜보고 보살펴주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 다시 태어난다. 이처럼 우리는 스스로 행한 모든 악덕과 미덕에 따라 자신의 몫을 받게 되고 각자의 운명을 맞이한다.
윤회를 믿지 않는 이들조차, 인간은 자신이 뿌린 것을 현생에서 거의 틀림없이 수확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쏜살같이 스쳐가는 운명들을 조용하면서도 한 치의 오류도 없이 그 직조자인 사람들에게 할당하는 ‘위대한 법칙’은 흔들림이 없다.
우리는 과학의 시대에 살고 있다. 자연 속에 있는 힘들이 아무리 경이롭다 하더라도, 맹목적이고 기계적인 자연의 힘들을 지배하고 지휘하는 지적인 힘들을 합친 것보다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러므로 격정과 욕망, 의지와 지성이라는 내면적인 힘들을 이해하고 통제하고 지휘한다는 것은 사람들과 국가들의 운명을 장악하는 것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외부적인 자연의 힘들을 이해하고 지배하는 사람은 자연과학자지만 마음이 가진 내적인 힘들을 이해하고 지배하는 사람은 마음의 과학자다.
고통스러운 탐구로 여러 해를 보낸 뒤라야 비로소 그는 권위를 가지고 발언할 수 있으며 과학의 대가를 가운데 자리매김할 수 있다. 이는 여러 해에 걸친 끈질긴 노력에 의해서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때의 노력은 침묵 속에서 이루어지고 타인들이 알아주지 않기 때문에 더더욱 힘겹다.
그러므로 마음의 과학을 추구하는 사람은 혼자 서는 법을 배워야 하며, 외면적인 이익에 관한 한 아무런 보상 없이도 노력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운명을 지배하는 힘’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제임스 앨런 지음, 이원님 옮김,문예출판사>
* 제임스 앨런 : 1864년 영국 생. 아버지 파산과 죽음으로 어린나이에 가족의 생계를 떠맡음. 38세에 톨스토이의 영향을 받아 공허한 삶에 회의를 느낀 그는 영국 남서부 해안 알프라콤으로 이사한 뒤 사색의 삶을 추구한다. 그곳에서 그의 정신적 스승인 톨스토이의 가르침에 따라 자발적 빈곤, 영적인 자기 수련 그리고 검소한 삶을 사는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었다. 10년 동안 사색적인 생활을 하다가 48세에 타계. 앨런이 죽은 후에야 문학계는 그의 작품에 숨은 천재성과 영감을 인정했다. 전 세계적으로 몇 백만 부의 판매고를 올린 베스트셀러 작가.
오리가 가까이 오자 큰 물고기가 작은 물고기 엄호에 들어간다.
수선화
홍목련
꽃사과
남녘에는 벚꽃이 활짝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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