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자료

'페스트'를 읽고 ~!

[중산] 2020. 3. 17. 00:46

저녁때면 변함없는 인파가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고 영화관 앞에는 사람들이 줄을 지어 모여들었다. 아닌 게 아니라 유행병이 수그러져 가는 듯싶었다. 며칠 동안 사망자의 수는 불과 십여 명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더니 갑자기 병이 급속도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사망자의 수가 다시 서른 명으로 늘어난 날, 전보에는 ‘페스트 사태를 선언하고 도시를 폐쇄하라’고 적혀 있었다.

 

자기 자신들의 현상에 진저리가 나고, 과거와도 원수가 되고, 미래마저 박탈당한 우리들은, 마치 인간적인 정의나 증오 때문에 철장 속에 갇힌 신세가 되어 버린 사람들과 똑같았다. 결국 그 견딜 수 없는 휴가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상상을 통해서 다시 기차를 달리게 하고, 악착같이 침묵만 지키고 있는 초인종을 연거푸 울림으로써 기간을 가득 채우는 길뿐이었다.

 

이처럼 우리들 각자는 그날그날 하늘만 마주 보며 고독하게 살아가기를 감수해야만 했다. 해가 나거나 비가 오면 그에 따라 마음이 변하는 또 하나의 노예 상태에 빠져 버렸다. 그저 황금빛 햇빛이 비치기만 해도 희희낙락했으며, 반대로 비오는 날이면 그들의 표정과 생각은 두꺼운 베일에 싸이는 것이었다.

 

 

여태껏 페스트는 도심지보다는 인구밀도가 높고 살기가 불편한 외곽 지대에서 더 많은 희생자를 내 왔다. 그러나 페스트는 돌연 번화가에 더 접근해 와서 자리를 잡는 듯싶었다. 주민들은 바람이 전염병의 씨를 날라 온 것이라고 못 마땅해 했다.

같은 시내에서도 특히 피해가 심한 구역을 격리하고 직무상 불가피하다고 생각되는 사람 이외에는 외출을 금하는 조치가 내려졌다. 그때까지 그 지역에 살던 사람들로서는 그러한 조치가 유난스럽게 자기네들에게만 불리하게 취해진 일종의 약자학대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모든 경우에 있어서 그들은 자신들과 비교해 보면서 다른 지역의 주민들을 마치 무슨 자유민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반면에 다른 지역 주민들은 곤란한 순간에 부닥쳐도, 다른 사람들은 그래도 자기네들보다 덜 자유롭다는 것을 상상하고는 어떤 위안을 얻는 것이었다. ‘항상 나보다 더 부자유한 사람이 있다’는 것은 그 무렵에 품을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을 요약하는 표현이었다.

 

페스트는 특별히 군인이라든가 수도승이라든가 죄수들처럼 단체 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악착같이 공격하는 것 같았다. 왜냐하면 피검자들은 격리 상태에 있긴 하지만, 감옥이란 하나의 공동체니까 말이다. 또 그것을 똑똑히 증명이라도 하듯, 우리 시의 감옥에서는 죄수 못지않게 간수들이 그 병에 희생을 당했다. 관이 더욱 귀해지고, 수의를 만들 감과 묏자리도 모자라게 되었다.

 

도대체 그 공포에 휩싸이고 많은 사람이 죽어 가는 그 군중 틈에서, 누가 인간의 직분을 수행할 만큼 여유가 있단 말인가? 피곤하기라도 한 것이 차라리 행복이었다. 만약 의사인 리유에게 더 힘이 있었더라면, 도처에 퍼져 있는 그 죽음의 냄새는 그를 감상적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잠을 네 시간밖에 못 잤을 때, 사람은 감상적이 될 수는 없다. 만사를 있는 그대로 보게 된다. 즉 정의의 눈으로, 끔찍하고 바보 같은 정의의 눈으로 보는 것이다.

 

페스트가 발생하기 이전에는 그는 구세주 같은 대접을 받았다. 알약 세 개와 주사 한 대면 모든 것을 다 바로잡을 수 있었으며, 사람들은 그의 팔을 붙들고 복도까지 따라 나왔다. 이제는 그와 반대로, 그가 병정을 데리고 가서 개머리판으로 문을 두드려야 가족들은 문을 열 생각을 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의사인 리유를, 그리고 인류 전체를 자기네들과 함께 죽음으로 끌고 들어가고 싶었던 것이다. 아! 정말이지 인간은 다른 인간들 없이 지낼 수는 없고, 정말이지 그도 이제는 저 불행한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속수무책의 신세이고, 정말이지 그들 곁을 떠나고 나면 그 역시 가슴 속에 걷잡을 수 없이 솟구쳐 오르는 동정심의 전율과 똑같은 것을 받을 가치가 있는 그런 인간인 것이었다.

 

도시 전체가 겪고 있는 그 여러 가지 어려운 환경 속에서는 새로움이라는 단어 자체가 이미 그 뜻을 상실하고 있었다. 꾸준히 교회에 다니는 대신 도저히 말도 안 될 미신에 마음을 맡겨 버리는 것이었다. 그들은 미사에 나가느니보다는 차라리 마스코트가 되는 메달이라든가, 성 로크의 부적 같은 것을 즐겨 몸에 지니고 다녔다.

 

 

봄이 되자, 사람들은 이제나 저제나 하고 병의 종말을 기다렸다. 그런데 아무도 다른 사람에게 질병이 얼마나 더 계속될지 물어보려고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들은 병이 얼마나 더 오래갈지에 대해서는 전혀 알 길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모든 예언에서 공통되는 것은, 결국에 가서는 사람들을 안심시켜 준다는 점이었다. 다만 페스트만은 그렇지 않았다.

 

아무리 간접적이라 하더라도, 또 아무리 선의에서 나온 것이었다 하더라도 나 역시 살인자 측에 끼어들었다는 것이 정말 부끄러웠습니다. 사람을 죽게 하는 위험을 무릅쓰지 않고서는 이 세상에서 몸 한번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번 이 유행병이 내게 가르쳐 준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있다면 당신들 편에 서서 그 병과 싸워야 한다는 것뿐입니다.

 

사람은 제각기 자신 속에 페스트를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에서 그 누구도 그 피해를 입지 않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늘 스스로를 살펴야지 자칫 방심하다가는 남의 얼굴에 입김을 뿜어서 병독을 옮겨 주고 맙니다. 자연스러운 것, 그것은 병균입니다.

 

그 외의 것들, 즉 건강, 청렴, 순결성 등은 결코 멈춰서는 안 될 의지의 소산입니다. 정직한 사람, 즉 거의 누구에게도 병독을 감염시키지 않는 사람이란 될 수 있는 대로 마음이 해이해지지 않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결코 해이해지지 않기 위해서는 그만한 의지와 긴장이 필요하단 말입니다.

 

페스트환자가 된다는 것은 피곤한 일입니다. 그러나 페스트 환자가 되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것은 더욱더 피곤한 일입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다 피곤해 보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오늘날에는 누구나가 어느 정도는 페스트 환자이니까요.

 

“우리가 가진 통행증이면 방파제까지 갈 수 있어요. 정말이지 페스트 속에서만 살아야 한다는 건 너무 바보 같아요. 물론 희생자들을 위해서 싸워야 하죠. 그러나 사실 아무것도 사랑하지 않게 되고 만다면 투쟁은 해서 뭣하겠어요?“

그들은 옷을 벗었다. 리유가 먼저 물에 몸을 던졌다. 리유는 몸을 뒤집어서 자기 친구와 나란히 같은 리듬으로 헤엄을 쳤다. 단둘이서 마침내 도시와 페스트에서 해방되어서 전진했다.~

 

 

“그런데 선생님의 친구 분은 어떻게 되셨어요?“ ”죽었습니다.“ ”아!“하고 그 노인은 좀 기가 막힌다는 듯이 소리를 냈다. ”페스트로 죽였지요.“라고 리유가 덧붙였다. ”그랬군요.“ 잠시 후에 노인이 말했다. ”언제나 제일 좋은 사람들이 가 버리는군요. 그게 인생이죠. 딴 사람들은 ‘페스트에요. 페스트를 이겨냈다고요.‘ 하고 난리를 치죠. 좀 더 봐주다간 훈장이라도 달라고 할 판이죠. 페스트가 대체 무엇입니까? 그게 바로 인생이에요. 그뿐이죠.“

 

시내에서 올라오는 환희의 외침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리유는 그러한 환희가 항상 위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그 기쁨에 들떠 있는 군중이 모르는 사실, 즉 페스트균은 결코 죽거나 소멸하지 않으며, 그 균은 수 십 년간 가구나 옷가지들 속에서 잠자고 있을 수 있고, 방이나 지하실이나 트렁크나 손수건이나 낡은 서류 같은 것들 속에서 꾸준히 살아남아 있다가 아마 언젠가는 인간들에게 불행과 교훈을 가져다주기 위해서 또다시 저 쥐들을 흔들어 깨워서 어느 행복한 도시로 그것들을 몰아 넣어 거기서 죽게 할 날이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페스트’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알베르 카뮈지음, 김화영님 옮김, 민음사출판>

*알베르 카뮈:1913년 알제리 생. 포도농장 노동자였던 아버지가 전쟁에 징집되어 목숨을 잃은 뒤, 가정부로 일하는 어머니와 할머니 아래에서 가난하게 자란다. 1947년에 페스트 출간. 44살에 노벨 문학상 수상. <이방인>, <시지프신화> 등 출간.

**페스트:14세기 중기 전 유럽에 대유행한 페스트균의 감염에 의하여 일어난 급성감염병. 원래는 야생의 설치류(다람쥐,쥐,비버 등)의 돌림병이며 벼룩에 의하여 동물 간에 유행 함. 비말감염. 1347년 유럽 전파이래 유럽 인구의 1/5로 줄어들었으며, 백년전쟁이 중단되기도 했다.

 

***페스트는 당시 유럽에서 공포와 죽음, 이별의 아픔 등 비극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 넣었다. 그와 유사한 오늘날 코로나19는 위험도는 낮아도 전염성이 강해 전 세계가 국경을 봉쇄하고 대혼란에 빠져있는 상태다. 리유와 같은 의료진과 관련 종사자들이 환자들을 돌보며 전염병 현장에서 악전고투하고 있으며 개인들은 사회적 격리를 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현실을 직시하며 의연히 운명과 대결하는 인간의 절망적인 상황을 잘 묘사해낸 카뮈의 기념비적인 작품 '페스트'를 한번 추천하고 싶다.<중산>

 

 

 

 

   창원 천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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