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퇴직
- 작은 처남의 정년퇴직에 부쳐
그대는 한 가정의 영웅이었습니다.
영광스런 그대여!
그대는 허리가 휘도록 짐을 짊어 졌고,
그 격렬한 폭풍우와 그 암울한 순간들을
무던히도 견뎌냈습니다.
그리하여 그대의 눈물과 땀방울로 가정의
평안과 광명의 횃불을 밝혔습니다.
이제 두 어깨의 무거운 짐 내려놓고
매일 솟아오르는 붉은 태양을 바라보세요.
그리고 가슴을 펴고 자연이 시키는 대로
행복의 꽃씨를 뿌리소서.
- <2021.12.30. 중산>
어느 (노)부부의 새해단상!
새해에는 또 한 살 더 먹어 꾸역꾸역 일흔의 턱밑을 치고 올라가고 있다. 이 나이에는 당연히 건강문제가 화두로 떠오른다. 코로나 역병이 3년 째 기승을 부리고 있다. 특히 면역력이 약한 우리 같이 나이 든 노약자들을 벌벌 떨게 하고 있다.
항원소변이로 인해 오미크론 같은 새로운 변종바이러스들이 생긴다고 한다. 이들의 생성과 소멸과정이 마치 핵물리학의 방사능 붕괴이론처럼, 모(母) 핵종에서 떨어져 나온 자(子) 핵종의 생성과정과 거의 유사하게 보인다.
코로나도 대개의 그들처럼 시간이 흐를수록 세기의 강도는 점점 약해지고 유지시간이 짧아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새해에는 오미크론을 끝으로 종지부를 찍고 소중한 일상으로 되돌아갔으면 한다.
우리 두 부부의 건강상태는 그런대로 괜찮은 편이다. 다만 신체 일부의 어떤 부속품들은 삐거덕 거리는 소리도 들리고 불편함도 감지된다. 나이를 감안해보면 세월의 흐름인 듯하다. 집 사람은 살아 온 삶의 여정이 힘들었는지 체력적으로 많이 처져있는 편이다. 물론 평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지 못한 나의 탓이 크다 하겠다.
이제 두 사람의 삶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다. 두 부부가 건강하게 끝까지 살아간다면 더 이상 바랄게 없겠지만 우리의 체크카드에 충전된 ‘건강한 수명시간’은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데도 우리 주위에는 깜짝 놀랄 정도로 건강한 삶을 누리는 분들도 더러 있다.
예컨대, 노 철학자인 김형석 박사는 새해에는 103세가 된다. 그 분은 동양의 칸트라 할 정도로 자기 관리가 엄격하다. 소식과 산책, 독서와 강연 등 규칙적인 생활이 몸에 배인 분이다. 그 분을 본받기엔 자질도 부족할 뿐더러 필부인 나와는 거리가 멀다. 다만 나에게 붙어 있는 자유분방하고 몽상가적인 기질의 비곗살들을 다 도려낸다면 비슷하게라도 건강을 유지할지도 모르겠다.
연말과 새해를 맞을 쯤 이면 나에게 주어진 시간들을 어떻게 요리 해 볼까 하는 궁리를 하게 된다. 하루를 한 달같이 한 달을 일 년같이 의미 있게 아껴 써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는 기대 수명과는 무관하게 시간을 늘려 쓸 수 있지 않을 까 하는 나름 초월적이고도 몽상가적인 생각일 수도 있겠다.
구체적 실천과제로, 시간의 흐름을 느끼기 위해 그날의 일정표를 만들고 일기를 짧게라도 써야겠다. 그리고 시간을 완전히 나의 편으로 돌려놓고 남으로부터 방해받지 않도록 해야겠다. 내가 나 자신의 고유한 삶을 살지 않고 ‘타인을 위한 나의 존재‘가 되어서는 이 모든 것이 실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소한 일이라도 바위덩이의 무게로 천금의 값을 매겨 자축의 향연을 베풀어야겠다. 그래서 눈 뜬 매일이 생일이며 칠순, 팔순 그리고 백세잔치까지 미리 앞 당겨 즐겨 볼 생각이다. 될 수 있으면 소극적 쾌락을 유지하라고 하였건만 치아가 붙어있고 아직 소화능력이 부분적으로 따라주기에 적극적인 쾌락도 조금씩 끼워 넣어 볼 생각이다.
사실 나이 들수록 부부간의 대화도 줄어들고 꼭 필요한 말만 내뱉게 되는 거 같다. 그리고 서로간의 껄끄러운 부분은 피하게 된다. 그래도 정적이 흐를 때나 불편함을 피하기 위해 밋밋한 짧은 대화라도 하게 된다. 나는 이 삭막함을 깨기 위해 읽었던 책들의 느낌들을 가끔씩 대화의 소재로 삼아 보기도 한다.
그리고 어떤 순간에는 불현 듯 이방인처럼 서먹서먹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주위의 바스락 소리에도 쉽게 놀라는 걸 보니 이는 내 본래적인 의도와는 달리 기력이 쇠하고 오감의 감지능력이 떨어진 현상도 한 몫을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어느 날 조용히 집에 있다가 갑자기 외출한 아내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올 때 간 떨어지듯이 순간 깜짝 놀랐다.” 는 어느 노년의 남자 분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 말은 듣기에 따라서는 같이 살고 있는 친근한 부부라는 생각을 순간 잊고 남이 온 것처럼 놀랐다는 의미와 마치 아내 눈치를 볼 정도로 불편함과 외경을 드러낸 말로 들리기도 한다.
부부라지만 나를 제외한 타인은 과연 나에게 무슨 관계로 있는 것일까. 이 시점에서 곰곰이 생각을 안 해 볼 수 없다.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에서는 내가 당신이 아니듯이 당신이 내가 아닌 것처럼, 의식의 개체들 사이에는 하나의 공간 같은 것이 있다는 것이다. 즉 무(無)인, 수동적으로 느낄 수 있는 절대적인 거리가 있다고 하였다.
여기서 껍데기인 육신은 직접적인 대상으로만 보일 뿐 자기 몸을 조정하고 있는 인식주관은 자기중심적으로 고립되어 있어 타인과 나 사이에는 공간적으로 분리되어 있다고 한다. 이 말들이 사실이라면 아무리 사이좋은 부부라도 이 절대적인 거리와 공간을 인정하면서 살아가야 할 것 같다. 물론 소중한 대화의 끈을 이어 가야겠지만 침묵이 필요할 때는 침묵으로, 영혼이 숨 쉴 수 있는 각자의 공간을 남겨 두어야 할 것이다.
즐거움이든 서운함이든 내 마음대로 상대의 공간을 지나치게 넘나들게 되면 숨 막히는 현상만 벌어질 것이다. 칼린 지브란 시인은 ‘결혼 생활’을 이렇게 노래하였다. ‘출렁이는 바다를 사이에 두고/ 춤추고 즐거워하되 서로는 고독해야 하며/ 두 사람이 사원의 기둥처럼 떨어져 있으되/ 서로에게 그늘이 드리워지지 않아야 한다.’라고.
하이데거는 ‘함께-있음’이라고 말하는 ‘속의-존재’를 마음 상태의 본성, 즉‘심상성(心狀性) 및 요해(了解,깨달음을 알아냄)’로 정의 했다. 그리하여 인간의 존재특징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존재하는 것이다’. 라고 말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말과 ‘세계-속-존재‘라는 말들이 나이 들어서는 호사스러울 정도로 들린다. 대개 노년에는 신체적 고통과 더불어 어쩔 수 없이 사색과 고독영역에서 홀로 많이 머물게 될 것이다.
외로움과 통증에 지쳐 아름다운 노년인생이 통째로 매몰되는 불상사는 막아야 하겠기에 인식 또한 새롭게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여겨진다. 그래서 새해를 맞을 때는 이런 각오와 다짐들을 해보게 되는 지도 모르겠다. 혀끝과 정신을 크게 자극하는 적극적 쾌락을 누린 대가로 노후에는 이자까지 쳐서 되갚아야 한 다고 하지 않던가. 앞서 노 철학자의 생활습관같이 마치 구도자의 생활처럼 규칙적이고도 절제된 생활을 하여야만 건강한 삶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완전한 노년에 이르기 전까지는 부부든 친구든 같이 마주할 상대가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소중한 순간들이다. 차 한 잔을 나누며 같이 걷고 대화 할 상대가 있는 것만으로도 행운을 누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상대의 존재를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지혜로운 삶이지 않을까 하는 당연한 것들도 새삼 생각해본다.
산골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이런저런 느낌들을 비교적 일찍 경험한 편이다. 조용한 산골에서 며칠씩 혼자 머물다 보면 풍족한 음식과 가족이 몹시 그리워지게 된다. 이때는 본성과 영혼까지 편히 달래줄 수 있는 가정과 가족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지상낙원임을 깨닫게 해 주는 거 같다.
지난해는 농원일과 독서를 적절히 안배 하면서 한 해를 잘 보냈다. 철학과 문학 그리고 은유와 압축된 단어들로 삶을 노래한 시의 아름다움에 매료된 한 해였다. 새해에는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면서 사색의 시상에 아름답게 침잠해보고자 한다. 나는 소박하면서도 끊임없이 정신적인 성장을 추구한 톨스토이와 헤세의 정신세계를 좋아하는 편이다. 거기에다 맑은 호수 물처럼 자신의 삶과 자신을 투명하게 들여다 볼 수 있는 철학의 확대경을 펼쳐 놓고 새해에도 계속 즐기고 싶다.
10여 킬로미터 떨어진 농원 가는 길은 세 갈래가 있다. 빨리 달려 갈 때는 직진 길을, 아름다운 해변의 풍경을 담고 싶으면 바닷가 길을, 시골 정취를 느껴보고 싶을 때는 꼬불꼬불한 산골길을 택한다. 새해에는 세 갈래 길 중 바닷가의 풍광을 더 많이 담으면서 밝은 하루를 맞고 싶다. 그곳은 맑은 날이면 아침부터 태양의 천사들이 내려앉아 은빛 축제를 펼친다. 일출의 아름다움과 광활한 바다의 여유로움을 공유할 수 있다. 그래서 조용한 산골의 하루 일과를 더욱더 풍요롭게 시작하고 싶다.
새해에는 코로나를 완전히 극복하여 편안하고 행복한 일상이 되기를 다시 한 번 더 간절히 기원 해본다. 저를 아는 모든 분께서는 복 많이 들어올 수 있게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 놓으시고 들어 온 복을 많이 누리시길 기원합니다.~!! <2021. 12. 30. 중산>
단계
꽃이 모두 시들 듯이
젊음이 나이에 굴복하듯이
지혜도, 덕도, 인생의 모든 단계도
제철에 꽃피울 뿐, 영원하지 않네.
생의 부름을 받을 때마다 마음은
슬퍼하지 않고 용감하게
새로이 다른 인연으로 나아가도록
이별과 새 출발을 각오해야 하지.
그리고 모든 시작에는 이상한 힘이 깃들어 있어
우리를 지켜 주고 살아가도록 도와준다.
공간에서 공간으로 명랑하게 나아가야지
어디에도 고향인양 매달려선 안 되네
우주정신은 우리를 구속하고 좁히는 대신
한 단계씩 올려 주고 넓혀 주려 한다.
생의 어느 한 영역에 뿌리내리고
친밀하게 길드는 바로 그 순간, 나태의 위협 밀려오나니
떠나고 여행할 각오된 자만이
습관의 마비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
죽음의 순간조차도 아마 우리는
젊게 새로운 공간으로 넘어가는지도 모른다.
생의 부름은 결코 그치지 않으리니∙∙∙∙∙∙
그러면 좋아, 마음이여, 작별을 고하고 건강하여라!
- <헤세의 ‘유리알 유희’에서 명인의 학생 ∙ 연구원시절 때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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