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직진이다!
올해는 여느 해 보다 유난히 장마가 긴 거 같다. 장마라 하면 중간 중간 맑은 날이 며칠씩 이어져 흔히들 마른장마라고 부르곤 했는데 올해는 줄곧 지겹도록 비만 내린다. 하늘이 맑아지는 거 같아 고추밭에 약을 치고 나면 이내 또 비가 내려 허탈해진다. 그래서 나는 내가 약을 치는 날이면 비가 꼭 내린다고 자조 섞인 넋두리를 하곤 한다.
어릴 때 모친은 여름이면 그해가 가장 덥고 겨울이 되면 그해가 가장 춥다는 말씀을 종종 하셨다. 과거의 정확한 기억보다 현재 힘든 상황이 가장 고통스럽다는 몸의 표현인 거 같다. 이는 젊었을 때는 힘들지 않게 생각했던 평범한 일상들도 나이 들어서는 육체적 한계에 부딪치니까 나온 한탄인 듯하다.
나도 가끔씩 ‘갈수록 내 육체마저 움직이는 데 힘든 상황이 오겠구나!‘ 하는 생각들이 문득 들 때가 있다. 특히 좀 앉았다 일어서거나 바쁘게 오르막을 오른다거나 할 때 더더욱 그렇다.
이번 장마에 시내 사는 친구가 혼쭐난 경험담을 얘기 했다. 일시에 쏟아지는 비에 저지대 시내 도로가 물에 잠겨 겨우 빠져나왔다는 것이다. 차 범퍼까지 물이 차서 차 엔진 소리가 이상하여 시동이 꺼질까봐 낭패를 봤다는 얘기였다.
기습폭우를 잠시 피해 기다렸다 가거나 우회 산복도로가 있는데도 그쪽으로 가지 않고 아무 생각 없이 가다보니 끝까지 직진 길을 고집했다는 것이다. 바쁘지 않은 자기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지나고 보니 참 멍청한 짓을 했다는 말을 했다.
이에 나는 “나이 들어서는 무조건 직진만 고집하는 본능이 있고 우리나이가 그렇다”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우리 나이 때는 생각의 여러 우회 회로들이 떠오르지 않고 눈앞에 보이는 직진만 고집하는 습관들이 몸에 배인 듯하다. 평소 막걸리를 좋아하는 그에게 만약 그 때 엔진이 멈췄더라면 막걸리 몇 천 통 값은 날렸을 거라며 기분 좋게 사 마셔라는 농까지 보탰다.
나도 농원에서 일을 할 때 가끔 경험하는 것들이다. 여러 가지 일들을 동시에 벌리면 꼭 문제가 발생한다. 손에 전지가위와 낫, 호미를 들고 풀, 나무와 잡초를 제거하다 보면 꼭 연장하나는 빠뜨리고 온다. 그것도 까맣게 잊고 있다가 훗날 녹슬고 망가진 연장을 발견하고 나서야 알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수돗물을 틀어 놓고 다른 일을 병행하다 보면 수돗물이 철철 흘러넘치는 경험을 자주 하게 된다. 젊었을 때는 안 그랬는데, 생각했던 것 한 가지만 앞을 보고 직진을 해야 한다. 두 서너 가지 일을 생각하다 간 반드시 하나를 놓친다. 어떨 땐 연장을 가지러 갔다가 “내가 뭐 가지러 왔지?“하며 멍하게 잠시 생각할 때도 있다.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처리하는 것을 멀티태스킹이라고 한다. 물론 일을 하다 보면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해야 하는 경우가 생길 수가 있다. 하지만 그 경우는 지적 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것도 젊었을 때 말이지, 이제 나이 들어서는 눈 앞에 보이는 한 가지 일에만 집중하는 버릇을 들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마트 계산대에서 수금원이 받은 금액을 복창하는 것처럼, 그런 순간을 각인시킬 별도의 멘트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지금껏 뇌 단층촬영을 한 번도 해본적은 없지만, 아마 해마가 바짝 마른 호두알 처럼 쭈그러져 있을 것이다.
아! 어쩌겠는가? 이제는 자책보다 나를 위로 한다. 깜빡할 때도 있지! 서둘지 말자. 모든 상황을 받아들이며 나이에 맞게 천천히 생각하고 움직이면서 스트레스 받지 않도록 하자. 지금까지 수고 많이 했잖아! 하면서 마음속으로 나를 토닥토닥 다독여 본다.<‘나만의 전원생활’에서 발췌, 중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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