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줄이고 인생을 즐겨라!
내가 돈을 위해 일을 해야 한다면,
돈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조지 버나드 쇼
내가 직장 없는 사람으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 처음 몇 주일은 특이했다. 나는 여기에서 ‘실업자’라는 말을 피한다. 집에도 얼마든지 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아내는 누구보다도 빨리 상황에 적응했으며, 나를 더 이상 언론인이 아니라 집안일을 도와주는 사람으로 보았다.
“무슨 일에 종사하시지요?“ 어김없이 이렇게 묻는 사람이 있다. 이 물음은 속물적이고 고루한 것이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고 있기 때문에 종사하는 직업을 가지고 사람을 규정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아직 해고되지 않은 사람들도 일이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유일한 가능성이라고 보지 않는 게 좋다. 일은 원래 에덴동산에서 이브가 저지른 불손에 대한 징벌로 생각된 것이다. “이마에 땀을 흘려야 너희는∙∙∙∙∙∙.” 그러다 루터와 칼뱅에 의해서 일은 도덕적인 계율, 삶의 필수적인 것이 되었다.
일과 더불어 일에 따르는 사회적인 인정, 존중, 지위가 어느 날 갑자기 모조리 사라져버리는 경우에 인간은 공허함에 직면하게 된다. 경제 분야에서 오랫동안 지지를 받아온 견해는 일에 파묻혀 사는 사람들의 사생활은 황량할지 모르지만 직업에서는 큰 성과를 보인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회사를 위해서 낮이고 밤이고 하루 24시간 출동 태세를 갖추고 있다. 자신과 회사를 동일시하며 회사에 전력을 다한다. 현재 하버드나 인사이드 같은 세계적인 비즈니스 스쿨에서 그러한 유형의 직원은 비용과 생산적인 면에서 기업에 위험한 존재라고 가르친다. 그러한 사람들은 언제 탈진해서 기능이 정체될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존재이다.
24시간 내내 - 휴대폰이나 블랙베리, 노트북을 통해 - 직장과 연결되어 있는 오늘날 같은 시대에 조용히 물러나 휴식을 취하며 재충전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의 건강과 정신력을 해칠 뿐 아니라 회사 경영의 관점에서는 생산력에까지 누를 끼치게 된다.
그러나 직장에서 건강을 위협하는 주요 원인 중의 하나는 흥미롭게도 일 자체가 아니라 일을 잃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다. 두려움과 스트레스가 인간의 활력과 면역 체계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분명하다. 핀란드의 어느 연구에 따르면, 여러 차례에 걸쳐 감원한 기업에서 직원들이 심경경색에 갈릴 위험이 4년 전 해고 파동이 있기 전보다 무려 5배나 상승한 것으로 집계되었다.
효과적인 치유 방법은 단 하나밖에 없는 듯하다. 그것은 바로 사태를 인식하는 방법이다. 삶의 활력을 잃지 않고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일부 생활 태도와 습관, 일을 바라보는 관점을 점검해야 하는 사실을 이해하고, 필요한 경우에는 치료사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오로지 일로만 자신을 규정하는 것이 과연 의의 있는가. 또 다른 사람들보다 더 부지런해 보이고 싶다는 이유 하나로 저녁에 맨 마지막으로 사무실을 나서는 것이 과연 행복에 이르는 길인가 한번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 10년 전에 일과 자신을 100퍼센트 동일시하라고 권했던 조언서들이 흥미롭게도 이제는 일을 순전히 밥벌이의 수단으로 보고 삶의 의미를 가족과 여가 시간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놀이를 즐기는 소질은 여유를 부리는 능력과 일맥상통한다. 오직 여유를 부리거나 재미 삼아 뭔가를 할 때에만 진정으로 위대한 일을 할 수 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카푸터 호수에서 노를 저어며 상대성이론을 생각해냈다. 전구는 무척 꼼꼼하고 치밀한 성격의 독일 어느 시계 수리공이 여가 시간에 발명했고, 인터넷은 전자계산기를 재미 삼아 연결시킨 몇 명의 컴퓨터광이 고안했다.
우리 집안 남자들에게 사냥만큼 중요한 것은 없었다. 물론 사냥에는 훨씬 못 미치지만 그다음으로는 카드 게임을 즐겼다. 한 명이 부족한 경우에는 몸이 아주 불편한 사람도 카드 게임에 참여해야 했다. 더 이상 변명할 여지가 없었다. 젊은 시절 나는 우리 집안의 사냥과 카드에 대한 열정이 못마땅했다. 이제는 문화적인 이점일 수 있는 심오한 통찰이 그 열정 뒤에 숨어 있지 않을까 추측한다.
프랑스의 귀족 몽모랑시 일가는 1929년 세계공황의 위기에 전 재산을 잃었고, 그 영락한 가문의 후손은 지금 파리의 환경미화원으로 일한다. 끝없이 긴 거리를 청소하는 일이 지루하고 피곤하지 않느냐고 몽모랑시에게 어떤 이가 물었다. 그러자 그는 유희적이면서도 치밀한 청소 방법을 설명했다.
먼저 길을 머릿속에서 여러 구획을 나눈 다음, 순서를 정해놓고 차례로 청소를 했다. 그러면 언제나 단계적으로 목적을 달성하게 되었고 그에 온 주의력을 기울여야 했다. 그는 다른 많은 환경미화원 동료들보다 더 행복한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헝가리의 저명한 심리학자 칙센미하이는 순간의 활동에 완전히 몰입해서 시간을 정지하고 더 이상 바라는 게 없는 찰나를 표현하는 ‘플로flow'라는 개념을 만들어냈다. 이 ’플로’는 일을 하는 동안에도 가능하지만, 무엇보다도 유희하는 동안에 많이 나타난다.
1516년 토마스 모어는 새로운 문학 장르의 문을 연 <유토피아>를 집필하면서 인류가 일하지 않아도 되는 날을 꿈꾸었다. 이 유토피아는 거의 현실이 되었다. 그런데 한 가지 결함을 부정할 수 없다. 소수만이 정규적으로 수입을 올리는 곳에서는 소수만이 돈을 소비할 수 있는 법이다.
한나 아렌트는 오늘날과 같은 사태를 예측할 수 있게 되기 이미 오래전인 1958년 <인간의 조건>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아직 서로를 이해하는 유일한 활동은 노동이다. 그 노동을 잃어버린 노동 사회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것보다 더 숙명적인 일이 있을 수 있을까?”
그러므로 유급 노동이 아닌 다른 활동을 통해서 주체성을 확립하고 사회적인 인정을 받도록 노력하라고 간곡히 권할 수밖에 없다. 일을 잃는 경우가 많은 사람들이 공허함이라는 위험에 직면하거나 아니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 행동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두 경우 모두 긍정적이라 볼 수 없다.
그리스 로마 시대부터 종교개혁에 이르기까지 분별 있는 사람들은 모두 일이 본연의 삶을 가로막는 것이라고 여겼다. 일의 의미와 목적은 여가를 즐기기 위한 데 있었다. 이제 다시 그렇게 되어야 한다! 결과적으로 수중의 돈은 줄어들지라도 일을 구원의 수단이 아니라 필요악으로 보아야 한다.
부득이하게 필요하거나 아니면 돈을 탐하는 마음에서 일을 했을 뿐이다. 종교개혁 이후에야 처음으로 일은 도덕적인 의미를 부여받았다. ‘직업’이라는 말을 ‘일’과 동의어로 사용하는 중대한 실수를 범한 사람도 바로 루터였다. 노동과 ‘노동에 대한 권리’는 마르크스와 엥겔스 이후에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들 가운데 하나가 되었으며, 마침내 중앙 유럽인들에게 삶의 의미를 부여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
<‘폰 쇤부르크씨의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법’을 극히 일부 요약 발췌, 김인순님 옮김, 필로소픽 출판>
* 알렉산더 폰 쇤부르크 : 독일 최고의 권위지인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의 베를린판 편집자이자 칼럼니스트로 활약. 독일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언론계 구조조정에서 직장을 잃었다. 날벼락 같은 상황 속에서 의연한 대처로 이 책을 탄생시켜 ‘가난해지고’있는 사람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안겨주었다. 현재 ‘자유 언론인’으로 활약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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