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을 기꺼이 칭찬하는 사람은 보통 다른 사람의 칭찬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반면 다른 사람을 칭찬하기 꺼리는 사람은 상대방의 칭찬을 액면그대로 받아들인다. 결국 영혼의 그릇이 작을수록 감언이설에 넘어가기 쉽다. - 에릭 호퍼
다른 사람을 설득하고 싶은 충동은 자기 자신을 설득해야 할 때 가장 강해진다.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인정하는 일이 좀처럼 성공하기 어렵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자기 가치를 인정받으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이다. - 에릭 호퍼
비오는 풍경
빗방울이 방울방울 흘러내릴 때, 나의 실패한 인생이 자연과 함께 눈물을 흘린다. 하염없이 떨어지는 빗방울 속에는, 그리고 돌풍 속에는 나에게 속한 불안한 무엇이 있다. 그날의 슬픔은 돌풍에 휩쓸려 땅으로 떨어진다.
비가 그칠 줄 모르고 계속 내린다. 계속 빗소리를 듣고 있으니 나의 영혼이 점차 축축해진다. 너무 많은 비가 ∙∙∙∙∙∙나의 살이 물로 변하자, 나의 살에 대한 감각의 가장자리가 축축해진다.
불안한 냉기가 나의 불쌍한 심장 주위에 얼음처럼 찬 손을 내민다. 잿빛 시간이 팔을 벌리고[∙∙∙∙∙∙] 시간 안에서 단조로워진다. 그리고 순간이 질질 끌린다.
비가 끝도 없이 내리는구나!
하수구는 늘 새로운 작은 물살을 토해놓는다. 심지어 수도관을 따라 콸콸 쏟아지는 물소리조차 내 마음에 스며든다. 비는 게으르고도 애처롭게 유리창을 때린다[∙∙∙∙∙∙].
차가운 손이 내 목을 졸라 삶을 호흡할 수 없도록 한다. 모든 것이 내 안에서 죽어간다. 내가 꿈을 꿀 수 있다는 인식마저도! 나는 어디에서도 평화를 찾을 수가 없다. 지금 내가 편하게 기대고 있는 부드러운 것에서도 나의 영혼은 뾰족한 날을 찾아낸다. 내가 응시하는 모든 시선이 점차 어두워진다. 고통 없이 죽기에 적당한 오늘의 희미한 빛이 그 시선을 때리기 때문이다.
인생 여행에 대하여
인생은 마지못해 시작한 시험적인 여행이다. 물질을 통한 정신의 여행인 것이다. 여행을 하는 것은 정신이므로 우리는 정신 안에서 살고 있다. 모든 것은 우리의 감각에 있으므로, 타인의 육체를 보는 것 혹은 그것을 기억하는 것은 타인의 육체와 실제로 접촉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남들이 춤추는 것을 볼 때, 나도 춤을 춘다. 풀밭에 누워 멀리서 추수하는 세 명의 농부들을 보았던 영국 시인처럼 나도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네 번째 농부도 저기서 추수를 하고 있지. 그가 바로 나야.”
지루함, 침묵, 공허함∙∙∙∙∙∙. 저 위의 하늘은 지나버린 불완전한 여름이다. 나는 하늘이 저기에 없는 양 하늘을 바라본다. 나는 자면서 생각하고, 걸을 때에도 누위 있으며, 괴로워하면서도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아닌 것 때문에 진한 향수를 느낀다. 그것은 무(無) 그 자체이다. 내가 보지 않으면서도 비개인적으로 응시하고 있는 저 위의 하늘처럼 말이다. - 69(384) 1932.6.23에서
여행을 하고 싶은가? 여행을 하기 위해서라면 존재하기만 하면 된다. 나의 육신 혹은 나의 운명이라는 기차를 타고 나는 정거장마다 하루하루 여행을 한다. 창밖으로 도로와 광장과, 사람들의 태도와 얼굴을 바라보면서 말이다.
뭔가를 상상하면, 나는 그것을 본다. 내가 여행을 한다면, 무엇을 더 할 것인가? 지극히 나약한 상상력만 있어도 누구나 감각하기 위해서 여행을 할 수 있다. 사실 세상의 끝은 세상의 시작처럼 그저 세상에 대한 우리의 개념일 뿐이다. 오직 우리 내부에서만 풍경이 풍경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풍경을 상상할 때, 나는 그것을 만들어 낸다. 내가 풍경을 만들면, 그것은 존재한다. 풍경이 존재한다면, 나는 남들처럼 그것을 본다. 무엇하러 여행을 하는가? 마드리드, 베를린, 페르시아, 북극과 남극, 나의 내면이 아니라면 나는 어디에서 나의 특별한 감각을 느낄 것인가? -70(387)에서
인생은 우리가 만드는 것이다. 여행자가 바로 여행이다. 우리가 보는 것은 우리가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높은 곳까지 올라가도, 우리가 아무리 낮은 곳까지 내려가도, 우리는 결코 우리의 감각을 벗어나지 못한다.” 로크의 경험주의적 인식론을 연구한 프랑스의 철학자 콩디야크 말이다. 우리는 결코 우리 자신에게 상륙할 수 없다.
우리 자신의 감각적인 상상력을 통해서 다른 사람이 되지 못한다면 우리는 결코 타인이 될 수 없다. 진정한 풍경은 우리 자신이 만드는 것이다. 우리가 그 풍경의 신이므로, 우리는 그것이 진정 존재하는 대로, 다시 말해서 그것이 창조되었던 그대로 보기 때문이다. 내가 몸소 여행을 떠난다면, 나는 여행하기 전에 이미 보았던 것의 추한 복사판을 발견할 것이다.
다른 누군가를 유혹하고 싶듯이, 이동하기 위해서 여행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의 모든 광활한 풍경이 깨어난 나의 상상력을 파도처럼 밀려오는 찬란한 지루함으로 가득 채운다. 나는 더 이상 움직이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처럼 욕망의 밑그림을 그린다.
가능한 풍경이 미리 주는 피곤함이 마치 험악한 바람처럼 몰려와 정체된 나의 심장을 교란시킨다. 여행은 독서와 같고, 모든 것이 독서와 같은데∙∙∙∙∙∙. 타인의 감정을 통해 나의 감정을 갱신하면서 나는 고대인들과 현대인들이 조용히 교제하는 박학한 인생을 꿈꾼다.
사색하는 자들과 거의 생각만 했던 자들, 요컨대 서로 맞서는 거의 모든 작가들의 모순적인 사고로 나 자신을 가득 채우면서 말이다. 그러나 탁자에서 아무 책이라도 집으면, 독서에 대한 나의 관심은 사라지고 만다. 그 책을 읽어야 한다는 실제의 사실이 나의 독서를 반대하는데 ∙∙∙∙∙∙ 마찬가지로 우연히 배를 탈 수 있는 부두 근처에 가면 여행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사라진다.
그러면 나는 스스로 존재하지 않는 자가 되어 내가 확신하는 단 두 개의 부정명제로 돌아간다. 즉 미지의 행인 같은 나의 일상과 깨어 있는 자의 불면증 같은 나의 꿈으로 말이다. - 73(400)에서
<‘불안의 책’에서 극히 일부 발췌, 페르난두 페소아지음, 김효정님옮김, 까치출판>
* 페르난두 페소아 : 1888년 포르투칼 리스본에서 태어났다. 4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17세에 리스본대학교에 들어가지만 1년도 못 되어 그만둔다. 영어번역으로 생계를 유지하다, 평론지에 논객으로 활동했으며, 1918년 <멘사젬,전언>시집을 발간했다. 포르투칼을 대표하는 시인이며, 70개가 넘는 이명으로 시를 발표했다. 20세기 유럽 문학의 대표적인 인물 중 한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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