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자료

요양객

[중산] 2022. 7. 29. 10:03

경험하는 삶

- 신을 얼핏 본 사람도 살면서 여전히 베이고 찔리고 데인다.

 

우리는 흔히 진리를 발견하면 보답을 받으리라 기대한다. 애쓴 만큼 돈을 벌고 인정받을 수 있으리라고, 희생과 친절을 베푼 만큼 인정과 사랑을 받으리라고, 정직한 만큼 정당성을 인정받으리라고 남몰래 기대한다.

 

하지만 누구나 알다시피 삶은 나름의 논리에 따라 펼쳐진다. 그래도 우리는 노력과 친절을 인정받고, 진실의 위험성이 관계의 토대로 받아들여지기를 바란다. 하지만 숨쉬기에 대한 보답은 갈채가 아니라 공기이다.

 

등산에 대한 보답은 오름이 아니라 새로운 시야이며, 친절에 대한 보답은 친절한 사람으로 평가받는 것이 아니라 베풂의 기쁨이다. 이러한 기쁨이 우리를 살아 있게 한다. 모든 존재의 핵심에 가까워질수록 노력과 이에 대한 보답이 같아지는 듯하다.

 

누가 짐작이나 하겠는가? 진리를 발견한 보답은 정직한 존재를 경험하는 것이고, 이해에 대한 보답은 앎이 주는 평화이며, 사랑에 대한 보답은 사랑을 전하는 자가 되는 것임을. 존재의 핵심에 가까워질수록 모든 것이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단순해진다.

 

강의 목적은 오로지 물을 실어 나르는 것이다. 강한 물살에 강바닥이 넓고 깊게 패일수록 강은 자신의 목적을 더욱 잘 실현한다. 우리의 가슴도 마찬가지다. 세월과 함께 닳고 열릴수록 살아 있는 것들을 더욱 잘 품어 나른다.

 

이 모든 사실은 우리에게 말해준다. 아무리 많은 생각으로도 삶의 고통과 불안을 없애지는 못한다는 것을. 어떤 장애물이나 회피, 부정으로도, 어떤 이유나 핑계로도 삶의 거친 물살을 피해가지는 못한다는 것을. 이런 사실은 때로 절망으로 다가오지만 우리의 마음을 편안하게 다독이기도 한다.

 

삶의 덧없음에 초점을 맞추면 두려움과 죽음에 사로잡힌다. 그러나 삶의 덧없음이 만들어내는 무한한 구조를 인식하면, 가장 뼈저린 고통도 곧 지나가리라는 깨달음을 얻는다. 삶의 덧없음에 도리어 위안을 받는다.

 

<‘고요함이 들려주는 것들’ P535중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마크 네포지음, 박윤정님 옮김, 흐름출판>

* 마크 네포 : 30년 넘게 영성과 시 분야에서 강의를 한 철학자이자 시인. 영혼의 스승. 암을 두 번이나 겪으며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돌아온 후 내면의 변화에 대한 글을 쓰거나 가르치고 있다. <뉴욕타임스>베스트셀러에 올랐다.

 

고창 도솔산 선운사
선운사의 경내 아름다움!   <이 사진은 '예담이의 일상' 블로그 에서 인용,감사~!>
천마봉 방면 전경, 협곡아래 도솔암이 있다!

 

 

 

요양객

 

나와 요양객들, 그 밖의 모든 것을 바라보고 있는 이는 이제 좌골신경통 환자인 요양객 헤세가 아니라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좀 싫어하는 예전의 은둔자요 괴짜인 헤세였다. 그 헤세가 권태롭게 음식을 먹는 헤세, 권태롭게 음식을 먹는 다른 요양객들을 바라보고 있다.

 

그는 예전의 방랑자요. 시인인 헤세, 나비와 도마뱀, 고서적과 종교의 친구인 헤세였다. 세상에 대해 단호하고 강력하게 맞섰던 그 헤세, 관청으로부터 거주 증명서 제시를 요구받을 때 혹은 그저 국세조사 서류를 작성해야 하는 경우만 생겨도 깊은 비애를 느꼈던 그 헤세였다.

 

이 옛 헤세, 최근 들어 얼마간 낯설어지고 상실된 그런 나의 자아가 이제 다시 현현해 우리를 바라보았다. 시큰둥하게 포크로 장난질이나 하며 잘생긴 생선을 토막내고 배고프지도 않으면서 한 입 한 입 짜증 난 입 속으로 쑤셔 넣는 밥맛없는 요양객 헤세를 보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을 그 은밀한 관객은 보고 있었다. 그리고 갑자기 이 모든 공연이 그에게는 기이하고 우스꽝스러우며 희극적으로 보이고 괴기스럽게까지 보였다. 제대로 살아 있지 못한 인간들로 이루어진 이 불안하고 경직된 밀랍 인형관이, 권태에 찌들어 밥맛없이 음식을 먹는 헤세가, 권태에 찌든 다른 사람들이 그래 보였다.

 

그것은 참을 수 없이 가소롭고 바보 같은 짓이었다. 무의미한 의식으로 가득 찬 이 연극, 음식과 도자기와 잔, 은과 와인과 빵, 종업원, 무더기로 쌓인 이 모든 것이 이미 오래전부터 물릴 정도로 배불러 있는 몇몇 손님들을 위한 것이었다.

 

그들의 권태와 우울함은 음식을 먹거나 마시는 것으로도,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는 것으로도 치료할 수 없는 것이었는데 말이다. 

 

나는 내가 아닌 어떤 것이기를 원했다. 대체 어떻게? 나의 좌골신경통에서 어떤 특수성을 만들어 냈으며,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로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좌골신경통 환자와 요양객, 시민적 환경에 적응하는 호텔 손님의 역할을 연기했던 것이다.

 

온천욕을 하고 치료를 받았으며, 내 환경과 사지의 통증을 지나치게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나는 요양이라는 속죄를 통해 반드시 건강해지리라고 결심했다. 오로지 은총의 길을 통해서만 이를 수 있는 것을 나는 속죄와 형벌, 작업의 성스러움을 통해, 온천욕과 세정(洗淨), 의사와 브라만교의 마법을 통해 이르고자 했다.

 

보통과는 다른 독특한 방의 구조는 나를 기쁘게 했다. 멋진 등이 있고, 강과 포도원을 내다볼 수 있다. 그런데 64호실에 네덜란드 사람이 머물고 있었던 것이다. 열두 날이 지나는 동안, 열두 번의 괴로운 밤이 지나는 동안 그 남자는 내게 심히 중요한 존재가 되었다.

 

그자에 관해 설명을 한들 어느 누구도 나를 믿지 않으리라. 그토록 많은 날 동안 낮이면 내 작업을 방해하고 밤이면 내 수면을 방해하였다. 끊임없이 이야기소리가 봇물처럼 터져 흐르는데, 주로 넷이서 여섯 명 가량의 사람들이 건너편에 모여 있다. 그리고 두 부부가 열시 반까지 잡담을 해 댄다.

 

그런데 내가 다른 이들처럼 좀 더 이성적인 보통 사람이라면 그 상황에 쉽게 적응할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요양객들이 그렇듯 내 방이 아닌 다른 곳, 독서실이나 흡연실, 복도나 요양홀, 식당 같은데서 하루하루를 보내겠지. 그리고 밤이 되면 곧바로 잠을 잘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하지 못하고, 낮에는 많은 시간을 혼자 책상 앞에 앉아서 긴장 속에서 생각을 하고 글을 쓰다가 많은 경우 쓴 것을 다시 폐기해 버리는 힘들고 어리석은 소모적 열정에 사로잡혀 있다.

 

그리고 밤에는 잠자고 싶다는 크고 작은 간절한 욕구를 느끼지만, 내가 잠드는 일이란 몇 시간씩 걸리는 복잡한 과정이다. 게다가 잠은 매우 어렴풋하고 얕고 까다로워 그것을 낚아채는 데는 한 번의 입김이면 족하다. 그러다가 10시나 11시가 되어 죽을 만큼 지쳐 막 잠이 들려고 해 봤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옆방의 네덜란드 인 부부가 수다를 계속 떨고 있는 한 잠이 들지 않는다. 진이 빠진 채 자정이 오기만을, 그 헤이그 남자가 불현 듯 내가 잠들 수 있도록 해 주기만을 애타게 기다린다. 나의 불면과 정신적 도락에 대해 책임은 그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내게 있는 것이다.

 

그것을 내가 너무나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을 말할 필요가 있을까? 어떤 시대나 문화적 환경 속에서는 온갖 이상의 희생양이 되어 그 시대 상황에 순응하는 것보다 정신병자가 되는 것이 더 품위 있고 고상하고 더 옳은 일이 아닌가 하는 그 끔찍하고 충격적인 질문, 이 언짢은 질문, 니체 이후 세분화된 온갖 정신에 대한 질문 말이다.

 

바덴을 떠날 때 사실 작별은 얼마간 힘이 들었다. 이제 헤어져야만 하는 모든 사물과 사람들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래요. 정말 만족해서 떠나시는군요! 축하드립니다. 하지만 두고 보십시오. 선생이 아마 모르는 듯한 것을 나는 알고 있어요. 선생은 다시 옵니다!” ‘신성장‘ 주인은 말했다.

 

“내가 다시 온다고요? 바덴에요?” 내가 물었다. 그가 큰소리로 웃었다. “그렇고말고요. 모두 다시 오지요. 치유가 되건 안 되건 말입니다. 지금껏 누구나 다시 왔습니다.” 아마도 그가 옳았다. 아마 나는 언젠가 다시 오겠지.

 

하지만 이번과 똑 같은 내가 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모든 것이 매우 비슷하겠지만 전체를 보면 새롭게 달라져 있으며, 위에는 다른 별들이 떠 있게 될 것이다. 인생이란 어떤 계산이나 수학적인 형상이 아니라 기적이기 때문이다.

 

똑같은 궁핍, 똑같은 욕망과 기쁨, 똑같은 유혹이. 늘 또 다시 나는 똑같은 칸트에게 머리를 박았으며, 똑같은 용들과 싸우며, 똑같은 매들을 사냥하며, 늘 똑같은 형세와 상태를 되풀이했다. 그렇지만 그것은 늘 또다시 아름답고, 늘 또다시 위험스러웠으며, 늘 또다시 자극적인 영원한 유희였다. 나는 수천 번 자만했고, 수천 번 탈진했으며, 수천 번 천진난만했고, 수천 번 노회하고 냉정했다.

 

오래 지속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모든 것은 늘 다시 돌아왔다. 그러나 결코 똑 같은 것이 아니었다. 바덴에서 돌아온 이후의 이 짧은 시기에 나는 수십 번이나 저 건너 그곳에 갔다. 내가 ‘건강’해진 것은 아니었다. 상태가 나아졌고, 의사는 흡족해하고 있다. 그렇지만 치유된 것은 아니며 언제든지 재발될 수 있다.

 

실제적 회복 말고도, 내가 배덴에서 가져온 것이 또 있는데, 나의 좌골신경통을 마구 격분해서 몰아내는 일을 이제는 그만두었다는 것이다. 그것이 내 소유임을, 내 머리가 세어지기 시작한 것과 마찬가지로 그것도 당연히 생겨난 것임을. 그래서 단순히 지워 버리고 거짓말처럼 없애 버리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임을 깨닫는다.

 

나는 최근까지 내가 겪은 고통을 바라본다. 바로 얼마 전 바덴에서 그토록 우스꽝스러운 짓을 하던 그 헤세는 그를 되돌아보고 있는 총명한 오늘의 헤세 저편 멀리 서 있는 것 같다. 나는 이중성에 대한 표현을 찾고 싶다. 선율과 반대 선율이 항상 동시에 들리고, 그래서 모든 다채로움에는 항상 합일성이 병존하고, 모든 익살에는 항상 진지함이 병존하는 단원과 문장을 쓰고 싶다.

 

삶이란 내 생각에 오로지 그렇게 양극 사이를 오가고 세계의 두 주축 기둥 사이를 오감으로써만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름다움과 추함, 밝음과 어둠, 죄와 신성함은 늘 순간적으로만 대립할 뿐 그것들은 항상 서로 섞인다는 것을 끊임없이 말해 주고 싶다.

 

<‘요양객’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헤르만 헤세 지음, 김현진님 옮김, 을유문화사출판>

* 헤세 ; 일생동안 방랑, 자기실현과 내면세계를 추구하며 구도자적 글쓰기를 보여 준 헤세는 20세기 전반부 독일을 대표하는 작가이다. 1877년 독일 칼브의 유서 깊은 신학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명문 신학교를 탈출한 뒤, 서점점원, 시계공장 노동자 등을 전전했다. 방황으로 점철된 청소년기를 보낸 뒤 그는 시인의 길로 들어섰다. 제1차세계대전 전쟁의 야만성과 국수주의에 반대하는 중에 글을 기고했다가 독일인으로부터 변절자로 낙인찍히기도 했다.  유리알 유희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마이산탑사
비룡대에서 본 마이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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