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와서
신이 와서 “나는 있다”할 때까지
너는 기다리기만 해서는 안 된다.
자신의 능력을 스스로 밝히려 하는
그런 신은 의미가 없다.
신은 태초부터 그대의 내면 속에서
바람처럼 존재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하여, 네 마음이 알고 비밀을 지킬 때
신은 그 속에서 창조하는 것이다.
- 라이너 마리아 릴케
모방욕망
돈키호테는 홀로 방에서 <아마디스 데 가울라>를 읽고 아마디스를 본받아 자신도 방랑의 기사가 되어야겠다는 강한 열망에 불타올랐다. 스텐퍼드 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치던 르네 지라드는 욕망의 본질에 대한 첫 통찰을 얻었다. 그 발견은 바로 모방 욕망이다. 모방이론은 당신의 지난 시간에 대해 새로운 사실을 배우는 것을 의미한다.
과거의 시간은 당신의 정체성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그리고 왜 특정 사람과 사물이 다른 사람 또는 사물보다 당신에게 더 많은 영향을 끼쳤는지를 설명해준다. 지라드는 우리가 생물학적 욕구나 자기 주관에 따른 결정이 아닌, 모방을 통해 많은 것을 욕망하게 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모방 욕망은 인간생태학의 포괄적 관점 중 하나이며 자유와 인간성에 대한 관계적 이해를 내포하는 것이다. 지라드가 사용했던 단어인 욕망desire은 음식이나 섹스, 쉼과 안전에 대한 욕구를 의미하지 않는다. 태어날 때부터 본능적으로 발생하는 이러한 것들을 ‘필요’라 부르는 것이 더 적합하다.
기본적인 필요가 충족되면 우리는 ‘욕망’이라는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사람들은 타인보다 더 욕망하게 되는 것일까? 그리고 왜 우리의 욕망의 대상과 강도는 안정감 없이 계속 변동하는 것처럼 보일까? 욕망의 세계에는 명확한 위계질서가 없다.
사람들은 겨울에 코트를 입는 식으로 욕망의 대상을 선택하지 않는다. 우리가 욕망을 형성하는 것은 객관적 분석이나 중추신경계가 아니라 바로 ‘모델’이다. 사람들은 이런 모델을 통해 지라드가 미메시스mimesis(그리스어로 모방이라는 뜻)라고 부른 비밀스럽고 정교한 형태의 모방하기로 들어간다.
개인적 스타일, 말투, 집의 외관이나 인테리어 등 거의 모든 것에 대해 모델(또는 모델세트)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 대부분이 간과하는 모델은 바로 ‘욕망의 모델’이다. 당신이 왜 특정 물건을 샀는지, 왜 특정 성취를 갈망하는지 이해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감히 물어보는 사람도 없다. 모방 욕망은 사람들을 무언가로 이끈다.
앨리슨은 “여기서 이끈다는 것, 즉 이 움직임은∙∙∙ 물리학에 중력이 있다면, 심리학에는 모방이 있다”라고 말한다. 모방 욕망은 사람들이 사랑이나 우정 또는 사업적 파트너십에 빠지거나 또는 벗어나게 한다. 또는 사람들을 환경의 산물이라는 굴욕적인 노예가 되도록 할 수 있다.
무엇이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는가?
사람이 무엇을 희구해야만 하는가를 안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사람은 한 번밖에 살지 못하고 전생과 현생을 비교할 수도 없으며
현생과 비교하여 후생을 바로잡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밀란쿤데라
고대 로마의 정치가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탁월한 낭만적 거짓말쟁이였다. 젤라 전투에서 승리한 그는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veni, vidi, vici"라고 선포했는데, 사람들은 오늘날까지 이 말을 수천 번 넘게 인용해오고 있다.
자신을 높이 평가했던 카이사르는 자신이 어떤 대상을 보면 그것이 옳은 것임을 바로 분별하는 존재라고 사람들이 생각해주길 바랐다. 하지만 진실은 그보다 더 복잡하다. 그는 자신이 롤 모델이었던 알렉산더처럼 오랫동안 정복을 갈망했고 그의 라이벌 파르나케스에게 반응했던 것이다.
우선 마음속 깊은 곳에는 우리가 어떤 것을 원하는 동기가 된 사람이나 사물이 도사리고 있다. 즉 어떤 모델이 있어야 욕망할 수 있는 것이다. 중고가게 셔츠 수백 벌이 진열되어 있지만 어느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런데 친구가 셔츠 하나를 집어드는 순간, 그 셔츠는 차별화가 시작되는 것이다.
‘세상에나! 다른 사람의 눈으로 사랑을 선택하다니!“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에서 주인공 헤르미아가 한 말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통해 브랜드, 학교, 식당의 메뉴를 선택하며 살아간다. 욕망의 모델이 언제나 존재한다.
우리는 종종 자신도 모르게 그들에게 집착한다. 모델은 많은 경우 한 사람의 비밀스러운 우상이 된다. 아이들은 타고난 모방 꾼으로, 태어난 지 몇 초 만에 다른 인간을 모방하게 시작한다.
뷔르츠부르크대학의 베르케박사는 “신생아들은 다양한 소리를 흉내 내는데, 이 소리들은 특히 자궁에서 들었던 운율에 따라 만들어 진다”라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욕망의 두 가지 사이클
2019년 8월 캘리포니아의 한 워터파크에서 두 가족이 싸워 한 남자가 혼수상태에 빠졌다. 40명이 서로 난투극을 벌인 이 사건은 비치타월 하나를 두고 두 사람이 벌인 싸움에서 시작되었다.
카를 마르크스와 셰익스피어는 사람들이 싸우는 이유에 대해 매우 상반된 의견을 가지고 있었다. 마르크스는 사람들이 다르기 때문에 갈등이 발생한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각자 소유한 물적재material goods가 다름으로 인해 서로 다른 목표, 욕망, 그리고 이념을 가지면서 다툼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런 틀에서는 동일한 물적재를 가진 사람들 간의 다툼이 줄어들 것을 기대하게 된다.
반면에 셰익스피어의 관점은 정반대였다.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캐플렛가와 몬터규가는 서로 비슷하기 때문에 싸움이 일어난다. 한 집단 내 사람들이 비슷할수록 전체에 영향을 주는 긴장 상황에 더 취약하기 쉽다.
욕망은 정보처럼 퍼지는 것이 아니라 에너지처럼 확산된다. 콘서트나 유세 현장에서 사람들 사이에 에너지가 퍼져나가듯이 욕망이 사람에서 사람으로 전해진다. 이 에너지는 긍정적인 욕망의 사이클로 이끌 수 있다. 그러나 모방경쟁자들이 갈등과 불화를 일으키게 되는 부정적인 사람들이 될 수도 있다.
당신이 이미 가지고 있는 두터운 욕망에서 시작하는 것이 가장 좋다. 그 욕망을 알아차리는 것이 늘 쉬운 것만은 아니다. 두터운 욕망은 우리 삶의 대부분을 지배하는 덧없고 충동적인 욕망 아래 숨겨져 있다.
미국 작가이자 교육자인 파커 팔머는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내 인생에 말하기 앞서 내가 누구인지 말해주는 내 인생의 이야기에 먼저 귀를 기울여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한 접근법은 철학적, 심지어 영적인 것이다.
랍비인 조너선 색스는 영성이란 “우리 자신보다 더 위대한 것에 우리 자신의 마음을 열었을 때 일어나는 일”이며, “어떤 사람은 자연의 아름다움이나 예술 또는 음악에서 그것을 발견하고, 또 다른 사람들을 기도하고 율법을 준수하고 신성한 문장을 배우는 것을 발견한다.
또 다른 사람들을 돕거나 우정이나 사랑으로부터 이를 발견하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그것은 자신과 타인, 우주에 대한 유대감의 의미로 설명할 수 있다. 욕망은 유대감을 형성한다. 우리는 완전히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라 욕망에 의해 연결된 관계망 속에 존재한다.
두터운 욕망을 발견하기 위해 한 가지 접근법은 당신의 동료(파트너, 친구, 급우)가 살면서 이뤘던 가장 큰 성취 경험들을 듣고, 또 자신의 경험을 그들과 나누는 것이다. 성취 경험을 나누기에는 세 가지 필수 요소가 있다. 즉, ‘행동을 취해야 한다. 잘했다고 믿어라. 성취감을 느껴라’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동은 존재에 따른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행동에 의거해서만 어떤 사물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의 경우 행동의 내적 차원에 대한 통찰도 필요하다. 당신도 알겠지만 욕망은 마법처럼 저절로 생겨나지 않는다.
욕망은 인간의 역동적 상호 작용이 이뤄지는 세계에서 생성되고 형성된다. 누군가가 모델을 제공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말년에 슬픈 상황에 빠진 자기 자신을 발견 한다.우리는 욕망의 그라비트론에 갇히기 쉽다.
마틴 루터 킹은 상상하는 범주를 넘어선 구체적인 정의를 추구했다. 킹은 좌파와 우파, 진보와 보수, 세속과 종교를 초월한 진정한 변화에 대한 욕망을 모델링함으로써 그들을 잠에서 깨웠다. 케네디 대통령이 미국인들에게 “우리가 달에 가기로 선택했다”라고 말했을 때 이전에 품었던 생각을 능가하는 욕망을 모델링했다.
고전 철학, 적어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전통에서 의지와 지성은 서로 반대되는 것이 아니라 함께 협력하는 것이었다. 지성은 의지를 일으켜 직접적 행동을 취하도록 돕는다. 이어 행동은 진실을 파악하는지 지적 능력에 영향을 준다.
당신이 모방 욕망의 현실을 받아들이게 된다면, 부정적인 미메시스에 대응하기 위해 어떤 행동을 취할 수 있을지 의도적으로 생각할 능력을 갖게 된다. 진실을 열정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모방적 가치가 아니라 객관적 가치에 도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이기 때문에 반모방적이다.
진실 추구를 강조하고 모델링하며 조직 내 진실의 속도를 높이려는 리더들은 진실로 가장하는 미메시스의 변덕스러운 움직임으로부터 스스로에게 예방주사를 놓는 것과 마찬가지다. 유명한 미래학자 이안 피어슨은 2050년이 되면 인간끼리의 성관계보다 로봇과의 성관계가 더 많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우리는 로봇과 더 많은 섹스를 하고 싶어 할 것이고 그들은 우리가 섹스하기를 ‘원할’ 것이다(여기서 ‘원한다’는 말이 인간의 욕망을 모방하도록, 즉 인간적인 형태의 욕망으로 프로그래밍된 것을 의미한다면 말이다).
욕망의 유사성보다 더 위험한 것은 없다. 로봇의 유사성이 인간의 욕망을 침해한다고 상상해보자. 욕망이 같은 대상에 집중되면 갈등은 피할 수 없다. 인공지능이 진짜 위험한 이유는 언젠가 우리보다 더 똑똑한 로봇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직업, 배우자, 꿈 등 우리가 원하는 것을 동일하게 원하는 로봇이 출현하는 것이다.
한 수도원에서 최근 수년간 수도사 지망생들이 예배실에서 기도할 때 책을 한 꾸러미 가지고 오는 것을 발견했다. 그들은 ‘입력’ 없이는 ‘출력’도 없다고 생각하는 것에 익숙해진 것이다. 계산적 사고가 팽배해진 것은 인간이 기계를 모방하는 기술 발전의 산물이 되었다.
명상적 사고는 인내심을 요한다. 이는 명상과 다르다. 이것은 놀라운 일을 경험했을 때 즉시 해결책을 찾지 않는 식의 사고를 뜻한다. 명상적 사고는 변혁의 문을 연다. 우리 뇌에서 계산하고 처리하는 부분이 잠잠해지면 새로운 경험을 받아들이는 명상 부분이 활성화되면서 새로운 경험을 현실의 새로운 틀에 통합시키게 된다. 즉, 명상적 뇌는 새로운 모델을 발전시킨다.
아이들이 아주 어렸을 때 부모는 그들의 유일한 모방 모델이다. 부모가 원하는 것을 아이도 원하게 된다. 하지만 보통 세 살쯤 되거나 부모가 신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시점이 되면, 다른 모델을 찾는다. 그리고 그 모델이 하는 행동을 따라 한다.
나발 라비칸트는 “욕망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때까지 행복하지 않기로 스스로 맺은 계약”이라고 말한다. 욕망은 항상 우리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어떤 대상에 대한 것으로 우리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이다.
모방 욕망은 역설적인 게임이다. 이기는 것이 지는 방법이 된다. 모든 승리는 피로스의 승리(pyrrhic victory,많은 희생을 대가로 치른, 패전이나 다름없는 의미 없는 승리)일 뿐이다. 라비칸트는 “압도적 욕망을 선택하라. 그 문제로 씨름하는 것은 괜찮다”라고 말했다.
다른 욕망은 버려야 한다. 당신의 가장 큰 욕망을 붙잡는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모델을 붙잡는다는 뜻이다. 우리는 모델 없이는 욕망에 접근할 수 없다. 우리가 자신의 것을 초월한다고 느끼는 삶의 질을 가진 모델들을 따르게 된다. 따라서 가장 높고 숭고한 욕망을 좇아라.
하지만 모델의 형태에서 그 욕망을 찾아야 한다. 책 속에 등장인물, 운동선수, 수상자 등 당신이 상상하는 가장 위대한 이상일 것이다. 우리가 자신의 욕망 충족에 덜 관심을 갖고 타인의 충족에 더 관심을 쏟을 때 욕망의 전환이 일어난다. 역설적으로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바로 우리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임을 발견한다.
딜라드는 <족제비처럼 살아가기>에서 족제비가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준다고 말하고 있다. “독수리가 족제비를 낚아채려고 위에서 덮쳤을 때 그 족제비는 타이밍을 잘 맞춰 마지막 순간에 고개를 돌려 그대로 독수리의 목에 이빨을 박아 넣었다”는 것이다.
족제비가 이빨을 박았던 것과 같은 본능만이 우리를 전적으로 인도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깊이 파고들 가치가 있는 것이 무엇인지 결정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방식대로 살아갈 수 있다.
사람들은 가난, 정절, 그리고 복종(침묵)의 서약을 선택한다. 족제비는 궁핍 속에서 살아가고, 우리는 궁핍을 싫어하고 마지막 순간 발톱에 찢겨 비열하게 죽는 선택 속에 살아간다.”라고 딜라드는 말했다.
우리는 매 순간 자신의 욕망을 주장하는 모방적 힘에 굴복하거나 가장 위대한 욕망이 주는 자유에 굴복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다. 우리 인생을 걸 만큼 두터운 욕망을 개발할 때까지 우리에게 주어진 일을 항상, 반복해서 계속하는 것이다. ~
<‘너 자신의 이유로 살라’ P334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루크 버기스지음, 최지희님 옮김, 토네이도출판> * 루크 버기스 : 미국 기업가이자 베스트셀러 작가, 교황청립 성 십자가대학교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했다. 이 책을 통해 우리의 욕망이 자발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원하는 것을 따라 이루어진 것이라는 인식의 전환을 촉구한다.
추경
이쁜 것들이
조금씩 상처 입으며 살아가겠지
미운 것들을 더러는
상처 입혀가면서 말야
바람 부는 아침 저녁으로
햇살 파리한 들판
산서어나무 가지를 흔드는
바람의 전언
눈시울 붉히며 그래도
그대만을 사랑했던가 싶게
지성으로 푸른 하늘 아래
전신으로 생을 재는
풀벌레의 보행
가을이 와 비로소 고독해진
솜다리꽃 같은
이쁜 것들이 상처 입으며
조금씩 더 아름다워지는 세상
- 허장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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