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줄거리 요약
-아름답고 명랑한 키티는 허영 많은 엄마의 기대 속에 사교계에 등장하지만 결국 나이에 쫓겨 도피하듯 결혼한다. 키티는 지루한 삶에 활력을 주는 매력적인 유부남 찰스 타운샌드에게 빠져든다. 그러나 불륜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나자 찰스는 키티를 배신한다. 아내의 부정을 알게 된 세균학자 윌터는 아내 키티를 협박해 콜레라가 창궐한 중국 오지로 데려간다. 윌터가 배신감과 증오, 사랑 사이에서 고뇌하는 사이 키티는 삶의 새로운 국면에서 정신적으로 성장한다. <인생 베일>은 허영과 욕망이라는 굴레를 극복해 나가는 키티의 힘겨운 성장을 통해 진정한 사랑, 용서와 화해, 그리고 삶의 의미를 되짚는 감동적인 러브 스토리다.
키티 ---- 여 주인공
윌터 ---- 남편
찰스 타운샌드 --- 유부남, 불륜남
키티는 스물다섯에 여전히 미혼이었다. 결혼을 영영 못하면 어쩌지? 그해에 그녀에게 청혼한 남자는 옥스퍼드에 다니는 스무 살의 청년이 유일했다. 그녀보다 다섯 살이나 어린 애송이와 결혼할 수는 없었다. 작년에는 아이가 셋 딸린 홀아비의 청혼을 거절했다. 이제 어머니라면 소름 끼쳤고 키티의 가슴은 추락하고 있었다.
키티는 어머니의 독설이 두려웠다. 세상에, 너랑 같이 사교계에 얼굴을 내민 여자들은 모두 일찌감치 결혼해서 대부분 아이까지 두었다! 그들을 보러 가서 아이 자랑을 듣는 것은 이제 신물이 났다. 윌터는 그녀에게 새로운 삶을 제시한 것이다.
그가 왜 무도회에 왔는지 그녀는 알 수 없었다. 그는 춤도 잘 추지 못했고 아는 사람도 별로 없어 보였다. 그의 행동은 그녀를 좋아하는 다른 젊은 남자들과 분명히 달랐다. 다른 남자들은 대부분 그녀에게 솔직했고 키스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윌터 페인은 절대 그녀에 대해 말하지 않았고 자신에 대해서도 별로 말이 없었다. 그는 말이 없는 편이었다.
“난 아주 서툴고 주변머리가 없어요. 언제나 진심으로 하는 말이 그렇지 않은 말보다 더 하기 어려워요.” 그녀의 심장 박동이 조금 빨라지기 시작했다. 전에도 가끔 청혼을 받은 적은 있었지만 그때는 쾌활하거나 낭만적인 분위기였기 때문에 그녀도 같은 방식으로 응답했다. 이렇게 느닷없이, 게다가 이상하게 비극적인 방식으로 구혼한 사람은 없었다.
“친절하신 말씀이네요.” 그녀가 어리둥절해서 말했다.
‘처음 봤을 때부터 난 당신에게 반해 버렸어요. 진작 청혼하고 싶었지만 도저히 그
말을 꺼낼 수가 없더군요.“
“생각할 시간을 주세요.” 여전히 그는 아무 말도 없었다. 결정을 내릴 때까지 그 곳에 날 묶어 둘 작정일까? 그건 말도 안 된다. 그녀는 어머니와 상의해야 했다.
그녀는 손을 내밀었다.
“저도 당신을 많이 좋아하는 것 같아요.” 당신에게 익숙해지도록 시간을 주세요.“
“그럼 승낙하는 겁니까?” 그가 끼어들었다. “그런 것 같아요.”
남편인 윌터가 매력이 없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는 아주 과묵했다. 그의 조상과 출생, 그가 받은 교육과 그녀를 만나기 전 그의 삶에 대해서 그녀가 아는 내용은 모두 그녀가 직접 캐물어서 알아낸 사실들이었다. 그녀가 호기심을 못 이기고 질문 세례를 퍼붓기라도 하면 그의 대답은 하나같이 퉁명스러운 기색을 띠었다.
도대체 그는 왜 나를 사랑하게 된 걸까? 의문이 끊이질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렇게 답답하고 냉철하고 덤덤한 남자에게 자신은 절대 어울리지 않았다. 키티는 키 크고 아주 잘 생긴 남자가 자기들을 굽어보는 것을 보았다. “부인 옆자리에 앉는 영광을 제게 주십시오.” 그가 말했다.
타운센드는 키가 컸다. 최소한 185센티미터는 될 거라고 키티는 생각했다. 게다가 외모도 아름다웠다. 첫눈에 봐도 아주 건강했고 군살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찾아 볼 수 없었다.
키티는 그런 상황 속에서 편안함을 느꼈고 간간이 상대방을 치켜세우고 재미있는 내용을 섞어 가며 대화를 농담처럼 이끌어 가는 그의 말씨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곧 다시 만나 뵙기를 바랍니다.” 그의 말은 일상적이었지만 그의 눈은 결코 놓칠 수 없는 어떤 의미를 담고 있었다. “홍콩은 아주 작은 곳이죠. 안 그래요?” 그녀가 말했다.
찰스를 애인으로 얻고 난 이후, 그녀는 자신과 남편 윌터를 둘러싼 상황이 묘하게도 터무니없어 보였다. 그녀는 너무나 근엄하고 자제력이 강한 그를 웃음을 앞세우지 않고서는 도저히 쳐다볼 수 없었다. 하지만 너무나 행복한 나머지 남편에게 불만을 품을 여력조차 없었다.
어쨌든, 그가 없었다면 그녀는 찰스를 만나지 못했을 테니까. 그녀는 마지막 선을 넘기 전 얼마간 망설였다. 찰스의 열정에 항복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그녀의 열정 또한 뜨거웠지만 그녀가 받은 교육과 일생토록 익숙하게 받아들였던 관습이 그녀의 발목을 붙잡았기 때문이다.
그녀의 행복이, 가끔은 그녀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넘쳐흐르는 행복이 그녀의 아름다움을 다시 꽃피웠다. 그녀는 찰스가 그녀를 처음 보았을 때 일컬었던 것처럼 그야말로 눈부신 미인이었다.
마침내 마지막 선을 넘고 나서, 그녀는 자신이 예전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어떤 변화는 일어날 것으로 예상했지만 과연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느낄 만한 환상적인 변화는 도무지 찾아볼 수 없었다.
“우리 그냥 키스하고 친구 되는 게 어떠오?” “남편 윌터는 당신과 나 때문에 죽었어요.” 그가 그녀의 손을 잡았지만 그녀는 그것을 홱 뿌리쳤다. “제발 가세요.” “이런 식으로 당신과 끝내고 싶지 않아.” 그가 그녀에게 팔을 두르며 말했다. “내가 당신을 상처 주려는 게 아니란 걸 당신도 알잖소.” “날 만지지 마요. 제발 가세요. 가 버려.”그녀는 그에게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쳤지만 그는 놓아주지 않았다.
길고 고요했던 여행길 내내 키티는 자신에게 일어났던 그 끔찍한 일을 끊임없이 떠올렸다. 자신을 이해할 수 없었다. 너무나 뜻밖의 일이었다. 도대체 무엇에 홀렸기에 그토록 그를 경멸하는데도, 온 마음을 다해 경멸하는 데도 찰스의 천박한 포옹에 열정적으로 굴복했단 말인가?
그녀가 매춘부보다 나을게 뭐란 말인가, 아니 더 형편없지. 이제 모든 것이 끝장이다. 그녀는 자신이 변했다고 생각했고, 자신이 강하다고, 독립한 여성으로서 홍콩에 돌아왔다고 생각했다. 새로운 생각들이 햇살 속에 날아다니는 작은 노란 나비들처럼 그녀의 가슴속에서 파드닥거렸고 훨씬 더 나은 미래가 그녀를 찾아오리라 기대했다.
자유가 찬란한 기백으로 그녀를 유혹했고 세상은 그녀가 가벼운 발걸음으로 고개를 꼿꼿이 들고 걸어 나갈 수 있는 드넓은 평원 같았다. 그녀는 자신의 정욕과 상스러운 열정으로부터 자유롭다고, 깨끗하고 건강한 정신적 삶을 영유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녀는 황혼 무렵 논 평원 위를 유유히 나는 흰 해오라기가 되었고 그녀의 마음도 함께 공중으로 치솟았다가 휴식을 취하곤 했다. 하지만 그녀는 노예에 불과했다. 나약하고, 나약한! 한심하고, 가망 없는 창녀.
분노가 그녀를 휩쌌고 자신에 대한 혐오감에 그녀는 중독될 지경이었다. 그 굴욕감을 평생 잊지 못할 것만 같아서 펑펑 눈물을 쏟았다. 하지만 홍콩과의 거리가 점점 멀어질수록 그녀의 노여움도 서서히 생기를 잃어 갔다. 다른 세상에서 일어난 일만 같았다. 그녀는 돌발적인 광기에 휘말렷다가 회복된 사람이 제정신이 아닐 때 저질렀던 괴상한 짓을 희미하게 기억하면서 괴로워하고 부끄러워하는 상황에 처한 기분이었다.
과거는 끝났다. 죽은 자는 죽은 채로 묻어 두자. 너무 무정한 걸까? 어떤 미래가 그녀의 몫으로 준비 되었는지 모르지만 어떤 것이 닥쳐오든 밝고 낙천적인 기백으로 그것을 받아들일 힘이 자신의 내부에 자리 잡고 있음을 느꼈다.
그녀가 저지른 잘못과 어리석은 짓들과 그녀가 겪은 불행이 아무도 완전히 헛된 것은 아닐 것이다. 이제 희미하나마 가늠할 수 있는 그녀 앞에 놓인 그 길을 따라간다면, 수녀원의 친애하는 수녀들이 너무나 겸허히 따랐던 길, 평화로 이어지는 그 길을 간다면 말이다.
<‘인생의 베일’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서머싯 몸 지음, 황소연님 옮김, 민음사출판> * 서머싯 몸 : 1874년 프랑스에서 태어나 여덟살 때 어머니를 폐결핵으로, 열 살 때 아버지를 암으로 잃는다. 영국으로 돌아와 숙부의 도움으로 세인트토머스 의학교를 졸업한다. <램버스와 라이저>가 베스트셀러가 되자 의사직을 과감히 포기한다. 자전적 소설<인간의 굴레에서>, 예술 세계를 파고든<달과6펜스>,풍자적으로 그린<과자와 맥주>, 장편소설<면도날>, 철학적 에세이<작가 수첩>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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