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자료

산책

[중산] 2023. 3. 5. 08:38

산책

 

푸르른 여름밤

보리 잎 새 향기에 취해 풀잎 따 입에 물고

오솔길로 들어섭니다.

 

마음은 꿈을 꾸고 걸음은 가벼워

시원한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카락,

말없이 생각도 없이​

나의 끝없는 사랑은

영혼의 바다에서 파도를 칩니다.

 

쉴 곳 없는 나그네처럼,

멀리, 저 먼 곳으로 가렵니다.

 

사랑하는 이와 함께 즐거운 마음으로

자연과 더불어 나아가렵니다.

- 아르튀르 랭보

 

 

제천 의림지

 

오필리아 (Ophelia)

 

별들이 잠든 고요하고 검은 물결 위로

하얀 오필리아 한 송이 큰 백합처럼 떠내려간다,

아주 천천히 떠내려간다, 긴 베일 두르고 누운 채로....

먼 숲에서는 사냥몰이 뿔피리 소리 들린다.

슬픈 오필리아 하얀 망령되어, 검고 긴 강물 위로

떠다니는 세월 천 년이 넘었구나.

그 부드러운 광기가 저녁 산들바람에

연가를 속삭이는 세월 천 년이 넘었구나.

바람은 그녀의 젖가슴에 입 맞추며 물결 따라

너울거리는 그 넓은 베일들을 꽃부리로 펼쳐낸다.

떨리는 버들가지들이 그녀의 어깨 위에서 울고,

꿈꾸는 그 넓은 이마 위로 갈대들이 휘늘어진다.

구겨지는 수련들이 그녀를 둘러싸고 한숨짓는데,

잠든 오리나무 속에서, 그녀가 이따금 어느 둥지를 깨우니,

날개 파닥이는 작은 소리 한 번 새어 나오고.

신비로운 노래 하나 금빛 별에서 떨어진다.

II

​오 창백한 오필리아! 눈처럼 아름다워라!

그래, 너는 어린 나이에, 성난 강물에 빠져 죽었지!

그건 노르웨이의 큰 산맥에서 내려온 바람이

나직한 목소리로 너에게 가혹한 자유를 속삭였기 때문이니라

한 줄기 바람이, 너의 긴 머리칼 휘감고,

꿈꾸는 너의 정신에 이상한 소문을 몰고 왔기 때문이며,

나무의 탄식과 밤의 한숨 속에서

네 마음이 자연의 노래를 들었기 때문이니라

미친 바다의 목소리가, 거대한 헐떡임으로,

너무 인간적이고 너무 부드러운, 네 어린 가슴 찢었기 때문이며,

4월 어느 날 아침, 어느 창백한 멋진 기사,

어느 가엾은 광인이 네 무릎 위에 말없이 앉았기 때문이니라!

하늘이여! 사랑이여! 자유여! 그 무슨 꿈이던가, 오 가엾은 광녀

불 위의 눈송이처럼 너는 그에게 녹아들었구나.

너의 거대한 환영은 네 언어를 목 졸라 죽였도다.

그리고 무서운 무한이 네 푸른 눈동자를 놀라게 하였도다!

III

그리하여 시인은 말한다, 밤이면 별빛 따라,

너는 네가 꺾어두었던 꽃들을 찾아 나선다고,

물 위에, 긴 베일 두르고 누운 채로, 한 송이 큰 백합처럼,

떠내려가는 하얀 오필리아를 제가 보았노라고

- 아르튀르 랭보​

 

 

겨울의 가지산

 

시인이자 방랑자, 랭보의 꿈!

 

1891년 어느 날 밤, 마르세유의 병원에서, 아르튀르 랭보, 시인이자 방랑자는 꿈을 꾸었다. 아르덴 지역을 가로지르고 있는 꿈이었다.* 절단된 다리를 들고서 목발을 짚고 있었다. 절단된 다리는 신문지로 둘둘 말려 있었고, 거기에는 커다란 글씨로 그의 시가 인쇄되어 있었다.

 

자정쯤이었고, 보름달이 떠 있었다. 초목은 은색이었고, 랭보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는 창문에 불이 켜진 어느 농가에 도착했다. 큼지막한 아몬드나무 아래 풀밭에 드러누웠고, 계속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여자와 총에 대해 말하는 방랑과 혁명의 노래였다. 잠시 뒤에 문이 열리더니 한 여자가 나왔다. 머리를 풀어헤친 젊은 여자였다. “당신이 노래하듯 총을 원하신다면 드릴 수 있어요.” 여자가 말했다. “곡물 창고에 놔두거든요.“

 

랭보는 절단된 다리를 움켜잡고는 웃었다. “난 파리코뮌**으로 갑니다.” 그가 말했다. “난 총이 한 자루 필요해요.” 여자가 그를 창고로 데려갔다. 이층 건물이었다. 일층에는 양들이 있었고, 사닥다리로 올라가는 위층에는 곡물이 있었다. “난 저 위까지 올라갈 수 없소.” 랭보가 말했다. “여기, 양들 틈에서 당신을 기다리겠소.”

 

그는 건초 더미 위에 누워 바지를 벗었다. 여자는 내려와 사랑할 준비가 된 그를 보았다. “당신이 노래하듯 여자를 원하신다면 내가 드릴 수 있어요.” 여자가 말했다. 랭보는 그녀를 껴안고 물었다. “이름은 뭐예요” “아우랠리아라고 해요” 여자가 말했다. “꿈의 여자이거든요.” 그리고 옷을 풀었다.

 

그들은 양들 틈에서 사랑을 했다. 랭보는 절단된 다리를 꼭 잡고 있었다. 사랑을 하고 났을 때, 여자가 말했다. “가지 마요.” “그럴 수 없소.” 랭보가 대답했다. “떠나야 하오. 나와 함께 밖으로 나가 봅시다. 떠오르는 새벽을 보러.” 

 

그들은 벌써 환해진 빈터로 나갔다. “당신은 이 외침이 들리지 않소.“ 랭보가 말했다. ”하지만 내겐 들리오. 파리에서 오는 그 소리가 날 부르고 있소. 그건 자유입니다. 멀리서 오는 호소입니다. “

 

여자는 아몬드 나무 아래에서 아직 벗은 채로 있었다. “내 다리를 남겨두겠소.”랭보가 말했다. “소중히 간직하시오.” 그리고 그는 간선도로를 향해 방향을 잡았다. 얼마나 근사한가, 이젠 더 이상 절뚝거리지 않았다. 나막신 아래서 길이 울렸다. 새벽은 지평선에서 불그스름했다. 그는 노래를 불렀고, 행복했다.

 

* 에디오피아에서 커피와 무기를 도매업을 하며 방랑생활의 끝을 보여준 말년의 랭보는, 다리 통증으로 들것에 실려 고국 마르세유로 이송되어 1891년 오른쪽 다리를 절단했으나, 전신에 퍼진 암으로 결국 같은 해 11월에 죽는다. 아르덴은 랭보가 태어난 곳이다.

 

** 파리코뮌은 1871년이며, 이해에 랭보는 시인 베를렌을 만난다.

 

아르튀르 랭보

1845~1891, 맹신과 보수가 짓누르는 억압적인 가정에서 태어나 열여섯에 코뮌에 참여하기 위해 파리로 도망쳤고, 방랑과 모험으로 이루어진 파격과 격동의 삶을 시작했다. 공상적이고 신비한 서정성의 시들을 남기면서 유성처럼 프랑스 문학을 가로질렀다.

 

시인 폴 베를렌을 사랑했지만, 다툼 끝에 총에 맞아 상처를 입었다. 비난이 일었고 그는 병원 신세를 졌다. 그는 서커스단과 함께 유럽을 여행했다. 문학을 포기하고 난 뒤 밀수업자처럼 에디오피아에 체류했다. 무릎에 종양이 생겨 프랑스로 돌아왔고, 다리 한 쪽을 절단하는 수술을 받았으며, 마르세유 병원에서 사망했다.

<안토니오 타부키 선집1, ‘끔의 꿈’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박상진님 옮김, 문학동네출판>

 

* 안토니오 타부키 : 삶을 꿈으로 푼 타부키의 기막힌 몽환수첩! “내가 사랑한 예술가들의 꿈을 알고 싶다는 욕망이 자주 날 엄습했다. 잃어버린 것을 채워달라고 문학에 요청할 때, 어떻게든 해보려는 문학의 시도는 위대하다. 나의 등장인물들, 그 영혼들은 지금 다른 세상에서 꿈을 꾸고 있다. 그들은 그들이 어떻게 읽힐까 하는 것에 대해 상상이 빈곤한 후세에게 너그럽기만 하다.” 

 

1943년 9월에 이탈리아 피사에서 태어나 유럽의 지성인이자 노벨상 후보로 거론되던 걸출한 작가이다. 몽환적 여정을 쫓는 픽션 <인도 야상곡>으로 메디치 상을 수상했다. 작품으로는 <플라톤의 위염>,<집시와 르네상스>, <이탈리아의 광장>등이 있다.

 

 

부산 기장 일광해수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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