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안 윗대의 모계 쪽 분들은 청력이 다 안 좋았다. 무슨 사연인지는 잘은 모르겠으나 외삼촌은 농아자였었고 이모님 두 분도 일찍 귀가 어두웠다는 기억이 난다. 어머님은 50대 중반 이후로 청력이 급격히 나빠졌었다. 그래서인지 누님 두 분 등 우리 직계 쪽도 청력이 안 좋아 노년에는 거의 다 보청기에 의존해야 했다.
나 같은 경우에는 일흔이 다 돼서야 보청기를 한 상황인지라 꼭 그렇게 인과관계를 연결 짓고 싶지는 않다. 다만 혹여라도 아들네들이 남들보다 귀가 일찍 나빠질까봐 은연중 걱정은 된다.
내 어릴 때 청력이 좋은 어머님은 여느 어머님처럼 매우 자상하셨고 농담도 주고받을 정도로 명량한 분이셨다. 청력이 급격히 나빠진 이후로 아버지와의 대화중에 다툼이 잦아졌고 우리들과의 대화 역시 소원해졌었다.
같은 말을 몇 번 반복해도 못 알아들으니 상대는 평소 부드러운 목소리가 아닌 다소 귀찮은 듯 더 큰 목소리를 내게 마련이다. 이를 목도한 순간 어머님은 좋게 말하지 않고 큰소리로 화를 내며 말한다며 불만을 표출하셨다.
날이 갈수록 나를 비롯한 가족들은 어머님과의 말 섞임이 줄어들었다. 알게 모르게 평소 가족들과의 소통에서 소외감을 느낀 어머님은, 자격지심에서 당신의 서러운 감정까지 북받쳐 올라 종종 언쟁의 도화선으로 이어지곤 했다.
귀 어두운 어머님 한 명으로 인해 가족 모두가 불편한 상황이 된 것이다! 지나고 보니 지금 내가 딱 어머님의 상황을 판박이로 옮겨 놓은 듯하다. 그 당시 어머님의 불편함을 이해하지 못하고 불평을 해 댔던 것이 그저 미안하고 부끄러울 뿐이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다보니 노년의 청력에 대한 정보들이 상세히 나와 있었다. 귀가 멀어지면 남들의 얘기를 듣기 위해 뇌 에너지의 대부분을 청각 쪽에 소모해버리므로 다른 인지 기능들이 상대적으로 점점 쇠퇴해져간다는 것이다. 이른바 ‘인지부하이론’이다. 임상적으로도 70대에 청력이 떨어지면 인지장애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보청기를 하기 전에 청력이 불편한 사람들에게 물어 보았다. 사놓고 착용하지 않거나 필요시 착용한다거나 심지어 아예 착용할 생각을 접고 불편을 감수한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불편의 경험과 책을 통해 인지하고부터는 부득이 보청기를 안 할 이유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른바 손실보다 편익이 많다는 이론이다.
남들과 대화하는 중에 알아들은 양 고개만 끄덕이며 거짓 리액션을 취한 경우가 가끔 있었다. 오해를 살 수 있는 무례한 행위들이다. 특히 손주들과 대화의 끈마저 이어가지 못하게 되면 삶의 의미는커녕 뒷방 신세가 된 늙은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잉여인간으로 전락될 거라는 아찔한 생각마저 들었다.
그래서 어느 날 큰마음 먹고 보청기를 장만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보청기 대리점을 찾았다. 청력 검사를 해보니 낮은 음역 대와 높은 주파수의 음역 대까지 골고루 청력이 낮았다. 그나마 불균형이 심하지 않고 거의 일정하게 낮아져 보청기로 보완하기에는 좋다고 하였다.
실제 착용을 해보니 말할 때 내 목소리가 제일 크게 들렸다. 내 목소리와 보청기가 가장 가까우니까 그렇다. 자연스레 내 목소리도 덩달아 작아지게 되어 정상의 톤으로 자리를 잡아갔다. 그리고 도로변 자동차 소음 , 바람소리 등 이 또한 크게 들린다. TV소리는 전 음역 대의 육성은 골고루 들리지 않고 고음역대 주파수의 소리만 마치 카랑카랑한 쇠 소리처럼 들린다.
이는 피아노의 멜로디 음만 들리고 화음인 베이스음역대가 빠진 것과 같다. 그래서 사람의 생생한 고유목소리가 아닌 기계음 같은 느낌이다. 처음에는 다소 의아스럽게 느껴졌지만 기기의 특성 등을 이해하고부터는 이렇게만 해도 어디인가 싶었다. 앞으로 착용을 계속하면서 적응을 해야겠다.
보청기를 처음 하는 날은, 나의 손상된 청력을 인지했을 때의 서글픔과 문명의 이기에 도움을 받아 소통을 원활히 할 수 있다는 일말의 희망이 살짝 교차되는 하루였다. 앞으로 갈수록 보청기의 문제는 빙산의 일각일 테고 이제부터 불편의 서곡인 듯하다.
빨판 상어처럼 내 몸에 찰싹 붙어 다니는 무좀, 무릎 허리관절통, 무지외반증, 고지혈증과 건성피부 등은 먼저 친해진 벗들로서 나와 함께 생사고락을 같이 해야 할 듯하다. 갈수록 나의 명줄과 궤를 같이 할 미지의 무리들도 계속 나타나겠지만 어쩔 수 없이 그들도 통 크게 대열에 동참시켜야 할 것이다.
마침 큰아들 네와 식사를 함께 하는 날이었기에 꿀꿀한 기분을 이내 떨쳐낼 수 있었다. 처음 보청기를 끼고 손주들과 소통을 해보니 전에 보다 대화가 훨씬 원활했다. 알아들은 양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던 때와는 달리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주고받았다. 이 날은 다소 의기소침해질 수 있는 날이었건만 손주들과 왁자지껄한 소통의 장이 되어 되레 행복한 시간으로 반전되었다.
이러고 보니 평소 장애를 안고 사는 사람들의 심정을 어렴풋이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나이 들수록 무릎보호대, 스틱, 돋보기 등 나를 보조 해 줄 물품과 의약품들이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듯하다.
지금까지 나와 가족을 위해 70년을 가혹하게 써온 몸이었기에, “나만 왜 이래”하며 한탄과 원망을 쏟아 내는 것 보다 오히려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할 거 같다. 그래서 그런 불편한 상황을 맞을 때마다 불안한 마음을 다잡는 자기체면과 위로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꼭 신들의 힘을 빌리지 않더라도 그 순간만은 내 마음이 안정되어 편안해 질 테니까 말이다.
<‘나만의 전원생활’에서 발췌, 중산 김한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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