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삶에 대해서 이런 저런 얘기들이 많다. 예를 들자면, 80년 동안 산 스위스의 한 노인이 자신의 삶을 분석해보니, 잠자는 데 26년, 일하는 데 21년, 먹는데 6년 등 행복했던 시간은 46시간 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 나름 하루를 꼼꼼하게 분석하며 계산한 모양이다.
평생 동안 전쟁으로 바빴던 프랑스 나폴레옹은 1주일도 안된다고 했다. 독일 정치가 비스마르크는 24시간이라고 했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는 47시간(어떤 문헌에는 17시간, 4일 등)이라고 한다.이 분들 행복의 총합시간을 요모조모 따져 봐도 공통점은 그 다지 얼마 안된다는 것이다.
"하루 3초간의 행복감을 설마 못 느끼겠어?" 이렇게 반문을 할수도 있다. 엊그제 연초같았는데 벌써 8월이다! 이렇듯 우리는 시간의 흐름을 잊고 사는 경우가 많다. 일이 바빠서든, 행복 요소에 무관심해서든 말이다. 나는 직장생활을 할 때는 나도 모르게 얼굴이 평소 굳어 있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그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이제 나이들어서는 의식적으로 일부러 웃는 표정을 지으려고 노력한다. 일반적으로 어른들은 실생활에서 웃음이 거의 없는 편이다. 현재와 미래를 고민하지 않고 눈앞 순간만 생각하는 어린애들처럼 해맑게 웃으면서 살면 얼마나 좋겠는가!
우선 더 행복해지려면 행복의 참뜻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행복의 사전적 의미는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함 또는 그러한 상태‘라고 기술되어 있다. 대충 생각하면 남녀간의 사랑에서만 느끼는 쾌감의 합이라고 오해 할수도 있다. 그런데 그뜻을 헤아려 보면 일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소소한 행복의 요소들이 다 내포돼 있다.
우리가 일상에서 만족감을 느끼는 행복의 순간들의 예를 들어보자. 힘든 산행 끝에 정상을 밟는 행복감, 가족들과 함께하는 시간, 긴 낚시 끝에 큰 고기를 잡는 순간, 신자 또는 성직자의 영적인 교감, 시원한 카페에서 달달한 빵과 커피 한잔의 시간, 지인들과 시원한 생맥주를 마시면서 나누는 찰나의 만족감, 혀끝에 닿는 행복감을 느끼기 위해 줄을 서서라도 기다리는 맛집 탐방 등 수 없이 많다. 이들의 소소한 행복감은 매일 반복되는 생활속에서 이루어진다.
예일대학교 심리학교수인 폴 블룸이 순간의 행복감을 분석한 자료가 있다. "현재 심리적으로 행복한 순간이 약 3초 동안 지속된다면, 자기가 산 70년에 걸친 삶의 가치는 50억 번에 이르는 순간의 합이라고 한다". 따라서 이 50억번의 순간 총합이 행복을 느낀 총시간이다.
50억 번과 괴테가 말한 47시간을 역산 해보니 어느 정도 일치하는 것 같다. 약 50억은 70년 산 사람을 기준으로, 잠자는 시간을 뺀 깨어 있는 시간으로 계산 해봤다. 즉 365일/년*70년*3600초/시간*3초*18시간/일 그리고 47시간은 50억/(365일/년*82년*3600초/시간)이다. 참고로 82세까지 산 괴테 나이를 적용한 것이다. 상세한 산출 값이 나와 있지 않아서 내가 추정한 역산 방식이다. 물론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다.
“얼마나 행복하십니까?” 말은 바로 지금의 경험을 말하거나, 삶의 커다란 부분에 대한 평가를 가리킨다고 한다. 사람들이 행복하려고 애쓴다는 말은, 프로이트가 말한 쾌락을 극대화하고 고통을 최소화하기를 원한다는 뜻일 수 있다. 이렇듯 ‘경험적 행복’은 심리적 현재, 즉 바로 지금 기분이 어떠한가에 대한 경험이다. 이런 순간의 질을 각각 더하여 삶의 가치를 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온 값이 50억번과 47시간이라는 값이다.
하루 일과 중 조금 더 여유로움을 가진다면 누구나 3초 정도의 기본시간은 달성할 것이다. 거기에다 인위적으로 스마일 표정까지 짓는 노력을 더 한다면 행복의 총합 시간은 더 많이 늘어 날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농원에 차를 몰고 갈 때는 목청껏 소리를 내어 깔깔 웃어 댄다. 아무도 없는 차안이기에 미친 사람처럼 웃는다. 약 10초는 족히 될 듯하다. 뇌는 거짓 웃음에도 속아 넘어간다고 하니, 그 순간에는 엔돌핀이 치솟아 행복지수도 덩달아 올라갈 것이다.
미국 심리상담 전문가 애슈너는 “행복은 고통 뒤에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젊어서는 사서도 고생을 한다"는 우리네 말들처럼, 서양에서도 이런 고통에 대한 정신적 승리를 주창한 경우가 한 때는 미신처럼 유행되었다고 한다. 이렇듯 바쁜 일상 속에서 활짝 웃어 본 날이 얼마나 되는지 기억이 아물거릴 때도 있다. 처음부터 잘못 방향을 든 경우는 행복을 담보할 수 없다. 고통은 고통일 뿐이다. 과정의 순간마다 즐거움을 인위적이라도 찾는 노력을 계속하여야 할 것이다.
늘그막에는 손주들과 만남의 시간들이 제일 행복하다. 만남을 지속하기 위해 친구들과 약속을 잡듯이 손주의 동향에 촉각을 곤두 세우고 있다. 바쁘게 생활하며 커가는 손주들만 바라 보고 있을 수 없다. 조용한 산골에서 독서와 사색의 시간을 틈틈이 가진다. 요즘 같이 더운 여름 날에는 오전 일찍 일을 끝내고 이후로는 자유로운 내 시간을 갖는다. 이른바 고추론적 정신적 행복감을 음미하기 위해서다.
도시생활 속에 소송 건으로 시달리기도 한 장자크 루소는 외딴섬에서 2개월 동안 살았다고 한다. 그가 그곳에 산 기간이 20년과 맞먹을 정도로 정신적 행복감을 맛보았다고 한다. “다른 누구의 방해 없이 자신과 대화를 나누는 일은 자연과 더불어 살면서 한가롭고 유유자적한 삶을 사는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행복이다.“라고 말한 루소의 행복감을 이제는 어렴풋이 알듯하다.
번잡한 도회지이든 산골이든 환경에 구애받지 않고 순간의 행복감은 누구나 창출할 수 있다. 젊었을 때는 적극적쾌락 속에서의 행복감이었다면 나이 들어서는 소극적 쾌락속에서 소소한 행복감을 찾아야 할 것이다. 주변에는 행복의 요소들이 늘려 있다. 그리고 따뜻한 말로 상대에게 행복을 선사할 수도 있다.
젊어서는 혀끝이든 감촉이든 몸으로 느끼는 행복의 순간들이 많지만 나이 들수록 정신적으로 느끼는 행복이 비중을 더 차지 할 것이다. 내 주변에 널브러진 행복의 요소들을 가을철 알밤 줍듯이 가는 길 잠시 멈추고 몇 초간 순간을 즐기기만 하면 된다.
워라벨을 적절히 유지하면서 거기에다 욕망까지 내려 놓는다면 대다수 사람들이 느끼는 평균적 행복시간보다 훨씬 더 많이 누리게 될것이다. 오늘도 혼자 길을 나서든 차를 타고 가든 즐거운 생각들을 떠올리면서 목청껏 소리를 내어 깔깔 웃어보자!<'나만의 전원생활에서' 발췌, 중산 김한덕>
삼척 통리 미인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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