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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재판!

[중산] 2023. 11. 14. 06:21

 

담양 메타스콰이어 길에서~!!

 

 

잘못된 재판!

 

도스토예스키의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제 12편<잘못된 재판>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한 여인을 두고 치정극을 벌이다가 결국 아들이 아버지를 살해한 현대판 오이디푸스 사건이 사람들은 아마도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법정에서는 서사의 매력은 이러한 소재의 측면에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이글에서 다루고자 하는 것은 ‘법적인 변론’이 ‘문학적인 스토리텔링‘과 공유하는 서사성에 관한 것이다.

 

법정을 구성하는 요소들은 대략 다음과 같다. 재판관, 검사, 변호사, 피고, 배심원, 증인, 증거물, 자문단, 방청인 등이다. 서사성을 정의하는 중요한 요소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인물들 간의 갈등(아곤, 그리스어)이다.

 

갈등이나 다툼이 없다면 독자는 이야기에 중요한 무엇인가가 빠져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법정은 철저하게 아곤적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서사적이다.

 

법정에서는 검사가 피고에게 물증을 내밀면 피고는 자신의 억울함을 입증하기 위해 이를 부인한다. 이처럼 말과 사물은 끊임없이 갈등을 빚는다. 검사 측 증인과 증거는 검사에게는 조력자이지만 변호사에게는 적대자이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예를 하나 들어보면, <잘못된 재판>에서 극적인 부분은 아버지 살해자로 의심 받는 아들과 약혼녀인 이바노브나의 증인이 뒤바뀐다는 지점이다. 그녀는 자신을 배반한 드미트리 카라마조프를 여성으로서의 치부를 드러내면서까지 옹호하는 희생을 연출한다.

 

검사 측 증인으로 소환된 그녀의 번호사측에 유리한 증언을 한 것이다. 그리고 아들이 작성한 살인계획이 담긴 편지를 증거로 제출하는 히스테릭한 반응을 보인다. “저기 앉아 있는 저 사람이 제게 보낸 편지입니다.…살인자는 바로 저 사람입니다.”

 

조력자가 적대자로 돌변한 바로 이 순간이 <잘못된 재판>에서 가장 극적인 클라이맥스를 형성하는 지점이다. 두 번째 특징으로 증거력과 관련되는 것이다. 법정은 말과 사물이 경합을 벌이는 다툼의 장인 것이다.

 

피살된 아버지 표도르 파블로비치의 피가 낭자한 비단 가운과, 범행 때 사용된 것으로 추측되는 청동제 절굿공이, 피에 젖은 손수건 등이 있었다. 범행 하루 전날 전달받은 살인 계획서가 담긴 편지의 출현이 검사 측에 유리한 증거로 작용한다.

 

한편 변호사는 그녀의 히스테릭한 반응에 그녀를 믿을 수 없는 서술자로 만들면서 그녀가 제출한 증거력을 약화시킨다. 그리고 행방이 묘연했던 3만 불이 살인자 스메르자코프한테 받았다고 증언하면서 변호사 측에 유리한 증거로 법정에 제출한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말로 신뢰를 주는 방법으로는 세 가지가 있다. 1. 화자의 성품과 관련되어 있고, 2. 청중의 심리 상태와, 3. 뭔가를 증명하거나 증명하는 것처럼 보이는 말 자체에 관한 것이다.

 

<잘못된 재판>에서 키릴로비치 검사가 내세운 모든 증인에 대해 명성이 높은 변호사인 페추코비치가 구사한 전략은 바로 이 세 가지 방법을 역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어떤 증인에 대해서는 예를 들어 보면, 그의 평판을 문제로 삼고 , 다른 증인에 대해서는 그가 한 말을 스스로 부인하도록 유도함으로써 이들의 말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방식이 그것이다. <잘못된 재판>의 서술자는 변호사의 이러한 전략이 탁월했음을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나중에 모두들 얘기하며 쾌재를 부른 일이지만, 그는 검사 측 증인들을 제때에 ‘골탕을 먹여‘ 그들의 콧대를 꺾어놓았고 특히 그들의 소행에 관한 평판에 먹칠을 가함으로써 그들의 증언을 무가치한 것으로 만들어버렸던 것이다.

 

변호사뿐만 아니라 검사도 변호사 측에 유리한 증언을 한 알렉세이 카라마조프와 이반 카라마조프의 증언을 같은 피를 나눈 동생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피고의 얼굴 표정에서 끌어낸 결론이라든가, 피고가 어둠 속에서 자기 가슴을 쳤던 것은 필시 그 돈주머니를 가리켰을 것이라는 따위의 막연한 증언은 아무런 효력이 없습니다.“라고 일갈한다.

 

철학적 관점에서 진리는 말과 사물의 일치로 정의된다. 법정은 이러한 일치가 끊임없이 의문시되는, “의심하는 것이 정당하게 인정되는”공간이다. 법정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판단, 말과 사물의 일치라는 진리 판단이 법적이라는 말은 이 판단에 권력이 개입함을 의미한다. 

 

말의 증거력 그래프에서 가변성의 축은 시간의 조건에 의해 제약을 받는다. 다시 말해 처음 한 말이 시간이 흘러도 일관성을 유지해야 하는 것이다. 이와 다르게 사물의 증거력 그래프에서 사물의 수와 다양성은 이러한 제약을 받지 않는다.

 

말의 증거력 그래프
사물의 증거력 그래프

 

처음에 한 말이 나중에 변하지 않을 때 증거력이 보존된다는, 심지어 강화된다는 것이다. 앞에서 한 말을 뒤집는다면 그 말에 대한 신뢰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사물의 증거력이 결정적인 것은 아니다. 사실 자백보다 더 강한 증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재판에서 아무리 증거가 많이 쌓여도 피고가 이를 강력하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부인할 경우 다툼의 여지는 언제나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who'를 지탱하는 것이 바로 말의 힘이다.

 

법정에서 궁극적으로 밝혀내야 하는 것이 책임이라고 할 때 이 책임은 하나의 인격에게 전적으로 귀속 되는 것이다. 여기서 문제는 누구who라는 단독성이지 무엇what이라는 특수성이 아니다.

 

피고는 자신의 죄는 인정하는가? 라는 재판관의 질문에 아들 드미트리 카라마조프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나는 지나친 음주와 방탕한 생활에 대해서는 죄를 인정합니다. 그러나 나의 원수인 그 늙은이(아버지)의 죽음에 대해서는 절대로 무죄입니다!” 그는 자신의 입장을 굽히지 않는다.

 

사물의 증거력 그래프에서 검사 그래프와 변호사 그래프는 서로 대립적인 관계를 형성한다. 말의 가변성이 시간적 다양성과 관련된다면 사물의 수와 다양성은 공간적 다양성과 관련된다. 증거력을 세로축으로 다양성을 가로축으로 하는 기장 도식으로 앞의 두 그래프를 하나로 통합하면 다음과 같다. 

 

법정 서사의 증거력 그래프

 

 

말과 사물이 일치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런데 이러한 불가능성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권력의 개입이다. 재판관의 진리 판단은 말 그래프와 사물의 그래프가 서로 교차하도록 강제한다.

 

이 과정에서 말이 지닌 능력과 사물이 지닌 능력은 불가피하게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위의 그래프에서 두 그래프의 교차 지점에서 위를 향해 양 갈래로 갈라진 부분이 이러한 손실의 양을 표시한다. 이를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법정 서사뿐만 아니라 법 서사를 고려해야 한다. 검사와 변호사 페추코비치가 충돌한 지점은 러시아성에 관한 것이다. 검사 키릴로비치는 과거의 가치를 옹호하고 변호사인 페추코비치는 진보를 지지한다.

 

이러한 갈등은 아버지가 누구인가라는 문제에 집약되어 있다. 변호사 페추코비치는 배심원들을 향해 결단코 친부 살해를 정당화하는 판결을 내리지 말 것을 당부한다.

 

<‘이야기의 끈 - 법정 서사의 증거력’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최용호 교수 지음, 이학사 출판> * 최용호 교수 : 한국 외대에서 불어를 전공하고, 프랑스 파리10대학에서 언어학 박사학위 취득, 현재 한국외대 프랑스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소쉬르는 이렇게 말했다>, <노랑 신호등>,<서사로 읽는 서사학>,<의미와 설화성>,<텍스트 의미론 강의> 등이 있다.

 

 

산수유
고창읍성 입구
고창 읍성
담양  메타스콰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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