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산담론

부모님 생각!

[중산] 2024. 1. 12. 20:33

 

쌀알 겨우 보일 정도로

희멀건 *갱죽을 내 놓았더니,

어신(억센) 큰 고모는 화를 내고

작은 고모는 울었다고 한다

또 이거냐며 못 먹겠다고!

 

시부모, 두 시누이 층층시하에서

매캐한 부엌 연기 마셔가며

마술을 부려 힘들게 지어낸 밥상을

그렇게 외면하며 나무라는 데

엄마는 얼마나 속상하고 난감했을까!

 

숨 막히는 일제36년과 6.25까지

만주와 일본까지 넘나들며

가난을 피해보고자 했건만,

전쟁과 가난이 평생을 따라 다녔고

역사상 가장 혹독한 시대에 사셨다!

 

 

 

마음과 몸이 족쇄에 묶여 있으면서도 희생과 눈물로 찰흙을 문질러 형상을 만들어 가며 우리를 빚어 낸 가엾고 고마우신 부모님이시다!

 

여느 가정처럼 아버지는 엄격하셨지만 엄마는 꾸중한 번 제대로 한 적이 없었다. 오리 길 들녘(안비실)에 아버지께 드릴 중참을 머리에 이고 가는 엄마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아주 어렸던 나는, 숨 가쁜 오르막길에서 치마꼬리를 붙잡고 떼를 쓰며 엄마를 힘들게 하였다. 삼베 적삼 사이로 땀을 펄펄 흘리시던 엄마는 짜증 한 번 내시지 않고 멈춰 서서 달래주셨다.

 

나이가 들어서도 부모는 영원한 부모다. 나는 작은 누나보다 일곱 살 아래다. 해가 바뀌어 작은 누나는 77세, 큰 누나는 89세가 된다.

 

나는 누나들과 터울이 큰 막내둥이다. 과거를 나보다도 더 길고 깊이 있게 기억하는 누나에게 그 시절의 얘기를 들었다. 지난 어린 시절의 일들은 아련하게 떠오르지만 부모님의 힘들었던 모습만큼은 또렷하다.

 

소한이 막 지난 영하의 날씨지만 산골에서 혼자 밥 먹다가 와락 그 생각이 떠올라 가슴이 먹먹했다. 여운이 사라질까봐 아쉬움의 글로 몇 자 남겨 본다. 이 산골마저 춥고 불편하다며 푸념하고 있던 나는 순간 죽비로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다.

 

부모님 덕에 이렇게 생애 한 주기를 아름답게 마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따뜻한 산골 구들 방바닥에서 쌀밥을 배불리 먹고 있다. 오늘날 나를 있게 해주신 부모님 생각이 더욱 간절하다. 고맙고 감사한 우리 부모님…!!

 

* 갱죽 : 갱시기국, 김치밥국, 국시기   <‘나만의 전원생활에서’>

 

 

 

 

오늘날 나를 있게 해준 부모님!
울주군 서생면 나사리 해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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