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서 돌아와 피곤에 지쳐
저녁밥도 못 먹고 쓰러져 잠만 잤네
놀라 깨어 일어나 보니 밤9시
식구들 아직 아무도 돌아오지 않아
집 안은 늪처럼 괴괴한데
모래 씹듯 홀로 저녁밥을 먹고
며칠째 하지 못한 집 안 청소를 하는데
마룻바닥에 웬 개미 한 마리
집채만한 빵조각을 져 나르네
바빠지고 고꾸라지고 나둥그러지면서 ……
개미야, 개미야
네 외로움 내가 안다
네 서러움 내가 안다
- 양정자, <늦은 저녁에>
때려치우고 싶어도 살기 위해 일합니다. “직장에서 돌아와 피곤에 지쳐/ 저녁밥도 못 먹고 쓰러져 잠”들기 일쑤입니다. 그러다가 “놀라 깨어 일어나 보니 밤9시/ 식구들 아직 아무도 돌아오지‘ 않은 상태일 때도 있습니다.
갑자기 산다는 게 뭘까 하는 생각이 스칠 때도 있습니다. 만사가 귀찮아서 내쳐 잠을 자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자버린다고 하여 누가 대신 일을 해주는 것도 아닙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존재가 모두가 그처럼 살아갈 것입니다.
살기 위해! 그래서 아무리 멋있게 보이려고 해도 우리의 생의 조건은 고상하지도 우아하지도 않습니다. 아니 지금 위의 시처럼 쓸쓸함 그 자체입니다. 그래서 ‘개미야/ 네 외로움을 내가 안다/ 네 서러움 내가 안다“고 말합니다.
어느 시대에서든 최고의 현자들은 삶에 대해 똑 같은 판단을 내렸다. 삶은 별 가치가 없다고. 언제나 그리고 어디서든 사람들은 그들의 입에서 똑 같은 소리를 듣는다. 회의와 우울 가득한, 삶에 완전히 지쳐버리고 삶에 대한 저항이 가득한 소리를.
심지어는 소크라테스마저도 죽으면서 말했다. ‘산다는 것 - 이것은 오랫동안 병들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네.’ 소크라테스조차도 삶에 넌더리를 내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입증하는가? 무엇을 보여주는가?
이전에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을 수도 있었으리라. ‘그런 말에는 무언가 옳은 점이 있을 수밖에 없다! 현인들의 의견일치가 그 말이 옳다는 것을 증명한다.’하지만 오늘날도 여전히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니체, <소크라테스의 문제 1, 우상의 황혼>
자, 그러면 우리의 삶을 들여다볼까요.
신광명 교회 옆 공터에 핀
장다리꽃은 노랗다
나는 늘 집 앞에서 머뭇거린다
찌개를 끓이는 동갑내기 아내와
항상 크는 아이는 나를 기다리지만
엊그제 홧김에 갠 술병 조각에
피 흘리는 건 바로 나다
좀더 가벼워지고 싶어
조금씩 헐거워지고 싶어
집앞에서 늘 딴세상을 생각하는데
노란 장다리꽃은 공터에서
바람이 되었다가 햇빛이 되었다가 한다
그럴수록 더 노랗다
봄 한철 내내 그럴 것이다
-황규관,<장다리꽃>
시인도 우리 모두처럼 아이디얼하게 살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홧김에 술병을 깨야하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술병을 깬단 들 이루어질 것은 없겠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놓입니다. 먹고 살기 위한 전쟁입니다.
그 전쟁의 성실성을 견인하는 것이 바로 “찌개를 끓이는 동갑내기 아내와 / 항상 크는 아이들‘이고 집입니다. 그것만 없다면 훨훨 날 수도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지키며 ’나는 늘 집 앞에서 머뭇거린다.”로 있을 것이며, 다시 술병을 깨는 일과 유사한 일들이 벌어질 것입니다.
술병을 깨는 일이 못난 짓이고 결국 “피흘리는 건 바로 나”일지라도, 그렇게라도 자기를 확인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헛되고 무모한 삶일지도 모릅니다.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현실원칙과 부딪혀 “좀 더 가벼워지고 싶어/ 조금씩 헐거워지고 싶어”합니다. 거기에서 무수히 많은 일이 일어나고 많은 경우 자해(自害)가 되어버립니다. ‘소위 뻘짓‘이 됩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공터에 핀 노란 장다리꽃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좀 더 가벼워지고 싶어/ 조금씩 헐거워지고 싶어” 목을 빼고 바람에 홀려 여기저기 봅니다. 그 모습이 “바람이 되었다가 햇빛이 되었다가” 흔들리는 모습입니다.
그렇게 흔들릴수록 장다리꽃은 더 노랗게 되고, 더 노랗게 보이고, 꽃 피우는 한철 내내 그럴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흔들리면서 더욱 노랗게 되는 장다리꽃. 더한 무엇이 되려고 술병이나 깨면서도 더욱 생생하게 흔들리는 우리들의 삶. 그렇게 기를 쓰고 삽니다.
<‘시로 읽는 니체’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오철수시인 지음, 갈무리출판>
*오철수 : 1958년 인천 생. 시를 쓰며 문학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민의>,<아버지의 손>, ,아주 오래된 사랑>,<아름다운 변명>, <조치원역> 등의 시집이 있으며, <시쓰기 워크숍1,2,3권>,시로 가는 표현>, ,풍경을 시로 쓰기>, <현실주의 시창작의 길잡이> 등의 이론서가 있다. 제3회 전태일 문학상 수상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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