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하라사막을 횡단하다가 타이어가 펑크가 난 적이 있다. 여분의 타이어가 있었지만 운전수가 수리를 하지 않은 상태였다. 몹시 흥분한 나는 열을 내고 난리를 부리며 아랍인들에게 이제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다.
그들은 “흥분해봐야 얻을 게 없고 오히려 더 더워질 뿐입니다.”라고 충고했다. 그러고는 타이어가 그렇게 된 것도 알라의 뜻이니 어쩔 수 없다고 덧붙였다. 우리는 하릴없이 차를 천천히 몰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얼마 가지도 않아 차가 푸드덕 소리를 내며 멈춰버렸다. 기름이 떨어진 것이다. 족장은 이번에도 그저 ‘메크톱(이미 정해진 일이다의 뜻)’이라고 할 뿐이었다.
운전사에게 기름을 충분히 넣지 않았다고 소리치는 대신 모든 사람이 침착한 태도로 목적지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심지어 걸으면서 노래도 불렀다.
아랍인들과 함께 보낸 7년 동안 나는 미국과 유럽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신경증 환자, 광인, 주정뱅이는 우리가 문명이라고 부르는 것, 즉 정신없이 서두르고 학대하는 삶의 결과물이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사하라사막에서 살 때는 걱정이라고 할 만한 것이 전혀 없었다. 나는 사람들이 알라의 정원이라고 부르는 그곳에서 모두가 치열하게 추구하는 평온과 만족과 육체의 건강을 찾을 수 있었다. 많은 사람이 숙명론을 비웃는다.
그들이 옳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자신의 운명이 어떻게 결정되어 있는지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1918년 세상을 등지기로 작정한 나는 ‘알라의 정원’이라 불리는 아프리카 북서부 사하라사막으로 갔다.
그곳에서 7년을 머물며 유목민의 언어를 배우고, 그들의 옷을 입고, 그들의 음식을 먹고, 그들의 방식대로 살았다. 내가 1919년 8월의 어느 뜨거운 오후에 3분 동안 아라비아의 로렌스와 대화를 나누지 않았더라면 내 삶은 완전히 다르게 흘러갔을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 후 가장 화려하면서도 낭만적인 인물로 알려진 그는 이미 사막에서 아랍인들과 같이 살고 있었고 내게도 자신처럼 살아보는 게 어떻겠냐고 권유했던 사람이다.
인생을 돌이켜보면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사건들이 내 삶을 만들고 바꾼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랍인들이었다면 “메크톱”, “키스멧”이라고 했을 것이다. 키스멧은 ‘알라의 의지’라는 뜻이다. 당신은 어떻게 불러도 좋다.
하지만 그것은 당신에게 놀라운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사하라사막을 떠난 지 17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아랍인들에게 배운 대로 불가피한 일을 행복하게 체념하면서 살아간다.
그들의 인생관은 아무리 많은 진정제를 투여해도 달랠 수 없는 정신적인 문제를 그다지 어렵지 않게 해결해준다. 무슬림 아니거나 숙명론자가 되고 싶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사납고 뜨거운 바람이 삶에 들이닥치고 우리가 그것을 막을 수 없다면 불가피한 일이라 생각하며 받아들이자. 그 일이 끝난 뒤에 부지런히 움직여 뒷수습을 하자! - R.V.C 보들리 <사하라사막>, <메신저> 외 14권의 책을 쓴 작가
<‘데일 카네기 자기관리론’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데일 카네기 지음, 임상훈님 옮김, 현대지성출판> * 데일 카네기 : 자기 계발 분야의 선구자로 손꼽히는 그는 1888년 미국 미주리주에서 가난한 농부로의 아들로 태어났다. 농사일을 도와야 하는 환경에서도 꿈을 향해 정진했다. 사범대학을 졸업한 뒤에는 교사, 세일즈맨 등 사람을 대하는 여러 직업을 가졌다. 1912년 YMCA에서 대화법 및 대중연설을 가르치며 일생의 전환점을 맞이했다. ‘카네기 연구소’를 설립해 자기계발 분야에서 기념비적인 업적을 남겼다. <자기관리론>,<인간관계론>과 함께 불후의 고전이요 자기계발서의 바이블로 손꼽힌다.
내가 책을 읽을 때, 그 책에 묘사된 지역을 방문하는 것을 부모님께서 허락해 주셨다면 나는 진리를 정복하는 귀중한 발걸음을 내딛었다고 믿었을 것이다.
그 이유는 우리가 항상 자신의 영혼에 둘러싸여 있다는 느낌을 받으면서도 움직이지 않는 감옥에 갇힌 것과는 달리, 오히려 자기 주위에서 외부 울림이 아닌 내적 진동의 울림과 동일한 음향을 들으면서 일종의 절망감을 품고 자신의 영혼을 뛰어넘어 외부 세계에 도달하고자 하는 부단한 비약 속에 그 영혼과 함께 휩쓸려가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소중해진 사물 속에서 우리는 영혼이 사물에 투사한 빛을 찾아내려고 애쓰지만, 우리 생각 속에서 몇몇 관념들과 연결되어 나타났던 사물의 매력이 자연 속에서는 상실된 듯 보여, 우리는 그 사실을 확인하고 실망한다.
때로는 우리는 이런 영혼의 모든 힘을 능숙한 솜씨나 찬란함으로 전환해, 우리 밖에 존재하고 있어 우리가 결코 도달할 수 없다고 여겨지는 존재들에게까지 힘을 미치고자 한다.
그리하여 내가 사랑하던 여인 주위로 당시 내가 가장 가고 싶어 하던 장소를 상상해 보거나, 또는 나를 그 장소까지 안내해 주고, 또 미지의 세계를 향한 통로를 열어 주는 것이 모두 그 여인이기를 바란 것은 단순한 연상작용의 우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렇다. 여행에 대한 내 꿈도, 사랑에 대한 꿈도 - 무지갯빛으로 아롱져 얼핏 보기에는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분수를 높이에 따라 여러 단계로 구분하듯이, 오늘날 내가 인위적으로 분리하는 - 바로 내 삶의 온갖 힘들이, 단 하나 나의 굴절되지 않은 동일한 분출로 솟아오르는 몇몇 순간들에 지나지 않았다.
마침내 나는 내 의식의 상태들을 나란히 차례차례 안에서 밖으로 좇아가다가, 그 상태들을 감싸고 있는 현실의 지평선에 도달하기에 앞서 다른 종류의 즐거움을 맛본다.
이를테면 편히 앉아 있는 즐거움, 신선한 공기 냄새를 맡는 즐거움, 방문객에게 방해받지 않는 즐거움, 그리고 셍틸레르 성당 종탑에서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릴 때 그 종소리를 전부 합하여 마지막 소리를 들을 때까지 이미 흘러가 버린 오후의 몇 시간이 조각조각 내려오는 것을 바라보는 즐거움. (…)
프랑수아즈가 맛있는 저녁 식사를 준비하여 책을 읽는 동안 책 속의 주인공을 쫓아다니느라 피곤해진 내 기운을 북돋아 주려니 하고 생각하는 즐거움이었다.
깊은 잠과 마찬가지로, 마술적인 독서의 이점은 환각에 사로잡힌 내 귀를 속이고, 고요라는 창공의 표면에서 금빛 종을 지워 버린다는 데 있다.
콩브레 정원의 마로니에 그늘에서 보낸 화창한 일요일 오후들이여, 내가 그대들을 생각할 때면, 그대들은 내 개인적인 삶의 보잘것없는 사건들을 정성스럽게 비워 버리고 대신에 흐르는 물로 적셔진 고장의 낯선 모험과 열망으로 바꾸어 놓았던 그때의 삶을 여전히 환기하고 실제로 그 삶을 담고 있도다.
내가 독서를 계속 해 나가고 한낮의 더위가 가시는 동안, 그대들은 조금씩 그 삶을 에워싸면서 무성한 나뭇가지 사이로 서서히 연속적으로 변해 가는 그대들을 고요하고도 향기롭고 투명하게 울려 퍼지는 시간의 크리스털 안에 그 삶을 가두어 놓았도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스완네 집쪽으로1’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마르셀 프루스트, 김희영님 옮김, 민음사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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