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자료

유추를 통해 신을 증명하다!

[중산] 2024. 12. 24. 09:42

 

가지산(지난해)

 

 

“신을 믿는다는 것은, 삶의 의미에 대한 물음을 이해한다는 뜻이다. 신을 믿음은 세계의 사실들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본다는 뜻이다. 신을 믿는다는 것은 삶이 의미를 갖는다는 뜻이다.”

 

비트겐슈타인은 눈에 보이는 현실 안에서는 이런 신을 찾을 수 없다고 분명하게 강조한다. “신은 세계 안에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하지만 신은 세계 밖에 있는, 세계의 의미다. 비트겐슈타인의 세계의 의미는 “세계 바깥에 놓여 있음이 분명하다.”

 

우리는 “특정한 의미에서 종속되어 있다. 우리가 거기 종속된 그것을 우리는 신이라 부를 수 있다. 신은 이런 의미에서 단순히 운명, 혹은 같은 것인데 - 우리 의지에서 독립된 - 세계다.”

 

* 비트겐슈타인(1889~1951) : 1889년에 빈의 철강업자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엄청난 액수의 유산을 남에게 선물했다. 스물세 살에 그는 자기가 9년 전부터 끔찍한 고독 속에서, 거의 자살의 가장자리에 살았다고 고백한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그는 베를린 공대에서 공학을 공부했다. 기술도 그의 사랑의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빵과 치즈만 먹었을 정도로 그는 단순한 식사를 좋아했다.

 

2차 대전이 시작되자 자원입대하여 야전 병원에서 환자를 나르는 일을 하다가 전쟁이 끝난 다음 케임브리지로 돌아왔지만 교수직을 그만두었다. “철학 교수라는 맞지 않는 지위”에 “산 채로 파묻힌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유추를 통해 신을 증명하다

 

아우구스티누스(354~430)는 자연스런 사유의 과정에서 신의 가장 보편적인 본질 규정들에 대한 인식을 넘어 더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특별한 인식방법이 필요하다.

 

이런 인식 방법을 유추(비교 대상의 비슷한 점을 찾아 비슷한 결론을 이끌어내는 간접추리의 방법, 기독교의 신 증명에 자주 쓰임)를 통한 통찰이라고 부르고, 그것을 처음으로 상당한 큰 규모로 발전시켰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정말로 철학적 사유가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여겼다. 인간이 자신을 관찰하면 자신의 본질이 삼중구조로 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곧 ⑴기억, ⑵의지, ⑶통찰로 이루어져 있다. 모든 사물은 ⑴ 각기 존재하고, ⑵ 다른 사물과 다르고, ⑶ 동시에 다른 것과의 관계 속에 있다.

 

인간과 모든 피조물의 본질에 나타나는 이런 삼중구조를 유추의 방법으로 신의 흔적이라고 이해한다면, 여기서 적어도 기본적인 성향에 따라 삼위일체를 이루는 신을 인식할 수가 있고, 이것은 믿음에서만 아니라 자연의 이해를 통해서도 가능한 일이다.

 

플라톤에게 신은 세계의 질서를 잡은 존재, 카오스를 정돈해 형태로 만든 존재였다. 그러니까 카오스가 신보다 먼저 있게 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를 통해 신의 권능이 해를 입는다고 여겼다.

 

그에게는 무엇보다 신의 권능이 중요했다. 신의 권능이 제한이 없다고 여긴다면, 신의 창조의 의지보다 앞서는 것은 그 무엇도 있을 수 없고, 따라서 자체로 존재하는 카오스가 있을 리가 없다. 창조는 진정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의 창조로만 생각되어야 한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유는 건드리는 모든 물음들에서 언제나 인간의 영역과 신의 영역 사이로 뻗어 있다. 그것은 엄청난 노력을 통해 인간에서 출발해서 신적인 일들에 대한 통찰에 도달하는 길이다.

 

<‘철학을 만나는 지름길 - 철학의 뒷 계단 - 위대한 철학자 34인의 생애와 사상’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빌헬름 바이셰델 지음, 안인희님 옮김, 김영사 출판> *빌헬름 바이셰델 (1905~1975) : 1905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암마인에서 태어나, 마르부르크 대학에서 개신교 신학, 철학, 역사학을 전공했다. 1932년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하이데거의 지도하에 <책임의 본질>이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튀빙겐 대학 교수를 거쳐 195~1970년까지 베를린 자유대학 교수로 재직했다.<사회적 윤리학> ,<철학자들의 신> 등의 주요저서를 남겼다.

 

 

 

 

우리의 일상은 늘 정신없이 돌아간다. 그런데 우리를 바쁘게 하는 것들은 대부분 우리가 주도적으로 이끌어 가기가 힘든 사안들이다.

 

먹고살아야 하니 회사 사정에 나를 맞춰야 하고, 딸린 식구들을 돌봐야 하니 책임과 의무 위주로 생활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자연히 ‘내 인생은 무엇인가, 나는 어디에 있는가’하는 고독감과 허무함에 시달리기도 한다.

 

심리학자 앤서니 스토는 우리네 인생은 두 가지 상반되는 충동이 언제나 함께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나는 다른 사람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자 하는 충동이고, 다른 하나는 고독을 통해 자기 본연으로 돌아가려는 충동이다.

 

인간관계뿐만 아니라 일도, 사랑도 마찬가지다. 책임과 의무를 이행하면서 성장하기도 하고, 나를 희생하고 타인을 키우는 데에서 기쁨을 얻기도 하지만, 동시에 오직 나를 위해서만 살고 싶다는 강렬한 충동도 존재한다.

 

이런 상반되는 충동 사이에서 균형을 잃으면 인생이 전반적으로 우울해진다. 우리에겐 책임과 의무를 지혜롭게 이끌어 가면서도,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는 균형 감각이 절실하다.

 

다행히도 나에겐 두 세계가 공존했다. 네팔에서 진정한 나로 돌아가 충분한 휴식을 취했기 때문에 한국에서의 생활도 지치지 않고 버틸 수 있었다.

 

앞만 보며 달려가는 삶의 끝은 소진뿐이다. 앞을 보며 달려가더라도 가끔은 뒤를 돌아볼 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나는 늘 후배들에게 오로지 자기 자신을 돌볼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충분히 마련해 두라는 조언을 해 왔다.

 

자기 앞에 주렁주렁 달려 있는 책임과 의무에 치여서 진정한 삶을 뒷전으로 미뤄 두지 말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자기만의 공간과 시간은 되도록 일찍부터 만들어 두는 것이 좋다.

 

나이가 들어 고독과 허무가 밀물처럼 밀려올 때, 갑자기 대피할 곳을 찾으려고 하면 찾기가 쉽지 않다. 우리 사회 전반에 이기적인 욕심을 추구하는 분위기가 퍼져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반면 네팔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그런 네팔 인들의 기운 덕분인지, 나도 네팔에 머무르는 동안은 무의식적으로 올라오는 욕심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웠다.

의료봉사를 시작으로 네팔에 드나든 지 벌써 43년이다.

 

남은 날이 길지 않으니, 네팔 사람들에게 보답을 다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는 그저 오늘도 네팔과 히말라야에 감사의 기도를 올릴 뿐이다.

 

<‘백 살까지 유쾌하게 나이 드는 법’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이근후교수 지음, 메이븐출판> * 이근우 교수 : 1935년 대구에서 태어나 일제 강점기에 초등학교를, 중학교 때 6.25 전쟁을 겪었다. 고교 때 부친이 돌아가시면서 단칸방을 전전했고, 대학 때 4.19와 5.16반대 시위로 감옥 생활로 취직이 어려웠다. 이화여자대학교 교수이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 50년간 환자들을 돌보고 학생을 가르쳤다.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를 비롯해 40년간 모두 20여 종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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