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자료

인류의 성 문화 역사!

[중산] 2024. 12. 31. 18:24

 

 

 

 

초기 독실한 기독교인들은 자신의 타락한 몸을 정결하고 순수한 몸으로 변화시키겠다는 신성한 바람을 품었다. 세속적 욕망의 껍질을 하나하나 벗기면 타락 이전의 순수한 몸으로 회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자학과 고행으로 기독교인의 귀감이 되었던 사람이 성 오리게네스다. 그는 스물 두 살의 나이에 의사를 찾아가 자발적으로 거세를 했다.

 

“천국을 위해 자발적으로 고자”가 된 것이다. 성적인 유혹에 조금이라도 아예 성의 싹을 잘라버린 것이다. 오리게네스는 인간의 성행위가 빛이 없는 어두운 밤에 이루어지는 이유도 죄악과 연결해 해석한다. 성행위가 떳떳한 행위라면 백주대낮에 못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기독교 사상가들이 동정녀 마리아를 이상화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마리아는 예수를 출산한 후에도 계속 순결과 처녀성을 유지했다.

 

여기서 순결한 몸이란 물론 남자를 모르는 몸을 말한다. 교회의 지도자들은 마리아의 처녀성 정반대편에 창녀를 놓는 것을 좋아했다.

 

가장 많이 오염되어 무겁고 차가워진 몸은 그것에 오염된 몸이다. 그런데 창녀가 아닌 여성도 안심할 수 없다. 결혼한 남자와 여자도 마찬가지다. 말하자면 결혼도 영혼의 건강에 치명적이다.

 

마리아를 정점으로 하는 신자들의 위계가 생겨났다. 서열의 꼭대기에는 처녀성을 보존한 순결한 여성이고 가장 밑바닥에는 유부녀가 있다.

 

고대 그리스의 서열에서도 히스테리 환자인 과부는 처녀와 유부녀의 중간에 놓였다는 것이다. 더 이상 성관계를 가지지 않으므로 유부녀보다 순결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누구보다도 순결한 삶을 통해 구원받을 수 있다는 가장 극적인 사례를 보여준 사람은 막달라 마리아다. 그녀는 예수의 발에 향유를 바르고 입을 맞추며 회개했던 창녀다.

 

그녀는 예수에 의해 정신병을 치유하고 과거의 생활을 청산한 뒤 예수만을 섬기는 순결한 삶으로 돌아섰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은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았고 부활한 예수를 가장 먼저 모았던 여인도 막달라 마리아다.

 

죄악으로 오염되었던 몸이 예수에 의해 축복받은 순결한 몸이 된 것이다. 처녀가 아니었지만 순결한 생활을 통해 다시 처녀성을 회복한 여자의 귀감이 되었다.

 

초기 기독교 사상가 가운데 인간의 성적 욕망에 대해 고민하면서 많은 글을 남긴 인물로 아우구스티누스를 꼽을 수 있다. <고백록>3장에서 그는 고백한다.

 

“나는 정욕이 씩씩 소리 내며 끓어오르는 주전자였다. … 나는 사랑이라는 관념과 사랑에 빠져 있었다.” 중세의 엄격한 성적 금욕은 극소수의 수도승과 성직자를 위한 것이었다. 중세를 근대국가처럼 생각해서는 안 된다. 중세의 공간은 교회와 귀족계급, 평민이라는 세 계층으로 분할되어 있었다.

 

교회가 신의 섭리에 반하는 끔찍한 죄악으로 단죄했던 동성애가 여성들이 부재하는 공간인 기사들의 세계에서는 (적어도 12세기까지는)자연스런 관행의 하나였다.

 

사과나 꽃을 즐기듯이 성을 즐길 수 있는가? 이것은 르네상스인들이 즐겨 묻던 질문이었다. 15세기만큼 매춘이 성행했던 시절도 없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우려할 만큼 피렌체나 폴로렌스, 베니스, 로마와 같은 대도시는 물론이고 작은 도시에서도 공창公娼이 성업을 이루었다.

 

당시 베네치아에는 약1만 1천 명의 매춘부가 일하고 있었으며, 베니스는 5만 5천여 명의 인구 중에서 4천 900명이 매춘부였다고 한다. 서민들은 여관이나 목욕탕, 선술집에 가면 저렴한 비용으로 쉽게 성을 살 수 있었다.

 

서민이 감히 접근할 수 없는 교양과 미모를 갖춘 고급 매춘부 코르티지아나도 있었다. ‘코르티지아나’라고 불린 이유는 교황이 법왕청으로 자주 초대했기에 ‘court'에 자유롭게 들락거리는 여자라는 의미에서 그런 명칭이 주어졌던 것이다.

 

<군주론>으로 유명한 마키아벨리도 매춘부를 즐겨 찾았다.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사랑의 신이 나를 너무나 단단하게 결박했기 때문에 나는 사랑으로부터 자유롭게 풀려날 생각을 포기했다. 그러한 기쁨이 없이는 행복하게 삶을 살 수가 없다.”

 

온전한 삶에는 성행위가 필수라는 것이다. 17세기 이후 홍등가를 찾는 유럽인들은 죄책감이나 수치심을 느낄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매춘에 대한 자유로운 분위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16세기 중반 이후부터 매춘을 비난하는 여론이 들끓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은 1495년부터 유럽을 강타한 매독영향이 컸다. 신대륙을 탐험하던 콜럼버스가 인디언 여자와 성적 접촉을 하면서 최초로 유럽에 전파되었다는 매독은 1495년에 나폴리를 점령한 프랑스 군인들에게서 처음 발병한 ‘성의 악마’였다.

 

유럽인들은 매독의 근원지를 홍등가라고 생각했다. 프랑스 질병, 이탈리아 질병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고 ‘신의 징벌’이라는 기독교적 해석도 있었다.

 

매독은 1943년에 페니실린이 상용화되기까지, 500년이 넘도록 유럽인들에게 끔찍한 악몽이었다. 16세기 이후부터 성적인 순결과 정숙함이 다시 사회를 지배하는 미덕이 되었다.

 

 

‘사랑’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문학 작품 하나가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영국 르네상스의 개화기인 1597년에 쓰여 진 이 작품에서 두 주인공은 물불을 가리지 않고 사랑의 극한으로 치닫는다. 그런데 더없이 순수하고 아름답게 느껴지는 두 사람은 성숙한 성인이 아니다. 줄리엣의 나이는 불과 열네 살, 중학교 1학년 나이밖에 되지 않는다.

 

원수 집안 남자와 사랑에 빠진 그녀는 사랑에 있어서 절대로 양보를 하지 않는다. 로미오를 창을 통해 침실로 끌어들여 잠자리를 같이할 정도로 격정적이고 저돌적이다.

 

로미오는 어떤가? 그 역시 지고지순하고 청순한 사랑을 갈망하는 소년이 아니다. 그는 줄리엣을 만나기 전에 짝사랑하는 여자가 있었다. 정리하지면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은 청순한 사랑이 아니다.

 

세속적이며 육체적인 사랑이다. 이들의 육체적 사랑은 줄리엣을 딸처럼 사랑하는 유모가 그녀에게 적나하게 성교육을 시키는 장면에서 정점에 이른다.

 

성을 죄악으로 보았던 중세의 단테와 달리 셰익스피어는 성을 건강한 관능으로, 또 삶의 한 부분으로 긍정했다. 이처럼 르네상스는 중세가 폐위했던 성을 다시 왕좌에 앉혀놓았다.

 

르네상스 시대의 결정적인 변화를 보여주는 작품이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이다. 이 책은 점잖은 사람이라면 입에 담을 수 없을 정도로 외설적인 이야기로 가득하다.

 

예를 들면, 마세토라는 이름의 혈기왕성한 남자가 열 명의 수녀가 있는 수녀원에 잠입해서 벙어리 행세를 하며 모두 성관계를 즐긴다.

 

수녀들은 벙어리인 남자가 소문을 낼 리 없다고 생각해서 마음껏 욕정을 채운다. 그러나 그는 정력이 고갈되어 열 명의 수녀들을 상대하기에 역부족인 위기가 닥친다.

 

마세토는 결국 자기가 벙어리가 아니라고 커밍아웃하고 수녀원에서 벗어나게 된다. 18세기의 위대한 비평가 새뮤얼 존슨은 <데카메론>에 비하면 지극히 점잖은 셰익스피어의 작품에도 부도덕한 부분이 많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외설적인 대목을 깡그리 도려내는 식으로 편집한 뒤에야 <셰익스피어 작품집>을 출간했다.

 

18세기에 비하면 르네상스가 얼마나 성적 욕망에 관대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데카메론>에서 등장하는 한 여자는 다음과 같이 성을 찬양한다.

 

“자연의 법칙이 제일 우선이에요. 자연은 어떠한 사물도 아무렇게나 만들지 않은걸요. 자연이 그런 귀중한 것을 우리에게 준 것은 잘 활용하라는 것이지 녹슬도록 내버려두라는 것은 아닐 거예요.”

 

르네상스 시대의 쾌락의 논리는 문학적으로 카르페 디엠carpe diem의 모티브로 발전한다. “현재를 즐겨라”라고 해석되는 카르페 디엠은 젊고 건강할 때 삶을 즐기지 않으면 미래에는 기회가 없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

 

 

 

Ⅰ. 초기 기독교와 중세시대(200~1453, 3~15세기)

- 중세 수도승에게는 육체는 악마였다. 아담과 이브의 원죄에 의해서 오염되고 타락한 것이 육체였기 때문이다. 생식의 목적에서 벗어난 성행위는 악마의 유혹에 굴복한 죄악으로 간주되었다.

 

- 유럽사에서 중세는 로마제국이 395년에 동과 서로 분열되더니, 476년에 서로마제국이 무너지고 중세가 시작되었다. 로마 시대가 지중해 세계를 통일한 권력의 시대라면, 중세는 그리스도교적 겸손과 금욕이 지배하는 시대였다. 중세로 접어들면서 로마의 쾌락주의 문화는 더 이상 발을 붙일 수 없게 되었다.

 

Ⅱ. 르네상스 시대(1301~1600, 14~16세기) : 위대한 ‘부정’의 시대였던 중세에 대한 반발로 르네상스는 위대한 ‘긍정’의 막을 열었다. “하지 말라!”라는 말이 아니라 “원하는 대로 하라!”라는 말이 시대의 정신이었다. 장밋빛 육체가 화려한 날개를 펴고 풍만한 가슴이 에로티시즘의 전당에 입성했다.

 

- 르네상스 시대 육체의 발견은 성모 마리아상에서 정점에 이른다. 르네상스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철학자인 피치노는 “자연에 추한 것이 있다면 예술을 통해서 아름답게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도덕적 검열 없이 오직 아름다움을 예찬했던 르네상스의 정서가 중세하고만 다른 것은 아니었다. 장 푸케의 <믈룅 성모 마리아>에서 왼쪽 유방을 완전히 드러내고 있다. 이처럼 성모 마리아도 육체적으로 아름답게 묘사한 르네상스 시대인데, 일반 여성의 성적 아름다움은 얼마나 부각시켰을지는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당하는 여자, 하는 남자’에서 극히 일부 발췌, 김종갑 지음, 다른출판> * 김종갑 : 미국 주이지에나 주립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건국대학교 영문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07년 몸 문화연구소를 설립하여 몸을 매개로 인간과 사회를 연구해왔다. <혐오, 감정의 정치학>, <생각, 의식의 소음>, <근대적 몸과 탈근대적 증상>등의 저서가 있다.

 

황망한 사고로 가족을 잃은 슬픔을 어찌 해야 할지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 다사다난했던 올 한해 수고 많으셨습니다. 새해에는 사고 없이 모두가 안전하고 행복한 한 해가 되길 간절히 염원해 봅니다. 새해 복많이 받으십시오~!!

기장 칠암 야구등대 일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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