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함의 미덕
나는 될수록 간단하게, 최대한 간소하게 살자는 주의다. 철들면서부터는 화려하게 사는 스타나 재벌보다 소박하게 사는 스님이나 수도자들이 훨씬 멋있게 보이고 진하게 화장한 얼굴보다 말갛게 씻은 맨얼굴을 더 좋아했으니 이건 어쩌면 취향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삼십대 대부분을 배낭여행이라는 유목민 생활을 하면서 이런 성향은 더욱 굳어졌다. 친구들은 옷 좀 사라지만 나는 지금 있는 옷도 이미 너무 많다고 생각한다. 차도 없다. 한국은 대중교통이 잘 발달했으니 굳이 내 차가 필요치 않다.
오랫동안 이렇게 살다 보니 어느덧 나는 소비가 미덕인 자본주의에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되었고 돈이 있어도 잘 쓰지 않는 사람, 아니 쓰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이게 자랑은 아니지만 그렇게 창피할 것도 없다. 오히려 이렇게 돈 못 쓰는 나, 돈 안 쓰는 나의 소비습관이 장점으로 느껴질 때가 많다. 제일 좋은 건 내 삶이 돈에 휘둘리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다. 돈이 있을 땐 자발적인 가난을 택하고 돈이 없을 땐 평소에 하던 대로 해도 크게 불편하지 않으니까 돈 때문에 애면글면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돈이 많아야 자유로운 것이 아니라 돈이 없어도 자유로울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 자체가 당당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이다.
부자가 아니라도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끼지 않으면서 간소하게 사는 법을 연습해보았으면 한다. 우선 소비의 최우선 순위를 정하고 그걸 위해서라면 다른 것들을 기꺼이 희생하거나 포기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이 연습의 핵심은 돈이 많아 모두 다 하면 좋을 텐데, 돈이 없어 딱 한 가지밖에 못해 분하고 초라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거다. 대신 한정된 돈이지만 제일 하고 싶은 일을 했으니 다른 건 안 해도 상관없다고 마음먹는 거다. 오히려 다른 것을 희생해가면서 선택한 것일수록 훨씬 큰 기쁨과 만족감을 주기 마련이다. 점심을 굶고 산 갖고 싶었던 책처럼 말이다.
그리고 뭐니뭐니 해도 간소하게 살기 연습의 최강자는 배낭여행이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다니다 보면 가진 물건이 많다는 것이 자유가 아니라 족쇄라는 것을 단박에 깨달을 수 있다. 또한 우리가 일상을 살면서 꼭 필요한 것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도 깨닫게 된다. 더불어 배낭여행 중에는 아무리 허름한 차림으로 허름한 숙소에서 잔다고 해도 누가 날 돈 없다고 업신여기지는 않을까 신경 쓸 필요가 없으니 남들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는 연습까지 할 수 있다. 돈이 떨어지면 여행을 중단하고 돌아와야 하니 돈을 조금이라도 더 아껴서 계획했던 나라들에 다 가보고자 하는 목표를 위해서는 어떤 불편함도 감수할 수 있다. 좋은 숙소에서 자고 멋진 곳에서 식사하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지 않는다.
한마디로 배낭여행은 간소하게 살면서 돈이 많지 않아도 품위와 자존심을 지키는 법을 연습하고 실천해볼 수 있는 단기 심화 코스다. 나는 여행이란 길 위의 학교라고 굳게 믿는다. 한번 배우면 평생 쓸 수 있는 매우 유익한 수업이니 필히 수강하시길, 강추!
<양지꽃>
천사!
몇 년 전 일이다. 남아프리카 요하네스버그 공항에서 갈아탈 비행기를 기다리는데 오십대 중반의 중국 아줌마가 미친 듯이 “메이여우 중궈런(중국인 없어요)?” 하고 외치는 게 보였다. “제가 중국어를 좀 할 줄 아는데 무슨 일이세요?” 내가 묻자 반쯤 넋이 나간 아줌마가 하는 말, “내가 탈 비행기가 떠나 버렸어요. 그 비행기 놓치면 난 끝장이에요. 정말 끝장이에요.” 사색이 된 아줌마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얼른 비행기 표를 보니 ‘요하네스버그 출발 07:00’이라고 씌어 있었다. 그런데 그때는 저녁 7시경이었다. “비에 딴신(걱정 마세요). 이 비행기 출발 시간은 오늘 저녁 7시가 아니라 내일 아침 7시예요.” 그리고는 겁에 질린 아줌마와 같이 항공사 데스크에 가서 비행 편을 확인해주었다.
그제야 아줌마 얼굴이 환해졌다. 이 아줌마는 중국 남부 시골 출신인데 동네 사람들에게 막대한 빚을 내서 비행기 표를 사고 비자를 받아 케이프타운으로 일하러 가는 중이란다. 비행기를 놓쳐 공항에 마중 나올 고용주를 못 만날 생각을 하니 심장이 멎는 것 같더란다. 문득 제정신이 돌아왔는지 손에 들고 있던 비닐봉지에서 빨간 사과 하나를 꺼내 주며 “니스 텐시아라이더 텐스(당신은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입니다)” 하는 것이 아닌가. 비행기를 놓쳤구나 하는 순간, 얼마 전부터 믿기 시작한 하느님께 아주 간절하게 기도했단다. “하느님, 저를 한 번만 도와주세요. 도와줄 사람을 보내주세요. 제발 부탁이에요!” 그런데 몇 분 지나지 않아 내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 천사처럼 불쑥 나타났다는 거다. 따져보면 사소한 일이지만 이렇게 생생히 기억나고 생각할 때마다 기분 좋은 걸 보면 모르는 사람에게 친절을 베풀고 작은 복이라도 전해주는 게 기쁜 일임에는 틀림없다. <“그건, 사랑이었네”일부 요약 ,한비야 지음, 푸른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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