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티 프리던은 『여성의 신비』(1963)를 발표함으로써 ‘제2의 페미니스트 물결’을 일으킨 장본인이다.
그녀는 이 책을 통해 “주부들이 어머니와 아내의 역할, 그리고 체면 등의 족쇄에 얽매여 여전히 집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그러한 주부들의 삶을 ‘여성의 신비’라고 표현했다. 다시 말해서 ‘여성의 신비’란 ‘여성들이 그저 자신의 여성스러움(femininity)에 사로잡혀 더욱 원대한 삶을 꿈꾸지 못하는 것’이었다. 프리던은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는 대상으로 교외에서 넉넉하게 살아가는 중산층 이상의 주부들을 지목했다. 프리던은 그들을 향해 “가정주부라는 유일한 삶의 역할에 갇혀 공허하고 지루한 삶 속에서 마흔 이후에 찾아오는 각종 질병에 절망하고 알코올 중독, 마약 중독, 비만으로 이어지는 비참한 삶을 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결국에는 “사회적 동물로서 인간의 기능을 빼앗긴 여성들은 점점 집안일을 손에서 놓기 시작할 것”이라는 일종의 ‘사이비 법칙’을 내세웠다. 여기서 우리는 마르크스주의적 힌트에 주목해야 한다.
프리던은 “모든 조건이 동등할 때 자의적으로 일하는 어머니를 둔 아이들이 전업주부 어머니를 둔 아이들보다 학교에서의 성취도나 자신의 가치에 대한 인식이 높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일하는 어머니를 둔 러시아 아이들이 온종일 아이 걱정만 하는 미국 어머니보다 훨씬 안정적이고 성숙하다”라고 했다. 이 표현은 러시아 어머니들이 미국 어머니들보다 더 훌륭하다는 느낌이 들게 한다. 프리던이 굳이 ‘교외에 사는 중산층 이상의 전업 주부’를 주목한 것 역시 마르크스주의와 연결된다. 바로 그들이 ‘노동에 의해 정의되는 물질적 조건의 마지막 단계에 존재하는 이들이며, 가전제품 같은 다양한 ‘기계’들 덕분에 고된 노동에서 해방된 첫 번째 피조물’이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들의 여가 시간을 창조적이고 건설적인데 쓰지 않는다는 데 있었다. 프리던은 “여성의 해방은 오직 더 넓은 사회에서 생산 활동에 참여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실현된다”고 했는데, 사실 이 구절은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가족과 사유재산 그리고 국가의 기원』 제9장에서 인용된 것이다.
프리던은 1930년대 말부터 1940년대 초까지 스미스대학에서 마르크스주의에 심취해 있었다. 그녀는 좌익 출판사와 단체를 위해 일하기도 했는데, 이러한 자신의 급진적인 과거를 철저하게 감추었다. 또한 전업주부들의 공감을 이끌어내기 위해서 자신 역시 그러한 모델로 제시하려 했다. 그러나 그녀는 이미 ‘여성의 신비’에서 해방되어 있었다. 그녀는 이른바 엘리트들만 간다는 명문 스미스대학에서 급진적인 교수들에게 가르침을 받았고 록랜드 카운티의 방 11개, 화장실 3개가 딸린 저택에 살면서 『여성의 신비』를 집필했다. 즉 그녀는 지식적으로 충분히 뒷받침되었고 아이를 위탁하고 집안일을 대신해줄 가정부를 고용하는 데 자신과 남편의 수입을 쓰면서 당장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뛰어들 수 있었다. 이런 조건 속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쳤던 그녀는 전국 여성협회(NOW)를 공동설립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곳에서 ‘레즈비언 옹호’와 같은 다소 과격한 요소들을 내세우면 동참을 거부했다. 하지만 당시 사회문제로 대두되었던 ‘낙태법안 통과’에 대해서는 매우 적극적인 활동을 펼쳤다. 그녀에게 아직 태어나지 않은 자신의 아이를 죽일 수 있는 여자의 권리는 단지 ‘어머니’로만 살아가야 하는 운명을 무너뜨리는데 매우 중요한 권리였다. 즉, 베티 프리던의 『여성의 신비』는 자신이 생각하기에 더욱 가치 있고 의미 있게 여겨지는 활동들을 추구하는데 그 어떤 장애로부터도 자유롭고 싶었던 이상의 표현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이상은 바로 그녀의 유년기 상처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프리던은 보석상을 운영하는 비교적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부모 관계는 그다지 화목하지 못했다. 어머니는 아름다운 용모를 지녔으나 불같은 성질을 지녔었고, 애석하게도 베티는 그러한 어머니의 성격만 닮았을 뿐이었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상처는 어머니의 화풀이 대상이 되었다는 점이다. 베티의 어머니는 남편을 철저히 무시했고, 남편의 외모를 쏙 빼닮은 베티를 미워했다. 게다가 아버지가 신문 사회면에 글을 기고하는 일을 그만두라고 하자 어머니는 그로 인한 스트레스를 모두 베티에게 풀었다. 이때부터 베티는 어머니의 분노와 집안의 불화가 모두 어머니가 일을 그만두었기 때문이라고 믿기 시작했다.
바로 이러한 상처에 대한 치유책이 『여성의 신비』에 깔려 있는 기반이라고 보면 된다. 프리던은 집안일을 소비적인 일로 치부하고 집밖의 일에 대한 환상을 여성들에게 전파시켰다.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그녀가 남긴 가장 ‘위험한’ 유산이 아닌가 싶다. 그녀로 인해 여성들은 학위만 받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삶’을 꿈꾸게 되었다. 즉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아기를 키우고 몸매 관리를 하고 남편과 화목한 가정을 꾸려나가는 삶을 꿈꾸게 된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기에 다시 그 문제를 풀어갈 누군가를 찾게 된다. 그래서 혁명은 계속 이어진다.
<"세상을 망친 10권의 책"에서 일부 요약발췌, 벤저민 와이커 지음,눈과마음>
* 베티 프리던의 『여성의 신비』는 억압과 의무에서 여성을 해방시키기 위해 ‘낙태’를 합법화시켰다. 이렇듯 20세기의 구원에 대한 관념들은 그럴듯한 ‘모양새’를 갖추고 시작되었으나 그 관념은 당사자의 궤변으로 왜곡되기도 하고 후대의 급진파들에 의해 본연의 의미가 변질되기도 했다!
<매화노루발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