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카라마조프씨네 형제들』은 40년간의 문학적 경험을 응축한 대문호의 문학적 철학적 결산이다. 말년에 도스토예프스키는 문명이 발전하면서도 오히려 사상적 도덕적 면에서는 점점 파국으로 치닫는 인류의 운명을 예견하고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다. 그래서 러시아 혹은 인류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지, 새로운 사조 앞에서 기존의 질서는 유지될 것인지 의혹을 품는 가운데 인류에게 구원의 길을 제시하고 싶어했다. 그는 한 평범한 가족사의 길고 복잡한 이야기를 서술 구조의 중심에 두고 있지만, 카라마조프 일가의 비극은 어느 특정 가족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어느 나라, 어느 시대에서나 우리가 접할 수 있는 이야기며 이중적 속물근성을 지닌 우리 자신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그리스 비극 『오이디푸스 왕』이나 셰익스피어의 『햄릿』처럼 친부살해라는 최악의 패륜을 다루고 있다. 이 충격적 줄거리 속에서 알료샤를 제외한 카라마조프씨네 두 이복형제와 사생아조차도 모두 아버지를 살해할 음모를 꾸미거나 방관한다. 물론 이 형제들의 악덕은 모두 증오와 욕망의 화신인 아버지 표도르로부터 물려받은 것이기도 하다.
큰아들 드미트리는 야만적 폭력성과 음욕을, 둘째 아들 이반은 신을 부정하고 인간의 이성에 의지하는 무신론을, 셋째 아들 알료샤는 인간적 겸양과 종교적 순수를, 사생아는 야비함과 잔혹함을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이야기 속에서 그들은 서로 충돌하고 대립하면서도 결코 물러서지 않는다. 이야기가 종결되는 순간까지도 우리들은 누가 승리자인지, 혹은 패자인지 알지 못한다. 그것이 더 현실적으로 있음직한 일이며 권선징악적 전통소설에서 벗어나 등장인물이 저마다 자신의 목소리를 갖는 소위 ‘다음향소설’ 구조의 특징을 갖는다. 여기에 도스토예프스키의 리얼리즘이 갖는 힘이 담겨 있다. 결국 모든 판단은 독자들에게 맡겨져 있을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등장인물 하나하나는 인물들을 가리키기보다는 시대의 사상을 대표한다.
카라마조프 가족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그곳은 한 가족이라기보다는 신의 불꽃이 영원히 꺼진 악마의 제국이다. 작가의 관점에서 인간의 비극은 자유를 감당하지 못한 채 방종한 생활과 신의 부정으로 타락해버린 오만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어둠의 자식들이 서로 눈을 흘기고 으르렁대며 살아가는 재앙의 땅에도 구원의 빛은 남아 있다. 비록 무죄이긴 하지만 타인의 죄를 대속하려는 드미트리, 무신론의 신념이 흔들리고 있는 이반에게서 고결한 마돈나의 정신과 타락한 소돔의 정신이 마침내 충돌하기 때문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인간의 이성과 심장에서 벌어지는 신과 악마의 전쟁을 바라보며 유일한 구원의 길을 민중적 러시아정교라 믿고 있었다.
『카라마조프씨네 형제들』은 연재소설의 특징에서 흔히 나타나듯 수많은 에피소드와 크고 작은 사건과 묘사가 삽입돼 있다. 그리고 이 에피소드와 사건, 묘사들은 독립적인 구성을 취하면서 그 하나하나가 각각의 단편소설을 형성할 만큼 뛰어난 완성도를 보이기도 한다. 또한 도스토예프스키는 중심 줄거리에서보다 오히려 이들 에피소드와 묘사들 속에서 인류구원의 희망을 암시하고 있다. 따라서 이 개별 장면들 역시 친부살해사건과 그 재판과정이라는 중심 줄거리 못지 않게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어머니가 물려준 유산을 아버지 표도르로부터 받아내려는 드미트리, 중재 요청을 받은 이반, 견습수도승 생활을 하던 알료샤 등 흩어졌던 이복형제 세 사람이 고향 마을에 모이면서 카라마조프 집안의 잠재된 가정불화가 수면 위로 떠오른다. 큰 아들 드미트리는 처음에 금전문제로 아버지와 충돌하다가 급기야 그루쉔카라는 한 여인을 사이에 두고 삼각관계로 발전한다.
둘째 아들 이반은 자신의 니힐리즘을 하인이자 아버지의 사생아인 스메르쟈코프에게 전염시켜서 아버지의 살해를 은밀히 교사한다. 셋째 아들 알료샤는 아버지와 형들 사이를 오가며 파국을 막기 위해 동분서주하지만 결국 아버지는 피살당한 시체로 발견된다. 평소에 아버지를 죽이겠다고 호언하던 드미트리는 주위 사람들의 증언과 그의 몸에서 발견된 3천 루블 등 결정적 증거물 때문에 법정에서 유죄판결을 받고 만다. 하지만 실제로 아버지를 죽인 사람은 누구일까? 또한 카라마조프라는 악마의 피가 흐르는 이복형제들에게는 과연 어떤 운명이 기다리고 있을까?(요약)
탐욕스럽고 교활한 인간!
표도르는 한마디로 성격이 괴퍅한 지주다. 표도르는 물욕이나 육욕이 끝이 없는 탐욕스런 인간이며, 동시에 자신에게 불리한 상황을 역전시키고 희극화하기 위한 광대짓을 서슴지 않는 교활한 자이기도 하다. 그는 두 번 결혼해 세 아들을 뒀으며, 사생아인 스메르쟈코프는 하인겸 요리사로 데리고 있었다. 혈육에 대해서도 철저히 몰인정했던 표도르는 첫 아내가 가출하자 드미트리(미챠)를 행랑채로 내몰아 결국 어린 드미트리는 외가쪽 친척의 손에 맡겨지게 됐다.
애비로서의 무책임은 두 번째 부인 사이에서 태어난 이반과 알료샤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이반과 알료샤 역시 어머니가 자살한 후에 아버지 표도르로부터 버림을 받자, 어머니를 키워준 어느 장군 부인이 데려다 키웠다. 그래서 세 형제는 형제이면서도 서로의 얼굴도 모른 채 자랐다. 세월은 흘러 드미트리는 28세, 이반은 24살, 알료샤는 20살의 청년으로 성장했다.
그러던 어느 날 장남 드미트리가 아버지가 사는 마을에 나타났다. 그는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을 아버지로부터 조금씩 타 쓰다가 유산 문제는 더 이상 꺼내지 않겠다는 약속과 함께 마지막으로 6천 루블을 받았었다. 그때 그는 군복무 중이었는데, 전재산이나 다를 바 없는 그 돈으로 공금을 횡령한 한 상관 돈을 갚아주고 다시 무일푼이 됐다. 그것은 순전히 상관의 딸 카테리나의 콧대를 꺾으려는 것이었는데, 그녀가 몸을 파는 조건으로 돈을 갚은 것이다.
카테리나는 그후 친척의 유산을 상속받아 부자가 됐고, 옛 은혜를 생각해 드미트리의 약혼녀가 되기로 결심했다. 어느날 그녀는 드미트리에게 3천 루블의 송금을 부탁한다. 하지만 씀씀이가 헤픈 드미트리는 카테리나를 속이고 그 돈을 탕진해 버렸다. 자신의 행위에 가책을 느낀 드미트리는 카테리나의 돈을 갚아야 한다는 절박함 때문에 아버지를 찾아나선 것이다.
한 자리에 모인 세 형제
아버지의 반발을 염려한 드미트리는 모스크바에 사는 이복동생 이반에게 중개자로 나서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이반의 중재에도 돈을 더 이상 내놓지 않으려는 아버지와 억울한 생각으로 가득한 드미트리 사이의 의견은 평행선을 달렸고, 마침내 주위 사람들의 중재로 그 마을에서 신망이 두터운 조시마 장로에게 판결을 부탁하기로 했다. 그래서 난생 처음 카라마조프 가족은 막내 알렉세이(알료샤)가 머물고 있는 수도원에서 함께 상봉해 가족회의를 갖게 됐다. 그러나 아버지의 속셈은 전혀 다른 데 있었다.
“신성하신 신부님, 믿으실지 모르지만, 저놈은 처녀들 가운데서도 제일 지체 높고 가문 좋은 재산가의 어느 규수에게 홀딱 빠졌지요. 목에 성 안나 십자훈장을 건 용감한 대령이자 자신의 옛 상관이기도 한 분의 따님이었는데, 그녀에게 청혼을 하는 치욕을 안겼기에 그녀는 지금 이곳에 머물고 있으며, 고아가 된 그녀는 저 놈의 약혼녀가 되고 말았죠. 그런데도 저놈은 그녀가 빤히 보는 앞에서 우리 마을의 어느 바람둥이 여인 집을 출입하고 있지 뭡니까. 그 여인은 어느 존경받는 인사와 결혼을 해서 이미 함께 살고 있으며, 독립심이 강하고 정숙한 여인이어서 합법적인 아내나 다름없는 상태랍니다.” “입다물어요! 내가 이곳에서 나갈 때까지 기다려요. 내 앞에서 고결한 아가씨의 이름을 더럽힐 순 없어요...... 감히 그녀에 대해 입을 벙긋한 것만으로도 그녀에 대한 모욕이에요...... 용납할 수 없어요.” “미챠, 미챠! 내가 뭣 때문에 네놈에게 아비로서의 축복을 내린단 말이냐? 내가 네게 저주를 퍼붓게 되면 그땐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기나 하니?”
“수치를 모르는 위선자!” “저놈이 아비에게, 아비에게! 그러니 다른 사람들한테는 어떻겠습니까?” “아버지! 난 내 행위를 합리화시키진 않겠어요. 하지만 당신은 스스로 바람둥이라고 부른 그 여인을 찾아가 내 차용증을 받아뒀다가 내가 재산청구 문제로 당신을 괴롭히면 나를 재판에 회부시키라고 부탁하지 않았습니까! 당신은 내가 그녀한테 푹 빠졌다고 비난하지만 그녀에게 나를 유혹하라고 시킨 사람은 바로 당신이지 않습니까!”
그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추악한 지경에까지 이른 장면은 너무나 뜻밖의 일로 중단됐다. 장로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드미트리를 향해 걸음을 옮겼던 것이다. 그리고 장로는 드미트리 앞에 무릎을 꿇더니 그의 발을 향해 이마가 땅에 닿을 정도로 머리를 조아리는 것이었다.
드미트리의 고백
가족회합은 표도르의 의도대로 하나의 스캔들로 막을 내리고 말았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불신감이 더 깊어진 채 그들은 수도원을 떠났다. 수도원에 남은 알료샤는 그루쉔카를 찾아나섰다가 도중에 아버지 집과 붙은 이웃집 정원을 지나게 됐다. 그때 어둠 속에서 드미트리 형이 자신을 향해 손짓을 하는 것이 아닌가. 드미트리는 그루쉔카가 돈 3천 루블이 탐나서 아버지를 한밤에 찾아가지나 않을까 밤낮으로 감시하던 중이었는데, 우연히 알료샤를 만난 것이 반가워 가슴 속에 깊이 묻어둔 비밀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내가 비록 카테리나의 고상한 감정을 비웃긴 했지만 내가 그녀보다 정신적으로 백만 배는 더 저속하다는 사실을, 그녀의 훌륭한 감정은 천사의 감정 같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어. 그녀는 과거의 고마운 마음 때문에 자신의 인생과 운명을 희생시키려고 해. 내가 쓸데없는 이야기를 지껄여댄다고 할지 모르지만 난 결국 뒷골목으로 빠져들고 그녀는 이반과 결혼하게 될 거야.”
드미트리는 자신을 향해 울분을 터뜨리며 소리쳤다. “어쨌든 형님은 그분의 약혼자가 아닌가요? 그 분이 원치 않는다면 어떻게 약혼을 파기하실 거죠?” 이야기를 듣고 있던 알료샤는 평정을 잃고 다시 끼어들었다. “잘 들어 봐. 처음엔 아버지와 짜고 내 차용증을 끌어모으던 그루쉔카를 혼내주려고 찾아갔었지. 그랬다가 그냥 그녀의 집에 눌러앉게 됐어. 그런데 그때 빈털털이인 내게 우연히 3천 루블이란 거금이 들어왔어. 카테리나가 송금해달라고 부탁한 돈이지. 앞뒤 가리지 않고 나는 당장 그녀와 함께 모크로예 마을로 가서 집시들을 부르고 농부들에게 샴페인을 진탕 먹이느라 수 천 루블을 탕진해 버렸어. 거기서 그루쉔카는 ‘원하신다면 당신이 가난뱅이라도 당신과 결혼하겠어요’라며 미소짓지 않겠니. 그러니 문제의 3천 루블을 구해서 카테리나의 빚을 갚아야만 해. 아무리 생각해봐도 아버지한테 돈을 받아내는 길밖에 없는 것 같아.” “하지만 아버지는 한 푼도 내놓지 않으실 거예요.”
“내가 한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지. 아버지는 닷새 전쯤 1백 루블짜리 30개, 즉 3천 루블을 큰 봉투에 넣고 다섯 군데나 도장을 찍은 다음 빨간 끈으로 묶어뒀어. 그리고 봉투에는 ‘나의 천사 그루쉔카, 만일 찾아온다면’이라고 적었지. 이런 사실은 아버지가 믿고 있는 스메르쟈코프란 놈 이외에는 아무도 모르는 사실이야. 그런데 그녀는 ‘어쩌면 갈지도 모르겠다‘는 거야. 만일 그루쉔카가 영감을 찾아간다면 내가 어떻게 그녀와 결혼할 수 있겠니? 그래서 이렇게 몰래 숨어서 감시하고 있는 거야.” “형, 그루쉔카가 오늘, 아니 내일이나 모레라도 아버지를 찾아가면 어떡하실 생각이세요?” “몰래 숨어들어서 훼방을 놓아야지. 만일의 경우에는 영감을 죽이는 수밖에. 그런 것은 도저히 참을 수 없거든.”
살인사건의 범인은 누구인가
드미트리는 약혼녀 카테리나에게 갚을 돈 3천 루블을 마련하기 위해 상인 삼소노프, 돈 많은 여지주 호흘라코바 부인 등을 찾아갔다. 그러나 그들은 비현실적인 대안으로 드미트리를 농락할 뿐이었다. 드미트리는 초조한 마음으로 길을 나서다가 그루쉔카 집에서 일하는 노파를 만나 그녀가 집에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절구공이를 집어들고 아버지 집으로 달려갔다. 그는 담장에서 정원으로 뛰어내렸다. 하인 그리고리 영감은 몸져 누워 있었고 스메르쟈코프도 간질병을 앓고 있을 테니, 인기척을 들을 만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는 아버지와 스메르쟈코프 두 사람 사이의 비밀암호로 노크를 했다.
노인은 창문으로 고개를 내밀며 그루쉔카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루쉔카는 아버지를 찾아오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다시 살며시 되돌아 나오다가 문단속을 하러 나온 그리고리 영감에게 발각되고 말았다. 그리고리 영감은 불안한 예감에 “친부 살해범아!”라고 외치며 담장을 넘는 드미트리의 다리를 붙들고 늘어졌다. 순간 그는 절구공이로 영감의 머리를 내리치고 말았다. 영감의 머리는 피범벅이 됐다. 영감이 죽었다고 생각한 드미트리는 절망하며 다시 그루쉔카 집에서 일하는 노파를 찾아갔다.
겁에 질린 노파는 그제서야 그루쉔카가 오래전 자신을 농락한 옛 애인을 만나러 모크로예라는 작은 마을로 떠났다고 털어놨다. 그 마을은 드미트리가 이미 그루쉔카와 향락의 밤을 보내며 거액을 탕진한 바 있는 곳이었다. 어디서 생겼는지 거액을 손에 든 드미트리는 고급 술과 풍성한 안주를 구해 마차를 타고 모크로예로 달려갔다. 그루쉔카가 만나고 있는 옛 애인은 꿈에 그리던 젊은 날의 낭만적인 주인공이 아니라 드미트리의 돈을 탐내는 카드 사기꾼에 불과했다. 이에 실망한 그루쉔카는 드미트리에게 진정으로 마음을 열고, 집시들을 불러 밤의 향연을 시작했다. 그러나 운명의 검은 손은 밤을 지체하지 않고 드미트리를 추적하고 있었다. 경찰과 검사보 일행이 그 자리에 들이닥쳤던 것이다.
“퇴역중위 카라마조프씨. 본인은 당신이 오늘 밤 살해된 당신 아버지 표도르 파블로비치 카라마조프씨의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기소됐음을 알려드리는 바입니다......” 예심판사가 단호한 목소리로 외쳤다. “난 죄가 없어요! 그 피에 대해서 난 죄가 없어요! 아버지의 피에 대해서 난 무죄란 말입니다...... 죽이고 싶었지만, 난 무죄예요! 다른 영감의 피에 대해서는 죄가 있지만 아버지의 피에 대해서는 죄가 없습니다. 난 살인을 저질렀어요. 한 영감을 죽였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피, 아무 죄도 짓지 않은 그 끔찍한 피에 대해 책임을 떠맡기는 곤란합니다. 그런데 대체 누가 아버지를 죽인 겁니까? 내가 아니라면 대체 누가 살인을 저지를 수 있었을까요?” 드미트리는 소리 질렀다.
“하인 그리고리 영감에 대해서라면 쓸데없는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 영감은 아직 살아 있으며, 당신이 증언한 바대로 당신이 가했던 타박상에도 불구하고 의식을 회복했으며, 의사의 진단에 따르면 틀림없이 살아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영감으로부터 당신에 관한 매우 중대한 증언을 듣게 됐습니다.” 검사보가 냉정하게 대답했다. “아버지는 어디서 살해되었나요? 어떻게, 무엇으로 살해된 거죠?” 드미트리는 검사보와 예심판사를 둘러보며 물었다. “서재 마룻바닥에 머리가 으깨진 채 쓰러진 모습으로 발견되었습니다.” 검사가 대답했다. “끔찍한 일이로군요.” 드미트리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결국 드미트리는 옷에 묻은 피, 가지고 있던 현금, 주위 사람들의 증언을 토대로 아버지 표도르를 살해한 살인범으로 체포됐다. 드미트리는 자신의 옷에 묻은 피는 아버지의 피가 아니라 그리고리 영감의 피이며, 현금 1천 5백 루블은 카테리나가 송금을 부탁했던 돈 중에서 쓰고 남은 것을 몸에 지니고 다니다가 절망적인 상황을 맞아 꺼내 쓴 것이고, 사람들의 증언 역시 과장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그의 말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드미트리가 친부살인죄로 체포되자 이반은 드미트리의 구명을 돕기 위해 진범으로 의심이 가는 스메르쟈코프를 찾아갔다. 이반의 추궁에 스메르쟈코프는 죄를 인정하면서도 자신의 범죄 배후에는 ‘모든 것이 허용된다’는 이반의 사상적 감염이 결정적이었다고 털어놓았다. 스메르쟈코프는 아무도 이반의 말을 믿지 않을 거라고 비웃으며 아버지에게서 훔친 돈 3천 루블을 내놓았다. 그리고 끝내 법정 진술을 거부한 스메르쟈코프는 얼마후 자살한 시체로 발견됐다. 이제 모든 죄는 꼼짝없이 드미트리가 뒤집어써야 할 판이었다.
드미트리의 사건은 친부살해라는 사건의 충격성 때문에 전 러시아의 상류사회에서나 언론에서 초미의 관심을 보였다. 더구나 카테리나가 약혼자 드미트리의 변론을 위해 모스크바에서 명성을 날리는 저명한 변호사를 초빙해 와서, 이 사건을 모스크바 진출의 기회로 삼으려는 검사와의 승부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법정에서 검사는 사건의 진행과정과 물적 증거에 비춰 드미트리가 살인범에 틀립없다고 단정했다. 변호사는 변호사대로 의학감정과 반론을 통해 드미트리는 살인범이 아니라고 변론했다. 이반은 스메르쟈코프에게서 받은 돈 3천 루블을 증거물로 제출하며 진범은 드미트리가 아니라 스메르쟈코프라고 증언했다. 판결은 점점 드미트리에게 유리하게 진행되는 듯했다. 그때였다. 카테리나가 대성통곡을 하며 재판장을 향해 이렇게 외치는 것이었다.
“전 지금 당장 한 가지 사실을 이야기하겠어요...... 지금 당장! 자, 여기 서류가 있어요, 저 사람이, 저 악당이 쓴 편지죠.” 카테리나는 드미트리를 가리켰다. “바로 저 사람이 자기 아버지를 죽였어요. 어서 이 편지를 보세요. 저 사람이 아버지를 죽이겠다고 제게 편지를 써 보냈어요!” 그녀는 몸을 부들부들 떨며 혹시 법정에서 쫓겨나가지나 않을까 하는 조바심에 숨을 죽인 채 흐느꼈다. “그 편지는 범행 전날 받은 것이에요. 그러나 저 사람이 그 편지를 쓴 날은 바로 편지를 받기 전날이니까, 범행 이틀 전이죠. 자, 보세요, 무슨 계산서에 써놨잖아요. 그때 저 사람은 저를 아주 미워하고 있었어요. 제게 그토록 비열한 짓을 하고도 저 화냥년의 뒤꽁무니를 쫓아다녔으니.”
그 편지에는 ‘이반이 모스크바로 출발하면, 곧 아버지를 죽일 것이오’라고 적혀 있었다. 카테리나는 표독스런 표정으로 쾌감을 느끼며 재판관들에게 말하고 있었다. 아아, 그녀는 숙명의 그 편지를 자세히 숙독해 한 자도 빠뜨리지 않고 연구한 것이 분명했다.
변호사의 변론도 이젠 소용이 없었다. 드미트리는 유죄판결을 받았고 시베리아 유형이 결정됐다. 섬망증을 앓고 있는 이반과 알료샤, 그리고 그루쉔카는 간수들을 매수해 유형 도중 드미트리를 미국으로 탈출시킬 계획을 세웠다.
“그루쉔카와 함께 그곳에 가면 인적 없는 어느 깊은 시골에 들어가서 땅을 파고 일하며 야생 곰들과 어울려 살 거야. 오지에 가면 아직 개척되지 않은 곳이 많을 테니까. 영어 공부도 하고. 그렇게 3년간 살다보면 영국인 못지 않게 영어를 잘 하겠지. 그 목적을 이루면 더 이상 미국에 남을 필요가 없을 거야. 그러면 다시 러시아로 돌아오겠어. 그리고 미국인 행세를 하면서 작은 땅조각에서나마 농사를 지을 거야. 그럼 조국 러시아 땅에 묻힐 수 있겠지. 이것만은 꼭 실천할 테야, 알료샤. 이것이 내 계획이란다. 이미 결심했지. 얘야, 너도 찬성하겠지?” 드미트리가 감정을 억누르며 말했다.
<“카라마조프씨네 형제들(Братья Карамазовы)”에서 일부 요약발췌,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풀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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