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학교 영어교사 이형식은 김장로의 딸 선형에게 영어를 개인지도하기 위해 그녀의 집으로 찾아간다. 선형의 미국유학을 위해 영어를 준비시키고자 그녀의 아버지 김장로가 그를 초빙한 것이다. 그러나 김장로의 본 뜻은 형식을 사위감으로 생각하고 그와 자신의 딸을 만나게 해 주려는 것이었다. 두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는 신식혼인을 치르겠다는 것이다.
선형과 공부를 마치고 형식은 자신의 하숙집으로 돌아오는데, 주인집 노파가 웬 여학생 차림을 한 사람이 그를 찾아왔다가 갔다면서 아무래도 기생같더라고 덧붙인다. 영문을 알 수 없는 형식은 난감해하다가 저녁 때 다시 찾아온 그녀를 만난다. 그녀는 바로 십여 년 전 자신이 몸을 의탁하였던 박진사의 딸 영채였다. 자신과 암묵적으로 혼약을 한 사이였던 그녀가 칠 년만에 그를 찾아온 것이다. 서로를 알아본 두 사람은 눈물짓는다. 그리고 영채는 그간 자신이 살아온 이력을 형식에게 들려주기 시작한다. 형식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조금 전 만나고 온 선형과 영채를 비교해 본다. 그리고는 지금의 영채의 상황에 동정을 보내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갈등하는 마음을 보이기도 하는데…….(요약)
형식 경성학교 영어교사. 개화기 지식인의 면모를 보인다. 선형과 영채 사이에
서 어느 여인을 선택해야 하는가를 고민한다. 결국 선형과 약혼하여 미국 유학을 떠난다.
영채 형식과 어렸을 때 정혼한 여인. 그러나 현재는 기생. 기생이면서도 형식을 위해 정절을지 킨다. 배학감에게 강간을 당한 후 죽음의 길을 택하려 했으나 우연히 병욱을 만나 자아에 대한 의식을 깨닫고 일본 유학의 길에 나선다.
선형 신여성의 면모를 보이나 그렇지 못한 면도 많다. 형식에게서 영어를 배운다. 형식이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하는가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고민한다.
병욱 죽기 위해 평양으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실은 영채를 죽음에서 구하는 일본 유학생. 영채의 의식의 변화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나중에 영채와 함께 다시 일본으로 떠난다.
형식, 선영과 영채를 만나다
형식은 얼른 선형을 생각하였다. 얼굴의 아름다움이나 그 부모의 귀여워함은 피차에 다름이 없건마는 현재 두 사람의 팔자는 왜 이다지도 다른고. 하나는 부모 갖고, 집 있고, 재산 있어 평안하게 학교에도 다니고, 명년에는 미국까지 간다 하는데, 하나는 부모도 없고, 형제도 없고, 어디 의지랄 곳이 없어 밤낮을 눈물로 보내는고.
경성학교 영어교사 이형식은 수업을 마치고 김장로의 집으로 갔다. 미국 유학을 준비하고 있는, 그의 딸 선형에게 영어를 개인지도 하기 위해서다. 형식은 아직 독신이라 여자와 가까이 교제하여 본 적이 없어 젊은 여자를 대하면 자연 수줍은 생각이 나서 얼굴이 달아올랐다. 찾아간 김장로의 집에서 형식은 선영을 만났다. 눈썹과 입만 가지고도 익히 미인이라 할 수 있는 선형은 누이를 많이 닮았다. 형식은 남의 처녀를 대할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한다. 선형과 그녀의 친구인 순애를 놓고 알파벳을 가르치고 형식은 자신의 하숙으로 돌아왔다.
주인 노파가 저녁상을 차리다가 “이 선생 웬일이시어.” 하며 이상하게 웃더니 아까 어떤 어여쁜 아가씨가 찾아왔더라는 말을 전했다. 머리는 여학생 모양으로 하였으나 아무리 보아도 기생 같더라는 것이다. 저녁때가 지나서 형식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선생님 돌아오셨어요?” 낮에 왔다던 젊은 여자였다. “저를 모르시겠습니까? 박응진을기억하시겠습니까.” 연이어지는 여자의 물음에 형식은 그녀가 십 년 전 자신이 몸을 의탁하고 있던 박진사의 딸 영채라는 걸 알았다.
박진사는 고아가 된 이형식을 문하에 두고 신학문을 가르친 스승이었다. 그는 세상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 헌신적인 사람이었으나 결국 혼자서 그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없게 되어 어려움을 겪었다. 그런데다가 나중에는 제자의 잘못으로 감옥에까지 갔다. 그리하여 형식을 비롯한 많은 학생들이 흩어지게 되었는데 그때 영채와 형식도 헤어졌던 것이다. 그리고 7년의 세월이 흘러 지금 그녀가 형식 앞에 다시 나타난 것이다. 두 사람 사이에는 그 당시 암묵적인 혼약이 이루어져 있었다.
“선생님을 뵈오니 돌아가신 부친과 오라버님들을 함께 뵈온 것 같습니다. 선생님께서 가신 뒤에 이삼일이나 더 있다가 저는 외가로 갔습니다.” 영채가 서럽게 울었다. 쓰러져 울던 영채는 그간의 자신의 삶의 내력을 털어놓았다. 외가에서 그녀는 물긷고 불때며 오만 어려운 일을 다 하면서도 맏오라버니댁의 자심한 구박을 받았다. 그러던 것이 은가락지가 없어지는 사건이 발생하자 그녀는 도둑으로 몰리게 되고 결국 그녀는 그곳을 도망쳐 나왔다. 또 아버지가 계신 평양 감옥으로 가던 길에 악한에게 잡혀가 욕을 당할 뻔하기도 했다.
형식은 그러한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으면서 그녀에 대한 연민과 동정을 느끼기도 하고 그녀를 선형과 대비해 보기도 했다. 영채는 영채대로 형식에게 그러한 이야기를 들려주면서도 기생으로서의 지금의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며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른다.
사실 어렵게 아버지가 계신 평양 감옥에 도착하지만 만사가 어린 영채의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그러던 중에 아버지를 구할 수 있다는 사람의 꾀임에 빠져 영채는 기생으로 자신의 몸을 팔았다. 그러나 영채는 다른 사람에게 한 번도 몸을 허한 적은 없다. 형식을 생각한 때문이다. 영채는 형식의 얼굴을 보매, 자기를 만난 것을 반가워하는 것과 자기의 신세를 불쌍히 여기는 줄은 알건마는 만일 자기가 몸을 팔아 기생이 되어 오륙 년간 불량한 남자의 노리개가 된 줄을 알면 형식이 얼마나 낙심하고 슬퍼할까 생각했다.
"내가 왜 기생이 되었던고. 왜 남의 종이 되지 않고 기생이 되었던고." 영채는 한숨을 쉬며 눈물을 씻고 형식과 노파를 바라본다. 영채는 “일후에 또 말씀드리겠습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형식 앞을 떠났다. 형식은 한참 망연히 섰다가 모자도 아니 쓰고 문 밖에 뛰어나갔다가 많은 행인 중에서 그녀를 찾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늦도록 영채 생각에 젖었다.
배학감과 월향
형식은 교문을 나서서 집으로 돌아오며 생각하였다. 그 월향이란 것이 영채가 아닌가. 어제 영채가 자신을 찾아옴도 이러한 괴로움을 견디지 못하여 마침내 내게 의탁할 양으로 온 것이 아닐까. 와서 내 의복과 거처가 극히 빈한함을 보매, 나에게 구원을 청하여도 무익한 줄을 알고 중도에 말을 그치고 돌아갔음이 아닐까.
이튿날 형식은 여덟 시가 지나서야 일어나 조반을 먹고 있을 때 경성학교 학생들인 김종렬과이희경이찾아왔다. 그리고는 자신들은 동맹퇴학을 하려 한다고 말했다. 경성학교 학감 겸 지리역사를 담임한 교사인 배명식이 술을 먹고 화류계에 다니매, 청년을 교육하는 학감이나 교사될 자격이 없을 뿐더러 또 매양 학생 전체의 의견을 무시하고 학과의 배당과 기타 모든 것을 자기의 임의대로 하며 학생의 상벌과 출석이 공평하지 못하기 때문이란다.
형식은 그냥 있을 수 없어 급히 학교로 나갔다. 그러나 배학감은 학생들이 자기를 배척하는 것이 형식이가 철없는 학생들을 유혹하여 고의로 자기를 배척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배학감은 아랫사람에게는 대하는 것은 혹독하면서도 윗사람에게 대하는 것은 오래 먹인 개가 그 주인을 보고 꼬리를 두르는 것과 같았다. 그리하여 교주 김남작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는 인물이었다. 배학감이 없는 틈을 타 교원들이 “학감과 월향의 사건”을 떠들어댔다.
“모르시오? 학감과 월향의 사건이라고 유명합니다. 근래에 월향이란 기생이 화류계에 썩 유명합니다. 평양서 두어 달 전에 왔다는데 얼굴은 어여쁘지요, 글을 잘하지요, 말을 잘하지요, 게다가 거문고와 수심가가 일품이라는구려. 그래서 아마 장안 풍류 남아가 침을 흘리고 덤빈다는데, 한 가지 이상한 것이 있어요. 아직 아무도 그를 손에 넣어 본 사람이 없다는구려. 학감이 암만하여도 견딜 수가 없어서 요새에는 단연히 그 기생을 낙적을 시켜서 아주 자기 손에 집어 넣으려 하는데 경쟁자가 많아 그 값이 천 원까지 올랐다는구료."
형식은 집으로 돌아오며 생각했다. 그 월향이란 것이 영채가 아닌가. 어제 영채가 자신을 찾아온 것도 이러한 괴로움을 견디지 못하여 내게 의탁할 양으로 온 것이 아닐까. 사실 형식은 영채를 구원할 능력이 없었다. “천원! 천원을 어찌하는고" 형식은 마음이 괴로웠다. 전달에 탄 월급 삼십오 원 중에 오 원은 플라톤 전집 값으로 동경 책사에 부치고 십 원은 학생들에게 갈라주고, 팔 원은 주인 노파에게 밥값으로 주고 이제 돈지갑에 남은 것은 오 원 지표 한 장과 은전 몇 푼이다. 형식은 마음이 괴로웠다. 이럴까 저럴까 마음을 정하지 못한 채 형식은 선형을 가르치러 간다.
“선생님” 하는 소리에 눈을 떠본즉, 선형과 순애가 서있다. 형식이 눈을 뜨매 그녀들은 은근하게 경례를 한다. 형식은 두 처녀를 바라보매 얼마큼 뒤숭숭하던 생각이 없어졌다. 수업을 끝내고 김장로의 집을 나온 형식은 이희경을찾아가그와더불어월향의집을찾아나섰다.
한편 형식을 만나고 돌아온 영채는 자신의 신세에 대한 회한에 젖었다. 그녀는 기생이 되어 처음 ‘형님’이라 부르며 따르던 월화를 생각한다. 월화는 그녀에게 “너는 부디 세상 사람에게 속지 말고 일생을 너 혼자 살아라. 만일 네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나지 못하거든”이라는 말을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기생이다. 영채가 그 동안 정절을 지켜온 것도 그 월화의 힘이 컸던 것이다.
영채는 형식이 아직 혼인을 아니 하였다는 말을 듣고 잠깐 기뻐하였으나, 자기가 기생인 줄을 알면 형식은 반드시 자기를 돌아보지 아니하리라 생각한다. 또 설혹 돌아볼 마음이 있다 하더라도 돈이 있고야 구원할 몸이어늘, 가만히 형식의 살림살이를 보니 자기를 구원할 능력이 없음을 깨달았다.
영채의 위기, 강간과 죽음
여자는 두 손으로 낯을 가리우고 흑흑 흐느낀다. 손과 발을 동여매였다. 그리고 치마와 바지는 찢기었다. 머리채는 풀려 등에 깔렸고 아랫입술에는 빨간 피가 흐른다. 형식은 얼른 치마로 몸을 가리우고 손발을 동여맨 여자를 안아 일으켰다.
이희경을 따라 월향의 집을 찾아온 형식은 당황했다. 형식으로서는 그러한 집을 드나든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월향의 집안으로 들어서자 저편 방에 이렇다 하는 화류자개 장롱이 보이고 아랫목에는 분홍빛 그물 모기장이 걸리고, 오른편 구석에는 아롱아롱한 자루에 넣은 가야금이 비스듬히 벽에 기대어 선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그것을 바라보는 형식의 머릿속에는 수천 가지 생각이 이어진다. 그는 어색하게 “월향씨”를 찾는다. “아까 오후에 청량사에 나갔소. 여섯 점에 들어온다더니 아직 아니 오는구려.” 응대나온 노파가 대답했다. 형식은 이 말에 무슨 깊은 뜻이 있는 듯이 생각하고 몸이 오싹했다.
“영채가 혼자 어떤 남자로 더불어 청량사에 가 있어! 더구나 밤이 여섯 시가 지났는데! 옳다. 청량사로 가자.” 형식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형식의 귀에는 “형식씨, 나를 건져 주시오. 나는 지금 위독하외다.” 하는 영채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형식은 전차를 탔다. 손수건으로 이마와 목의 땀을 씻었다. 누군가가 형식의 어깨를 친다. 신우선이었다. 형식은 우선의 귀에 입을 대고 “여보게, 큰 일이 났네” 하였다. 형식은 우선의 팔을 당기며 다시 말을 이어 간다. 자기의 은인의 딸이 기생의 몸이 되어 있는데 지금 청량사에서 어떤 사람에게 위협을 당하는 중이라고, 자기는 지금 구원을 가는 길이니 도와 달라고. 신우선은 그 기생이름이 무엇인가를 묻는다. 형식은 “본명은 박영채인데 계월향이라고 한다네.”라고 답하면서도 ‘계월향’이가 과연 ‘박영채’인가 하고 의심도하여 본다.
우선은 계월향이라는 말을 듣고 또 계월향이가 형식의 은인의 따님이라는 것과 월향이가 형식을 위하여 정절을 지킨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우선은 전에 월향과 나누던 대화를 떠올려 본다. 그때 월향은 간접적으로 형식에 대한 소식을 탐문했던 것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는 경성학교 교주 김남작의 아들 김현수와 배명식이 월향을 청량사로 데리고 갔다는 말에서 월향이 오늘 두사람 손에들어가는 줄을 짐작하고 종로경찰서로가서 형사에게 말을 한 후 후원을 요청하고 청량사로 향했다.
두 사람은 청량사에 다다랐다. 두 사람의 뒤에 형사들도 따랐다. 우선은 김현수가가는 집을 잘 알았다. 형식은 “여기 영채가 있는가” 하고 다리를 떨며 귀를 기울였다. 똑똑치는 아니하나 여자의 괴로워하는 소리가 나는 듯하다. 형식은 그만 눈에 불이 번뜩하면서 툇마루로 뛰어올라 구두 신은 발로 영창을 들입다 찼다.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았다. 배학감이 여자를 누르고 있었다. 형식은 배학감의 면상을 힘껏 때렸다. 여자는 두 손으로 낯을 가리고 울고 있었다. 형식은 “이것이 과연 박영채인가” 하면서 “박영채가 아니면 좋겠다” 하였다.
우선은 참다 못하여 “여보시오! 박영채씨! 여기 이형식씨가 오셨습니다.” 하였다. 이 말을 듣고 여자는 몸을 흠칫하며 두 손을 얼굴에서 떼더니 정신 없는 듯한 눈으로 형식을 본다. 형식도 그 얼굴을 보았다. 그는 월향이었다. 박영채였다. 영채도 형식을 보았다. 그는 형식이었다. 청량사에서 다방골로 오는 동안 두 사람은 아무 말도 없었다. 서로 얼굴도 보지 아니하였다.
이튿날 우선은 형식을 데리고 계월향의 집을 찾아갔다. 노파는 월향이 평양에 성묘하러 갔다는 말을 전하면서 형식에게 편지 한 통을 내어놓았다. 편지에는 전날에 영채가 형식을 찾아가 미처 다 말하지 못했던 사연과 더불어 죽음의 뜻이 담겨 있었다. “선생이시여! 이 몸은 가나이다. 십구 년의 짧은 인생을 슬픈 눈물과 더러운 죄로 지내다가 이 몸은 가나이다. 그러나 차마 이 더럽고 죄 많은 몸을 하루라도 세상에 두기 하늘이 두렵고 금수와 초목이 부끄러워 원도 많고 한도 많은 대동강의 푸른 물결에 더러운 이 몸을 던져 양양한 물결로 하여금 이 몸을 씻게 하고 무정한 어별로 하여금 죄 많은 이 살을 뜯게 하려 하나이다.”
형식은 그 길로 노파와 함께 남대문역에서 평양행 기차를 탔다. 형식은 차창을 열고 멀리 능라도 편을 바라보았다. 영채의 시체가 바로 철교 밑으로 흘러내려오는 듯하여 창밖으로 머리를 내어밀어 물을 내려다보았다. 평양역에 내린 두 사람은 전보를 쳐 놓은 경찰서로 가 보았으나 영채의 소식을 알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어 노파와 형식은 노파의 아는 집을 찾았다. 역시 기생집이다. 어린 기생 계향이 형식의 옆에서 온갖 아양이다. 형식은 그 어린 기생의 말과 모양을 보고 무슨 맛나는 좋은 술에 반쯤 취한 듯 쾌미를 느꼈다. 그 조그마한 손으로 자기의 넓적다리를 가만가만히 때릴 때에는 마치 몸에 전류를 통한 때와 같이 전신이 자릿자릿함을 깨달았다.
형식은 다음날 계향과 함께 칠성문에 다다라 잠깐 걸음을 멈추었다. 형식은 계향의 얼굴을 보았다. 그 얼굴은 동그스름하다. 두 뺨이 불그레하다. 적삼 등에는 땀이 배어 있었다. 형식은 선형의 적삼에 땀이 배어 있던 것을 생각하고 빙긋이 웃었다. 계향과 형식은 영채의 아버지인 박주사와 그의 아들들의 무덤을 찾았다. 그러나 형식은 슬퍼하지 않았다. 형식은 무슨 일을 보고 슬퍼하기에는 마음이 즐거웠다. 그는 영채를 생각했다. 영채의 시체가 대동강으로 둥둥 떠나가는 모양을 생각했다. 그러나 형식은 슬픈 생각이 없었고, 곁에 있는 계향을 보매 한량없는 기쁨을 깨달았다.
형식과 선형의 약혼과 영채의 재생
그 말이 옳은 것 같다. 과연 지금토록 형식을 사랑한 적은 없었고, 다만 허깨비로 제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들어 놓고, 그 사람의 이름을 형식이라 짓고, 그리고는 그 사람과 형식을 진정 같은 사람으로 생각하고 (하략). 이렇게 생각하매 영채는 잘못 생각하였던 것을 깨닫는 생각과 또 아직 절망하였던 중에 새로운 광명을 발하는 듯하다.
평양서 올라 올 때 형식은 무한한 기쁨을 얻었다. 형식은 외롭게 자라났다. 부모의 사랑이라든가, 형제자매의 사랑이라든가 하는 것을 모르고 자랐다. 그러다가 경성학교 교사가 되어 여러 소년들과 가까이 접하면서 그들을 지극히 사랑하였다. 형식은 동경유학에서 배운 신학문의 내용과 정신을 학생들에게 열성으로 가르쳤다.
평양에 다녀오느라 며칠 수업에 빠진 형식은 반가운 마음으로 교실에 들어섰다. 희경이가 형식을 슬쩍 보더니 웃으며 고개를 숙인다. 그리고는 그동안 어디 갔다왔느냐고 물었다. 평양 갔다 왔다는 말에 누구하고 갔다 왔느냐는 질문이 이어진다. 형식은 말이 막혔다. 학생들 사이에서 “계월향이 따라서 후후.” 하는 소리가 들린다. 형식은 떨리는 목소리로 학생들을 향해 “사 년간 교정이 이에 다 끊어졌소. 나는 가오.” 하는 말을 남기고 교실을 나온다. 교실에서 웃는 소리, 지껄이는 소리가 들린다. 배학감은 “아마 재미 많으셨겠습니다. 평양 경치 좋지요?” 한다. 형식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학교에는 사표를 제출하면 될 것이나 목숨의 뿌리를 잃어버린 현실이 슬픈 것이다. 다시 어디다 뿌리를 두고 살아야 할지 아득했다.
형식이 집에 돌아와 있는데 우선이 찾아와 영채 소식을 물었다. 형식은 “내가 영채를 죽였네” 하면서 평양에서의 자신의 모습을 자책했다. 다시 영채를 찾으러 평양을 가겠다는 것이다. 이때 김장로와 한 교회에 있는 목사가 형식을 찾아와 선형과의 혼인말을 꺼낸다. 형식은 어찌할 줄 몰라 답을 미룬다. “일후를 기다릴 것이 있어요. 그리고 오늘 오후에 나하고 김장로 댁에 같이 저녁을 먹자고 그러시던데.” 목사의 전언에 형식은 어찌 할 줄을 몰랐다. 평양에 가야 하겠지만 김장로의 집 만찬에 참여하는 것이 더 중한 것 같기도 했다. 목사의 재촉에 결국 형식은 가마고 약속했다.
형식이 찾아갔을 때 김장로의 집에는 방마다 불이 켜있었다. 선형은 고개를 숙이고 앉았다. 오늘 아침 순애를 통해 이 선생과의 혼인말을 전해 들었다. 선형은 형식에 대하여 어떻게 할지를 몰랐다. 그러나 십칠팔 세 되는 처녀의 마음이라 형식은 세상에서 다소 칭찬도 받는 사람이므로 선형은 형식이 싫지는 아니하였다.
장로는 형식과 선형을 번갈이 돌아보더니 목사를 향하여, “어찌하면 좋을까요” 하고 형식을 본다. 그러더니 “그러면 당자의 뜻을 물어 보지요” 하고는 선형과 혼인할 뜻이 있는가를 묻는다. 형식은 우습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나 예의 갖추어 답했다. “네.” 장로는 선형에게도 그 뜻을 물었다. 선형도 간신히 “네” 하고 답한다. 형식은 꿈같이 기뻤다. 논의 끝에 공부를 마치고 성례를 올리기로 결정되었다.
이제는 영채의 말을 좀 하자. 영채가 탄 평양행 열차가 어떤 산굽이를 돌아설 때에 기관차의 연기가 영채의 앞으로 지나며 그녀의 눈에 석탄가루를 집어넣었다. 영채는 지금껏 참았던 슬픔을 한꺼번에 쏟아내듯 울음을 터뜨렸다. 그런데 누가 영채의 어깨를 흔들었다. 젊은 부인이 손에 수건을 들고 서 있었다. 영채의 눈에 들어간 석탄가루를 씻어 주려는 것이다. 젊은 부인은 침착하게 영채를 도와주었다. 부인의 따뜻한 손길을 받은 영채는 죽으러 가는 자신의 신세가 더욱 처량하게 느껴져 다시 울음을 터뜨린다. 그리고 동경에서 공부를 하다 고향 황주로 가는 길인 그 부인, 여학생에게 영채는 자신의 신세를 털어놓는다.
여학생은 영채가 형식을 진정으로 사랑하였는가를 묻고 그런 것은 아니라는 영채의 대답에 그럼 왜 죽으려 하는가를 반문한다. 그리고 영채를 설득한다. “영채씨는 속아 살아왔어요. 이형식이란 사람을 사랑하지도 아니하면서 공연히 정절을 지켜왔어요. 부친께서 일시 농담 삼아 하신 말씀 한마디 때문에 영채씨는 칠팔 년 헛된 절을 지킨 것이외다. 영채씨는 이러한 낡은 사상의 종이 되어서 지금껏 속절없는 괴로움을 맛보셨습니다. 그 속박을 끊으십시오. 자유를 얻으십시오.”
여학생은 영채에게 자기 뜻에 의한 참 생활을 열어 갈 것을 설득하는 것이다. 영채는 여학생에게 끌려 황주에서 내렸다. 여학생은 영채를 자기의 친구라고 집에 소개한다. 그렇게 해서 영채는 여학생 방학 동한 그 집에 머물러 살았다. 여학생의 이름은 병욱이었다. 그녀는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음악을 배우고 있었다. 영채는 그곳에 머물면서 가정의 맛을 즐기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남자라고는 형식밖에 모를 듯하던 영채의 마음에 병욱의 오빠 병국에 대한 연정이 싹트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이미 아내가 있는 몸이다. 황주에서 여름을 보내고 영채는 병욱과 함께 동경 유학길에 오른다.
일본으로 가기 위해 기차에 오른 영채는 죽으러 가느라고 가는 길에 우연히 병욱을 만난 일과, 병욱의 집에서 칠팔 년만에 비로소 가정의 즐거운 맛을 다시 본 것과, 자기가 지금껏 괴로워하던 옥 같은 세상 밖에도 넓고 자유롭고 즐거운 세상이 있음을 깨달은 것을 두루 생각하다가 마침내 자기가 이제는 일본 동경으로 유학하러 감을 생각하매, 일신의 운명이 뜻밖에 변하여 가는 것이 하도 신기하여 혼자 빙그레 웃었다.
삼랑진 수해현장에서의 민족계몽에의 다짐
옳습니다. 우리가 해야지요! 우리가 공부하러 가는 뜻이 여기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차를 타고 가는 돈이며 가서 공부할 학비를 누나 주나요? 조선이 주는 것입니다. 왜? 가서 힘을 얻어오라고, 지식을 얻어오라고, 문명을 얻어오라고…….
영채와 병욱이 탄 기차가 남대문에 닿았다. 병욱은 혹 동창이나 만날까하여 플랫폼에 내려서 이리저리 거닐다가 도로 차에 오르는데 누가 아는 척을 한다. 병욱의 동창이었다. 선형이가 미국 유학을 떠나 배웅을 나왔다는 것이다. 병욱은 그러한 선형을 만나러 갔으나 사람이 너무 많아 제자리로 돌아오고 만다. 차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어디서 “만세, 이형식군 만세” 하는 소리가 들린다. 영채는 형식이란 소리를 듣고 가슴이 덜렁 했다. 방금 같은 열차에 형식이가 탄 것을 생각하매 알 수 없는 눈물이 떨어진다.
차가 수원역에 다다랐다. 밖은 어두웠다. 선형을 만나러 갔던 병욱이 그녀를 데리고 자리로 돌아왔다. 영채와 선형은 인사를 나누고 세 사람은 이야기를 나눈다. 선형이 자기 자리로 돌아와 형식에게 박영채를 만났다는 말을한다. 형식은 숨이 막히고 몸이 떨리도록 놀랐다. “예, 누구요?” 눈이 둥그래지며 되묻는다. 형식은 길게 한숨을 쉬더니 선형에게 영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야기를 들은 선형은 계월향이라는 기생을 두고 형식을 의심하던 마음은 풀었으나 새로운 괴로움이 자신의 가슴을 내리 누름을 깨달았다.
형식은 꼭 죽은 줄 알았던 영채의 얼굴이 한 번 보고 싶었다. 그러나 앞에 있는 선형을 보매 영채를 보러 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형식은 마침내 선형에게 영채를 좀 보고 오마는 말을 한다. 선형은 투기가 나서 고개를 돌린다. 형식은 선형의 불쾌한 낯빛을 이윽히 보더니 변명하듯 말한다. “그래도 한 차에 탄 줄 알고야 어떻게 모르는 체하겠어요.” “글쎄 가보세요. 누가 가시지 말랍니까.” 형식은 함께 기차를 탄 우선에게 영채을 보고 오마고 말하고 간다. “내가 문안하더라고 그러게.”옆에 있던 우선이 말하며 슬쩍 선형을 본다. 우선은 이 세 사람의 관계가 장차 어떻게 될 것인가 궁금해졌다. “영채씨!” 형식은 병욱과 영채 앞에 와 섰지만 차마 영채에게 말이 나오지 아니하여 병국에게 말을 건넨다. “그런데 대관절 어찌 된 일이오니까. 이전부터 영채씨를 아셨어요?”
지난 일을 형식에게 들려준다. 형식은 진실로 이 말을 듣고 영채를 원망하였다. 만일 영채가 엽서 한 장이라도 보냈으면 자기는 마땅히 영채를 찾아가서 영채의 손을 잡았을 것 같다. 형식은 부글부글 끓는 머리를 가지고 영채의 차실에서 나왔다. 선형은 형식이 영채한테 간 지가 두 시간이 지나 세 시간이나 된 것 같이 느껴졌다. 선형은 몹시 무서운 생각이 났다. 자기의 내장이 온통 빠지직 타는 듯하고 코로도 시꺼먼 불길이 활활 나오는 듯하다. 이때 형식이 돌아왔다.
휘황한 전등은 밤새도록 이 두 괴로워하는 사람의 얼굴을 비치었고 커다란 눈을 부릅뜬 시꺼먼 기관차는 캄캄한 밤과 내려쏟는 비를 뚫고 태우고 내리우는 사람도 없이 산굽이를 돌고 굴을 통하여 여러 가지 꿈을 꾸는 각가지 사람을 싣고 남으로 향했다.
형식과 선형이 잠에서 깬 것은 차가 삼랑진에 닿아서였다. 차장이 선로가 파손되어 네 시간 후에나 차가 출발할 수 있다고 했다. 형식과 선형이 기차에서 내렸고 병욱과 영채도 기차에서 내렸다. 과연 대단한 물이었다. 좌우편 산을 남겨 놓고는 온통 시뻘건 흙물이었다. 길을 잃은 것은 물론 사람 사는 촌중에까지 침입하여 사람들을 다 내몰고 온 집안을 점령하고 있었다. 장차 누렇게 열매를 맺어 가을밤 골안개에 무겁게 고개를 숙이려 하던 벼의 꽃도 다 말이 못 되고 말았을 것이다. 온 땅이 붉은 물의 세력하에 들어가고 말았다. 네 사람은 여관을 찾아들고 수재민들의 고통을 아파하며 그들을 도와주기로 뜻을 모았다.
병욱은 경찰서를 찾아가 서장에게 수재당한 사람들에게 따뜻한 국밥이라도 만들어 먹이고 싶다는 뜻을 말하고 허가와 원조를 청하였다. 병욱과 영채와 선형은 힘을 합해 음악회를 열었다. 한 시간이 못되는 짧은 음악회가 끝났다. 돈 팔십여 원이 모였다. 병욱은 그 돈을 서장에게 맡겨 수재민을 위해 잘 써줄 것을 부탁했다.“과학! 과학!” 하고, 형식은 여관에 돌아와 앉아서 혼자 부르짖었다. 그는 세 처녀를 돌아보며 말했다. “조선 사람에게 무엇보다 먼저 과학을 주어야 하겠어요. 지식을 주어야 하겠어요.”
그리고는 돌아가며 조선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각자 이야기했다. 교육과 실행을 통해 조선민들을 가르칠 것을 다짐했다. 영채의 눈에는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선형은 형식에게 들은 영채에 대한 말이 모두 참인 줄을 깨닫는다. 영채는 선형의 손을 마주 쥐며 같이 눈물을 흘렸다. 병욱도 울었다. 형식도 울었다. 마침내 모두 울었다.
형식과 선형은 지금 미국 시카고 대학 사년생인데, 구월에 귀국할 예정이다. 병욱은 지금 독일에 유학하고 있으며 겨울에 돌아올 예정이다. 영채 역시 동경에서 음악학교를 졸업하고 역시 구월에 귀국할 예정이다. 삼랑진 정거장 대합실에서 자선 음악회를 열던 세 처녀가 이제는 훌륭한 레이디가 되어 경성 한복판에 떨치고 나설 날이 멀지 않았다. 신우선은 그후 화류계에 발을끊고 수양에힘쓰며 저술에 노력하여 문명을 전토에 떨치고있다.
어둡던 세상이 평생 어두울 것이 아니요, 무정할 것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 힘으로 밝게 하고, 유정하게 하고, 즐겁게 하고 가멸케 하고, 굳세게 할 것이로다.
▣ 더재미있게읽기위하여
선각자적 의식에 근거한 서술자의 권위적 발화
『무정』이 계몽주의적 의식을 담고 있는 작품임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작가는 그러한 계몽적 의식을 일차적으로 주인공 형식의 모습을 통해 제시하고 있다, 그리하여 형식이라는 인물 자체를 선각자적 인물로 형상화하고 있다. 그는 일본 유학을 다녀왔고 지금은 경성학교 영어교사로 있으면서 학생들의 교육에 힘을 쏟는다. 그가 학생들에 대해 가지는 애정은 각별하다. 뿐만 아니라 그는 계속 신지식을 습득하는 데 게으르지 않다. 월급의 대부분을 책을 사서 보는 데 소비한다. 그러한 일련의 모습 자체가 민족 계몽의 지도자로서의 면모를 상징화하고 있다. 그의 의식을 통해 낡은 의식을 벗지 못하고 살아가는 인물들이 비판된다. 작품 말미의 삼랑진 홍수 현장에서 병욱을 비롯한 선형과 영채를 향해 민족의 앞날을 위해 모두가 힘써야 할 것을 역설하는 그의 모습은 선각자적 의식으로 민족을 계몽하고자 하는 지도자로서의 모습을 응축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그러한 형식조차도 서술자에 의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음을 우리는 여러 곳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일례로 삼랑진에서 모두가 어떻게 민족의 앞날을 위할 것인가를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형식은 “나는 교육가가 되렵니다. 그리고 전문으로는 생물학을 연구할랍니다.” 하고 말하는 대목에 대해 서술자는 다음과 같은 논평을 덧붙인다.
그러나 듣는 사람 중에는 생물학의 뜻을 아는 자가 없었다. 이렇게 말하는 형식도 물론 생물학이란 뜻은 참 알지 못하였다. 다만 자연과학을 중히 여기는 사상과 생물학이 가장 자기의 성미에 맞을 듯하여 그렇게 작정한 것이다. 생물학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새문명을 건설하겠다고 장담하는 그네의 신세도 불쌍하고 그네를 믿는 시대도 불쌍하다.
민족 계몽의 지도자적 인물인 형식조차도 서술자에 의해 미처 다 깨치지 못한 무지한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그럴 정도로 『무정』에서의 서술자는 권위적이다. 신문명을 지향하는 그의 잣대에 비추어서 비판의 대상이 되지 않는 인물은 없다. 결국 『무정』이 가지는 계몽주의적 주제의식은 그러한 권위적인 서술자의 목소리를 통해 직접적으로 발화되고 있는 것이다.
근대소설에서 혹은 현대소설에서 서술자의 목소리는 상대적으로 약화되어 나타나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이다. 『무정』은 최초의 근대장편소설이라고 평가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정』에서 확인되는 서술자의 권위적인 목소리는 『무정』의 문학사적 평가에 대한 우리의 이해의 초점이 ‘근대소설’이 아닌 ‘최초’에 놓여져야 하는 것임을 깨우쳐 준다.
내면적 갈등의 표출, 심리적 인물의 형상화
고전소설에서 근대소설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두드러지는 특징의 하나가 행동중심에서 인물중심으로 이야기의 초점이 바뀌는 것이다. 특히 인물의 내면적 갈등에 초점이 놓이기 시작한다. 확고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던 과거시대의 사람들에게는 그러한 가치관을 어떻게 실천하며 사느냐가 중요한 문제였다. 그래서 고전소설에서는 어떠한 행동을 하느냐가 중요한 문제였다. 그러나 근대사회에서는 사회가 점차 복잡해지고 다양해지면서 확고한 가치관이 부재한 현상이 나타난다. 많은 사람들은 무엇에 근거해서 살아야 할지를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근대소설에서는 그와 같은 현상을 반영하면서 인물의 내면적 갈등에 초점이 놓여진다. 이러한 경향이 극단화되면서 심리주의 소설까지 생겨난다.
『무정』이 심리주의 소설에까지 나아간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무정』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이 내면적 갈등을 겪는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행위중심적인 과거의 고전소설과는 다르게 심리중심적인 근대소설의 면모를 뚜렷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삼각관계라고 하는 연애소설의 구도를 따르고 있는 이 소설에서 그 중심축에 놓여 있는 형식은 선형과 영채를 놓고 갈등한다. 그리고 작품은 그의 그러한 갈등의 내역을 소상하게 독자에게 전달해 주고 있다. 그의 갈등하는 심리 자체가 전면으로 부상되어 전달되고 있는 것이다. 형식만을 생각하며 기생의 몸으로 칠 년 동안이나 정절을 지켜온 영채는 정작 형식을 만났지만 기생이라는 자신의 신분으로 인해 형식 앞에 자신을 떳떳이 드러내지 못하는 가운데 많은 심리적 갈등을 드러낸다. 선형 역시 형식을 두고 고민한다. 그의 생김새에 대해서는 물론 그의 내면의 마음에 대해서까지 분석하면서 그가 과연 자신을 사랑하는지, 혹여 자신을 속이고 영채를 만났던 것은 아닌지를 고민한다.
『무정』에서의 인물에 대한 심리묘사는 이러한 중심인물들에 대해서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주변 인물들에게서까지 내면적 갈등의 면모가 확인된다. 일례로 정조를 지키고자 안간힘을 쓰는 영채를, 배학감과 김현수와짜고강간의상황으로몰고간영채의주인노파에게서조차도내면적갈등이확인된다. 강간을 당한 영채가 죽음의 길을 택하고자 평양행 기차에 오르자 자신의 무모한 계획에 대한 반성이 뒤따르는 것이다. 형식의 하숙집 노파에게서도 내면적 의식이 확인되기는 마찬가지이다.
이처럼 인물들의 내면적 의식에 초점을 두고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은 인간이란 존재 자체가 단선적인 존재가 아님을 보이는 것이기도 하다. 고전소설이 보였던 선·악의 이분적 구도로는 인간이란 설명될 수 없는 존재임을, 인간이란 그와 같은 도덕적 잣대로 재단할 수 없는 다면적인 존재임을 자각한 것이기도 하다. 그것은 분명 인간에 대한 이해의 심화이다. 근대사회가 인간중심적 의식을 바탕으로 각 개인의 자아와 자유를 존중하는 시대라고 할 때 『무정』은 그러한 근대적 의식을 담아내기 시작한 것이다.
개인적 자각의 민족적 계몽 의식으로의 승화
이 작품은 형식과 영채와 선형을 들어 연애소설의 삼각구도를 보이는 작품이지만, 각 인물들에게 시대적 상징성이 투영되면서 그 주제의식이 개인적 차원에서 사회적 차원으로 전환된다. 아버지와 오라버니를 구하기 위해 기생이 되었고, 그랬으면서도 혼약을 한 형식을 위해 칠 년 동안이나 정절을 지킨 영채는 구여성의 표본이다. 기독교 집안에서 자랐으며 여학교를 나온, 그리고 미국 유학을 준비하는 선형은 신여성의 표본이다. 이러한 두 여성 사이에서 누구를 택해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형식은 개화기 지식인의 표상이다. 그리하여 그가 끝내 영채가 아닌 선형을 택하는 것은 그가 구시대적 이념을 버리고 신시대적 이념을 지향하는 인물임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것은 그 시대 우리 민족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시사하는 것이기도 하다. 작가가 형식을 고아로 설정한 것도 과거의 구시대적 관습을 떨치고 새롭게 신문명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의식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것이라 할 있다.
작가의 신문명에 대한 지향의식이 얼마나 강한가의 문제는 작품 속에서 구시대의 표상으로 자리하는 영채라는 인물을 획기적으로 전환시키는 것에서 더욱 여실히 드러난다. 기생의 몸으로 정절을 지켜온 영채는 배학감과 김현수의 마수에 빠져 청량사에서 강간을당하자 정절을 훼손당했다는 이유하나로 죽음의 길에 나선다. 고향으로 돌아가 죽음을 맞고자 한 것이다. 그런데 그런 고향길에서 일본에서 공부를 하다가 방학을 맞아 집으로 돌아오던 신여성 병욱을 만난다. 그리고 그녀와의 대화를 통해 그 동안 자신이 매여 살던 정절의 이념이 얼마나 부당한 것인가를 깨닫는다. 아버지를 위해서, 형식을 위해서 살아온 지난날의 자신의 삶이 얼마나 허황한 것이었는가를 깨달은 것이다. 병욱은 영채에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임을 역설한다. 그렇게 해서 영채는 죽음의 길에서 벗어난다. 그리고는 결국에 병욱과 더불어 일본 유학길에 오른다. 구여성의 표본이던 그녀조차 이제 신여성이 된 것이다.
그런데 작품에서 이처럼 신문명을 지향하는 인물들의 의식은 개인적 차원의 지향으로 끝나지 않는다. 형식은 선영과 약혼을 하고 미국 유학을 위해 기차에 오른다. 이 기차에는 일본 유학을 떠나는 병욱과 영채가 타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네 사람은 만나게 되고 다시 형식과 영채와 선형은 삼각관계로 인한 내면적 갈등을 겪기도 하지만, 삼랑진 수해현장을 체험하면서 그들은 자신들의 내면적 갈등을 민족계몽의 자원으로 승화시킨다. 불쌍하고 무지한 민족을 위해 그들은 온 힘을 다할 것을 다짐하는 것이다.
<“무정”에서 일부요약 발췌, 이광수 지음>
▣ 저 자 이광수(1892∼?)
최초의 근대 장편소설 『무정』창작. 민족의 근대적 개화를 열망한 계몽주의자.
부모를 여의고 동가식 서가숙하던 어린 시절
흔히 이광수의문학을이야기할때그출발선을고아의식에둔다. 그것은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고아로 자란 이광수의개인사와국권을잃고식민지지배를받아야했던민족사가비유적으로일치되면서논의의실마리를제공하기때문이다.
이광수가 부모를 여읜 것은 열 살 때이다. 콜레라로 아버지와 어머니를 차례로 잃는다. 아버지가 먼저 콜레라로 숨을 거두었다. 8일 후 어머니도 마저 세상을 등졌다. 아버지가 숨을 거두었을 때 그의 어머니는 막내 젖먹이 애란을 등에 업고, 아버지를 타고 넘는 특이한 행동을 했는데, 그가 그 연유를 묻자 어머니는 “이렇게 해야 내가 네 아버지를 따라 저 세상으로 갈 수 있고, 그래야 네가 잘될 수 있다”고 대답했다. 그때 어머니의 눈빛은 엄숙하기까지 했다. 아들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광수는그런부모님을잃은것이다.
그때부터 이광수의고생은말이아니었다. 졸지에 양친을 잃은 이광수는혼자모든것을해결해야했다. 그러면서 그는 세상이 ‘무정’한 것을 뼈에 사무치게 느껴야 했다. 그것은 일종의 한이었다. 그 한을 아버지가 죽은 그 순간부터 느껴야 했는데, 아버지가 콜레라로 죽자 동네에서는 어는 누구도 돌아보지 않았다. 가까스로 그는 한 사람에게 부탁하여 거적에 말아 집 앞에 아무렇게나 가매장을 할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마저 돌아가셨을 때는 당장 아래 여동생 둘이 문제가 되어 어쩔 수 없이 둘째 애경이는 조부의 집에 맡기고, 막내 애란이는 갓난아이인데도 남의 집 민며느리로 들여보냈다. 그때 소년 이광수의마음은찢어질듯이아팠을것이다. 그리고 자신은 매일 아침 240리 길인 정주에서 평양을 왔다 갔다 하면서 담배장사를 하는 등 억척스러운 삶을 살았다.
무엇보다도 그를 어렵게 한 것은 당장 기거할 집조차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친척집을 떠돌며 동가식 서가숙 하는 생활을 했다. 그런데 생활이 안정되지 못한 채 이곳저곳을 떠돌아야 했던 그에게는 항상 이가 많았다. 그런 그를 친척집에서 반길 리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거처를 옮길 때마다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산등성이 양지쪽에서 옷을 벗어 이를 잡고는 다른 집으로 옮겨가곤 했다. 어렸을 때부터 자존심이 강하고 신동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똑똑했던 이광수로서는그러한생활이더욱어려웠다. 그렇게 그는 의지할 곳 없는 고아로서의 서럽고 힘겨운 삶을 살아야 했고, 그런 경험들이 식민지의 민족 현실과 서로 같은 의미를 형성하면서 그의 문학적 자양분이 되었던 것이다.
민족계몽과 친일행각의 역설적인 인생여정
이광수는 1892년 평북 정주에서 전주 이씨 가문의 5대 장손으로 태어난다. 아명은 보경이고 아호는 고주, 춘원 등이다. 원래 그는 가난한 태생은 아니었으나 아버지가 도박에 정신을 파는 바람에 가세가 급격히 기울어서 가난한 유년기를 보낸다.
10세가 되던 해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되어 생활은 더욱 어려워졌다. 11세 때 동학도 박찬명대령의집에서기거하면서서기노릇을하다가 13세 때 동학이 탄압을 받으면서 수배인물이 되어 서울로 도망한다. 그리고는 일진회의 유학생으로 선발되어 일본으로 건너간다. 그곳에서 홍명희·문일평 등을 만난다. 또한 이 시기에 톨스토이의 문학작품에 깊이 빠져들면서 무저항주의·반전사상·인도주의적 입장을 갖는다.
1910년 조부가 위독하다는 전보를 받고 귀국해, 남강 이승훈의초정으로오산학원의교사가되고아버지친구의딸인백혜순과애정없는결혼을한다. 1914년 교사로 있던 오산학원을 그만두고 1916년 김성수의도움으로다시일본으로건너가와세다대학에입학한다. 도쿄에 유학하면서 그는 과감하고 도전적인 논설을 써서 젊은이들에게 많은 호응을 얻는다. 1917년 그는 매일신보에서 청탁을 받고 최초의 근대장편소설인『무정』을 연재한다.『무정』에 담겨진 자유연애사상은 당시의 젊은이들을 열광시킨다. 이 글을 연재하는 가운데 이광수는지병인폐병에시달리게되는데이것이계기가되어그의평생의반려가되는허영숙을만난다. 이후 아내와 이혼하고 그녀와 다시 결혼한다.
1919년 2·8 독립선언문을 기초하고 상해에 망명한 뒤 「독립신문」에 관계하다가, 상해까지 찾아온 허영숙과귀국한후친일파로전향했다는의심을받는다. 그로 인해 오래도록 문단의 전면에 나서지 못한다. 그러다가 1923년 송진우와김성수의도움으로「동아일보」객원으로 나서게 되면서부터 상황이 호전된다.
그의 문학은 1924년에 중요한 전환점을 맞는다. 「영대」「조선문단」의 간행에 관여하면서 「재생」을 발표하는데, 이 작품에 표명된 기독교적 인생관은 그의 종교적 전환을 시사해준다. 또한 『마의태자(1927)』『단종애사(1928)』등을 발표하여 역사소설 장르를 개척한다. 1930년대에 들어서도 그의 문학적 주조는 민족주의 ·이상주의를 바탕으로 전개된다. 1930년 장편 〈군상〉 3부작을 발표, 민족주의를 바탕으로 당대 현실의 비극성과 지향성을 제시하고, 장편『흙』을 발표, 민족주의적 이상주의를 표현했다. 그는 37년 수양동우회사건으로 투옥되었다가 병보석으로 출감한다. 그러한 가운데서도 그의 창작생활은 지칠 줄 모르고 계속된다. 1939년에 발표한 『사랑』에서는「유정」에서처럼 정신적 사랑의 가치를 역설한다.
1939년 카야마(香山光郞)로 창씨 개명을 한 이광수는이후일련의친일행각으로사회적지탄을받는다. 그해 대표작의 하나인 「무명」을 발표하기도 하지만, 소위 ‘북지황군위문단’에 협력, 이로부터 변절자로 낙인이 찍힌다. 이어 친일단체인 조선문인협회 회장이 되고, 41년에는 태평양전쟁 발발 후 일제의 강요로 각지를 순회하며 친일연설을 한다. 43년에는 조선총독부의 강권으로 한국인 학생의 학병권유차 최남선과함께도일한다. 1945년 해방 후 그는 친일파로 지목되어 극심한 비난을 받는다. 반민법이 제정되면서 친일파라는 이유로 구속되기도 하는데, 병보석으로 풀려난다. 이후 6·25가 발발하면서 납북되었다.
▣ 글쓴이 장소진
서강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동 대학원에서 「이광수의 ‘무정’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고 「현대소설의 플롯 유형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강대학교에 출강 중이다. 주요 논문으로「이태준 문학에서 노인의 문제」 「시대의 전환과 가족사의 전이-박경리의 ‘김약국의 딸들’」 「자기비판과 소설의 목소리-이태준의‘해방전후’와 지하련의 ‘도정’」등이 있고, 저서에 『현대소설 플롯론』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