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문』은 순결한 사랑과 종교적인 문제를 다룬 지드의 자전적 작품으로, 1909년 2월에 복간된 『신프랑스평론』에 4회에 걸쳐 연재된 뒤 메르퀴르 서점에서 출판되었다. 『좁은문』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 특히 알리사는 지드의 부인이자 외사촌 누이였던 마들렌느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지드는 실제로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마들렌느에게 집착하며 구애한 끝에 결혼했다. 하지만, 지드의 동성애적 성향 때문에 두 사람은 원만한 결혼 생활을 꾸리진 못했다. 그럼에도 지드는 변함없이 마들렌느를 사랑하였다. 이런 그의 삶이 바로『좁은문』에 잘 나타나 있는 것이다.
진정으로 사랑하지만, 종교와 하나님이라는 존재에 대한 생각들로 결국 알리사는 제롬과의 사랑 대신에 천상의 기쁨, 하나님 나라에 도달하려는 마음을 선택했다. 하지만 이런 그녀의 사랑을 누가 비난할 수 있을까? 오히려 그녀가 거기에 이르려고 했던 이유는, 자신만을 생각해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제롬 또한 그곳으로 이끌기 위해서였다고, 그래서 자신의 사랑을 감춰야만 했다고, 그렇기에 가여울 수밖에 없는 여인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는 것일까?
언뜻 보면, 『좁은 문』에서 가장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은 알리사일지 모른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써라’는 말씀에서부터 알리사를 향한 제롬의 사랑은 시작된다. 시름에 빠진 그녀의 눈매는 제롬에게는 성녀의 명상의 표시이며, 그녀의 모든 행동은 바로 덕을 완성하려는 노력의 증거로 생각된다. 그러나 결국 알리사는 제롬과 함께 들어가기엔 너무 좁을 것 같은 그 ‘좁은 문’을 혼자서 걸어들어가 천상의 영광에 이르기를 결심한다. 너무도 사랑하기에,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자신의 욕망을 단념하고 희생시킨 사람이 바로 알리사라고 생각한다면, 이 소설 속에서 가장 지순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한 사람은 바로 알리사가 아닐까?
육감적인 어머니에 대한 반발로 알리사는 하나님과 더불어 사는 천상의 기쁨을 추구하고 있는데 반해, 제롬은 알리사를 덕의 상징으로 보고 그녀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며, 그 정신적 결합에 도취했다. 그런 시각으로 작품을 읽는다면, 마지막에 눈을 떠야 한다고 말한 줄리에트의 애절한 외침은 제롬의 잘못된 사랑관을 깨우치기 위한 진실한 대답, 바로 작가의 대답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영혼이 행복함보다 무엇을 더 바랄 수 있는가?’하고 묻는 제롬에게 ‘성스러움’이라고 대답하는 알리사의 믿음과 고행은 어쩌면 단순히 너무나 정신적이고 감미로운 사랑으로 비쳐질 수도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 바닥에 ‘정신만으로는 남녀의 완전한 사랑이 결합되지 않는다’는 지드의 신념이 깔려 있다. 즉, 지드는 천상을 향한 플라토닉한 정신적 사랑만으로는 완전한 사랑을 이룰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좁은 문』은 그만큼 여러 해석이 가능한 작품이다.
1938년, 결코 행복한 결혼 생활은 아니었으나, 지드는 더없이 사랑했던 아내를 잃고 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후 지드는 종교적 도덕주의자로 남았으며, 1947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요약)
▣ 어떤사람들? 무슨 이야기?
제롬 주인공. 외사촌 누이인 알리사를 사랑하게 되지만, 결국 사랑의 결실을 맺지 못한다.
알리사 제롬의 외사촌. 사랑과 신앙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결국 신앙을 선택한다.
줄리에트 알리사의 여동생. 제롬을 사랑했지만, 결국 다른 남자와 결혼한다.
조숙한 아이들 그리고 사랑의 시작
제롬은 열두 살도 안되어 아버지를 여의었다. 제롬의 어머니는 그의 교육을 위해 파리로 옮기기로 결정했고, 그녀의 벗이자 가정교사였던 미스 애슈버튼도 함께 파리로 왔다. 제롬은 공부에 매우 많은 관심을 보이면서 또래 아이들보다 공부에 열중했고, 그런 탓이었는지 몰라도 연령에 비해 조숙한 편이었다.
으레 여름마다, 제롬 일행은 뷔콜랭 삼촌이 사는 노르망디 근처의 퐁괴즈 마르로 휴양을 갔다. 근처 다른 곳에 비해 별다를 것은 없었지만, 퐁괴즈 마르는 아름다운 정원과 좋은 산책로가 많은 곳이었다. 산책을 하고 나면, 제롬은 사촌들과 함께 공부하거나 담소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는데, 그 무렵 정신적으로 성숙해진 탓인지 그는 외사촌 알리사를 보는 순간 그녀가 특별한 사람이라는 걸 느꼈다. 알리사 역시 그랬다.
퐁괴즈 마르에는 뷔콜랭 삼촌과 외숙모 뤼실르, 그리고 알리사와 줄리에트, 로베르 삼남매가 살았다. 제롬의 기억에 따르면, 뤼실르는 그리 단정치 못한 차림을 하고 있어서 제롬의 어머니는 늘 그것을 언짢아했다. 태생 또한 그리 조신하지 못했고, 늘 가족과는 좀 동떨어진 듯 생활하는 여인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제롬에게 중요한 것은 알리사였다. 너무나 아름다운 외모여서 오히려 서글퍼보이는 그녀는 제롬에게 신비로움을 전하는 하나의 여신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에 비해 줄리에트는 밝고 명랑해서 제롬과 놀이상대가 되었고, 어린 로베르도 곧잘 함께 놀았다.
어느날 제롬은 점심식사 후에 산책을 하다가 알리사를 보고 싶은 생각이 나 다시 삼촌댁을 찾아갔다. 거기서 제롬은 외숙모 뤼실르가 낯선 청년과 줄리에트, 로베르와 함께 있으면서 희희낙낙하는 모습을 보았다. 순간적으로 알리사가 생각난 제롬이 그녀의 방에 가보니, 그녀는 울며 기도하고 있었다. 그 순간 제롬은 자신의 한평생을 이 소녀를 위해 바칠 것을 맹세하고는,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이제부터 알리사는 제롬이 살아가는 목표가 될 것이며, 온 힘을 다해 그녀를 보호하는 것만이 그의 임무가 될 것이었다.
이 일이 있은 후 얼마 안되어, 제롬은 어머니에게서 뤼실르가 어떤 젊은 남자와 가출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때문에 제롬의 어머니는 외삼촌이 있는 르브르로 떠났고, 며칠 후 제롬도 그곳으로 갔다. 그날은 토요일이었으므로, 제롬은 다음날 교회에서 알리사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기뻐하였다. 주일의 설교는 좁은 문에 대한 것이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써라.’
그 문구를 듣는 순간 제롬은 그 문 앞에 서 있었다. 그 문은 곧 알리사의 방문이 되었고, 그는 그 문으로 들어가기 위해 모든 애를 쓸 것이며, 모든 악한 생각들을 버릴 것이라 다짐하였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은 좁으니......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그렇다. 그 길은 좁고 험난하므로 고난이 따르겠지만, 그는 다짐했다. 그 고난, 즉 알리사를 조금 멀리해야 하는 고통을 이겨내 ‘적은 사람들’ 중에 꼭 그 문을 찾는 이가 되고 말리라고.
사랑의 고뇌와 새로운 계획
그날 이후로 제롬은 절제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다른 이에게는 힘들어도, 제롬에게는 알리사라는 좁은 문에 다다르기 위해 치러야 할 고난이 바로 절제였기에,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리라 다짐했기에, 참고 견디는 것은 자연스러움 그 자체였다. 어느 날 제롬은 책을 읽다가 저만치에서 알리사와 외삼촌이 산책하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는 것을 듣게 되었다. “제롬은 현명하죠? 훌륭한 사람이 될 것 같죠?” 알리사의 물음에 외삼촌은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한 조건들을 얘기해주었다. 자신이 화제가 된 대화를 들었음에 부끄러움을 느낀 제롬은 저녁이 되자 그 사실을 알리사에게 털어놓았다. 알리사는 그건 부끄러운 행동이라면서 제롬을 꾸짖었지만, 오히려 그것을 기회로 제롬은 알리사에게 좀더 상세하게 자신의 마음을 내보였다. 알리사만이 자신이 하나님께 다다르게 해주는 그 길이라는 것을. 하지만, 예상 밖으로 알리사는 순수한 믿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즉, 하나님 안에서 하나가 되자는 것이었다.
그 무렵 제롬의 어머니는 제롬이 알리사를 사랑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몸이 쇠약해져 죽어가면서도, 제롬과 알리사를 축복했다. 그리고 얼마 후 어머니는 세상을 떠났다. 슬픔에 젖어 있는 제롬은 그런 한편으로 장례식 때문에 파리에 올 알리사를 생각하며 한가닥 마음의 위안을 얻었다.
부활절 방학을 맞아 제롬은 플랑티에 이모댁에서 지내게 되었다. 어머니와는 달리 이모는 조금 수다스럽고 수선스럽긴 했지만 지극히 정이 많은 여인이었다. 그녀는 제롬에게 앞으로의 계획과 알리사와의 관계를 이야기하면서, 사람의 관계를 효과적으로 만들어나가는 데 도움을 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 두 사람의 생각은 잘 이해하지 못했다. 어머니의 죽음은 오히려 둘을 더욱 긴밀히 묶어주었고, 그러면서 그들은 아름다운 여름을 맞이했다.
여느날처럼 제롬은 줄리에트와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산책을 하고 있었다. 불쑥 줄리에트는 제롬에게 왜 알리사와 당장에 약혼하지 않느냐고 물었고, 제롬은 나름대로의 생각, 아직 불확실한 미래를 알아보고 결정해야 한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이미 서로의 마음이 알려진 이상, 약혼이란 약속의 무의미함도 덧붙였다. 그러면서 먼 미래에 있을 이런저런 상상들을 이야기할 때쯤, 문득 멀리서 알리사가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자기의 어떤 말도 잘못된 것이 없다고 여겼던 제롬은, 하지만 이후의 알리사의 행동을 보고는 자신이 무엇 때문엔가 그녀의 마음을 아프게 했음을 감지했다. 하지만 제롬이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려 하자, 먼저 알리사는 약혼하지 말자, 지금의 행복을 지키자고 다짐하는 것이었다. 제롬은 착잡한 심정이 되어 짧은 헤어짐의 인사만을 나눈 채 돌아와야 했다.
새로 시작된 생활 중에, 제롬은 같은 고향친구인 아벨과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그에게 자신의 사랑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군생활과 여행으로 좀더 자신만만해진 아벨은 곧 제롬에게 이런저런 충고를 내놓았는데, 그 내용이란 여자에게 말하도록 공격기회를 주면 안 된다는 것, 이러저러하게 여자를 다루어야 한다는 것들이었다.
그 무렵 알리사에게서는 제롬이 좀더 많은 경험을 하게 될 때까지 약혼을 미루자는 편지가 왔다. 그것은 제롬에겐 아픔이자 절망의 근원이 되었다. 아벨이 그 내용을 듣고는 알리사를 기습적으로 방문하자고 제의했고, 상심해 있던 제롬도 그에 동의했다. 하지만 그런 식의 갑작스런 방문은 전혀 되움이 되지 못했을 뿐더러, 오히려 그의 철없는 행동을 알리사가 내심 꾸짖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제롬은 그 방문을 통해 줄리에트가 누군가로부터 청혼을 받았다는 얘기를 들었고, 함께한 아벨이 줄리에트와 대화를 나누면서 그녀를 사모하게 되었음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은밀한 계획을 세운다. 아벨의 말에 따르면, 줄리에트에게 아벨이 청혼하면 분명 그녀는 그것을 받아들일 것이라는 것, 또한 자신들이 약혼하기 전에 반드시 제롬과 알리사가 약혼을 해야 한다는 등등, 이런저런 내용들이었다. 그럼에도 제롬은 아득한 희망을 바라보면서, 다시 그의 공부에 열중하는 것이었다.
커다란 충격과 떨어져 지낸 시간들
신년휴가를 기다리면서, 언제나 제롬은 알리사에게 장문의 편지를 쓰곤 했다. 어떤 날은 친구들과의 만남도 뒤로한 채, 편지 쓰기에 열중했지만, 알리사로부터 오는 답장은 늘 그를 불안하게만 했다. 12월 하순이 되어 제롬과 아벨은 르브르로 향했다. 제롬은 또 수다쟁이 플랑티에 이모에게 잡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거기서도 줄리에트의 청혼 소식을 듣는다. 결국 제롬은 이모에게 알리사가 오히려 약혼을 미루자고 했다고, 그래서 몹시 괴롭다고 심정을 토로했고, 그 말을 들은 플랑티에 이모는 자신이 직접 알리사의 의중을 떠보겠노라고 다짐을 하였다.
그 다음날 이모의 말대로, 알리사는 트리장식을 도우러 이모댁을 방문했고,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제롬은 초조한 심정으로 산책을 했다. 그런데 산책에서 돌아오자마자 제롬은 이모에게서 꾸지람을 들었다. 이모의 말로는 알리사가 오히려 제롬보다 더 어른스럽다는 것이었다. 즉 알리사 자신은 제롬에 비해 나이가 많아, 오히려 줄리에트 또래가 맞을지 모른다고 염려했노라는 것이다. 이런 얘기를 듣다 보니 제롬은 아벨이 곧 줄리에트에게 청혼하고, 그렇게 되면 만사가 쉽게 풀려 자신은 알리사와 함께할 수 있으리라는 즐거운 상상에 빠져들었다.
저녁이 되면서 이모댁에는 만찬에 온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거기서 제롬은 알리사를 보았다. 그녀와 얘기할 기회를 노렸으나 너무 사람이 많아 좀처럼 시간을 내지 못하던 중에, 제롬은 줄리에트로부터 은밀히 이야기하자는 제의를 받는다. 줄리에트의 얘기는 제롬을 멍하게 만들어버렸다. 줄리에트가, 아벨의 약혼녀가 될 듯했던 그녀가 사실은 제롬을 사랑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제롬은 너무나 어리둥절했다. 그는 약혼을 신청하겠다던 아벨을 통해서도 같은 말을 들었다. 그제서야 비로소 제롬은 알리사가 왜 약혼을 기피하려는지에 관한 진실을 알게 된 것이다. 바로 자신의 사랑을 동생에게 양보하려는 마음 때문이었던 것이다. 이것을 깨달을 즈음, 줄리에트는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과 약혼하겠다고 발표해버렸다. 그러고 나서는 발작적으로 기절하고 말았다.
그 일이 있은 후, 제롬에게만은 외삼촌 댁 방문이 금지되었다. 아직 줄리에트가 예민하다는 이유였다. 이런 소동으로 아벨 역시 괴로웠던지 여행을 떠난다는 짤막한 메모만을 남기고 사라져버렸다. 제롬은 다시 파리로 돌아와 알리사에 편지를 쓰곤 했다. 알리사는 줄리에트에 대한 소식, 그리고 그녀의 약혼자가 될 테시에르라는 사람의 이야기를 적어보냈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을 때, 제롬은 플랑티에 이모로부터 알리사가 보낸 편지를 받았다.
그 편지에서 알리사는 제롬의 공부를 방해하고 싶지 않아 긴 편지를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오히려 제롬은 둘만의 비밀을 이모에게 들킨 것 같아 괴롭기만 했다. 그후에도 계속 두 사람은 편지를 주고받았다. 7월에 있을 줄리에트의 결혼소식, 그리고 두 사람의 결혼과 신혼여행에 대한 소식들이 오갔다. 이들의 편지는 제롬이 학업을 마치고 여행 중일 때도 계속되었다. 제롬은 편지 속에 담긴 자신에 대한 알리사의 사랑, 그녀의 외침을 듣는 듯했다. 너무나 벅차고 기쁠 따름이었다.
여행에서 돌아와 군 복무를 하게 되었을 때도, 오히려 제롬은 오랜 시간 동안 알리사를 볼 수 없다는 것을 진리에 이르기 위한 일종의 고행처럼 여기기로 했다. 그 사이 줄리에트는 아이를 낳았다. 헤어진 지 거의 몇 년이 흘러 제롬이 제대할 때쯤에서야 제롬과 알리사는 마침내 재회를 하게 되었다.
어색한 재회 그리고 헤어짐
두 사람은 플랑티에 이모 댁에서 만났다. 그러나 그들의 재회는 정말로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이모의 배려로 겨우 단 둘이서만 만나게 되었는데, 그때도 역시 너무나 어색한 나머지 기쁨보다는 씁쓸한 공허감과 아픔만이 느껴졌다. 이후 제롬은 다시 알리사를 만나려 했지만, 역시 그 둘만의 만남이 아닌 다른 사람이 끼여들게 되었다. 이상한 일이었지만 오히려 여럿이 모여 있을 때면 어색함이 덜한 듯했다. 하지만 제롬은 여전히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 그가 거북스럽다면 알리사 역시 그러했을 테니까.
파리에 돌아온 직후, 제롬은 앞으로는 더 이상 만나지 말자는 알리사의 편지를 받았다.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알리사는 재회했을 때 제롬이 느꼈던 그 거북스러움, 그리고 그에 대한 아픔들을 적어놓았다. 그리고는, 오히려 제롬과 떨어져 있을 때 그를 더 사랑하고 있었던 것 같다고, 두 사람이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주님밖에는 그 중재자가 없다는 말도 전했다. 제롬은 괴롭기만 했다. 제롬은 곧 자신이 온 이성과 감성을 다해 그녀를 사랑하고 있음을 알렸고, 그렇다면 잠시 동안 서로의 아픔을 잊기 위해 편지 왕래를 중단하자는 말을 적어보냈다.
이후 제롬은 그녀를 부활방학 때나 만날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는 다시 학업에 몰입했다. 하지만 미스 애슈버튼의 죽음으로 두 사람은 좀더 일찍 예기치 못한 상봉을 한다. 장례식 내내 두 사람은 별다른 말은 하지 못하고, 부활절에 만나자는 약속만 남기고는 다시 헤어졌다.
4월의 부활방학 때 퐁괴즈 마르에 간 제롬은 그를 따뜻하게 맞아주는 삼촌과 정원에 있는 알리사를 만나게 되었다. 정말로 행복한 순간이었다. 전의 어색한 만남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두 사람은 소중한 재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서로의 만남을 위한 한가지 약속을 했다. 만일 머무는 도중에 제롬이 알리사를 힘들게 한다면, 그가 떠나줄 것을 알리사가 표식으로 알리기로 한 것이다.
그후 두 사람은 전처럼 정원을 돌보며, 책을 읽고, 예전처럼 평온한 시간을 보냈다. 어느 날 제롬은 슬그머니 줄리에트의 이야기를 꺼내면서, 이제 동생이 행복해졌으니 약혼해도 좋지 않은지를 물었다. 헌데, 뜻밖에도 알리사는 지금처럼 행복한 시간을 보낸 적도 없는데 왜 그것을 깨뜨리려 하느냐고, 사람들은 행복을 위해 태어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제롬은 인간은 분명 행복하기 위해 태어났다고 언성을 높였다. 그럼에도 여전히 알리사는 사람은 성스러움을 위하여 존재한다고 고집했다. 결국 제롬은 울고 말았다. 알리사가 없이는 그 길에, 그 행복에, 그 성스러움에 다다를 수 없다고 말하면서.
그날 저녁, 알리사는 제롬이 떠날 것을 암시하듯 첫날부터 줄곧 걸고 있던 자수정 목걸이 없이 나타났다. 그리고 제롬은 다음날 아침 그 집을 나왔다. 돌아오는 길 내내 제롬은 너무나 혼란스러웠다. 알리사는 제롬으로 하여금 좁은 문에 이르게 해주는 유일한 길이었다. 덕성이란 것도 오로지 알리사에게 가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었다.
이제 두 사람의 편지 왕래는 끝나고 말았다. 얼마간의 여행 후 제롬은 다시금 퐁괴즈 마르로 향했다. 거기서 제롬은 무언가 달라진 알리사를 발견했다. 여느 때처럼 상냥했고 친절했지만, 알리사는 예전과는 달리 식탁보를 챙기고 그저 부지런히 일하는, 어딘가 비어 있는 듯한 모습만을 갖고 있었다. 제롬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던 주제였던 책들도, 그저 너저분한 신앙심만을 담고 있는 서적들로 바뀌어 있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알리사의 시간에는 제롬을 위한 차례란 없어보였다. 자신의 변한 모습에 실망했다는 걸 안다고, 어쩌면 제롬은 자신의 옛 환영만을 사랑했을지 모른다고 알리사는 말한다. 제롬은 부인했지만, 역시 이번의 만남도 서로의 다툼으로 끝나고 말았다.
제롬은 다시 파리로 돌아왔다. 거기서 끊임없이 생각을 거듭했다. 어쩌면, 정말 알리사의 말대로 자신은 그녀의 환영을 만들어놓았고, 그 환영이 저 바닥에 있게 되면서 자기 자신도 그곳으로 추락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괴로울 따름이었다. 그때쯤 제롬은 아테네학원의 추천으로 그곳에 입학하기로 결정했다. 이젠 야망도 흥미도 없었다. 단지 그곳을 벗어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도 제롬은 또 알리사를 만났다. 3년 후 어느 여름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뜻밖에도 전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의 만남. 알리사는 거기서 제롬을 기다렸다고 말했다. 알리사를 마주한 순간, 제롬은 여전히 자신이 알리사를 사랑하고 있음을 느꼈다. 하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알리사는 이제 그들의 사랑은 과거며, 그러니 그것을 아쉬워하지 말자고 말하고 있었다. 그들의 마지막 만남은 그렇게 끝나버렸다.
알리사의 죽음, 그리고 새로운 재회
그 일이 있은 후, 한 달도 안되어 줄리에트로부터 전갈이 왔다. 이제 알리사는 그들 곁에 없다는 것이다. 알리사는 제롬이 다녀간 후 사라졌는데, 가족들은 그녀를 찾으려고 애를 쓰다가 결국 어느 수녀원에서 그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했다. 알리사는 여러 물건과 재산들을 이미 정리해놓은 뒤에 수녀원으로 은신해 있다가 조용한 죽음을 맞이했다는 것이었다.
얼마 후 제롬 앞으로 알리사의 일기가 배달되었다. 거기에는 알리사가 그동안 써놓은 그녀만의 비밀들이 적혀 있었다. 알리사는 진정으로 제롬을 사랑하고 있었다. 단지 제롬만을 위해 아름다워지길 원했고, 완전해지고 싶어했다. 하지만 그녀는 완전함이란 그를 위한 것이 아니라 주님을 위한 것이라는 것, 때문에 제롬이 없어야만 그것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생각들도 적어놓았다. 결국 그녀는 주님 앞에 이르기 위해, 그리고 제롬을 그곳에 이르게 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했던 것이다. 자신의 사랑을 감추고 없애려고 노력하면서.
오랜 시간이 흘러, 오랜만에 제롬은 줄리에트와 재회했다. 줄리에트는 예전의 플랑티에 이모처럼 변해 있었다. 조금은 수다스럽고 정신없이 분주한 그런 아줌마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제롬은 줄리에트가 낳은 막내딸을 소개받았는데, 아이의 이름이 알리사라고 했다. 줄리에트는 제롬에게 알리사의 대부가 되어줄 수 있는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제롬은 기쁘게 그 제의를 수락했다. 잠시 조용해진 틈을 타서, 줄리에트는 제롬을 어느 구석방으로 안내했는데, 거기에는 예전에 알리사가 쓰던 물건들이 그대로 잘 보존돼 있었다. 줄리에트는 가끔 조용해지면 이곳에 와서 휴식을 갖는다고 말하며, 제롬에게 물었다. “오빤 희망 없는 사랑에 충실할 수 있다고 믿나요? 그리고 그 사랑이 일상 속에서도 계속될 거라고 생각해요?” “물론 그럴 수 있지.” 이미 저녁이 되어가고 있었다. 줄리에트는 잠시 가구들을 쓰다듬다가 한참을 말없이 있었다. 그리고는 다시금 입을 열었다. “이제 잠에서 깨어나야 해요. 오빠.”
<“좁은 문(La Porte troite)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앙드레 지드 지음>
▣ 앙드레지드의생애와작품
1869 11월 22일 파리 출생
1877 알사스학원에 입학하지만 품행 불량으로 정학 처분을 받는다.
3개월 후 다시 등교했으나 홍역에 걸려 휴학한다.
1879 알사스 학원에 복교하다.
1880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다. 몸이 약해 다시 휴학, 요양한다.
1884 알사스 학원에 다시 입학하지만 얼마 후, 다시 학업을 중단하고 이때부터 독서에 열중한다.
외사촌 누이 마들렌느를 사모한다.
1887 알사스학원의 수사학급에 입학
1888 앙리 4세 학교에 입학하나 곧 퇴학하고 대학입학 자격시험에 열중한다.
1889 대합입학 자격시험에 합격
1891 파리대학 철학과에 입학했으나 곧 퇴학한다.
1892 입대했으나 폐결핵 진단을 받고 제대한 후,『앙드레 왈테르의 수첩』을 익명으로 출판한다.
1895 알제리 행.『팔뤼드』출판, 어머니 사망, 마들렌느와 결혼한다.
1897 『지상의 양식』출판
1901 『배덕자』출간
1909 『좁은 문』을 프랑스 『NRF』지에 연재
1913 『교황청의 지하도』출간
1917 미소년 알레그레와 동성애에 빠져 스위스로 여행가다.
1919 『전원교향곡』출간
1920 수기 『한 알의 밀알이 죽지 않으면』1부를 익명으로 출판
1921 역시 익명으로 2부 출간
1926 『사전꾼들』출간
1927 『콩고기행』출간
1937 『소련기행』출간
1938 아내 마들렌느를 잃다.
1947 노벨 문학상 수상, 옥스퍼드 대학에서 명예 박사학위 수여받다.
1951 2월 19일 자택에서 사망하다.
▣ 참고문헌
주수진, 「앙드레 지드의 인간과 신」, 경희대학교, 1996
이연경, 「자전적 소설을 통해 본 앙드레 지드의 이원성 연구」, 중앙대학교, 1998
오병애, 「주인공들을 통해 본 앙드레.지드의 정신적 여정」, 이화여자대학교, 1987
이성언, 「Gide의 ‘좁은 문’과 ‘배덕자’에 나타난 주인공의 자아형성 과정에서의 억압과 분출에 관한 연구」, 숙명여자대학교, 1997
▣ 글쓴이 배상숙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불어과 대학원 3학기 생. 파스칼의 「팡세」에 대한 논문을 준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