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들이여, 우리들 서로 가까이 다가앉자. 우리들 모두가 가지고 있는 공통의 불행만을 생각하자. 이 세상에는 적도 악인도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불행하고 불쌍한 사람들만이 존재하고 있다. 반드시 죽어갈 운명을 지닌 모든 것에게 생의 무수한 작은 강이 흘러드는 미지의 바다에 나는 나의 작품과 나의 모든 것을 바친다. -『장 크리스토프』에 부치는 글
자유 사상과 음악의 만남
프랑스 작가인 로맹 롤랑은 1866년 프랑스 중부의 작은 도시 클람시에서 출생했다. 아버지 에밀 롤랑은 부유한 공증인이었으며 자유 사상의 신봉자였다. 어머니 앙투와네트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그에게 음악에 대한 사랑을 심어주었다. 롤랑이 태어난 당시 프랑스 사회는 나폴레옹 3세 정치의 마감, 1870년 보불 전쟁과 제3공화국 성립, 그 이듬해에는 파리의 노동자들이 정부에 대항해 거리에서 장렬한 싸움을 벌인 파리 코뮌이 일어나는 등 어수선한 사건들이 계속되었다. 이러한 사회적 상황은 『장 크리스토프』에도 잘 나타나 있다.
14세 때 파리로 이사온 롤랑은 생 루이 중학교에 들어가 공부하는 한편, 셰익스피어나 톨스토이의 작품을 읽고 베토벤과 바그너의 음악에 열중하게 되었다. 그후 고등사범학교에서 역사학의 대학교수 자격을 취득하고 로마로 유학가서 바그너의 제자였던 독일인인 말비다 부인에게서 음악의 뜻을 배웠다. 귀국 후 모교와 소르본에서 예술사와 음악사를 담당했으나 냉정한 성격 때문에 학생들을 멀리하게 되었다.
초기에 그는 희곡을 많이 집필하였으나, ‘드레퓌스 사건’을 통해 사회주의적 경향이 짙은 문학가인 페기를 알게 되고, 페기가 창간한「반월수첩」에 『베토벤의 생애』를 발표하여 호평을 받았다. 그리고 1904년으로부터 1912년에 이르기까지 8년에 걸쳐 대작 『장 크리스토프』가 「반월수첩」에 실렸다. 그 대하소설은 그간에 외국어로 옮겨져 폭발적인 인기를 거두고, 롤랑은 이미 저명한 신진작가가 되어 젊은이의 지도자라 불리고 있었다. 롤랑은 『장 크리스토프』를 완성한 지 얼마 안되어 이 작품으로 아카데미 프랑세즈로부터 문학 대상을 받았으며, 1916년에는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진정한 세계 평화를 위해
1914년 롤랑이 스위스를 여행하고 있을 때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 이 사건은 인류 모두가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그의 생각을 굳히게 만들었다. 세계의 영원한 평화를 원했던 롤랑은 전쟁이 끝난 뒤 인도의 시인 타고르와 교신하여 “이제 유럽은 자기 손으로 자기를 구하는 것만으로는 안됩니다. 당신들 동양인들과도 손을 잡고 해나가지 않으면 진정한 세계 평화는 이루어질 수가 없습니다”라는 편지를 썼다.
유년시절부터 당시 프랑스의 비참한 실상을 보아온 롤랑은 당연히 전쟁에 관해서, 건전한 정치와 사회와 문학에 관해서 깊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는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받은 상금을 적십자사와 사회사업에 기부하였다. 또한 파시즘이 대두되자 차츰 실천적 정치 활동에 참가하고 반파시즘 투쟁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다. 그후 롤랑은 암스테르담의 반전세계회의 의장을 맡기도 했다. 그러나 그 뒤 얼마 안 되어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독일군 점령하에서의 괴로운 생활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는 저항 운동 동지들에의 공감과 격려의 마음은 이 노문학가의 가슴속에서 꺼질 줄을 몰랐다. 1944년 8월 마침내 연합군이 노르망디에 상륙하고 파리가 해방되었을 때, 다른 문학가들과 함께 롤랑도 파리에서의 축하회에 참석했다. 그러나 그해 12월 30일, 일흔여덟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예술의 창작은 곧 영혼의 표현
로맹 롤랑은 20세기 유럽의 지성임과 동시에 양심이었다. 그는 항상 진리를 추구하였고, 진리와 사랑만이 인생과 사회의 건전한 생명력을 추구한다고 믿었다. 작가로서의 롤랑은 같은 시대의 프랑스 문학계에서 독자적인 길을 걸었다. 그 시대를 풍미했던 자연주의와 예술지상주의 양쪽 모두에게서 떨어져 있었다. 롤랑에게 있어 예술의 창작은 ‘영혼의 표현’이며, 영혼은 항상 생명을 떠나지 않으므로, 영혼의 표현은 곧 생명과 생활의 표현이었다. 로맹 롤랑의 생명주의는 자연주의적인 본능주의도 아니며, 물론 생명의 직관을 무시하는 관념적인 주지주의도 아니다. 그는 생명 있는 모든 것에 공감하고 때로는 크나큰 연민의 정을 느꼈다. 그리하여 동시대의 문학 비평가들로부터 별의별 비평을 받았지만 그는 끄덕도 하지 않았다.
롤랑의 예술 작품은 항상 진실한 비극성을 수반하면서 사람들의 영혼을 격려한다. ‘슬픔을 통해서 느끼는 기쁨’의 감명을 독자의 마음속 깊이 침투시키는데, 그 감명은 베토벤의 음악과 비슷하다. 『장 크리스토프』의 주인공 역시 베토벤적인 인물이다. 하나의 음악시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소설에서 롤랑은 전쟁의 영웅이 아닌 사랑과 용기와 창조를 위해 싸우는 영웅의 모습을 훌륭히 그려냈다. 1922년부터 시작해 10년 뒤인 1933년에 완성한 『매혹된 영혼』도 『장 크리스토프』에 뒤지지 않는 명작이다. 이 소설은 안네트 리비에르라는 여주인공이 여성의 자유와 독립을 지키며, 아들과 함께 복잡하고도 어려운 현대의 정치 문제, 사회 문제에 뛰어드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미켈란젤로의 생애』, 『톨스토이의 생애』 등에 있어서도 진지하게, 위대한 영웅들의 생애를 이야기함으로써 사람들의 마음에 용기와 희망을 불어넣으려고 노력했다. 무력이나 권력의 영웅이 아닌 이들 전기는 단순한 문학적인 의미 이상의 인간적 믿음의 힘과 아름다움을 나누어준다.
독일 라인 강가에 있는 소도시의 한 음악가 집안에서 장 크리스토프 크라프트가 태어난다. 주정뱅이가 된 부친은 크리스토프에게서 천재적인 재능을 발견하고 피아노를 가르쳐 돈벌이를 시키려고 한다. 할아버지가 죽고 아버지는 실직하면서 크리스토프는 열한 살에 궁정관현악의 일원으로 생계를 유지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는 가난에 의한 굴욕과 유명해져야 한다는 의식 속에서 성장한다. 장 크리스토프는 독일 음악의 감수성에 대한 반항과 자기의 뜻을 굽히지 않는 성격 때문에 추방되어 프랑스 파리로 넘어온다. 그러나 프랑스에서도 역시 재능을 인정받지 못한 크리스토프는 프랑스 문학과 정치에 환멸만을 느낄 뿐이다. 그러던 중 그는 올리비에라는 청년을 알게 된다. 사실 그는 프랑스 극단의 순회공연장에서 만났던 프랑스 아가씨의 동생이었는데.(요약)
▣ 어떤사람들? 무슨 이야기?
장 크리스토프 타고난 재능을 가진 음악가. 음악과 삶에 대한 강렬한 열정의 소유자.
멜키올 크리스토프의 아버지. 아들을 이용해 돈을 벌려고 했지만 아들을 사랑했다.
루이자 크리스토프의 어머니. 아들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보여준다.
장 미셸 노인 크리스토프의 할아버지. 크리스토프에게 음악의 길을 열어준다.
앙투아네트 크리스토프를 우연히 만난 뒤 그를 사랑하지만 끝내 고백하지 못한다.
올리비에 앙투와네트의 남동생. 크리스토프와 가장 절친한 친구가 된다.
그라치아 소녀 시절 크리스토프를 남몰래 사랑하고 훗날 그에게 많은 도움을 준다.
새벽
라인강이 물소리를 크게 내면서 집 뒤로 흘러가고 있었다. 낮 동안의 밝은 빛이 사라진 밤, 갓 태어난 아기가 요람 속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아기가 칭얼거리자 장 미셸 노인이 램프에 불을 켜고 살며시 요람에 다가갔다. “어허, 이놈 참 밉게도 생겼구나. 그런데 네 남편은 도대체 이런 때에 어디를 돌아다니는 거냐?” “극장에 갔어요. 음악회 연습이 있거든요.” “극장은 벌써 문을 닫았다. 내가 지금 그 앞을 지나서 오는 길이야. 그 녀석 또 거짓말을 했구나. 어쩌다 내가 그런 주정뱅이를 아들로 두었을까!” “제 잘못이에요. 그이는 저 같은 여자하고 결혼해서는 안되었던 거예요.”
미셸 노인의 아들 멜키올이 당시 어느 저택의 하녀로 있던 루이자와 결혼하게 되었을 때 크라프트가를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놀랐다. 크라프트가는 재산은 없었지만, 라인강가에 자리잡은 이 작은 읍내에서는 대대로 뛰어난 음악가를 배출하는 집안으로 알려져 있었다. 멜키올은 젊은 나이에 벌써 궁정 극장의 바이올리니스트였다. 그렇지만 멜키올이 왜 가난하고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미인도 아닌 루이자와 결혼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결혼한 지 얼마 안되어 멜키올은 자신의 처사를 후회하여 술집을 드나드는 주정뱅이가 되었고, 따라서 그의 음악적 재능은 그대로 묻히고 말았다.
아기는 좀처럼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그때 성당의 종소리가 밤의 정적을 깨고 은은하게 울려왔다. 그러자 울던 아기는 울음을 뚝 그쳤다. 절묘한 종소리는 풍요하게 흐르는 젖과도 같이 아기의 몸 속에 흘러들어간 것이다. 이처럼 장 크리스토프는 태어났을 때부터 소리에 민감한 아기였다.
세월이 흘러 크리스토프의 마음도 몸도 점점 성장해가고 있었다. 어머니 루이자는 하찮은 일을 하면서 돈을 벌지 않으면 안되었다. 여섯 살이 된 크리스토프는 어느날 어머니에게서 좋은 옷을 한 벌 받았다. 그는 그 옷을 입은 채로 어머니가 일하는 저택에 갔다. 저택으로부터 두 아이의 놀이상대가 되어주라는 분부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크리스토프를 보자 남자아이가 앞을 가로막고 서서 크리스토프의 윗도리를 잡고 말했다. “야, 이건 내 옷이야.” “가난뱅이 아이야.” 여자아이가 깔보듯 말했다. 두 아이는 크리스토프를 곯려주려고 의자를 포개 높은 장애물을 만들어 크리스토프에게 뛰어넘어보라고 했다. 장애물로 돌진하던 크리스토프는 넘어져 손이 까지고 바지와 윗도리 여기저기가 찢어졌다. 일어나려는 크리스토프에게 두 아이는 발길질을 해대고 등 위에 올라타 얼굴을 짓눌렀다. 크리스토프는 너무 화가 나 위에 올라탄 두 아이를 굴러떨어지게 했다. 결국 크리스토프는 귀부인에게 모진 매를 맞았고 루이자도 다짜고짜 아들의 뺨을 때렸다. 아버지 멜키올마저 집에 돌아온 크리스토프를 때리고 루이자와 심하게 다투었다. 크리스토프는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존경심도, 인생에 대한 희망도 느낄 수 없었다. 아직 어린 그로서는 어머니가 겪는 고생이나 아들의 반대편에 서야 하는 괴로움을 알 수 없었다.
그후 크리스토프의 집은 살림을 해나가기 어려울 정도의 일들이 점점 많아졌다. 하지만 그 사이 크리스토프를 둘러싼 답답하고 괴로운 생활 속에서도 한줄기 빛 같은 희망이 생겼다. 장 미셸 노인이 낡은 피아노 한 대를 선사해준 것이다. 피아노 곁을 떠날 줄 모르는 크리스토프를 보고, 멜키올은 본격적으로 피아노 치는 법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크리스토프는 아버지가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다고 여겼지만, 멜키올의 생각은 다른 데 있었다. 멜키올은 아들의 재능이 뛰어난 것을 보고 아들을 이용해 풍족한 생활을 누려볼 생각이었던 것이다. 크리스토프는 아버지의 엄격한 교육 때문에 견딜 수가 없는 데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자신의 장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엿들은 이후 그는 일부러 틀리게 쳐서 아버지를 실망시키려 했다. 그러나 크리스토프는 마구 때리는 아버지에게 굴복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음악이 싫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는 열심히 피아노를 배웠다. 아버지가 무섭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할아버지가 크리스토프에게 한 말이 큰 감명을 주었던 것이다.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아름답고 숭고한 예술을 위해서라면, 얼마간의 고통은 당연히 감수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란다.”
어느 날 할아버지는 크리스토프를 유명한 작곡가 허슬러에게 소개시켰다. 허슬러는 천진스러운 크리스토프에게 온화한 음성으로 말했다. “커서 훌륭한 음악가가 되거든 베를린으로 나를 찾아오너라. 내가 도와줄 테니.” 레오펠트 대공의 음악회에서 크리스토프는 할아버지의 도움으로 작곡한 자신의 곡을 연주했다. 대공은 크리스토프를 쓰다듬으며 ‘제2의 모차르트’라고 극찬했다. 대공은 궁정 전속 피아니스트로 크리스토프를 임명했다.
아침
크리스토프는 열한 살이 되었다. 그 사이, 음악 공부를 계속하여 악기라면 무엇이든 연주할 수 있었고 궁정 악단의 제2바이올리니스트로 임명되었다. 이리하여 그는 자기 힘으로 생활비를 벌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술버릇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고 집안 살림은 점점 더 어려워졌다. 미셸 노인이 죽고 나서 멜키올의 방종은 극에 달했다. 어느날, 크리스토프는 소중한 피아노가 없어진 것을 알았다. “도둑놈! 어머니와 내것, 할아버지 물건을 훔쳐 팔아먹는 도둑놈! 피아노는 지금 어디에 있나요?” 크리스토프는 증오에 찬 눈으로 아버지에게 대들었다. “고물상에 있다.” 멜키올은 호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크리스토프에게 넘겨주었다. “크리스토프야, 제발 나를 경멸하지 말아다오.” “전 아버지를 경멸하지 않아요! 단지 슬플 뿐이에요.” 두 사람은 서로를 껴안고 엉엉 울었다.
멜키올은 돈이 없으면 술을 마시지 않을 것 같아 자신의 급료를 크리스토프에게 지불해달라고 대공에게 편지를 썼다. 그러나 멜키올은 바이올리니스트의 직무를 게을리하여 끝내 해고당하고 말았다. 이제 집안 식구들의 부양은 열네 살인 크리스토프 혼자 떠맡게 되었다.
추밀고문관의 미망인 요제피아 폰 케리히 부인이 딸과 함께 자신의 저택으로 돌아왔다. 크리스토프는 딸 미나에게 피아노를 가르쳤고 둘은 서로에게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케리히 부인은 크리스토프를 친아들처럼 보살펴주었지만 두 사람의 행동을 눈치채고는 언짢아져서 일부러 미나 앞에서 비꼬는 말투로 크리스토프를 비웃었다. 미나는 어머니의 말에 반박했지만 그 이후로 미나가 크리스토프를 바라보는 눈은 전처럼 관대하지 않았다. 크리스토프가 재미있어 웃으면 웃음소리가 너무 크다고 나무랐으며 그의 말씨나 옷차림에 대해서도 넌지시 충고해주었다.
그러나 크리스토프는 미나의 마음속 변화를 눈치채지 못했다. 부활절이 되어 미나는 어머니와 함께 친척집에 잠시 여행을 가기로 한다. 출발 전날, 두 사람은 몇 번이고 ‘영원한 맹세’를 되풀이하고 매일 편지를 쓰겠다고 굳게 약속했다. 처음 며칠 동안 크리스토프는 미나의 편지를 받고는 방안에 틀어박혀 그녀만을 위한 작품을 완성했다. 그런데 이주일도 전에 편지를 보냈건만 답장은 오지 않았다. 그는 다시 편지를 썼다. 그후 미나의 짤막한 답장이 왔다.
나는 잘 있어요. 바빠서 편지 쓸 시간이 없어요. 앞으로는 가능한 한 편지를 보내지 말아주세요.
크리스토프는 어이가 없었다. 어느날 크리스토프는 할아버지의 친구에게서 미나가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크리스토프는 케리히 부인 저택으로 뛰어갔으나 미나의 차가운 눈빛만을 느낄 뿐이었다. 크리스토프는 케리히 부인에게 미나와 결혼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케리히 부인은 빈정거리는 말투로 그에게 재산이 없다는 것, 미나와 취미가 맞지 않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서로간의 신분 차이를 이유로 들어 거절했다. 크리스토프는 깊이 상처를 입고 자살을 결심했다.
그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시냇물에 빠져 죽은 멜키올의 시체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이었다. 크리스토프는 진심으로 아버지를 사랑하지 못했던 자책감에 괴로워하며 아버지의 시체 위에 쓰러져 하염없이 울었다.
청년
크리스토프는 다시 인내심 있게 음악에 열중했다. 두 동생들은 직업을 구해서 집을 나갔고 어머니와 크리스토프는 아담한 3층집에 세를 들었다. 그 집 주인은 할아버지의 친구인 오일러씨였는데 그의 손녀 로자는 귀찮을 만큼 크리스토프 곁을 따라다녔다. 오일러 일가는 젊은 음악가로서 명성을 얻고 있는 크리스토프와 로자를 결혼시킬 것을 꿈꾸었다. 그러나 크리스토프는 오히려 오일러 일가가 경멸하는 자비네 프레리히라는 스무 살 미망인에게 마음이 끌렸다. 자비네와 대화하면 항상 편안하고 그녀 곁에 가면 금방 기분이 좋아졌다.
그러던 어느날 자비네는 크리스토프가 연주 여행을 떠난 사이에 갑자기 감기에 걸려 불쌍한 어린 딸을 남겨둔 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오일러 집안 사람들은 크리스토프의 마음이 다시 로자에게 돌아오기를 바랐지만 그는 이번에는 아더라는 여자를 알게 되었다. 그러다가 행실이 나쁜 아더와도 헤어지고 오일러의 집에서도 쫓겨났다. 그때부터 그는 술을 마셨다. 어느날 그는 술집에서 나오다가 근처 가게의 유리문에 비친 자기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랐다. 거기에는 아버지 멜키올의 얼굴이 비치고 있었다.
반항
크리스토프는 독일 음악에 대해 나름의 판단을 내렸다. ‘멘델스존에게는 알맹이가 없어, 그저 쓸쓸한 생각밖에 없다. 베버에게는 메마른 마음과 머리만의 감동밖에는 없고, 슈베르트는 깊이가 없는 감수성에 빠져 있다. 위대한 세바스찬 바흐에게는 어딘가 바람이 통하지 않아서 곰팡내가 나는 데가 있으며, 소박한 슈만에게는 독일 음악이 지니는 허위의 전형이 있다. 바그너도 허위의 이상주의에서 벗어날 것이 없다.’
크리스토프는 자기의 감정을 숨기려고 하지 않았다. 작품에 대해서는 상대가 전문적인 음악가든 음악 애호가든 솔직하게 말했다. 음악가 동료들은 자제심 없이 마구 지껄이는 크리스토프를 비웃었다. 기회만 있으면 그의 작품을 깎아내렸고, 들어보기도 전에 비평했다.
이즈음 프랑스의 극단이 순회공연을 왔다. 공연물은 프랑스어로 번역한 『햄릿』이었다. 친구 만하임이 입장원 두 장을 주었으나, 어머니는 가고 싶지 않다고 했으므로 크리스토프는 혼자 극장에 갔다. 그런데 극장 앞에서 입장권이 없어 서운한 표정으로 되돌아가는 사람들 가운데 그는 한 젊은 여자를 발견했다. “입장권이 한 장 남아 있는데 함께 가시지 않으시렵니까?” 그녀는 크리스토프의 친절한 제의와 솔직한 태도에 끌려서 동행하기로 했다. 공연 중에 크리스토프는 오필리어 역을 맡은 여배우에게 매혹되어 옆자리의 여자에게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막간이 되어서야 그 여자에게 말을 붙였다.“당신은 외국 분이군요? 어느 나라 분인가요?” “프랑스예요.” “여기 오셔서 프랑스어를 들으시니 기분이 좋으시죠?” “네 무척이요.”
막이 차례차례로 진행되면서 여배우의 슬픈 노래에 감동받은 크리스토프는 극이 끝나자 자기도 모르게 극장계단을 내려가 밖으로 나와버렸다. 그리고는 이름도 모르는 옆 좌석의 여자는 까맣게 잊어버렸다. 집으로 오는 도중의 역에서 그는 반대쪽 기차 창가에 『햄릿』을 함께 구경했던 프랑스 여자가 앉아 있는 것을 발견했다. 두 사람은 깜짝 놀라서 머리를 끄덕여 인사를 나누었다.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여자는 언제까지고 그를 바라보았다. 이윽고 그녀를 태운 기차는 어둠 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다음날 크리스토프는 만하임을 만났다. “너는 대단한 녀석이야. 프랑스 여자와 연극 구경을 하다니! 그녀는 그류네바움가의 가정교사였는데 너 때문에 그류네바움네 사람들이 노발대발해서 그녀를 내쫓아버렸어.“ 크리스토프는 비통한 생각에 그 여자의 행방을 찾으려고 애썼다. 그는 그녀를 자기의 희생자라 부르며 결코 잊으려 하지 않았다.
그후 얼마 안 있어 크리스토프는 그리스 비극을 개작한 『이피게네이아』를 작곡했으나 공연은 완전히 실패했고 그는 악평과 조소의 대상이 되었다. 그는 공박하는 글을 써서 신문사로 가지고 갔지만 게재를 거부당했다. 그래서 사회주의 신문사에 그 논문을 가져갔다. 다음날 논문은 발표되었으나 신문은 동지 크리스토프가 앞으로 그 회사에 협력해주게 되었다고 보도했다. 일찍부터 산책을 나가 신문을 보지 못한 크리스토프는 궁정으로부터 호출을 받았다. 대공은 험악한 얼굴로 곧장 그에게 다가왔다. “너 같은 악당에게 모욕을 당하고 가만히 있지는 않아!” “저는 전하를 모욕한 적이 없습니다.”
“무엇이라고! 이 염치없는 신문은 매일같이 나를 모욕하고 있어. 나에게 더러운 욕설을 마구 써대고 있단 말이야! 나는 지금까지 너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었다. 앞으로 나를 적대하는 신문에 투고하는 것은 절대로 금하겠다.” “전하, 저는 다만 음악에 관해서 썼을 뿐입니다. 그리고 어떠한 신문에 기고하든 그건 저의 권리입니다. 저는 전하의 노예가 아닙니다. 저는 하고 싶은 말은 하고, 쓰고 싶은 것은 씁니다.” “나가!” 드디어 화가 머리끝까지 난 대공은 호통쳤다. 반항의 최후의 종점이었다.
이제 그는 외톨이가 되었다. 그가 고생하고 있을 때, 어둠 속에서의 번개처럼 허슬러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날 밤 그는 베를린 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베를린에 도착한 그는 허슬러의 집 초인종을 눌렀다. “저는. 크리스토프 크라프트라고 합니다. 전에 한 번.” “기억에 없는데.” 크리스토프는 실망하여 돌아가려다 용기를 내 자기의 작품을 좀 들어봐달라고 부탁했다. 허슬러는 마지못해 허락은 해주었지만 곡이 끝나자 경멸하듯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 “시시한 작품뿐이군.” 크리스토프는 악보를 챙겨나왔다.
광장의 시장
이제 이 고장에서도 독일에서도 살아갈 수 없게 된 크리스토프는 프랑스로 출발했다. 그런데 그날 뜻하지 않게 군인들과 싸움이 벌어지는 바람에 크리스토프는 그들을 때려눕혔다. 그는 도망쳐야 했기에 파리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그는 파리에 도착해서 친구 콘의 소개로 예술가 친구들을 만났지만 이들의 토론에는 관심이 없었다. 파리의 문학도 연극도 크리스토프에게는 환멸밖에는 안겨주지 않았다. 그는 부호의 딸인 코레트 스토뱅의 가정교사 자리를 얻었다. 스토뱅가에는 코레트 외에 열서너 살쯤 되는 사촌 그라치아 폰탱이 어머니가 죽은 뒤로 함께 지내고 있었다. 그라치아는 파티에서 듣는 사람은 상관없이 긴 곡을 끝까지 연주하는 크리스토프의 모습을 보고 감격했다. 그러나 크리스토프는 코레트에게만 정신이 팔려 있었으므로 그라치아에게는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크리스토프는 변덕스러운 코레트 때문에 불행했고 이 크리스토프의 불행으로 그라치아 또한 불행했다.
그 무렵 그는 음악회에서 자신의 작품을 연주했다가 청중들의 야유와 욕설을 들었다. 화가 난 크리스토프는 연주를 중단하고 「마르블루가 싸움터를 나가다」를 경멸하는 태도로 연주했다. 그리고는 어깨를 쭉 펴면서 “여러분에게는 이것이 안성맞춤이오!”라고 한마디 던지고는 나가버렸다. 그는 적의에 찬 이 도시에서 고독한 신세가 되고 말았다. 크리스토프는 코레트를 단념하기로 결심하고 스토뱅가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라치아는 크리스토프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도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처지를 슬퍼하여 아버지가 있는 집으로 돌아갔다. 그래도 크리스토프를 잊지 못해 그에게 격려 편지를 썼으나 그 편지는 도중에 길을 잃고 끝내 배달되지 못했다. 크리스토프는 멀리서 가만히 자기를 지켜보는 이 소박한 애정의 존재를 전혀 알지 못했다.
고독한 크리스토프의 생활은 전보다도 어려웠다. 피아노 교습 자리도 잃고 더 누추한 다락방으로 이사했다. 겨울이 왔다. 어느날 센강가를 걷고 있을 때, 길 건너편에 있는 한 여자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독일에서 크리스토프 때문에 오해를 받아 직업을 잃은 바로 그 가정교사였다. 크리스토프를 알아본 그녀는 그를 향해 건너오려고 했다. 크리스토프도 그녀를 만나기 위해 차도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그 순간 그는 마차에 부딪혀 차도 위에 나뒹굴었다. 간신히 일어나 그녀를 찾아보았지만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크리스토프는 루생 부인의 음악회에서 어디선가 본 듯한 청년을 만났다. 그의 이름은 올리비에 자넹으로 크리스토프의 열렬한 숭배자였다. 그날 이후 둘은 친구가 되었다.
앙투아네트
올리비에에게는 누이가 한 명 있었는데 이름이 앙투아네트였다. 은행가인 아버지가 사기를 당해 자살하자 자낭 부인과 앙투아네트 남매는 파리로 와서 어려운 생활을 이어갔다. 그러다 과로로 인해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나고 앙투아네트가 가장이 되었다. 앙투아네트는 오로지 동생을 대학에 보내기 위해 열심히 일을 하고 절약했다. 올리비에가 입학시험에 실패하자 다시 1년간을 버텨야 했던 앙투아네트는 독일에서의 가정교사 자리를 맡기로 했다. 이국에서의 쓸쓸한 생활을 보내던 앙투아네트는 프랑스의 극단이 그 마을을 지나간다는 소식을 듣고는 극장으로 가보았지만 이미 표는 매진이었다.
그때 독일인 음악가 장 크리스토프가 옆자리를 제공해주었으나 그 일이 읍내에 소문이 나면서 그류네바움가 사람들 귀에도 들어가 해고당하고 말았다. 그러나 앙투아네트는 조금도 크리스토프를 원망하지 않았다. 그 마을을 떠나는 기차 안에서 그녀는 우연히 반대쪽 기차의 크리스토프를 발견하고 마음속에 크리스토프라는 존재를 깊이 새겼다.
드디어 올리비에가 시험에 합격하여 학교로 들어갔다. 어느날 앙투아네트는 올리비에와 함께 샤틀레 극장의 음악회에 갔다. 연주자는 크라프트 크리스토프였다. 앙투아네트는 그의 모습을 보자마자 너무나 놀랐다. 크리스토프는 청중들의 노골적인 악의 속에서 일부러 조는 시늉을 하며 연주했다. 크리스토프는 갑자기 피아노 치는 것을 중단하더니 청중들을 경멸하는 표정을 지으며, 유행가인 「마르블루가 싸움터로 나가다」를 한 손가락으로 쳤다. 그러더니 벌떡 일어나서 “여러분에게는 이것이 안성맞춤이오!”라고 말했다. 일순간 음악회장은 소란스러워졌다. 올리비에는 누나의 마음속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몰랐지만 일부러 열광적인 박수를 보냈다. 며칠이 지난 뒤 올리비에는 서점에서 크리스토프의 가곡집을 사왔다. 앙투아네트는 무심코 책장을 넘기다 독일어로 된 헌사를 보았다.
나 때문에 희생된
어느 어여쁘고 가련한 소녀에게
그리고 그 밑에 날짜가 적혀 있었는데, 그녀는 그날의 일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어느날 낮에 머리를 식히러 거리에 나갔다가 길 건너편을 걷고 있는 크리스토프를 보았다. 그는 길을 건너 그녀 쪽으로 오려 했다. 그러나 무정한 인파는 그녀를 지푸라기처럼 밀어붙이고 말았다. 집에 돌아온 앙투아네트는 그를 사랑하고 있다는 고백의 편지를 썼으나 보내지 못하고 책갈피 속에 끼워놓았다. 그런데 급성 폐결핵에 걸린 앙투아네트는 병이 너무나 빨리 진행되는 바람에 그만 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올리비에는 생전의 누나의 추억을 되살리기 위해 유품들을 챙겨보다가 누나가 크리스토프에게 쓴 편지를 발견했다. 앙투아네트는 전에 크리스토프를 만난 일을 올리비에에게 전혀 말하지 않았지만 그 편지로 보아 두 사람이 독일에서 만났다는 것은 확실했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나자 올리비에는 크리스토프가 말할 수 없이 가깝고 그리운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날부터 그는 크리스토프를 찾아헤맸고 마침내 아는 사람의 음악회에서 그를 발견했다. 크리스토프 쪽에서도 올리비에의 눈에서 느껴지는 앙투아네트의 모습에 끌려 그에게 다가간 것이었다.
집안, 여자 친구들
친구가 된 크리스토프와 올리비에는 함께 살게 되었다. 올리비에는 누나의 관한 일을 크리스토프에게 말해주었지만 누나가 마음속에 품고 있던 비밀만은 입 밖에 내지 않았다. 그러던 중 프랑스와 독일의 양국 관계가 험악해져 전쟁이 일어날 위기에 처했다. 크리스토프는 몹시 혼란스러웠다. 자신은 독일에서 탈출해온 몸이라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처지였고 그 사이 군국주의적인 태도를 경멸해오기도 했지만 아직 마음속에는 애국의 열정이 용솟음치는 것을 억제할 수 없었다. 음악적으로 크리스토프는 연거푸 성공을 거두고 세상 사람들은 그의 음악을 격찬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갑자기 슬픈 편지가 그에게 날아들었다. 어머니에게서 온 편지였다.
사랑하는 크리스토프야. 어쩐지 몸이 신통치 않다. 그럴 수만 있다면 너의 얼굴을 한 번 보고 죽고 싶다만. - 어머니로부터
크리스토프는 올리비에가 마련해준 돈을 가지고 독일행 기차를 탔다. 루이자는 외로이 혼자 병상에 누워 있었다. 루이자는 인자한 눈으로 크리스토프를 바라보며 숨을 거두었다. 크리스토프가 걱정되어 올리비에가 그곳으로 왔다. 크리스토프는 무한한 고마움을 느꼈다.
헌병에게 쫓기다시피하여 두 사람은 프랑스로 돌아왔다. 그리고 나서 얼마 후, 올리비에는 자클린 랑제라는 부유한 집안의 아가씨와 사랑에 빠졌다. 올리비에가 지방 중학교 교사로 임명되면서 둘은 결혼한 뒤 지방에 가서 살게 되었다. 그리고 아기도 낳았다. 하지만 그런 동안 자클린은 애정이 식고 지방 생활 때문에 싫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자클린의 아버지는 이런 딸의 마음을 알고 올리비에를 파리로 전임시켰다.
파리에 온 자클린은 부유층과의 만남으로 낭비가 심해지고 올리비에도 교사직을 버리고 일은 하지 않았다. 두 사람의 관계는 점점 악화되어 자클린은 견딜 수 없는 권태감에 빠져 있었다. 어느날 마침내 그녀는 올리비에도 아이도 다 버리고 그의 곁을 떠나버렸다. 크리스토프는 올리비에의 아이를 이웃 여자인 세실에게 맡겼다. 그녀는 순수한 애정으로 아이를 사랑해주었다.
크리스토프의 작품은 여기저기의 음악회에서 연주되고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호의가 계속되고 있었다. 도대체 누구일까? 그는 자신을 도와주는 사람을 찾으려고 애썼으나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 음악회가 열린 대사관 응접실에서 자기에게 미소짓는 한 여자와 마주쳤다. “제가 누군지 모르시겠어요?” “그라치아.” 그라치아는 헝가리 대사관 직원과 결혼해 파리에서 살고 있었다. 크리스토프는 눈에 보이지 않는 친구가 바로 그라치아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라치아는 소녀시절의 이야기, 음악회에서 청중들이 그에게 휘파람을 불며 야유할 때 자기도 울었다는 이야기, 편지를 보냈으나 답장을 받지 못했다는 이야기 등을 했다. 그리고 그녀는 남편을 따라 미국으로 갈 것이라고 말했다.
불타는 수풀
올리비에는 부모와 다섯 아이들을 부양하는 노동자 일가족이 생활고 때문에 자살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사회빈곤 문제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크리스토프도 노동자들과 알게 되면서 혁명가를 하나 작곡했는데 그 노래는 금세 노동자들 사이에 널리 퍼졌다. 메이데이가 다가왔다. 올리비에와 크리스토프는 거리로 나갔다가 군중들의 틈에 끼이고 말았다. 군중들이 돌을 던지는 가운데 기병대가 나타나 군중을 밀어내며 전진해왔다. 순식간에 군중은 뿔뿔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혼잡한 군중들을 떠나려던 그 순간 올리비에는 그가 특별히 귀여워했던 곱사등이 소년 엠마누엘이 군중의 발길에 채이는 모습을 보았다. 경관이 그곳에 밀어닥쳤다. 올리비에는 엠마누엘을 구하려고 쏜살같이 달려갔다. 칼을 뽑아든 경관 두 명이 두 사람을 떠다밀려고 했다. 이것이 발단이 되어 경관과 군중 사이에 난투극이 벌어졌다.
올리비에는 경관의 칼에 왼쪽 가슴을 찔렸다. 인파에 밀려 난투의 수라장 끝까지 밀려간 크리스토프는 경관과 격투를 벌이다 그의 가슴을 찔러버렸다. 한 시간도 채 못되어 군중은 폭동으로 변했고 마치 다른 사람처럼 변한 크리스토프는 자기가 지은 혁명가를 소리 높여 부르고 있었다. 사람들도 따라 불렀다. 올리비에는 응급치료를 받았으나 다시는 깨어나지 못했다. 동료인 마누스와 카네는 방어벽에 있던 크리스토프를 찾아서는 올리비에와 다시 만나기로 했다는 거짓말로 그를 스위스로 피신시켰다. 스위스에 도착한 크리스토프는 올리비에의 죽음을 알고 프랑스로 돌아가려 했으나 그럴 수가 없었다. 몇 달 후 그는 세실의 편지를 받았다. 올리비에가 죽은 지 석 달 후 상복을 입은 자클린이 와서 아이를 데려갔다는 것이었다.
새로운 날
삶은 지나가버린다. 육체와 영혼은 강처럼 흘러간다. 크리스토프는 이제 이미 지나간 세월을 헤아리려고 하지 않았다. 크리스토프는 다시 태어났다. 그의 모든 작품은 전 유럽에 널리 알려졌다. 어느 여름날 저녁 크리스토프는 산책을 하다가 검은 옷을 입은 여인과 두 아이를 보았다. 그라치아였다. 두 사람은 어안이 벙벙했다. 그녀는 남편이 결투로 피살되었다고 이야기했다. 그녀는 크리스토프가 겪은 갖가지 시련을 듣고는 위로의 말을 건넸다. 두 사람은 늦가을에 로마에서 재회하기로 했다.
로마에 있는 크리스토프에게 파리로부터 음악회의 지휘를 맡아달라는 편지가 왔다. 그것은 그라치아의 권유에 의한 것이었다. 크리스토프는 올리비에가 죽은 후 처음으로 파리로 돌아왔다. 어느날 아침 그는 열네 살쯤 된 소년의 방문을 받았다. 올리비에의 아들 조르주였다. 그는 어머니로부터 아버지 올리비에가 크리스토프를 제일 좋아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를 찾아왔다고 했다. 조르주는 그후에도 매일같이 그를 찾아왔다. 조르주의 뜻밖의 등장은 크리스토프의 생활을 밝게 해주었다.
추운 겨울이 지나고 그라치아도 파리로 왔으나 몸이 허약한 아들의 요양을 위해 알프스로 떠났다. 그러나 끝내 아들은 건강을 회복하지 못했다. 그라치아도 이탈리아에서 세상을 떠났다. 크리스토프는 그라치아를 영혼 속에 품었다. 그는 그라치아의 딸 오롤라와 올리비에의 아들 조르주에게 이중의 애정을 쏟았는데, 그 두 사람은 어느새 사랑하는 사이가 되어 결혼했다. 두 사람이 신혼여행을 떠난 동안 크리스토프는 지병인 폐렴으로 쓰러졌다. 행복한 눈물이 감은 눈시울을 적셨다. 종이 울렸다. 새벽이었다. 아름다운 음파가 공기 속을 흘렀고 강의 물결 소리가 집 뒤에서 한층 요란스럽게 들려왔다. 크리스토프 앞에는 죽음의 문이 열리려 하고 있었다. “주여, 아버지인 당신의 품 속에서 이제는 숨을 거두게 해주시옵소서. 나는 그 어느날엔가 다시 싸우기 위해 태어날 것이옵니다.” “그대는 다시 태어나리라. 편히 쉬어라. 삶에 영광 있으라! 죽음에 영광 있으라!”
성 크리스토프는 강을 건넜다. 밤새껏 그는 물줄기와 싸우며 전진했다. 왼쪽 어깨에는 연약하지만 무거운 몸집의 아이가 올라타 있었다. 지팡이로 삼은 소나무가 휜다. 그의 등이 휜다. 아침 기도의 종이 울렸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크리스토프가 겨우 기슭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는 어린아이에게 말했다. “어이구, 겨우 다 왔구나. 너 참 무겁기도 하다. 도대체 너는 누구지?” 그러자 어린아이는 말했다. “나는 막 태어나려고 하는 생명이야.”
▣ 더재미있게읽기위하여
『장 크리스토프』는 작가 자신과 베토벤의 얼을 형상화한 천재음악가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전10권에 이른 대하소설의 선구적 작품이다. 특히 크리스토프의 어린시절은 롤랑이 평생을 두고 사랑한 베토벤을 모델로 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지만 롤랑 자신의 현실적 추억도 적잖이 가미되어 있다. 그리고 성인이 된 뒤의 장 크리스토프에도 작가 자신의 생활 체험이 풍부하게 도입되어 있다. 그러나 장 크리스토프는 어디까지나 롤랑이 이상적인 인물로 만들어낸 인물이다. 로맹 롤랑은 장 크리스토프라는 주인공의 이름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장은 언제나 선두에 서서 나아가는 사람, 크라프트는 모든 것의 근원인 생명력, 크리스토프는 신을 짊어지고 있는 사람을 의미한다. 이 말들은 모두 힘을 필요로 함을 나타내고 있다.” 진실과 예술에 모든 것을 바친 크리스토프가 어떠한 유혹과 굴욕에도 꺾이지 않고 항상 젊음이 넘치는 힘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엄청난 생명력과 인내력, 창조력에 의한 것이었다.
롤랑은 『장 크리스토프』를 ‘음악 소설’이나 ‘음악 시’라고 말하기도 했는데, 이는 결코 주인공이 음악가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롤랑은 예리한 눈을 가진 작가가 아니라 예민한 귀를 가진 작가로서 이 대하소설을 음악을 듣는 듯 묘사하였다. 음악적인 독일에서 괴테를 ‘눈의 사람’으로 부르는 데 대하여, 조형적인 프랑스에서는 로맹 롤랑을 ‘귀의 사람’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장 크리스토프』는 확실히 전통적인 서사시의 특성을 다분히 지니고 있다. 본래 영웅서사시의 근본정신이란 ‘산다는 것은 싸우는 것’이다. 장 크리스토프는 영웅으로서 베토벤적인 인물이다. 전쟁의 영웅도 권력적인 영웅도 아니다. 게다가 롤랑은 주인공 장 크리스토프는 물론 앙투아네트와 올리비에 등 인물들 대부분을 성실과 자유와 사랑을 신조로 예술, 사회, 인생의 여러 문제에 용감하게 대결해나가는 인간상으로 제시하였다.
롤랑의 근본사상은 불협화음으로부터 하모니를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크리스토프와 올리비에는 성격적으로 대립되는 성향의 인물들이다. 천성적으로 크리스토프가 낙관적인 반면, 올리비에는 비관적이다. 창조하는 감성과 명석한 이성과의 대립이기도 하다. 그러나 롤랑은 낙관과 비관의 태도 중 어느 쪽이 더 훌륭하다고 단정짓지 않는다. 다만 이 두 사람의 우정을 통해 낙관과 비관을 구별하는 입장마저 초월하도록 한다. 또한 크리스토프와 올리비에의 우정이 프랑스와 독일의 이해와 협력을 상징하고 그 상징이 유럽 전체의 미래의 평화를 상징하게 되기를 원했다.
“삶이란 죽음과 부활의 연속이다. 크리스토프여,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 죽지 않으려는가!”라는 말에서 우리는 삶과 죽음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이 소설은 마치 고뇌를 거쳐 환희에 이르는 베토벤의 교향곡처럼 작품 전체를 주인공의 강한 정신과 심정의 선율이 관통하고 있다. 그리고 19세기 말엽으로부터 제1차 세계대전에 이르는 시대적 사상, 문화, 윤리에 관한 강렬한 문화비평을 동시에 담아놓았다. 롤랑은 프랑스의 모든 것이 무너진 그 시대에 잿더미 속에서 잠자던 영혼의 불을 다시 일깨우려고 하였다. 그래서 지극히 헌신적이며 어떠한 타협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불굴의 영혼을 가진 인물을 만들어낸 것이다.
『장 크리스토프』는 프랑스의 사회의식과 독일의 음악정신을 한데 묶어놓은 소설이다. 정열적인 음악가의 정신사를 그리면서도 진실을 위해 부정과 허위와 싸우는 이상주의적 영웅을 묘사함으로써 제국주의의 부패와 위선, 세기말적 문명과 도덕에 대한 세찬 비판을 보여준다.
<“장 크리스토프(Jean Christophe)”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로맹 롤랑 지음>
▣ 저 자 로맹 롤랑 Romain Rolland(1866∼1944)
20세기 유럽의 지성이자 양심.
▣ 롤랑의생애와작품
1866 1월 29일 프랑스 중부 부르고뉴 지방의 소도시 클람시에서 아버지 에밀 롤랑과 어머니 앙투아네트 쿠르 사이에서 출생하다.
1873 클람시의 공립학교인 콜레주 드 클람시(지금의 콜레주 로맹 롤랑)에 입학한다.
1880 로맹 롤랑의 교육을 위해 온 집안이 파리로 이사, 리세 생 루이에 전학한다.
1886 에콜 노르말(고등사범학교)의 입학 시험에 10번 도전하여 입학에 성공.
1889 에콜 노르말을 졸업하여 역사교수 자격시험에 합격. 로마 고고학원에 유학을 떠난다.
1890 유학 중 독일인 노부인 말비다 폰 마이젠 부크와 친교를 갖는다.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다룬 희곡 『오르시이로』를 집필한다.
1891 2년간의 유학을 마치고 귀국. 희곡 『엠페도클레스』, 『발리오니가의 사람들』출간
1892 콜레주 드 프랑스의 교수인 미셸 브레알의 딸 클로틸드와 결혼한다.
희곡 『칼리구라』, 『니오베』출간
1894 희곡 『만토바의 포위』출간
1895 문학박사 학위를 따다. 모교의 강사로 예술사와 음악사를 강의한다.
희곡 『성왕 루이』을 완성한다.(1897년에 발표)
1896 희곡 『사브나롤라』, 『잔 드피엔』출간
1897 희곡 『아에르트』, 『패한 사람들』출간
1898 드레퓌스 사건의 열광 속에 희곡 『이리들』을 써 생쥐스트 작 『모리투리』라는 제목으로 상연.
1899 희곡 『이성의 승리』출간
1900 희곡 『당통』. 페기가 창간한 『카이에 드 라 캥젠』에 협력한다.
1901 2월에 클로틸드와 이혼.
베토벤 생가와 그가 죽은 집을 찾아보고 마인츠의 베토벤 기념음악제에 간다.
1902 희곡 『7월 14일』, 평전 『밀레』출간
1903 희곡 『때는 오리라』, 『베토벤의 생애 』를 『카이에 드 라 캥젠』에 발표한다.
1904 스위스에서 쓴 장편소설 『장 크리스토프』의 제1부 ‘새벽’과 제2부 ‘아침’을 『카이에 드라 캥젠』에서 출간한다.
1905 『장 크리스토프』의 제3부 ‘청춘’ 출간
1906 『장 크리스토프』의 제4부 ‘반항’, 전기 『미켈란젤로의 생애』출간
1908 『장 크리스토프』의 제5부 ‘광장의 시장’, 제6부 ‘앙투아네트’ 출간
평전 『지난날의 음악가들』, 『오늘날의 음악가들』출간
1909 『장 크리스토프』의 제7부 ‘집안에서’ 출간
1911 『장 크리스토프』의 제8부 ‘여자 친구들’과 제9부 ‘불타는 수풀’, 『톨스토이의 생애』출간
1912 『장 크리스토프』의 제10부 ‘새로운 날’을 간행하여 완결. 소르본느 교수직을 그만둔다.
1913 『장 크리스토프』로 아카데미 프랑세즈로부터 문학대상을 수상한다.
1916 노벨 문학상 수상. 고리키와의 교우를 갖는다.
1920 소설 『피에르와 뤼스』, 『클레랑보』 출간
1922 장편소설 『매혹된 영혼』 제1권 ‘아네트와 실비’ 출간
1923 잡지 『유럽』 창간. 『매혹된 영혼』 제2권 ‘여름’, 전기 『마하트마 간디』출간
1924 간디와 교우를 시작하다.
1925 혁명극 『사랑과 죽음의 유희』 출간
1926 희곡 『꽃의 부활절』 출간
1927 『매혹된 영혼』의 제3권 ‘어머니와 아들’ 출간
반전 반파시즘 위원회 창립, 명예의장 중 한 사람이 되다.
1928 『베토벤 연구』의 제1권 ‘에로이카부터 아파쇼나타까지’, 희곡 『사자 자리의 유성제』 출간
1929 『살아 있는 인도의 신비정신과 행동』의 제1권 ‘라마크리슈나의 생애’ 출간
1930 『베토벤 연구』의 제2권 ‘괴테와 베토벤’, 『인도 연구』 제2권 ‘비베카난다의 생애와 보편적 복음’ 출간
1932 『매혹된 영혼』의 제4권 ‘예고하는 자’ 중 ‘하나의 세계의 죽음’, 『말비다와의 서간집』 출간
1934 『매혹된 영혼』의 제4권 ‘예고하는 자’ 중 ‘출산’ 출간
1935 평론집 『전쟁의 15년』, 『혁명에 의해서 평화를』 출간
1936 에세이집 『길동무들』 출간
1937 『베토벤 연구』의 제3권 ‘부활의 노래’ 출간
1939 마지막 혁명극 『로베스 피에르』 출간
1943 『베토벤 연구』의 제4권 ‘제9교향곡’, 제5권 ‘후기의 4중주곡’ 출간
1944 『베토벤 연구』의 제6권 ‘연극은 끝났다’를 완성한다.(1945년 간행).
마지막 저서 평전 『샤를 페기』 출간.
12월 30일 베즐레에서 사망한다. 고향인 클람시에서 장례식이 거행된다.
▣ 참고문헌
김현창, 「로망 롤랑과 인도 사상」, 한국외국어대 논문집 15, 1982.
▣ 글쓴이 김남연
한국외국어대학교 불어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논문으로 「투르니에의 마왕에 나타난 카니발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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