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자료

아르세네프의 생애!

[중산] 2011. 7. 6. 17:28

 

화자인 알렉세이 아르세네프는 망명작가로 프랑스 남부에 살고 있다. 자신의 어린 시절, 러시아 시골에서 보낸 아름다운 시간에 대한 기억을 세상에 남기기 위해 그 시절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아르세네프의 어린 시절은 사모바르라 외치는 아버지의 목소리로 시작된다. 가문은 비록 과거의 빛나는 영광을 잃고 가난에 빠져 힘겨운 생활을 하고 있지만 아르세네프는 자신이 유서깊은 가문의 자손임을 자랑스러워한다. 가난에 괴로워하기에 주인공의 눈에 보이는 세상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집, 마당, 창고, 안뜰을 거쳐서 동구 밖 골짜기로 넓어져 가는 주인공의 세상은 신비로운 모험의 장소였다.

 

 

자유로이 세상을 호흡하는 주인공이 겪는 목동과 여동생의 죽음은 세상의 또 다른 신비, 죽음을 경험하게 한다. 남다른 감성을 가진 주인공은 이들의 죽음에 깊은 상처를 입는다. 결국 인간은 모두 죽게 된다니, 피할 수 없는 죽음이 호시탐탐 우리를 기다린다니, 어쩌면 세상의 모든 것이 다 부질없는 일이 아닐까 그는 이런 생각에 빠진다.

 

그러나 세상에는 죽음으로 인해 더 빛나는 삶의 아름다움도 존재하는 법, 주인공은 예술가로서의 자질을 키워가며 푸쉬킨, 고골리, 레르몬토프에 이르는 불멸의 대열에 함께 할 꿈을 꾼다. 김나지움에 입학하지만 규격화된 삶을 참을 수 없었던 아르세네프는 자퇴를 하고 시골로 돌아가 독학하며 문학수업을 시작한다. 더 넓은 세상을 꿈꾸던 아르세네프는 고향을 떠나 러시아 대륙 여행을 시작한다. 고대 러시아의 잔재들을 보며 시간에 대한 인식을 넓혀가던 중 아룔에서 아르세네프는 운명의 상대, 리카를 만나게 되는데.....(요약)

 

 

 

 

 

어떤사람들? 무슨 이야기?

알렉세이 아르세네프         화자. 조국 러시아를 떠나 남프랑스에 살고 있는 작가로 자신의 유년, 청년 시절을 회상한다.

알료샤 아르세네프            삶과 죽음에 대한 예민한 감수성을 지닌 소년으로 화자의 어린 시절.

리카      알료사의 연인. 사교적 모임을 좋아하는 그녀는 알료샤와 잦은 충돌을 겪지만 알료샤를 진정으로 사랑한다.

아버지     크림전쟁에도 참여했던 귀족으로, 현실감각이 없어 기울어 가는 가세를 바로 잡지 못하고 함께 영락해간다.

어머니     매우 감상적인 성격의 소유자로 가족을 위해 끊임없이 신에게 기도한다.

그레고리 아르세네프       주인공의 형으로 매우 혁명적인 사상을 지녀 유형에 처해진 다.

안헨                            알료샤의 첫사랑

바스카코프                    알료샤의 가정교사. 알료샤에게 예술에 대한 꿈을 심어준다.

 

 

 

1장 글을 쓰는 것은 삶을 얻는 것

씌어지지 않은 세상사는 어둠에 덮여 무기억의 관 속에 잠겨 있습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삶을 얻는 것과 같습니다.

 

시작과 끝이란 무엇일까. 인간이 자신의 시작, 즉 탄생의 시간을 알지 못했더라면 자신의 죽음 또한 예견할 수 없지 않았을까. 하지만 죽음이 있음으로 해서 인간은 더욱 삶을 사랑할 수 있게 된 것이 아닌가. 그 진실을 찾아 나는 기억 속에 남은 최초의 기억을 더듬어 시간여행을 떠난다.

 

모든 인간의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은 왠지 모를 슬픔을 느끼게 만든다.

 

적막 속에서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방은 내게 언제나 본원적 고독을 느끼게 했다. 무작위로 떠오르는 기억의 편린들은 내 가슴을 죄는 듯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만든다. 점차 내 시야로 사람들이, 어머니, 아버지, 유모의 얼굴들이 들어오면서, 내 삶에 가족이 들어온다.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갔던 최초의 도시여행은 내게 어른이 되어 보았던 후푸왕의 피라미드보다 더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 있다.

 

 

여행을 떠나기 전의 그 설렘과 흥분, 천 리처럼 길게 느껴지는 여정 그리고, 반짝이는 검은 빛깔과 자극적 냄새의 새로 산 구두약은 단번에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 외출에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창살이 달린 커다란 노란색의 집 창문에 선, 죄수·도둑·살인마 등으로 불리는 사람을 봤다. 그들에게서 나는 뭔가 무시무시하지만 매혹적이기도 한 동화 같은 신비로움을 느꼈다.

 

어린 시절의 어머니를 떠올리면 사랑한다는 것의 두려움, 그것을 잃을 수밖에 없다는 두려움에 몸서리쳐진다. 다른 누구와도 구별되는 특별한 이였던 어린 시절의 어머니와 지금 저 멀리 러시아의 벽지, 차가운 땅 속에 묻혀 있을 어머니는 내게 다시금 인간의 길과 하늘이 정한 길 사이의 간격을 느끼게 한다. 어린 나는 우엉과 엉겅퀴 사이를 헤집으며 자연이 벌여놓은 식탁을 만끽한다.

 

수난 주일을 엄숙히 보내고 다가온 신선한 삶의 생기는 비온 뒤 밭에서 흙 묻은 무우를 뽑아 먹을 때의 그것이었다. 내 세계는 마굿간으로, 가축우리로, 창고로, 절벽으로, 점점 넓어져갔다.

 

 

아침은 사모바르!라고 외치는 아버지의 목소리로 시작됐다. 나는 어서 벚나무로 달려가 새들이 쪼아댄, 태양에 익은 버찌를 먹을 기쁜 생각에 잠을 깼다. 다른 것도 있었지만 기억하고 싶지도, 기억할 수도 없었다. 그런 어느 날 정오나는형니콜라이와함께온처녀사쉬카를보면서가슴이내려앉는것을느꼈다. 햇빛에 검게 그을린 건강한 그들의 아름다움, 그들의 미소가 내게 전해지는 것 같았다.

 

그런 삶에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 한 목동의 죽음을 듣게 된 나는 시체라는 말에 전율을 느꼈다.

 

왜 그렇게 내가 처음 듣는 말이었는데도 무서웠을까? 그럼 내가 이미 그 말을 언젠가 알았다는 것인가?

 

 

나는 의식적 삶의 영역으로 접어들게 됐다. 어느날 내 앞에 바스카코프라는 사람이 등장했다. 그는 가정교사로서 사람의 삶에는 아름다운 것만이 아니라 잔혹하고도 비열한 것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내게 예술가가 되고픈 꿈을 심어줬다.

 

물감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온몸이 떨려왔다. 아침부터 밤까지 종이에 그림을 그리며, 원초적인 연보라빛으로 변해가는 파란 하늘을 보면서 몇 시간이고 서 있었다. 그 하늘 한 조각은 한낮의 더운 해를 등지고, 마치 푸르름 속에서 목욕하는 듯이 나무꼭대기 사이로 비쳤다. 그것은 하늘과 땅의 빛깔이 가진 진실로 성스러운 의미를 느끼게 했다. 삶이 내게 준 것을 되돌아볼 때 나는 이 순간이 내 생애에 가장 중요한 한 순간임을 안다. 연보라빛 푸른 하늘, 나뭇가지와 잎사귀 사이로 보이는 그 파란 하늘을 지금 죽어가며 이렇게 기억한다.

 

 

돈키호테를 읽으며 나는 내가 중세의 어느 열렬한 가톨릭 신자였다고 생각했다. 기사들의 성과 로빈슨 크루소는 내가 그들의 시대에 속해있었음을 느끼게 했다. 그것을 보며 나는 조국을 느꼈다. 나를 열광시키는 것은 또한 푸쉬킨과 고골리였다. 푸쉬킨의 자유로운 상상의 세계는 이후 내 문학수업에 영향을 줬다. 이 모든 것을 나는 감각이 이끄는 대로 느끼고 행동했다.

 

카멘카에서 보낸 마지막 겨울 나는 심한 병을 앓았다. 그리고 두달 후 크리스마스에 어린 여동생 나쟈의 죽음을 겪었다.

 

나는 문득 깨닫는다. 나 또한 죽음을 면치 못하는 존재며 나쟈가 그렇게 가버렸듯, 나 또한 그럴 수 있음을, 그리고 모든 이 땅의 사물들, 생명이 있는 것도, 그렇지 않은 것도, 육체가 있는 것도 모두가 죽게 된다는 것, 썪어지고, 나쟈의 입술을 뒤덮었던 그 검푸른 빛으로 변하게 되리라는 것이다.

나쟈의 죽음을 겪은 그 해 겨울을 나는 성자전을 읽으며 신에 매달려 보냈다. 그러나, 시간은 흘러 새로운 봄의 향기, 그 젊음과 자유, 신선함이 내게 새로운 공기를 숨쉬게 했다. 그 해 8월 나는 김나지움에 입학했다. 입학시험을 무사히 치르고 입학 전까지 나는 3주 동안의 꿈 같은 휴가를 가졌다. 8월 말 아버지와 마지막으로 사냥에 나섰다. 곧 있을 가족과의 이별, 내 유년기가 끝나가고 있었다.

 

 

2장 사회주의자 형 그레고리의 유형

카멘카마을을 떠나 김나지움이 있는 도시로 왔다. 나는 상인 로스토프체프의 집에서 하숙생활을 시작했다. 그 집에서 동급생 글레보치카를 만났다. 사생아라는 소문이 있던 글레보치카는 마치 작은 짐승처럼 웅크리고 앉아 눈치를 살피는 등 평범하지 않았다. 밀과 가축을 중개하는 집주인 로스토프체프는 말수가 아주 적고, 행동 하나하나, 말투 하나하나에 규칙을 정해 자신에게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지키도록 했다. 자신이 상인이며, 건실한 시민이라는 것을 몹시 자랑스러워하는 로스토프체프는 러시아를 풍미한 러시아적인 것에 대한 오만함이었다.

 

무엇을 자랑스러워하냐고? 그것은 물론 우리들이, 로스토프체프들이, 러시아인, 진정한 러시아인이라는 것이며, 우리는 겉으로 보기에 소박한 우리들의 삶, 순박한, 그런 특별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삶은 진정한 러시아적 삶이며 그보다 더 나은 것은 있을 수 없다. 왜냐면 소박한 것은 다만 겉으로만 그럴 뿐이다. 실제론 이 세상 어느 나라보다 풍요로운 삶이다. 그런 삶은 본원적인 러시아의 이상이다. 러시아는 이 세상 어느 나라보다도 풍요롭고, 강하며, 올바르고 영광스러운 나라다.

 

 

이런 생각은 로스토프체프만의, 그가 살고 있던 도시만의 풍조가 아니라 전러시아적인 생각이었다. 어른이 된 나는 스스로 묻는다, 그렇다면 러시아가 죽어갈 때, 그 오만함은 어디갔던가? 하고.

 

김나지움 생활은 그럴 수 없을 만큼 지루했다. 하루가 지나고, 일 주일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고,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다. 아침부터 밤까지 분주히 움직이며 뭔가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나는 세상에 참여하지 못한 채 그렇게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는 것이 괴로웠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던 어느 저녁 길에서 마주친 여인은, 그 밤 분수와 물보라, 군악대의 음악소리, 그리고 담배향과 어우러져 그 후 담배향을 맡을 때마다 풋사랑의 설렘으로 그 순간의 소리와 정경을 떠올리게 했다.

 

 

그해 늦가을 첫 서리가 내릴 무렵, 나는 뭔가를 알고, 그것을 글로 표현하는 것에 매혹됐다. 고대의 수도원처럼, 뭔가 오래된 것을 생각하면 그것을 시로 표현하고 싶다는 시적 상상에 빠졌다. 수도원을 돌아 도시로, 가난하고 더러운 거리를 따라 내려오면 가죽을 무두질하는 집들이 들어서 있는 낡고 오래된 곳, 이런 곳을 바라보며, 뭔가 동화같은 이야기를 짓고 싶었다.

 

아버지는 카멘카를 팔고 바투리노로 이사하면서 마치 부자가 된 듯, 도시에 올 때마다 최고급 호텔에 머물곤 했다. 이때가 우리 가족에게 경제적 걱정이 없었던 마지막 시기였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자주 날 보러 왔고, 함께 서커스를 구경하기도 하고 미사에 참여하기도 했다. 몹시 추운 겨울이었다. 주현절의 추위는 아득한 고대 러시아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밤이 되면 칠흑같이 검은 하늘에 오리온성이 반짝였고, 이튿날 아침 거리는 무척 미끄러웠다. 청명한 대기 속에 도시 전체는 집집마다 내뿜는 알싸한 연기에 뒤덮였고, 길 가는 사람들 발걸음 소리와 썰매가 지나가며 내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런 어느 날 교회 앞에서 바보 거지였던 두냐가 죽었다. 도시 전체가 마치 그녀가 왕족인 듯 장례를 치러줬다.

 

그리고 생애 최초의 무도회가 있었다. 어여쁘게 차려입은 아가씨들, 그들의 하얀 장갑과, 가벼운 무도화, 하얀 깃털장식들, 검은 빌로드 스카프, 실크 리본, 이 모든 것들이 나를 황홀경에 빠뜨렸다. 무도회가 끝난 후에도 나는 오랫동안 그 날의 느낌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3학년이 되고 나는 수업시간에 몰래 일리야드를 읽다가 교장 선생님께 들켰다. 교장선생님의 훈계에 내가 어린 아이가 아니니까 함부로 대하지 말라고 했다. 이 시기에 나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매우 성장해 있었다. 내가 보고 느끼는 것을 잘 이해했으며 주위 사람들에 대해 조금은 오만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4학년 9월 즈음에 나는 바딤 로푸힌이라는 녀석과 사귀게 됐다. 자신이 귀족임을 매우 뻐기고 다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가 먼저 다가왔다는 것에 으쓱해져서 그와 다니기 시작했다. 그를 통해 날랴를 알게 됐다. 그녀는 좋은 가문 출신의 여학생이었지만 그 분방한 몸가짐으로 내게 남성을 느끼게 만들었다. 다행히도 그녀는 곧 다른 곳으로 떠났고, 내겐 엄청난 일이 생겼다. 형 그레고리가 체포된 것이다.

 

 

사회주의자라는 말만으로도 신비로움을 일으켰던 그때, 전도가 유망하던 형은 고통받는 인민을 위해 자신을 바쳐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아둔하리만치 현실과 유리된 채, 현실을 경멸하고, 이성이나 계산없이, 혹은 보이지 않게 서두르지 않고, 행동하려 하지 않는 러시아의 항거자, 저항자들, 혁명가들이란 도대체 누구인가?

 

나는 이것이 평범한 일상을 거부하고 뭔가 흥미진진하고 스릴 넘치는 삶을 갈망하는 러시아인의 특성이라 생각했다. 오랫동안 수배생활을 하던 형은 이웃의 밀고로 체포돼 유형을 갔다.

 

 

그로부터 1년 후 나는 김나지움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왔다. 비로소 청년이 된 것이다. 나는 영락한 귀족의 자손으로 태어나 이젠 아무것도 남지 않은 현실에 절망했지만 푸쉬킨의 시에서 친근한 뭔가를 느끼며 내 영혼이 진동함을 느꼈다. 학교를 그만두고 집에 와 있는 내게, 아버지는 영혼과 삶의 시가 네게 내린 하늘의 의지라고 말한다. 그 무렵 형 그레고리는 시베리아가 아닌 바투리노로 유형을 오게 돼 새롭고도, 자유로운 열의 넘치는 내 수업이 시작됐다. 나는 2의 푸쉬킨 혹은 제2의 레르몬토프가 되길 꿈꿨기에 그들의 초상화를 보며 혈육의 정을 느꼈다. 이해 여름 나의 또 다른 형 니콜라이가 결혼을 했다.

 

 

그 겨울 나는 사촌 누나의 영지 바실리예프로 자주 책을 빌리러 갔다. 수마르코프와 안나 부니나, 제르쟈빈, 바츄쉬코프, 쥬코프스키 등의 책을 읽으며, 나는 처음으로 글을 쓰고 싶다는 열망을 안고 꿈을 가꿔나갔다. 그 집에서 만난 안헨은 내게 첫사랑이 됐다. 이듬해 봄은 내 생애 가장 특별한 봄이었다. 하지만 나는 또 하나의 죽음을 맞았다. 바실리예프의 주인 피사레프의 죽음이었다.

 

 

 

3장 삶은 정념의 순간이거나 그 기다림의 시간

피사레프의 죽음을 보며 나는 죽음과 더불어 넘치는 생명의 기운을 느꼈다. 한 사람은 떠났지만, 삶은 새롭게, 더욱 커진 생명력으로 나를 끌어당겼다. 여전히 삶은 아름다움으로 가득 차 있고, 생명력이 넘치는 봄과 안헨과의 사랑이 있었다. 하지만 곧 안헨은 바실리예프를 떠났다. 안헨은 내게 여성의 몸이 가진 무게를 알게 해줬다.

 

그 부드러움, 세상과 삶과 인간의, 정신적 육체적 아름다움에 대한 달콤한 사랑의 고통을 그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내게 전해주고 떠난 것이다. 나는 눈물을 흘렸다.

 

 

안헨이 떠난 후, 나는 페테르부르그의 유명 잡지에 내 시가 개재된 것을 알았다. 내 나이 열다섯, 비로소 나는 완전한 성인이 된 것이다. 나는 세상을 더욱더 알고, 성인으로서 독립된 삶을 살고자 하는 열망에 사로잡혔다. 확신도 있었다. 나는 아르세네프가의 일원이라는 사실에 내심 자랑스러워했다. 쥬코프스키 같은 훌륭한 시인의 후손이라는 것, 크림전쟁에 참여한 영광스런 가문의 자손이라는 것에 자긍심을 느꼈다.

 

 

그러나 현실 속의 나는 때론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갈망하기도 하는 가난한 몰락귀족의 아들일 뿐이었다. 나는 살고 있는 고장도 한번 떠나보지 못했다. 이런 내게 자연은 친구 같았다. 어느 밤 정원을 산책하던 나는 불현듯 하늘의 달과 내가 서로 같은 것을 느끼고, 같은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서서 달을 바라봤다. 달도 서서 나를 바라봤다. 강에는 물에 비친 하늘이 검푸른 심연처럼 떠있었고 그 하늘에는 머리를 날개죽지에 묻고 얕은 잠에 빠진 오리의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완전한 침묵!..... 이렇게 우리는 정원을 함께 거닐었다

 

안헨에 대한 기억으로 나는 몹시 괴로웠다. 세상 모든 곳에 그녀가 있었다. 그러나 시간은 흘렀고 그녀는 차츰 신화가 됐다. 그녀의 모습은 이젠 시적 감흥을 불러일으키면서 아름다운 여성이라는 보편적인 이미지로 내게 남았다.

 

 

초여름 어느날 나는 잡지에서 나드슨의 죽음을 알게 됐다. 비록 그의 시는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사후에 그가 누리는 영광에 매료됐다. 나도 그러한 영예를 누리고 싶었다. 그를 좀더 알기 위해 시내 도서관에 다녀오던 길에 마차를 타고 내 곁을 스쳐 지나가는 아가씨를 봤다. 그녀는 리자 비비코바라는 귀족 아가씨였다. 푹풍우 치는 밤의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나는 새로운 사랑이 왔음을 느꼈다.

 

그녀에 대한 사랑은 장난스러운 것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그것은 우리의 일상이 만들어낸 것이었다. 내 상상이 낭만적으로 그려낸 주위의 모습들, 무더운 유월의 한낮, 짙푸른 숲과 자스민 향기, 시원한 나무그늘. 현실은 보잘 것 없고 가난했지만 가난함으로 그런 것들은 오히려 빛이 났다. 반짝이는 낮의 생활과는 다른 밤이 있었다. 밤마다 나는 시를 썼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리자가 떠난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땀을 흘리며 손에 못이 박힐 때까지 밭일에 몰두했다. 그렇게 여름은 가고 가을이 왔다. 이미 나는 여러 잡지에 시를 발표한 시인이 돼 있었다. 처음으로 원고료도 받았다. 이즈음 나는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생각에 다시 사로잡혔다. 이런 내 생각을 더욱 굳어지게 한 것은 이반 안드레비치 발라빈이었다. 곡물상인인 그는 문학에도 일가견이 있어, 내 열망을 알아차리기라고 한 듯 살고 있는 곳을 떠나 더 넓은 곳을 경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바로 여행을 시작할 수 없게 됐다.

 

 

톤카라는 하녀 때문이었다. 스무 살의 그녀는 결혼을 했지만 돈을 벌기 위해 남편이 떠나 혼자 살았다. 인디언 처녀를 닮은 그녀는 발을 굴리며 사모바르를 나르고, 야생의 냄새가 나는 검은 머리의 여자였다. 어느 겨울 저녁, 나는 그녀와 첫밤을 보냈다. 정신이 든 순간 뭔가 끔찍한 일을 저질렀다는 생각과 함께 성취했다는 기쁨이 교차했다. 이때부터 내 삶은 혼란의 연속이었다.

 

이건 정말 내 영혼과 육체를 모조리 삼켜버리는 대혼란이었다. 삶은 온통 정염의 순간이거나 그것을 기다리는 시간, 그리고 내 심장을 찢는 참혹한 질투로 인한 고통의 순간이었다.

 

그녀의 사랑은 변덕스러운 것이었다. 나는 천국과 지옥을 오가며 괴로워했다. 그러던 5월 어느 날, 모든 것이 끝났고 나는 구원받았다. 자신의 타락에 고통받던 내게 니콜라이 형은 그 관계를 청산하라고 충고했다. 그녀의 남편이 우리의 관계를 알았고, 더 이상의 모험은 불가능해졌다.

 

 

 

4장 한순간일 뿐인 삶

가계는 이미 완연히 기울었고, 니콜라이 형도 떠나고, 보호관찰하에 있던 그레고리 형도 형 집행기간이 끝나갔다. 나는 떠날 준비를 했다.

 

이 시절을 떠올리며 나는 지금의 나와 과거의 내가 다른 사람은 아닌가 생각한다. 어느날 봤던 앨범 속의 빛바랜 사진처럼, 그 사진 속의 사람들이 살아 숨쉬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이미 옛이야기나 전설이 돼버린 것처럼 느껴지듯.

 

그해 여름 마을에서 톤카를 만났다. 그녀와의 관계를 끝내준 것에 감사한다는 남편의 말을 전하고 가버린 톤카를 보며, 나는 또다시 어디로 가야할지 막막해졌다. 발라빈과의 두 번째 만남은 떠나야 한다는 생각에 확신을 줬다.

 

 

아무튼 이 불가해하고 영원한 거대한 세상에서, 무한한 과거와 미래 속에서, 그 와중에 바투리노라는 시공간의 한계 속에서, 나의 인생은 과연 무엇인가? 삶은 (나와 다른 모든 이들에게도) 낮과 밤, 일과 휴식, 만남과 대화, 만족과 불만, 때에 따라 사건이라 불리는 것들의 연속임을 보았다. 또한 삶은 느낌과 풍경, 형상의 무절제한 축적이기도 하며 그중 극히 작은 일부만이 (그것도 왜, 그리고 어떻게 그렇게 되는지 모른 채) 내게 남는다. 삶은 서로 관련 없는 감정과 생각, 과거에 대한 무질서한 기억들과 미래에 대한 흐릿한 전망, 이 모든 것들이 한순간도 우리를 놓아주지 않는 끊임없는 흐름이었다. 그리고 또 있다. 그것은 삶의 어떤 핵심이자, 의미이며 목적인 뭔가 중요한 것, 그렇지만 포착되지도 않고 표현되지도 않는 그런 것이다. 이것은 영원한 기다림과 관련이 있다. 이는 행복만을, 어떤 특별한 충만함만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뭔가 (그것이 도래할 때) 그 본질과 의미가 불현듯 드러나게 되는 그런 것의 기다림이다. 예언서에도 써 있듯이 당신은 너무나 멀리 가시는군요... 말하자면 비밀리에 나는 그것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이다. 왜냐고? 아마도 이 때문이 아닐까?

 

그레고리 형이 10월 하리코프로 떠났다. 나는 여기저기 다니고 사냥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11월 어느날 레르몬토프가 살던 곳에 도착했다. 가난과 힘겨움에 찌들고, 황폐하고 버림받은 듯한 주위 풍경에 나는 놀랐다. 그러면서 이런 가을의 권태과 나태에 시간을 죽이며 웅크리고 있는 사람들을 이해하기 어려워졌다. 나는 레르몬토프와 이곳을 생각하며 의문에 사로잡혔다. 다시 레르몬토프의 책을 읽으며 나는 그의 불타는 열정과 극적인 인생을 떠올리고 다시금 바투리노를 떠나자고 다짐했다. 그레고리 형에게 오룔에 있는 출판사 목소리로 일자리를 구하러 떠난다는 편지를 썼다.

 

 

내가 떠나던 그 눈 내리던 날은 영원한 방랑의 시작이었다. 형이 있는 하리코프에 도착한 나는 이전과는 다른 형을 만났다. 형은 하리코프의 친구들을 소개해줬는데, 그들은 모두가 일종의 혁명가들이었다. 이들의 말과 행동은 매우 낯설었다. 이들은 학창시절에 벌써 단체를 조직하고 학생 운동에 참여해 유형을 가거나, 투옥됐다가 나와 다시 일을 계속하는 사람들이었다.

 

이들 모두는 뭔가 특별한 변하지 않는 것을 갖고 있었다. 그것은 그들만의 일, 그들만의 이해관계, 그들만의 사건, 그들만의 유명인사, 그들만의 도덕, 그들만의 애정사, 그들만의 가정사, 그들만의 우정, 그리고 러시아에 대한 그들만의 태도며 러시아의 과거와 현재를 부정하고, 미래에 대한 꿈과 믿음을 갖고 이를 위해 투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태도는 미숙한 내게도 거부감을 불러일으켰으나, 그들 모임의 활기에 끌려 그 겨울을 그들과 함께 보냈다. 나는 『이고리원정기를 읽으며 고대가 숨쉬는 세바스토폴로 흑해로 떠날 것을 결심하고, 이른 봄 크림반도로 여행을 떠났다. 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영지 바투리로를 판 후였다. 이제 우리 가족의 전과 같은 삶은 막을 내렸다. 또 하나 놀라운 소식은 그레고리 형에 대한 것이었다. 형이 결혼을 한 것이다.

 

 

형수가 된 사람은 부유하고 유서깊은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자유로운 정신을 사랑하는 여자였다. 그녀는 민중을 위해 일하는 남자와 결혼을 했다. 결혼 후 형수는 타고났을 뿐인 자신의 아름다움마저 부끄러워 할 정도로 더욱 열정적으로 활동했으나 결혼으로 부자가 된 남편은 민중에 대한 열정을 잃었다. 그러던 어느날 여자는 유형살이를 하던 그레고리 형과 만나고 그와 사랑에 빠지게 된 것이다. 이 이야기는 내게 지나치게 낭만적인 소설처럼 느껴졌다.

 

 

여행을 마친 나는 오룔에 있는 출판사 목소리로 일자리를 구하러 갔다. 그곳에서 는 일생의 연인 리카를 만났다. 그녀를 처음 본 순간 나는 사랑에 빠졌다. 그것은 급격하고도, 의지와는 상관없는, 광적인 상태와도 같았다. 이렇게 사랑이 시작됐고, 이것은 내 일생에 있어서 커다란 사건이었다.

 

그날 기차역에서 장례열차를 봤다. 기차역을 가득 메운 추도행렬 사이로 대공작의 시신을 실은 장례 열차가 지나갔다. 이날 기차역에서 나는 아름다운 젊은 귀족 장교를 봤다. 나는 일생 동안 꼭 두 번 이 장교를 만났는데 두번 다 장례식에서였다. 두 번째 만남은 바로 그의 장례식에서였다. 그 역시 나처럼 프랑스로 망명해 쓸쓸히 인생을 마감하던 차였다. 관 속에 누워 여러 사람들의 마지막 전송을 받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보며 나는 세월이 한순간임을 깨달았다.

 

 

5장 기억, 그 영원함

그 봄 나는 무척 사랑을 하고 싶었다. 나의 삶은 봄의 아름다움과 리카와의 사랑으로 더없이 행복했다. 또다시 방랑벽이 발동한 나는 기차를 타고 여행을 떠났다. 열차에서 맞는 신새벽과 왁자지껄한 역의 활기 속에서 나는 리카와의 만남을 고대했다. 니콜라이 형은 내 장래를 걱정하며 미래를 설계하고 정돈된 삶을 살라고 충고했다. 나는 젊은 호기로 형의 걱정을 가벼이 넘겼다. 하지만 의사였던 리카의 아버지도 내가 일정한 직업도, 목적도 없이 사는 것을 보고 우리의 결혼을 반대했다. 아버지 승낙없이는 결혼할 수 없다는 리카의 말에 우리는 잠시 떨어져 있기로 했다. 초겨울에 나는 집으로 떠났다.

 

 

그러나 참을 수 없는 그리움에 우리는 기차에서 해후했다. 그 밤 기차에서 우리는 첫날밤을 보낸다. 그후 우리는 오룔에서 겨울을 보냈다. 나는 작은 호텔에 숙소를 정하고, 그녀는 출판사 목소리의 여사장 아빌로바의 집에서 지냈다. 양쪽을 오가느라 정신적·육체적으로 매우 힘들었지만 너무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녀는 아버지 곁을 떠나 오룔에 머물기 위해 음악을 배우기 시작했고, 나는 목소리에서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우리의 만남이 행복하기만한 것은 아니었다. 리카는 극장, 무도회 같은 사교적 모임을 좋아하는 여자였다. 그런 그녀의 취미를 나는 이해하지 못해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에 질투심을 느끼며 고통받았다. 리카 또한 문학에 대한 내 열정을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그녀에게 자연의 신비로움과 아름다움, 시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지만 그녀의 반응은 실망스러울 뿐이었다. 사교적인 모임을 싫어하는 나로서는 그녀와의 만남이 절실했고, 내 집착은 병적이었다. 그럴수록 그녀와 관계는 힘들어져 갔다.

 

가장 참을 수 없었던 것은 연극에 대한 그녀의 관심이었다. 나는 연극이 가장 부자연스럽고 속물적인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때로 지나치게 화를 내며 시비를 걸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리카와 아빌로바의 대화를 듣게 됐다. 리카는 아빌로바에게 힘들지만 나를 몹시 사랑한다고 했다. 그럼에도 우리 관계는 쉽게 회복되지 못했다. 우리는 오랫동안 헤어져 있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한 남자와 함께 그녀를 데리러 왔다. 무척 뚱뚱한 그는 한눈에 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부유하고 매너도 좋은 그에게 리카는 수줍은 미소를 보냈다. 그 미소를 본 순간 그 자리에서 내가 불필요한 사람으로 느껴졌다. 그렇게 그녀는 떠났다. 리카가 떠난 후 갑자기 다정스러워진 아빌로바를 보며 뭔가 이상함을 느꼈지만 그것이 뭔지 그때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아빌로바는 리카가 떠난 후 오룔에 남아 있는 내게 가장 가까운 사람이었다. 그녀의 의미심장한 표정에 나는 당황하면서도 행복하기도 했다.

 

리카가 떠난 후 나는 체홉의 신작을 읽었다. 나는 쓰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혔다. 그것은 글로 표현할 수 없는 무엇이었기에 더 힘들었다.

 

 

나는 마치 탐정처럼 지나기는 사람의 등을 바라보며 그의 신을 보며 그 속에 있는 무엇인가를 이해하고 그 속으로 들어가려 애썼다. 글을 쓴다는 것! 그것은 지붕에 대해서, 그 신발에 대해서, 그 사람의 등에 대해서 써야하는 것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억압과 폭력과 싸우기 위해서도, 탄압받고 박해받는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도, 문학적인 전형을 창조하는 것도 아니며, 사회와 현실, 그 흐름을 폭넓게 그려내는 것도 아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내게 세상에 보이는 것, 그것에 사상이나, 이상을 덧씌우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거짓없이 그려내는 것이다. 내리는 눈과 초가집들과 그 집의 등잔불을 그려내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부터 시작해야 하는가 하는 의문에서,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시작은 나 자신에게서부터 라고 나는 생각했다.

 

 

말하기 부끄럽지만, 나는 시간과 공간의 무한대, 우주 속에 태어났다..... 나는 언제나 사랑과 기쁨을 자아내는 것으로 살아왔다.

 

아직도 태고의 어두움에 갇혀 있는 조국 러시아를 생각하던 나는 불현듯 길을 떠났다. 스몰렌스크를 지나 비체프스크, 페테르부르그를 거쳐 모스크바를 여행한 나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러시아의 모습을 봤다. 페테르부르그의 귀기 어린 거대함과 모스크바의 번잡한 거리를 보며 나는 리카에게 전보를 보냈다. 오룔에 도착하자 기차역에서 리카는 나를 맞아줬다. 그녀의 모습 속에서는 전에 볼 수 없었던 부드러움, 안스러운 어떤 것이 있었다. 그녀는 많이 야위었고 차림도 몹시 검소했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만났고, 이전과 달리 평화롭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나는 그녀에게 질투하지 않았고, 그녀도 내게 순종했다. 나는 출장 때문에 자주 집을 비워야 했고, 그녀에게 예술가임을 누차 이야기하며 자유로운 생활을 즐겼다. 출장을 핑계로 다른 여자를 만나기도 했다. 리카는 고통의 시간을 보냈다. 나는 평범한 가정을 원치 않았지만 그녀는 아이를 갖기 원했다. 나는 그녀가 순종하는 모습을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11월 낙엽향이 몹시 나던 어느 날, 그녀는 내 곁을 떠났다. 나는 왠지 모를 분노를 느끼며 그녀를 쫓아가지 않았다. 그러나 세상의 구석구석에 그녀가 있었다. 어디에 앉아도, 무엇을 봐도 그녀가 있었다. 고향 바투리노의 부모님은 이미 몹시 늙었고, 여동생은 젊음도 느끼지 못한 채 시들고 있었다. 빈한한 집, 황폐한 정원, 차가운 바람, 모든 것이 텅 비어 있었다. 나는 스무살이었다. 리카를 찾아 그녀의 집을 찾았지만 그녀는 다른 곳으로 이미 떠났고 아무도 나를 반기지 않았다.

 

 

이듬해 봄 나는 그녀의 죽음을 알았다. 폐렴으로 죽어간 그녀는 그 소식을 내게 알리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고 했다. 그녀가 죽고 반평생을 홀로 산 나는 지금도 그녀의 첫 봉급으로 내게 사준 노트를 갖고 있다. 그 노트엔 그녀가 떨리는 마음으로 쓴 몇 글자가 남아 있었다. 나는 꿈에서 그녀를 봤다.

 

그녀는 우리가 같이 살던 그때의 젊은 모습 그대로였다. 그런데 그녀의 얼굴엔 시들어가는 아름다움의 반짝임이 있었다. 야윈 그녀는 상복 비슷한 것을 입고 있었다. 나는 그녀를 어렴풋이 보았지만, 내가 느낀 사랑과 기쁨, 정신적 그리고 육체적 친밀함은 그후론 한번도 갖지 못한 강렬한 것이었다.

 

 

 

더재미있게읽기위하여

이 책의 화자인 알렉세이 아르세네프는 조국 러시아를 떠나 프랑스에 망명해 여생을 보내고 있는 작가다. 자신의 어린 시절부터의 기억을 하나씩 되살리면서, 삶과 죽음, 사랑과 문학, 조국 러시아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적고 있다. 화자의 어린 분신인 알료샤는 세상에 대한 특별한 감각을 지닌 예민한 감성의 소유자. 그는 학교라는 구속된 삶을 미련 없이 떨쳐버리고 홀로 자신의 생의 의미에 대한 탐구를 해나가며 문학 속에 자신의 소명이 있음을 느낀다.

 

 

자연에 민감히 반응하며 자신의 예술적 감수성을 키워나가는 알료샤는 가까운 이들의 죽음을 통해서 삶과 인생에 대한 의문을 갖게 되는데, 인간이 죽음이라는 정언명령을 지닌 존재임을 터득한다. 그런 주인공에게 다가온 사랑의 감정은 삶의 아름다움을 더욱 고조시킨다. 그의 영원한 연인인 리카와의 사랑은 알료샤로 하여금 극단적 고통과 극단적 행복을 느끼도록 만든다. 그러나 결국 리카는 예술가로서의 자유를 과신한 알료샤의 곁을 떠난다. 이후 알료샤는 그녀의 죽음을 알게 되고 그는 꿈에서 리카를 만난다.

 

이렇게 어린시절의 와 성년의 의 시각이 교차하면서 진행되는 이야기는 사건 중심의 서술에서 벗어나 고대(古代)의 향기를 풍기는 러시아의 어제와 오늘, 그 시간의 의미, 나 자신의 존재이유에 대한 물음으로 가득찬 일종의 철학적 서정시라고 할 수 있다.

 

 

존재 이유를 묻는 철학적 서정시

소설 아르세네프의 생애는 출간 즉시 프랑스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많은 비평가들은 프랑스의 대문호 마르셀 프루스트의 대작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의 유사성을 지적했다. 실제로 부닌도 자신의 소설을 마친 후 프루스트의 소설을 읽으면서 매우 놀랐다고 한다. 기억을 통한 과거의 재구성, 강한 감성적 색채를 지닌 디테일 묘사, 창작을 통해 시간 혹은 죽음을 극복한다는 점이 서로 비슷했다. 이것은 바로 부닌의 문제의식이 지닌 보편성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서 자신의 평생 테마, 삶과 사랑과 죽음과 이별과 러시아라는 문제를 특유의 서정적 필치로 아름답게 풀어내고 있다.

 

망명객으로서 조국을 잃은 슬픔 가운데 자신의 존재의 의미를 찾는 행위로서의 아르세네프의 글쓰기는 바로 작가 부닌의 모습이기도 하다. 어둠 속에서 섬광처럼 번뜩이는 유년의 기억을 따라 화자는 어린 시절 알료사의 눈을 통해 19세기말 중부 러시아의 대 자연의 풍요로움과 몰락한 귀족의 가난한 삶을 보여준다. 억압적인 상황에 의해 이뤄진 망명이라는 조건 하에서 작가가 자신의 조국과 유일하게 결부된 과거에 대해 깊게 탐구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부닌에게 러시아의 혁명은 유구한 문화의 파괴이며 인간성의 말살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현실의 소비에트는 이미 그의 조국이 될 수 없었다. 그러나 소설 속에 그려진 과거는 현재로부터 동떨어진 노스탤지어로서의 그것이 아니다. 과거 속에서만 존재하기 때문에 그것을 회상하며 그리워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현재와 과거를 잊고자 하는 작가의 열망이 글을 쓰는 행위로 나타났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기억의 자유로움은 작가에게 인간의 물리적 한계, 시간, 죽음 혹은 망각을 뛰어넘을 수 있는 매력적인 수단이 된다.

 

 

작품 속의 주인공은 시 속의 서정적 자아와도 같은 역할을 한다. 즉 주인공은 주위 사물을 자신의 내면 속에 투영시켜 사물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본다. 주인공의 눈은 카메라의 렌즈와도 같다. 세상은 그의 눈에 비쳐서 비로소 그 의미를 갖는다. 세상의 존재감은 나를 통한 것이고 나의 존재감은 이러한 세상과의 관계 속에 있는 것이다. 부닌에게 나와 세계, 현재와 과거, 상상과 현실은 그 경계를 나눌 수 없는 것이다. 세상은 이성과 논리가 아니라, 감성과 직관에 의해 지각된다. 따라서 작품의 구성 자체도 밀도 있는 사건의 전개가 아닌 세상을 바라보는 주인공의 서정적인 시선에 집중해 있다.

 

이반 부닌이 남긴 유일한 장편소설 아르세네프의 생애는 작가가 평생 동안 고민해왔던 형식과 내용의 결합이라는 문제를 예술적으로 해결한 작품이다. 산문작가이면서 시인이기도 했던 부닌은 서정적 세계인식을 바탕으로 '서정적 산문'이란 독특한 문학형식을 만들어낸다. 테마에서, 문체, 서사구조, 작품의 구성에 이르기까지 작품의 전체에 걸쳐 형상화된 서정성의 문제는 바로 부닌의 독특한 세계인식에 기인한 것이다.

 

어느 유파에도 가담하지 않았던 부닌은 20세기 러시아 문학사 속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진솔한 삶의 태도와 과장되거나 왜곡된 모든 것에 대한 비타협적 태도, 당시 문단에 풍미하던 모더니즘 작가들의 과장된 삶과 문학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적 자세는 부닌의 올곧은 문학정신을 보여준다.

 

<“아르세네프의 생애(Жизнь Арсеньева)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이반 알렉세이비치 부닌 지음>

 

 

저 자 이반 알렉세이비치 부닌 Иван Алексеевич Бунин(18701953)

러시아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1933). 감성과 직관에 의한 서정적 필치로 삶과 죽음을 철학적으로 탐구했다.

 

 

예리혼의 장미, 부활하는 생명

고대 동방에서는 무덤가에 예리혼의 장미를 놓았다고 한다. 가시가 잔뜩 난 이 꽃은 사해(死海) 아래쪽 시나이 산자락, 자갈밭에만 사는데, 태어나고 자란 곳에서 수천 리 떨어진 곳에 수백년간 죽은 듯 마른 듯 있다가도 물을 만나면 언제든 다시 잎을 내고 꽃을 피운다는 전설을 갖고 있다. 그래서 고대 동방의 사람들은 그 꽃을 불멸과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한 믿음의 증표로 여겼던 것이다.

 

세상에 죽음은 없다

언젠가 존재했던 한.

이별도, 상실도 없다

내 영혼과 내 사랑과 내 기억이 있는 한.

 

이반 부닌은 망명 후 펴낸 자신의 단편집에 예리혼의 장미 이야기를 서문으로 붙였다. 조국 러시아를 떠나 프랑스의 남쪽 외딴 지방에서 망명객으로 살아가야만 했던 자신의 불우한 삶 속에서, 그래도 꺼지지 않는 생명의 희망을 노래한 것이다. 조국을 잃고 살아간 그 자신이 고향에서 멀리 떨어져 언제나 목말라하던 예리혼의 장미였을까.

 

1933년 러시아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이반 알렉세이비치 부닌는 1870년 오랜 전통을 가진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가 자란 중부 러시아의 아룔 지방은 이름 없는 꽃들로 뒤덮인 언덕과 물결치듯 출렁이는 밀밭으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곳이었다. 그곳에서 어린 부닌은 광할한 러시아 대자연의 신비로움을 유난히 발달한 오감으로 만끽하면서 예술가로서의 감수성을 키웠다.

 

자유로운 사고와 섬세한 감성을 지닌 부닌에게 규격화된 제도는 참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는 중학교 시절, 수업시간에 몰래 호머의 『일리아드를 읽다가 교장선생님께 들켜 야단을 맞게 되자 자신이 어린아이가 아니므로 그에 어울리는 대접을 해달라고 당당히 요구할 정도로 자의식 또한 강했다. 결국 그는 스스로 학교를 견디지 못하고 그만뒀다. 그의 예술적 자질을 키워준 것은 학교도, 잘 짜여진 교육도 아닌, 세상에 대한 끊임없는 물음이었다.

 

 

아름답고 풍요로운 자연과 달리 현실은 점점 어려워졌다. 영락(榮落)하는 집안 현실과 비참한 삶을 영위해 가는 농부들의 모습을 보면서 부닌은 귀족도 농민도 모두 다를 바 없는 사람임을 느낀다. 러시아는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다. 다만 사랑할 뿐이라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그도 차츰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러시아인의 어두운 내면을 본다.

당연히 부닌이 그려낸 러시아의 모습이 19세기 말의 많은 리얼리즘 작가들이 그려낸 긍정적이며 밝고 희망찬 러시아의 모습과 거리가 있었다.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이 아니라 인간 본연의 존재에 대한 의문은 부닌으로 하여금 죽음과 사랑, 삶과 자연을 천착하게 했다.

 

 

망명객으로서의 쓸쓸한 삶

그가 문학 활동을 하던 시기는 은세기로 불리던 러시아의 새 문예부흥기였다. 이 시기에 많은 시인과 작가들이 그룹을 만들어 문학 강령을 발표하고, 서로 경계를 만들며 새로운 시대의 기수임을 자처했다. 부닌도 초반에는 고리키가 주축이 된 리얼리즘 계열의 문학서클 수요일에서 활동했다. 그러나 곧 부닌은 이들이 가진 문학적 태도를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어떤 사상이든 그것을 위해 예술이 복무해야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부닌은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말해주는 대신 우리가 사는 모습을 거짓없이 보여주는 것이 작가라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을 갖고 있던 부닌에게 1917년 혁명은 러시아인이 갖고 있던 어두운 내면이 표출된 야만의 상징으로 느껴졌다. 과거를 철저히 부정하고 유구한 문화를 송두리째 짓밟는 혁명의 현실을 부닌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에게 혁명은 반문화적 폭력일 뿐이었다. 결국 그는 1920년 오데사를 통해 프랑스로 망명하고, 그후 죽을 때까지 둥지 없는 방랑생활을 했다.

 

그러나 망명객을 보는 유럽 지성의 시선은 차가왔다. 혁명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던 그들에게 망명객은 자신의 안일만을 위해 조국을 등진 비겁한 사람일 뿐이었다. 이미 고향을 잃은 아픔을 감수한 부닌에게 이런 시선은 또다른 심리적 고통을 안겨줬다. 낯선 나라를 떠돌며 심리적, 경제적, 정치적 고통을 겪던 부닌은 1933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다. 이때 그의 나이 53세, 망명지 프랑스에 정착한 지 십여 년이 지난 후였다.

 

부닌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비겁자로 낙인 찍힌 수많은 러시아 망명객들의 삶에 객관적인 명분을 준 동시에 러시아에서도 마침내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왔다는 자부심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정작 노벨상 시상식 장소에서 조국 러시아의 국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후 소련으로부터 여러 번 귀국을 제안받지만 부닌은 끝까지 받아들이지 않았고, 1953년 파리에서 그 쓸쓸했던 삶을 마감했다.

 

 

형이상학적 주제를 미학적 문체로

러시아 문학사에서 미학적 스타일리스트로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부닌의 산문은 예술적인 완성도 측면에서 세계문학사상 매우 높게 평가받는다. 「가벼운 숨결, 일사병,깨끗한 월요일,미차의 사랑,파리에서 등의 작품은 간결하고 절제된 언어구사와 주제와 구성의 완벽한 일치로 지금까지도 러시아 작품의 모범이 되고 있다. 인간 본연의 문제, 특히 사랑과 죽음에 대한 탐미적 묘사는 러시아 문학사에서 그 유래를 찾아 볼 수 없다.

 

그에게 노벨상의 영광을 가져다준 장편소설 아르세네프의 생애는 존재의 시작과 끝이라는 매우 형이상학적인 문제들을 다루지만 이런 주제는 부닌의 필치 속에서 서정적이면서도 투명한 언어로 가볍게 묘사돼 그 주제가 가진 무거움을 벗는다. 부닌의 주인공이 보고, 듣고, 느끼고, 냄새 맡는 것을, 독자들도 마치 직접 느끼는 듯한 환상에 사로잡혀 자연스럽게 자신의 존재에 대한 물음 속에 몰입하게 된다. 이런 심미적 현장감이야말로 바로 부닌의 작품이 가진 현대성이다.

 

20세기 러시아 작가 가운데 가장 비정치적이었던 부닌은 역설적이게도 두 번이나 정치적 상황의 변화를 지칭하는 문학적 기호 역할을 했다. 하나는 흐루시초프 시절 소련 내에 소개된 유일한 망명작가로 해빙기 무드를 상징하는 역할을 했고,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 이후에 다시 한번 주목을 받았다. 이때부터 시작된 부닌에 대한 러시아인들의 관심은 가히 폭발적인 것이었다.

 

 

단순히 정치적 지형의 변화를 떠나, 부닌이 창조한 예술적 세계의 보편성과 진정성은 현대인들의 마음을 울린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언젠가 꽃을 피워줄 물을 만날 희망을 품고 뜨거운 태양을 견디는 예리혼의 장미는 미래의 독자(讀者)를 기다리는 시인의 애달픈 마음으로 묵묵히 글을 썼던 부닌의 또다른 이름인지 모른다.

 

 

부닌의생애와작품

1870 중부 러시아 보로네쉬, 오랜 전통을 가진 귀족가문에서 출생

1881 김나지움 입학

1886 4학년 자퇴, 고향으로 돌아와 독학하며 문학수업 시작

1887 페테르부르그 신문에 최초로 시 나드슨의 무덤가에서를 발표하며 문단 데뷔

1889 가세가 기울어지자 고향을 떠나 교정원, 도서관 사서 등으로 일했다.

아룔신문에서 기자로 활동하면서 인민주의자들과 교유했으나 그들의 사상에 실망, 곧 헤어졌다. 바르바라 파센코를 만나 1894년까지 동거

1891 최초의 시집 1887-1891』출간

189394 톨스토이의 윤리적 종교적 사상에 심취, 톨스토이주의자들과 교유, 최초로 톨스토이를 만나 그의 동양적 윤리사상에 경도됐다.

1895 부닌의 문학적 스승이라 할 수 있는 체홉과 처음 만나 체홉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매우 돈 독한 관계를 유지했다.

1896 최초의 번역시집 롱펠로의 히어와서의 노래 출간

1897 시집 창공 아래서 출간

1898 안나 니콜라예브나 차크니와 결혼했으나 1년 후 이혼

1899 고리키와 처음 만나 그가 이끄는 리얼리즘계열의 문학서클 수요일에 안드레예프, 쿠프린 등과 함께 참여. 이후 같은 사상 계열의 출판사 즈나니예에서 활동, 나중에 이곳에서 부 닌의 전집을 최초로 발간했다.(1902~1909, 전5권)

1900 단편안토노프의 사과발표. 섬세하고 서정적 문체로 그의 문학적 재능을 인정받았다. 베 를린, 파리, 스위스 등을 거친 최초의 해외 여행

1903 단편집 낙엽, 번역시집 히어와서의 노래 등으로 푸쉬킨상 수상

1904 카프카즈를 여행하며 커진 동방에 대한 관심은 여행수기새의 그림자(1907~1911)로 이어 졌다.

1906 베라 니콜라예브나 무롬체바와 결혼.

1907 이집트, 시리아, 팔레스타인 등을 여행하며 동방의 문물에 대한 관심을 넓혔다.

1909 두 번째 푸쉬킨상을 수상하며 러시아 아카데미 명예회원으로 위촉

1910 최초의 중편소설 시골 출간, 비평계 논쟁의 초점이 되었다.

191217마른 골짜기, 샌프란시스코에서 온 신사,가벼운 숨결 등을 발표, 러시아의 대 표작가로서 명성을 얻었다.

1918 1917년 러시아 혁명에 반대, 당시 백군의 주둔지였던 오데사로 이주

1920 프랑스로 망명, 빈곤 속에서도 「창의 꿈(1919),미차의 사랑(1925),일사병(1926),엘라긴 대위의 사건(1925), 파리에서(1943) 등을 발표, 왕성하게 창작활동

1925 혁명을 겪은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 저주받은 시절 출간. 망명객으로서의 자신의 모습과 조국 러시아의 미래에 대한 암담함, 분노 등을 적나라하게 표현

192733 러시아의 자연과 예술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자전적 소설 아르세네프의 생애 집필

1933 러시아 최초로 노벨문학상 수상

1937 톨스토이 전기 톨스토이의 해방 출간. 톨스토이와 부닌 자신의 세계관에 초점을 맞춘 철학적 에세이로 불교사상에 대한 심도 있는 고찰이 드러난다.

1940 2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독일군이 점령한 남프랑스 소도시 그라스에서 어려운 생활

1946 뉴욕에서 사랑과 죽음을 테마로 한 단편집 어두운 가로수길 출간. 부닌 문학의 정점을 이뤘다.

1953 파리에서 사망. 미완성 에세이『체홉에 대해를 남겼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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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부닌, 『사랑의 문법, 류필하 옮김, 소담출판사, 1996

이반 부닌, 『비밀의 나무, 김경태 옮김, 삶과꿈, 2000

미르스키, 『러시아문학사, 이항재 옮김, 홍성사, 1985

윤우섭, 이반 부닌의 세계관, 러시아 연구(제4권), 서울대 러시아연구소, 1994

이상용, 「이반 부닌의 산문:주제 구성의 미학」, 외국문학(제51호), 열음사, 1997

J.B. Woodward,Ivan Bunin: A Study of His fiction, Chapel Hill, 1980

J.W. Connolly, Ivan Bunin, Boston, 1982

T.G. Marullo, Bunin's Dry Valley: the russian Novel in Transition from Realism to Modernism, Forum for Modern Language Studies14권 3집, 1978

G. Stuve, The Art of Ivan Bunin, The Slavonic Review(제11집), 1932∼33

R. Poggioli, The Art of Ivan Bunin, Harvard Slavic Studies(제1집), 1953

 

글쓴이 최진희

모스크바 국립대학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고, 현재 고려대 노어노문학과 강사를 맡고 있다. 논문 이반 부닌의 소설 『아르세네프의 생애장르 연구(노문), 「단편에서 장편으로 (1920년대 이반 부닌의 산문)」(노문) 등이 있다.

) 유태인이 나팔 소리로 성벽을 무너뜨렸다는 성서에 등장하는 전설의 도시. 보통 예리고라 부른다. ) 안에 숯불을 넣는 러시아 특유의 물 끓이는 주전자 그릇으로 신선로와 유사하다. ) 가톨릭 축일의 하나. 아기 예수가 동방박사를 통해 자신이 메시아임을 드러낸 사건을 기념하는 대축일이다.

) S.I.나드슨(1862-1887). 1880년대 러시아의 절망적 상황을 매우 감성적으로 노래한 시인으로 젊은이들에게 특히 인기가 높았다. 25세의 나이로 요절한 후 인기는 더욱 높아져 많은 추종자와 그를 모방하는 시인들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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