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의 원인은 단 한 가지
- 휴일 아버지가 지저분한 방을 치우라고 하는 말에 발끈했지만,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방을 깨끗이 치웠다.
- 애인에게 일이 바빠서 만나기 어렵다는 전화가 걸려 왔다. 또 약속을 어겨서 화가 났지만 알았다고 대답했다.
- 친구가 영화를 보러 가자고 했다. 그 영화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지만 좋다고 대답했다.
모든 문제의 패턴이 비슷하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서로 비슷할 수밖에 없습니다. 마음속에 불만을 품고 있으면서도 ‘노(No)’라고 말하지 못하고 상대방의 의견을 따른 것입니다. 이것이 당신의 대응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지금까지 해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고민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 왔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당신의 고민을 다시 한 번 확인해 보면 어떨까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일정한 패턴이 고민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내가 만족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요령
쓸데없는 고민
여러 가지 문제로 망설이고 있을 때, 당신은 생각합니다. ‘내게 맞는 것은 무엇일까?’, ‘나쁜 일일까, 좋은 일일까?’, ‘장래를 위해서는 어느 쪽이 좋을까?’, ‘어떤 길로 나아가야 할까?’, ‘어느 쪽을 선택하는 것이 적절한 판단일까?’ 이런 것을 선택의 기준으로 삼아 모든 일을 결정하고 있지 않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여기에서 새롭게 생각해 봅시다. 주위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뭘 망설이는 거야. 좋은 조건이잖아. 지금까지 계속 순조롭게 해 왔으니까 이대로도 괜찮을 거야. 그 정도의 일로 일일이 고민하다가는 끝이 없을 거라고.” 하지만 그런 일반적인 의견에 귀를 기울일 필요는 없습니다. 자신의 기분을 무시하고 남의 말과 행동에 신경을 쓰면 쓸데없는 고민들만 늘어 갑니다. 좀 더 단순하게 생각합시다. 당신이 그것을 선택한 결과가 만족스럽다면 누가 뭐라고 하든지 간에 그것은 당신에게 부적절한 선택입니다.
자기중심적이 되어 자신의 기분과 감정, 의지를 선택의 기준으로 삼아야 합니다
하고 싶은 것, 원하는 것, 좋아하는 것. “와, 이게 하고 싶어!” “이걸 갖고 싶었어!” “와, 나는 이 색깔이 너무 좋아!” “그래, 나는 이 일을 하고 있을 때가 제일 즐거워!” “당신과 함께 있으면 정말로 행복해!” 이런 말들을 하고 나면 당신은 어떤 기분이 드나요? 마음이 설레나요? ‘좋아합니다. 정말로 좋아합니다. 기분이 좋습니다. 최고입니다.” ‘즐겁습니다. 기쁩니다. 행복합니다. 사랑하고 있습니다.’ ‘음~, 만족스럽습니다. 마음이 놓입니다. 마음이 가벼워집니다.’
이런 것들은 모두 감정입니다. 당신 자신이 그렇게 느낀다는 것을 진심으로 인정하기 때문에 이런 긍정적인 기분이 드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당신이 자신을 사랑하는 상태입니다. 하지만 당신이 고민을 하고 있을 때는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당신이 만약 자신의 기분이나 감정을 무시하면서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요?
‘힘들다. 괴롭다. 슬프다. 고되다…’ 고민이 시작됩니다. 당신이 마음속으로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며 참을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당신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상태입니다. 고민을 이렇게 파악하면, 고민이라는 것은 사실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을 때 생긴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기중심심리학’에서는, 고민은 자신에 대한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에 생긴다고 인식합니다.
내 기분이 좋아지는 삶의 방식
자기중심이란 무엇인가?
자기중심적인 삶의 방식과 타인중심적인 삶의 방식은 정반대의 인생을 만듭니다. 타인중심적인 삶의 방식은 자신을 괴롭게 만듭니다. 고생스러운 인생이 된다는 말입니다. 자기중심적인 삶의 방식은 자신을 편히 살게 합니다. 모든 것이 편한 인생이 된다는 말입니다. 또한 여러 가지 문제와 고민으로부터 해방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물론 자기중심에는 기본 개념이 있습니다. 하지만 시험처럼 100점을 맞으면 자기중심이고 80점을 맞으면 타인중심이라거나, 여기부터는 자기중심이고 저기까지는 타인중심이라는 엄밀한 경계선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자기중심이라는 개념은 고정된 것이 아니고 바로 그 상태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망설여질 때는 나를 먼저 생각하라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
만약 당신이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도 않고 나도 상처받고 싶지 않은’ 상황에 놓여 있다면 당신은 어느 쪽을 선택하겠습니까? ‘나는 상처받고 싶지 않다. 하지만 어쩌면 나의 사고방식이 틀렸을 수도 있다. 내가 비상식적일지도 모른다. 내 멋대로 구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지는 않나요?
‘일반적인 상식에 비추어 봐서, 모두들 그렇다고 하니까, 다들 그렇게 하지 않으니까, 다 지난 일을 이제 와서, 그렇게 사소한 일로 어른스럽지 못하게’ 등의 이유로 자신의 감정을 꺾어 누르지는 않나요? 이런 때일수록 상대방의 기분이나 일반적인 상식보다는 자기 자신의 감정을 최우선 순위에 놓아 봅시다. 가령 당신이 자신을 먼저 생각해 상대방이 상처를 받게 되는 것을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말입니다.
참으면 폭발한다
“모두가 자신을 먼저 생각한다면 질서가 무너져서 난리가 날 거라고요.” 그것은 자신을 먼저 생각했을 때의 만족감을 모르는 사람들의 생각입니다. 진심으로 자신을 먼저 생각한다는 말은 자신을 사랑한다는 말입니다. 수영 씨는 어젯밤에 어머니와 심하게 싸우고 말았습니다. 기분이 너무 나빠서 일을 할 마음이 들지 않았지만, 타인중심적인 수영 씨는 꾹 참고 출근을 했습니다. 직장에서 어머니와 이미지가 비슷한 상사가 수영 씨에게 잡일을 시켰습니다. 그런데 그 상사의 말투가 ‘왜 바로 움직이지 않는거냐’고 책망하는 듯이 들려서 그만 반항적인 태도를 취하고 말았습니다. 상사의 얼굴에는 불쾌한 표정이 역력했습니다. 그 표정을 보고 수영 씨는 회사를 그만둬 버릴까 하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와 같이 아무리 자신의 감정을 억눌러도 어딘가에서 그 부작용이 나타나게 됩니다. 게다가 마이너스감정이 축적되면, 무의식중에 남에게 상처를 입히는 말과 행동을 하게 됩니다. 당신이 상대방에게 당한 처사와 같은 짓을 무의식중에 다른 상대에게 한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들은 그만큼 자신의 감정을 소중히 생각하기 때문에 그 감정을 해소하기 위해서 무의식적으로 행동한다는 말입니다. 자각을 하든 못하든 간에 마이너스 감정이 축적되면 어딘가로 그것을 해소하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마이너스 감정이 쌓이면 가능한 한 빨리 조치를 취해서 해소하는 편이 좋습니다.
오늘은 회사를 쉬고 싶다
한편, 자기중심적으로 바뀐 현재의 수영 씨는 자신의 우울한 기분을 소중히 생각하여 회사를 하루 쉬기로 했습니다. 이때 수영 씨는 좀 더 나아가서 기분 좋게 자기 방에서 푹 쉬자고 마음먹었습니다. 기분 좋게 쉬느냐 불편한 마음으로 쉬느냐, 이 둘의 차이는 대단합니다. 전자는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고 후자는 자신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영 씨는 어머니에게 자신의 기분을 말로 전달하기로 했습니다. 이것은 어머니와 싸우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쉬는 나’를 사랑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런 기분으로는 출근해 봐야 아무 일도 못할 것 같아서 오늘은 회사를 쉴 거예요. 혼자 있고 싶으니까 말 시키지 말아주세요. 밥은 내가 알아서 적당히 먹을 테니까요.”
조금 뾰로통하기는 했지만 어머니에게 강력하고 확실하게 자신의 주장을 이야기했습니다. 그것은 ‘앞으로는 나의 기분을 좀 더 소중히 하겠다. 어머니가 하라는 대로는 하지 않겠다. 어머니의 감정의 배출구가 되지는 않겠다. 어머니를 위해서 희생하지는 않겠다’는 어머니에 대한 수영 씨의 ‘독립선언’이었습니다. 수영 씨의 마음속은 어머니에게 상처를 줄 것이라는 두려움보다 자신이 감정을 먼저 생각한 만족감으로 가득했습니다. 게다가 상대방과 싸우지 않고도 자신을 지키는 방법, 자신을 소중히 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소한 일로 고민한다
이와 같이 자신의 마이너스 감정을 받아들이고 나면 당신의 내부에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큰 변화가 일어납니다. 우선, 당신은 자신의 감정을 보살피고 싶어집니다. 그 안락한 마음으로 인해 당신은 자신의 감정을 먼저 생각하고 싶어질 것입니다. 나아가서 자신의 마이너스 감정을 받아들이면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서 행동하고 싶어집니다. ‘해야만 한다’가 아니라 ‘하고 싶어진다’는 것이 포인트입니다. 그리고 자신을 만족시키기 위한 행동을 하면 기쁨을 느낍니다. 그것은 자신을 사랑하기 위한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사랑하는 감정을 기분 좋게 실감할 때, 당신은 사랑의 만족을 얻게 될 것입니다. 만족하기 때문에 집착하지 않게 됩니다.
고민 해소는 곧 만족으로 이어집니다. 만족한다는 말은 자기 자신을 고민으로부터 자유롭게 해 준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사랑하는 행동은 곧 자신을 해방시키는 행동이 되기도 합니다. 당신의 무의식(본질)은 진심으로 당신이 자신을 사랑해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자신이 바라는 것
어떠한 상황에서도 내가 기준
자기중심 감각이 정착됨에 따라 당신을 둘러싼 환경이나 주위의 일들을 자신을 중심축으로 삼아서 파악하게 됩니다. 그 기준은 ‘내가 편안한가, 괴로운가. 좋아하나 싫어하나, 기분이 좋은가, 나쁜가, 몸이 편안한가, 힘든가, 그 일을 하고 싶은가, 하고 싶지 않은가’라는 ‘나의 감정이나 감각, 나의 의지’입니다. 좀 더 간단하게 말하면 이런 것입니다.
내가 편안하면 된다. / 내가 행복하면 된다.
내가 만족하면 된다. / 내가 긴장을 풀면 된다.
나를 우선적으로 지킬 수 있으면 된다.
한편으로는 ‘모두가 자신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면 이 세상이 제멋대로인 사람들로 넘쳐나서 일도 가정도 사회도 성립되지 않을 것’이라고 부정하고 싶어질지도 모릅니다. 지금, 당신의 직장 상사가 당신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 자네도 지휘를 해야 할 위치이니 확실하게 모범을 보여줘야 하네.” 당신은 상사의 기대에 부응하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합니다. 계속해서 노력하고 실력 이상의 일을 해내려고 하다가 자신이 무리를 하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한 소리를 하지 않다 보니 점차 숨이 차서 괴로워집니다. 그럴 때 어떻게 하겠습니까?
미루면 꼭 탈이 난다
어떻습니까? 솔직하게 상사와 의논할 수 있겠습니까? ‘무능력하다고 할까봐 무섭다’는 생각이 들면 의논할 수 없을 것입니다. 말하지 못한 상태에서 필사적인 노력을 계속한다면 어떻게 되리라고 생각하십니까? 어쩌면 회사에 가기가 괴로워져서 그만두고 싶어질지도 모릅니다. 또는 컨디션이 엉망이 되거나 정신적으로 피곤해져서 ‘누군가 내게 기대를 한다는 자체가 괴롭다’고 생각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럴 가능성도 있습니다.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 노력하다가 결국 지쳐 버려도 상사에게 그렇다고 말하지 못합니다. ‘음, 상사에게 말하지 않고 내가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당신의 무의식은 당신의 모순된 생각도 모두 통합한 형태로 그 방법을 찾아냅니다. 그리고 답을 내놓을 것입니다. ‘그래! 그 방법이 좋겠어!’ 그 결과, 당신은 일에서 중대한 실수를 저지를지도 모릅니다. 당신의 현재의식(現在意識)은 실수를 했다는 사실로 자신을 책망할 것입니다. 하지만 당신의 무의식은‘아, 이제야 상사의 기대에서 해방됐어’ 하며 가슴을 쓸어내릴 것입니다. 어떤가요?
당신이 아무리 자신의 감정을 무시하고 억눌러 왔다고 하더라도, 언젠가는 어떠한 방법으로든 자신의 감정(바람)을 이루려고 합니다. 그것이 ‘무의식의 나’입니다. 앞의 경우를 두고 말하자면, 상사에게 좀 더 빨리 의논했으면 좋았을 것입니다. 이처럼 무의식의 나는 당신의 ‘감정과 의지’를 무엇보다도 먼저 생각합니다. 당신이 아무리 뒤로 미루려고 해도 결국에는 자신을 선택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자각을 하면 되도록 빠른 시간 안에 자신의 바람을 이루어 주는 편이 좋습니다.
죄책감은 불행의 신호
정말 자기중심적으로 행동해도 될까?
어느 날 문득 자신의 감정과 의지를 먼저 고려하는 편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습니다. 때때로 “자신의 감정대로 행동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 선생님이 말하는 자기중심적인 사람입니까?”라는 비판적인 질문을 받습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 회사를 쉬고 싶을 때는 직원 모두 바쁘게 일하고 있어도 아무렇지도 않게 쉰다.
- 하고 싶지 않은 일은 거부해 버리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람이 하게 된다.
- 상사에게 이동 명령을 받아도 요지부동이다.
- 주변 사람들이 어려워하는 상황에서도 남의 대화에 무신경하게 끼어든다.
엄밀하게 말하면 ‘이와 같이 행동하는 사람이 타인중심인가, 자기중심인가?’라는 질문 자체가 자기중심의 개념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자기중심’은 중심의 핵을 나에게 두는 것입니다. 나를 핵으로 삼은 시점에서는, 그러한 상황에 맞닥뜨리게 되면 어떻게 행동할지는 ‘나의 자유’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음, 어째서요? 주변에 폐를 끼치고 완전히 제멋대로 구는 거잖아요. 그런 자유가 허락된다면 뭐든지 자기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이야기인가요?”
자기중심의 관점에서 보자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거부할지 말지는 자기가 정하고 선택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대담하게 말하자면, 그 사람의 삶의 방식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런 선택을 하는 것도 그 사람의 자유라는 말입니다.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한다는 논조
그 사람이 자신의 일을 내게 떠맡긴 구체적인 상황이 발생했을 때는 그 사람의 선택의 자유라고 결론짓기가 어려울지도 모르겠습니다. A와 B가 싸우고 있습니다. ‘그 싸움은 나와 상관없는 일이고 나의 책임이 아니므로 싸우는 행위는 그 사람들의 자유야’라고 한다면 저항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비상식적이고 질서를 파괴하는 사람들을 보고도 못 본 척한다면 무법천지가 되어 버릴 거라고요.” 당신이 정말로 그렇게 생각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나쁜 것은 나쁘다고 확실하게 말해 주어야 합니다.” 그럼 당신은 그 사람에게 확실하게 주의를 줄 수 있나요? 그렇게 하겠다고 확실하게 대답할 수 있나요? 원래의 질문으로 돌아갑시다. “그렇게 마음속으로 상대방을 책망하거나 비판할 때, 당신은 어떤 감정이 생기나요?” 중요한 것은 그 행위의 옳고 그름이 아니라, 그 사람들의 행위를 나 자신이 어떤 감정을 품고 바라보는가 하는 것입니다.
“안절부절못하거나 화를 냅니다.” 직장이나 가정에서 또는 거리에서 마주치게 되는 광경을 보고, 나아가서는 오고 가며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에게까지 그런 마이너스 감정을 품는다면……. 만약 당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기준을 가지고, 하고 싶지 않은 일을 거부하는 사람에게 주의를 준다고 칩시다. 아마 당신은 자신이 옳다는 생각 때문에 감정적으로 “그렇게 일이 싫으면 빨리 회사를 그만두는 게 좋지 않겠어?” 하고 말할 것입니다. 상대방도 감정적으로 “웃기지 말아요! 당신하고는 상관없는 일이잖아요!” 하고 맞받아치지 않겠습니까? 어찌 됐든 간에 고민과 분쟁이 늘어날 뿐입니다.
책임을 다한다면 그 사람의 자유
신호를 지키는 것은 사회의 일반적인 상식입니다. 하지만 나는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장소나 짧은 횡단보도에서는 신호를 종종 무시합니다. 5분 정도의 용무가 있을 경우에는 주차 요금을 내는 것이 아까워서 아무것도 사지 않고도 편의점의 주차장을 이용하곤 합니다. 그 이야기를 동료에게 했더니 너무 비판적인 말투로 비난을 해서 하마터면 싸울 뻔했습니다.
이것도 자기중심의 개념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그 사람의 자유입니다. 다만, 자유에는 그만큼의 책임이 뒤따릅니다. 만약 신호를 무시해서 사고가 났거나, 편의점에서 언쟁이 발생했다면 그 상황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자신의 선택에는 그만큼의 책임이 주어집니다. 자유는 이 사실을 알고 난 다음에 누려야 하는 것입니다.
응어리를 없애는 아주 작은 용기
마이너스 감정은 뒤로 미루지 않는다
자신의 감정을 깨닫고 나면 부정적인 생각이나 감정이 어떻게 나 자신에게 상처를 입혀 왔는가를 통감할 것입니다. 그것을 경험적으로 알게 되면 마이너스 감정을 계속 뒤로 미루어 온 불쾌감이 싫어지게 됩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어느 날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다가, 한 노인이 발이 꼬여 넘어지는 모습을 목격했습니다. 바로 뛰어가서 일으켜 세워 보니 얼굴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응급처치를 해 주고 그 노인이 가족이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가족이 달려와서 한숨 돌리고 나니 마침 버스가 왔습니다. 내가 버스를 타려는 순간, 옆에서 누군가가 끼어들었습니다. 그 사람은 나를 세게 밀면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순서를 지켜야지!” 싸울 생각이 없었던 나는 일단 그 사람에게 순서를 양보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태도와 말투가 거슬려서 그의 등을 향해 말했습니다. “제가 먼저 왔습니다.” 상대방이 내 말을 들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스스로 ‘뭐, 아무 말 못한 것보다는 낫다’며 달래 봤지만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습니다.
자신에게 OK 사인을 주기 위해서
내 마음이 진정되지 않은 것은, 사실 그가 내 말에 반응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나 자신 때문이었습니다. 싸우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서 ‘어색하게 웃으면서 말을 했다’는 나 자신의 비겁함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불쾌했습니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나 자신에게 ‘어떻게 하고 싶은지’ 물었습니다. 나 자신에게 그 질문을 하기 전부터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비겁하게 행동한 사실에 집착하고 있다’는 것이 이미 내 기분을 말해 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변 사람들이 ‘그런 사소한 일’로 뭘 그리 예민하게 구느냐고 생각하든 말든 말입니다.
‘무언가에 집착하고 있다면 그것을 뒤로 미루지 않도록 합시다.’ ‘응어리를 풀기 위해서 표현합시다.’ 이것은 내가 항상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때 나는 이 비겁함을 뒤로 미루지 않기 위해서 다시 한번 말하자고 결심했습니다. 종점에 도착해서 다른 승객이 모두 내렸을 때, 나는 그 사람을 쫓아가서 어깨를 두드렸습니다. 그것은 이전의 비겁함을 반복하지 않기 위한 행동이었습니다. “먼저 와서 부상당한 노인 분을 돌봐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얼굴을 돌리면서 분명치 않은 목소리로 내뱉었습니다. “내가 맨 앞줄에 서 있었다고!”
내가 삼았던 목표는 나의 기분을 해방시키기 위해서 말한다는 단 한 가지였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시점에서는 모든 것이 완결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대답은 아무래도 좋았습니다. 사실 그렇게 말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일에는 전혀 신경이 쓰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나는 온화한 어조로 “말투에 주의해 주세요. 조금 무례하셨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등을 쓰다듬어 주고는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해냈다!!’ 나의 자존심을 되찾은 순간이었습니다. 그 감각을 맛본 직후, 나의 내부에 새로운 인식이 싹텄습니다. 그것은 그 노인을 개체로 봤다는 깨달음이었습니다. 이것을 체험하기 전까지 나는 ‘노인은 돌봐 주어야만 한다’는 상식에 얽매여 있었던 듯합니다. 그것은 노인을 하나로 뭉뚱그려서 보는 의식입니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고, 세대가 다르고, 성이나 민족이 다르면 상대방이 별세계에 사는 사람처럼 보였지만, 그런 울타리가 허물어지자 그를 친근한 인간으로 느끼게 되었습니다.
불쾌함의 원인은 재빨리 해소하자
한편으로는 자신의 마이너스 욕구를 그대로 밀고 나가면 그 순간에는 심리적으로나 물질적으로 ‘득’을 보는 경우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야기해 온 것처럼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이 어떤 기분을 품게 되는가가 중요합니다. 자신의 내부에 존재하는 상쾌하고 불쾌한 기분을 깨닫게 되면, 불쾌감을 느끼면서 득을 보기보다는 그 불쾌감을 가능한 한 빨리 해소해 버리고 싶어질 것입니다.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해 다음과 같이 느낄 것입니다.
상쾌한 기분이 든다. 그 일을 함으로써 마음이 편안해지고 해방된다. 만족감으로 가득 차서 자유로운 감각이 훨씬 넓어진다. 이 감각이 자기신뢰입니다. 자신의 가치를 인정하는 감각입니다. 이 감각이 자신감입니다. 이 감각의 분량이 많을수록 운도 좋아진다는 사실을 모두가 체험적으로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죄책감 없이 내가 행복하기를 바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일하기 싫다!
늘 컨디션이 좋지 않아 고민인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컨디션만 좋아지면 좀 더 적극적으로 일을 할 수 있을 텐데…’라고 하면서,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은 자신의 컨디션이 나쁜 탓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한 컨디션은 좋아지지 않습니다. 원래부터 ‘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좋아질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좋아지지 않는 것입니다. 이럴 때 ‘컨디션이 좋아지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이 바라는 일을 이루어 줘야 합니다.
나는 일하고 싶지 않다. 이 바람을 이루어 줘야 합니다. 하지만 그 사람을 이루어 줌으로써 새로운 고민이 생깁니다. 예를 들면, 수입이 없으면 생활해 나갈 수가 없다는 고민입니다. 그렇다면 그 고민도 해결돼야 합니다. 일을 하고 싶지 않다. 생활을 하기 위한 수입을 확보하고 싶다. 이 두 가지 바람을 이루어 줘야 합니다. 이렇게 말할 때 진심으로 ‘그렇구나!’하고 단순하게 납득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만약 납득한다면 그만큼 죄책감이 적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욕심이 많은 나도 인정
‘그런 얌체 같은 바람이 이루어질 리 없잖아.’하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습니까? 또는 ‘얌체같이 그런 걸 바라다니, 뻔뻔스러워!’라고 하며 공연히 화를 내는 사람은 없나요? 이것도 뒤집어 말하자면 죄책감입니다. 행복해지는 일에 죄책감을 느낀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그것은 ‘나는 행복해져서는 안 된다’고 자신을 세뇌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죄책감이 크면 클수록, 또는 많으면 많을수록 ‘자신이 바라는 것’에서 멀어져 갈 것입니다. 이렇듯 행복해지기를 바라면서도 무의식중에 행복해지기를 거부하는 것이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고민은 따지고 보면 다음과 같은 생각에서 온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나의 바람을 들어주려고 하지 않는다. 나의 바람을 부정한다. 내가 그렇게 하고 싶다는 것을 진심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즉, 고민은 당신 자신이 바라는 것을 진심으로 인정하지도 않고 이루려고도 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이 ‘진심으로’라는 말이 중요합니다.
- 내가 그렇게 하고 싶다는 것을 죄책감이 없이 진심으로 인정한다.
- 응석을 부리고 싶으면 ‘진심으로 응석을 부리고 싶다’고 인정하고 응석을 부린다.
- 하고 싶지 않으면 ‘진심으로 하고 싶지 않다’고 인정하고 하지 않는다.
이 긍정적인 감정이 크면 클수록 당신을 괴롭히는 고민은 사라질 것입니다.
부탁의 레슨
자기평가가 낮지는 않은가
누구의 잘못도 아닙니다. 당신의 환경이 당신도 모르는 사이에 당신의 가치를 낮추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 전형이 자영업을 하는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입니다. 예를 들어서, 부모가 각 앞에서 손님을 응대하고 있습니다. 그때 아이가 부모와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부모의 옷소매를 잡아당깁니다. 부모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 손을 뿌리친다면, 아이는 ‘나는 남보다 가치가 낮다’고 학습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에 나가서도 다음과 같이 생각하고 행동할 것입니다.
- 나는 가치가 낮으니까 참아야 한다.
- 나는 가치가 낮으니까 다른 사람이 먼저다.
물론, 경향적으로 그렇다는 것이므로 오해는 없기 바랍니다. 장사를 할 때 부모가 손님을 우선으로 대우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런 사소한 일에도 아이가 자신을 가치 없다고 생각한다는 일례를 보여 주고 싶었던 것뿐입니다.
다음의 예도 있습니다. 부모가 반복적으로 전근을 해야 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가족은 그때마다 어쩔 수 없이 이사를 가야 합니다. 아이는 부모의 그런 상황 때문에 전학을 반복합니다. 아이는 나름대로 자주 바뀌는 환경에 순응하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합니다. 그러나 겨우 새로운 환경에 익숙해지고 나면 또 다시 전학을 가게 됩니다. 이런 환경 속에 있으면 아이는 아무리 나름의 생활을 찾아내려고 노력해도 노력한 보람이 없게 되어, 자신이 강구했던 것을 일방적으로 뿌리째 빼앗겨 버리고 만다고 학습할 것입니다. 그럼 이런 환경에서 자라서 자신의 가치가 낮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가치를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러려면 상대방에게 협력을 요구하고 부탁하고 도움을 청해야 합니다.
상대방에게 부탁하는 경험을 쌓아 보자
자기평가가 낮은 사람일수록 상대방에게 부탁을 하지 못합니다. 물론 이 ‘부탁’은 명령하거나 강요하거나 소리를 질러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평화적이고 협조적으로 부탁하며, 부탁하는 시간 자체를 상대방과의 신뢰관계를 키워 나가는 귀중한 시간으로 삼아야 합니다. 예컨대, 동료나 선배에게 “이 점을 잘 모르겠는데 좀 가르쳐 줄래요?”라고 이해할 수 없는 점을 구체적으로 파악해서 부탁하십시오.
“급한 일이 생겨서 그러는데, 데이터 입력을 부탁해도 될까?” 이렇게 당신의 상황과는 상관없이 자기 할 말만 하는 상사에게는 참고 따르면서 마음속에 불만을 키우지 말고 이렇게 말하십시오. “지금 이 작업을 하고 있거든요. 먼저 마무리지은 뒤에 해도 될까요? 앞으로 15분 정도면 끝날 것 같습니다.”
때로는 애인이나 친한 사람에게 “오늘은 내게 아주 특별한 날이니까 함께 있어 주었으면 좋겠어” 하고 부탁해 보십시오. 협력을 요청하는 경험을 쌓아 가면 자부심과 자존심을 되찾고 자신의 가치도 높일 수 있습니다. 동시에, 협력을 요구하고 부탁하고 도움을 청함으로써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능동적인 방법을 상대방도 당신에게서 배우게 됩니다.
<“고민탈출”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이시하라 카즈코 지음, 지상사 >
<가시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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