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권위에 맞서다 - 결혼과 인구 문제
최상의 결혼 관계에만 보장되던 견실한 행복과 근본적인 진지함을 남성과 여성의 관계에서 확보하려면 새로운 제도가 구축되어야 한다. 새로운 제도는 자녀 출산이 공동체에 기여한다는 인식을 토대로 부모들을 과중한 금전적 부담에 노출시키지 말아야 한다. 법률이나 여론은 자녀와 관련된 경우가 아니면 남성과 여성의 사적인 관계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확립되어야 한다. 우리의 필요가 날이 갈수록 복잡해짐에 따라 종신 일부일처 제도는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다른 모든 문제에서도 그렇듯이 이 문제에서 정치적 지혜의 토대는 바로 자유이다. 우리는 자유를 보장하는 제도를 구축하고, 나머지 미흡한 사항들은 개별적인 남성과 여성에게 맡겨 각자의 양심과 신앙심에 따라 행동하도록 두어야 한다.
여성들의 자유가 개인적인 생활과 국가의 활동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자신 있게 말하기에는 아직 이른 감이 있다. 그러나 나는 여성운동의 선구자들이 예상하는 것과 전혀 다른 결과가 나타날 것이라는 생각이 섣부른 판단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과거에 남성들은 여성이 인류의 수호자이고 여성의 인생에서 핵심을 이루는 것은 어머니의 역할이며 여성의 모든 욕망과 본능은 이 목적을 지향하고 있다는 이론을 고안했고 여성들은 이를 수용했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의 여주인공 나타샤는 이 이론을 구현하는 인물이다. 그녀는 결혼 전까지 아름답고 쾌활하고 격정적인 성격이었지만 결혼 후에는 정신적인 삶을 전혀 영위하지 못하는 정숙한 어머니가 되었다. 톨스토이는 이런 결론에 전적으로 찬동하는 입장이다.
오늘날 요구되는 상호간의 자유는 낡은 형태의 결혼을 불가능하게 한다. 그러나 본능 실현을 위한 훌륭한 수단이자 정신적 성장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결혼은 아직 발전되지 않은 상태이다. 오늘날의 여성은 자유를 보존해야만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자유를 보존한다는 것이 어렵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다. 우세를 점하고 싶어 하는 마음은 대부분의 남성들이 지닌 성적 열망의 한 구성 요소이다. 강건하고 진지한 남성들의 경우에도 예외는 아니다. 이는 전체주의를 격렬히 반대하는 수많은 남성들에게도 나타난다. 따라서 자유를 위한 싸움은 곧 생명을 위한 싸움이 된다. 여성들은 자신의 개성을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남성들은 자신이 요구받고 있는 본능의 억압은 활력 및 진취적인 기상과 양립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상반되는 감정의 충돌은 인격체들의 실질적인 융합을 불가능하게 한다.
현재의 결혼 법률은 지금보다 생활이 단순했던 시대로부터 이어져온 것이며, 정신생활 영역에 속하는 섬세하고 다루기 어려운 요소에 대한 근거 없는 공포심과 경멸감을 그 주된 토대로 삼고 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지금의 법률과 여론, 경제 체제는 국민의 자질을 퇴화시키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열등한 절반의 인구가 낳은 자식 수는 다음 세대 인구의 절반을 넘어설 것이다. 여성들은 자유를 요구하고 있고, 낡은 형태의 결혼은 남성과 여성 모두의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고 있다. 유럽 국가들이 퇴보하지 않으려면, 그리고 최상의 결혼 관계에만 보장되던 행복을 유지하려면 새로운 제도가 구축되어야 한다. <“왜 사람들은 싸우는가?”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버틀란트 러셀 지음, 역자 이순희 님, 비아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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