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마디즘: 지식마을을 떠돌아다니는 창조적 지식유목민의 이념
‘노마드’란 ‘유목민’ 혹은 ‘유랑자’를 뜻하는 프랑스어이다. 노마디즘이란 유목주의이다. 하나의 농경지에 정착하지 않고 떠돌아다니는 유목민처럼 하나의 절대적 지식이나 제도에 얽매이지 말고 자유롭게 세상을 떠돌며 풀을 뜯고 새로운 땅과 진실을 개척하자고 주장한다. 들뢰즈와 가타리에 의해 유명해진 말이다. 헌데 노마디즘이라는 개념은 또렷하게 정의되지 않는다. 이로 인해 노마디즘에 관해 많은 오해가 생기고 있고, 그에 관해 열띤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그 맥락을 더듬어 보자.
노마디즘은 두 가지 방면에서 전쟁을 치러야 한다. 하나는 기존의 영역으로부터 탈피하면서 발생하며, 또 다른 하나는 새로운 영역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기존의 영역에 둘러쳐진 울타리를 걷어내야 하며, 새로운 영역에 둘러쳐진 울타리도 물리쳐야 한다. 그래서 노마디즘은 전쟁기계를 옹호한다. 이것이 노마디즘에 대한 첫 번째 오해의 요소이다. 허나 노마디즘이 전쟁기계를 옹호한다고 해서 전쟁 자체를 옹호한다고 간주하면 곤란하다. 노마디즘은 전쟁을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여길 뿐 전쟁 자체를 즐기는 것은 아니다. 우리를 가로막는 폭력적인 쇠사슬을 끊었다고 해서 쇠사슬 파괴범이라 욕할 수 없다. 상대가 가로막는 폐쇄적 담벼락을 무너뜨렸다고 재물손괴죄를 묻는 것은 어리석다. 중요한 것은 폭력과 규제, 아집과 편견을 무너뜨리는 일이다.
또 다른 오해는 신자유주의적 시선과 연관된다. “삼성의 힘은 디지털 노마드에서 나왔다”는 광고카피가 있다. 세계적 신자유주의 기업인 삼성이 디지털 기술을 앞세워 세계시장을 석권해가는 현상을 노마드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허나 삼성의 성장과 성공은 노마디즘이라는 개념과 어울리지 않는다. 노마디즘은 자본주의라고 하는 공고한 사회적 틀을 늘 비판적으로 보며, 그것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사회적 틀을 개척하고자 한다. 단순히 삼성이 세계시장에서 자기들 상품을 널리 판다고 해서 그것을 노마디즘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노마디즘에 대한 완벽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런 오해는 노마드가 단순히 외형적 움직임을 뜻하는 것, 즉 ‘단순한 이주’라고 착각한 데서 비롯된다. 노마드는 외형적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감싸고 있는 정신적, 문화적 고정관념으로부터의 탈주를 추구한다. 삼성이 자기네 제품을 국경 넘어 파는 행위나 몽골의 전사들이 말발굽을 달려 적지를 손아귀에 넣는 것은 진정한 노마디즘이 아니다. 몽골의 전사들은 단순한 영토 확장에 몰두했을 뿐이며, 삼성의 행태는 자본주의적 질서를 공고히 하는 농경적 행태일 뿐이다. 노마디즘은 자본주의라는 틀 자체에 대한 근본적 의문을 제시하는 것을 의미한다. 몽골의 기마병과 삼성의 경영자들은 진정한 유목민이 아니라 단순한 이주민에 불과하다.
그러나 노마디즘에 대한 비판적 시선이 완전히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만 보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노마디즘이 주장하는 불가피한 전쟁이라는 것이 늘 좋은 결과만을 보장한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노마디즘은 우리를 둘러싼 폐쇄적 족쇄와 남들이 둘러치고 있는 담벼락을 허물어뜨리는 전쟁이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런 전쟁을 통해 모든 족쇄와 담벼락이 무너져 모든 사람들이 유목민처럼 자유롭게 이곳저곳을 들락날락할 수 있게 되는 사회가 반드시 좋은 사회인가? 국가와 정치체제, 자본주의라는 경제체제의 경계를 무너뜨리기만 하면 무조건 좋은 세상이 오는 것일까? 노마디즘은 경계로부터 벗어나 끝없는 실험과 도전을 주장하지만 그렇게 새로운 것을 탐색하기에는 위험 부담이 너무 큰 것이 아닐까?
물론 둘뢰즈는 노마디즘이 결코 무책임한 무정부주의라고 말하지 않는다. 국가를 원천적으로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행정기계로서의 국가와 협력함으로써 새로운 가치를 창출한다고 주장한다. 허나 국가와 협력하는 것이 진정한 유목주의일 수 있는가? 또한 노마디즘이 자본주의를 비판적으로 본다는 것도 이해하기 힘들다. 노마디즘을 옹호하는 측에서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자본주의 체제를 공고히 하면서 자본만 외형적으로 이동하는 것을 추구하기 때문에 진정한 유목이 아니라 단순한 이주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허나 현대의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는 19세기 자본주의와 다르고 20세기 자본주의와도 다르다. 자본주의는 고전주의, 수정주의. 신자유주의 등으로 끊임없이 스스로의 모습을 변모해 왔다. 이런 변화와 도전, 자신의 한계를 벗어나려는 노력도 유목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자본주의적 틀 자체까지 부정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진정한 유목주의가 아니라고 한다면 국가라는 틀 자체까지 부정하지는 않는 들뢰즈식 노마디즘도 진정한 유목주의가 아닌 셈이 되지 않나?<“철학 개념어 사전”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채석용 지음, 소울메이트>
<단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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