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를 고는 것도 이비인후과 계통의 질환에 드는 모양이지만 나는 남편의 유연한 코고는 소리를 들으면 그의 낙천성과 건강이 짐작돼 싫지 않다. 스스로가 코를 골기 때문인지 남편은 잠만 들면 웬만한 소리엔 둔감한데 빛에는 여간 예민하지 않다.
난 꼭 한밤중에 뭐가 쓰고 싶어서 조심스럽게 머리맡에 스탠드를 켜고는, 두터운 갈포갓이 씌워졌는데도 부랴부랴 벗어 놓은 스웨터나 내복 따위를 갓 위에 덧씌운다. 그래도 남편은 눈살을 찌푸리고 코고는 소리가 고르지 못해진다. 까딱 잘못하면 아주 잠을 깨 놓고 말아 못마땅한 듯 혀를 차고는 담배를 피어물고 뭘 하느냐고 넘겨다보며 캐묻는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어물어물 원고 뭉치를 치운다. 쓸 게 있으면 낮에 쓰라고, 여자는 잠을 푹 자야 살도 찌고 덜 늙는다는 따끔한 충고까지 해준다. 그래도 나는 별로 낮에 글을 써 보지 못했다. 밤에 몰래 도둑질하듯, 맛난 것을 아껴 가며 핥듯이 그렇게 조금씩 글쓰기를 즐겨 왔다.
그건 내가 뭐 남보다 특별히 바쁘다거나 부지런해서 그렇다기보다는 나는 아직 내 소설 쓰기에 썩 자신이 없고 또 소설 쓰는 일이란 뜨개질이나 양말 깁기보다도 실용성이 없는 일이고 보니 그 일을 드러내 놓고 하기가 떳떳하지 못하고 부끄러울 수밖에 없다고 내 나름대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쓰는 일만 부끄러운 게 아니라 읽히는 것 또한 부끄럽다. 만일 내가 인기 작가나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다면, 온 세상이 부끄러워 밖에도 못 나갈 테니 딱한 일이지만, 그렇게 될 리도 만무하니 또한 딱하다. 그러나 내 소설이 당선되자 남편의 태도가 좀 달라졌다. 여전히 밤중에 뭔가 쓰는 나를 보고 혀를 차는 대신 서재를 하나 마련해줘야겠다지 않는가. 나는 그만 폭소를 터뜨리고 말았다.
서재에서 당당히 글을 쓰는 나는 정말 꼴불견일 것 같다. 요바닥에 엎드려 코고는 소리를 들으며 뭔가 쓰는 일은 분수에 맞는 옷처럼 나에게 편하다. 규칙적인 코고는 소리가 있고, 알맞은 촉광의 전기 스탠드가 있고, 그리고 쓰고 싶은 이야기가 술술 풀리기라도 할라치면 여왕님이 팔자를 바꾸자 해도 안 바꿀 것같이 행복해진다.
오래 행복하고 싶다. 오래 너무 수다스럽지 않은, 너무 과묵하지 않은 이야기꾼이고 싶다. <“그래도 행복해지기”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박완서 외 지음, 북오션>
▣ 저자
박완서: 서정적인 여성 작가로서 중산층의 삶을 주로 소재로 한 우리 문학가의 대가이다. 2011년 담낭암으로 사망했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등 주옥같은 작품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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