白馬江懷古(백마강회고)
처능(處能 : 1617-1680)
白馬派聲萬古愁(백마파성만고수) 백마강 물결 소리 만고의 수심일세
男兒到此涕堪流(남아도차체감유) 사나이 눈물이 흘러내림을 견딜 수가 없구나.
始誇魏國山河寶(시과위국산하보) 처음에는 위국산하 보배로 여기더니
終作烏江子弟羞(종작오강자제수) 끝내는 오강자제 수치를 당했구나.
廢堞有鴉啼落日(폐첩유아제락일) 허물어진 성가퀴 지는 해 울어 대는 갈가마귀 보이고
荒臺無妓舞殘秋(황대무기무잔추) 황량한 누대에는 늦은 가을 춤추는 기녀 하나 없도다.
三分割據英雄盡(삼분할거영웅진) 삼국을 할거하던 영웅들은 다 사라지고
但看西風送客舟(단간서풍송객주) 서풍에 손님 떠나보내는 작은 배만 보이네.
요점 정리
지은이 : 처능(1617-1680)
시대 : 조선 후기 승려
갈래 : 칠언율시
성격 : 서사시, 회고시
이해와 감상
작자는 조선후기의 승려다.
15세에 승려가 되었으나
신익성에서 유학과 시를 배웠다.
그러나 후에는 지리산 쌍계사에서
도를 닦고 범통을 이어받았다.
그는 유학을 한 승려로서
세상을 올바르게 다스리는 일에도
관심을 보인 승려로 보인다.
이 시는 백제의 멸망을 회고하는 시로 보인다
1,2 구절
白馬派聲萬古愁(백마파성만고수) : 백마강 물결 소리 만고의 수심일세
男兒到此涕堪流(남아도차체감유) : 사나이 눈물이 흘러내림을 견딜 수가 없구나.
산문적 의미는
"출렁이는 백마강(白馬)의 물결소리(派聲)는
오랜 세월(萬古)의 수심(愁)을 간직한 채 흘러간다.
사내가(男兒) 이곳(此) 백마강에 오니(到)
수심을 간직한 채로 흐르는 강물소리를 들으니
눈물(涕)을 흘릴 수 밖에 없구나(堪流)”이다
여기서는
작가가 서있는 공간과 정황이 조성되었다
작가은 백마강 가에 서있다.
그리고 흘러가는 물소리를 듣고 있다.
그런데 그 물소리가 수심스럽게 들려온다.
전에 왔을 때도 물소리는 수심스럽게 들렸다.
사나이라면 내가 아니고 그 누구라도
이 물소리 듣고서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왜 그럴까,
작가의 지금까지의 표현으로는 알 수 없다.
그래서 시는 다음 표현으로 이어진다.
3,4 구절
始誇魏國山河寶(시과위국산하보) : 처음에는 위국산하 보배로 여기더니
終作烏江子弟羞(종작오강자제수) : 끝내는 오강자제 수치를 당했구나.
산문적 의미는
"처음(始)에는 위나라 무후가
위나라(魏國)의 험산 산과 물(山河)을
나라를 지키는 보배(寶)로 여겨 자랑하였다(誇)
그러나 그 때문에 그는 멸망당했다.
또한 중국 천하를 누비던 영웅 항우도
오만한 나머지 끝내(終) 싸움에 지고 도망쳤다.
오강(烏江)을 건너면서 고향땅 강동의
젊은이들(子弟)에게 수치(羞)를 당했다(作).”이다
여기서는
1,2 구절에서 설정된 상황이,
인간의 자만과 오만이 국가적 비극의 원인이
되었음을 역사의 사실로써 설명하고 있다.
즉 중국 위나라 무후와
초나라 항우의 고사를 인용하고,
백제의 경우도 이와 같았음을 암시하고 있다.
한 인간의 오만과 자만에 의해
다수의 많은 사람이
고통을 받는 것이 인간사회의 현실이다.
5,6 구절
廢堞有鴉啼落日(폐첩유아제락일) : 허물어진 성가퀴에 석양에 울어 대는 갈가마귀만 보이고
荒臺無妓舞殘秋(황대무기무잔추) : 황량한 누대에는 늦은 가을 춤추는 기녀도 하나 없구나.
산문적 의미는
"다 허물어진 성에 남은 성가퀴에는,
저녁 지는 해를 울어주는 갈매기만 보인다.
황폐한 누대에는,
늦 가을에 춤추는 기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이다
여기서는
하나의 전환이 일어나고 있다.
곧, 있어야 할 것이 없고,
없어야 할 것이 있는
비틀어진 현실을 묘사하고 있다.
백제가 강성했을 때,
이 성에는 석양이면 저녁을 맞는 궁녀들의
환락의 밤으로 휘황찬란한 등불이 있었다.
불야성을 이루는 장관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지는 해의 따뜻함이 사라지는 것을
아쉬워하는 갈가마귀의 울음소리만 있을 뿐이다.
화려한 누대에는,
가을이 늦도록 연회가 열렸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의례이 수많은 기녀들이 나와
교태를 부리는 온갖 화려한 춤이 추어졌다.
그러나 지금은 춤추는 기녀 한 사람 보이지 않는다.
작가는
냉엄한 역사의 진실 앞에
한없는 회포에 잠기는 것이다.
7,8 구절
三分割據英雄盡(삼분할거영웅진) : 삼국을 할거하던 영웅들은 다 사라지고
但看西風送客舟(단간서풍송객주) : 서풍에 손님을 떠나보내는 작은 배만 보이는구나.
산문적 의미는
"우리나라를 3개로 나누어(三分) 통치했던(割據)
당시의 영웅들(英雄)도 이제 다 죽어 없어졌다(盡).
지금은 단지(但) 서풍(西風)에 나그네(客) 실어보내는(送)
배(舟)만 떠있는 것이 보일(看) 뿐이다.”이다
여기서는
이 시의 주제가 드러난다.
도도한 역사의 흐름 앞에
죽어 없어져 흔적만 남은
인간의 덧없는 운명을 애닲아하고 있다.
당시에는
나는 새도 떨어뜨렸을 영웅들도
이제는 모두 다 죽어 없어졌다.
인간의 운명은 그러한 것이다.
누구에게도 예외가 없다.
영웅도 필부도 모두 하나의 인간이고
인간은 다 죽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영원한 것은 없는 것이다.
영원한 것이 있다면
오히려 자연인 바람일 것이다.
강가에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바람이 불고,
그 바람은 돛에 불어 배를 움직이는 것이다.
이 두 가지가 대조되어 있다.
바람과 배는 그 역사를 아는지,
그 역사를 회고하고 인간의 운명을 자각하는
작가의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황혼에
서풍에 돛을 맡기고 강물 위로 떠가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이 시는
역사의 도도한 흐름을 거역하지 못하는
인간의 운명을 자각하고 있는 작가의 회포를 읊고 있다.
작가가 승려인 면을 감안하면,
작자는 아마도
이 시에서 인간의 한계를 자각하고
그 해탈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심화 자료
白谷 處能(백곡 처능)
1617(광해군 9)~1680(숙종 6).
조선 후기의 승려.
속성은 김씨(金氏).
자는 신수(愼守),
호는 백곡(白谷).
12세에 의현(義賢)에게 글을 배우다가 출가했다.
신익성(申翊聖)으로부터 유학과 시문을 배우고,
지리산 쌍계사(雙磎寺)의 각성(覺性) 밑에 들어가
23년 동안 도를 강하다가 법을 이어받았다.
1674년(현종 15)
남한수어사 김좌명(金佐明)의 주청으로
팔도선교십육종도총섭(八道禪敎十六宗都摠攝)이
되었으나 곧 사퇴했다.
속리산·청룡산·성주산·계룡산 등에서 법석을 열고,
대둔사(大芚寺)의 안심암(安心庵)에 오랫동안 있었다.
현종이 불교를 배척하고 이원(尼院)을 폐쇄할 때,
전국 승려를 대표하여 〈간폐석교소 諫廢釋敎疏〉를 올렸다.
1680년 금산사(金山寺)에서 대법회를 열고,
그 해 7월에 입적했다.
유교의 이론에 밝았으며 문장에도 뛰어났다.
저서로 〈백곡집〉·〈임성당대사행장 任性堂大師行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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