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의 시위는 효과적인가?
기업이 지배하는 정부에서는 기업 엘리트와 선거로 선출된 관리들 사이에 상호 의존 관계가 성립한다. 선거로 선출된 관리들은 기업 엘리트들의 재정 지원에 의존하고, 기업 엘리트는 자신들의 부와 권력을 실질적으로 위협하는 시위를 억제하기 위해 정부 기구에 의존한다. 따라서 기업정치에서 정부의 주된 역할은 사람들의 분노가 기업 엘리트를 향하지 않게 해주는 것이고 기업 엘리트는 선거로 뽑힌 관리들이 분노의 표적이 되기를 바란다.
2003년 2월 15일의 일을 다시 생각해보자. 세계 각국의 600개가 넘는 도시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임박한 이라크 침공에 반대하는 대대적인 시위를 벌였다. 그날 뉴욕 시에서만 50만 명이 시위에 참여했고 그 밖에도 미국의 150개 도시에서 상당한 규모의 시위가 벌어졌다. 시위에 참가한 사람들은 이라크 전쟁이 국가 안보의 문제가 아니라 기업정치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다.(실제로 이러한 견해를 뒷받침하는 증거가 아주 많았다.) 미국 정부와 그 하위 파트너였던 영국은 이처럼 규모가 큰 항의 시위를 철저히 외면했다. 기업의 중요한 이익이 걸린 문제에 관해서는 아무리 많은 사람이 항의 시위를 벌여도 선출 관리들을 움직이지 못하는 것 같다. 이라크 침공은 대기업의 이익, 특히 에너지 산업 복합체와 군산 복합체에 속한 기업들의 이익이 걸린 문제였다. 기업들에 대한 비판을 희석시키고 시위를 진압하는 것 외에 기업 엘리트에게 이익이 된다고 판단되는 전쟁을 수행하는 것 역시 미국 정부의 역할이다.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항의 시위가 대규모로 벌어졌지만 그 저항은 국민을 대표하는 임무를 수행하지 않고 기업 엘리트에게 의존하고 있는 정부에게 충분한 타격을 가하지 못했다.
하지만 낙태 찬성 시위라든가 동성결혼과 관련된 시위처럼 기업 이익이 걸려 있지 않은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질 때 권력자들은 더할 나위 없이 기뻐한다. 미국인들이 그런 사안을 놓고 입장이 갈라져서 서로 불신하게 된다면 기업정치가 정말로 중요하게 여기는 사안들에 거세게 항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업정치의 이익과 충돌하지 않는 특정한 시민권과 인권을 요구하는 시위는 성공할 수도 있다. 1960년대를 돌아보더라도 대규모 반전 시위보다 대규모 시민권 시위가 훨씬 큰 성과를 거두었다. 기업정치는 전쟁으로 돈을 번다. 그리고 돈은 기업정치의 첫째 관심사다. 게다가 기업정치는 분할 통치라는 수법을 즐겨 쓴다. 인종 갈등이 있으면 빈민과 노동자 계급이 힘을 합쳐 엘리트와 싸우기가 어려워진다. 정부에 항의하는 시위는 상당수 기업 엘리트들이 그 시위의 목표에 찬성할(혹은 반대하지 않을) 경우에만 성과를 거둘 가능성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정부에 대항하는 시위 대신 기업들을 직접 겨냥하는 시위를 조직하려 한다. 이런 식으로 기업에 대항하는 행동은 시위 규모가 크지 않더라도 상당히 효과적일 가능성이 높다. 시티라이프가 조직했던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을 생각해보자. 시티라이프는 BOA를 비롯한 미국의 초대형 은행들과 싸워 여러 차례 승리를 거두고 퇴거 조치와 압류를 막아냈다. 보스턴 지역에 위치한 작은 단체인 시티라이프의 설명을 들어보자. “우리는 봉쇄와 철야농성 등의 대중 행동을 조직해서 은행에 대중적 압박을 가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비영리 금융기관인 보스턴 커뮤니티 캐피털에서 대출을 받아 퇴거 위험에 처한 주민들의 집을 실거래가로 사들입니다. 나중에 그 집을 주민들에게 도로 팔기도 하지요.”
시티라이프의 조직가 스티브 미첨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퇴거를 당하지 않습니다.” 법적 조언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집에서 쫓겨나는 데 반해 시티라이프의 도움을 받은 사람들은 약 95%가 퇴거를 당하지 않았다. 자금도 풍족하지 못한 작은 단체가 어떻게 그렇게 큰 성과를 거두었을까? 이 질문에 답하려면 기업정치가 무엇에 신경을 쓰는가를 이해해야 한다.
시티라이프는 퇴거 조치를 당한 사람의 집 앞에서 저지투쟁을 벌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우리가 퇴거 저지투쟁을 하는 이유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서입니다. 50명 내지 75명이 모여서 체포되는 일까지 각오하고 건물 앞에 버티고 앉아 있는 모습은 극적이기 때문에 주목을 많이 받지요.” 기업들은 평판이 나빠지는 것을 싫어한다. 평판은 기업의 이윤과 주가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미첨과 시티라이프는 은행들의 심리상태를 이용해서 은행들과 싸우는 것이다. 퇴거 저지투쟁은 소수가 참여한다 해도 홍보 전쟁이 벌어지면 거의 항상 은행들이 패배할 수밖에 없다. 미첨의 말에 따르면 은행들은 대개 시티라이프와 협상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쪽을 택한다.
결국 정치적 행동이 성공하려면 현실성과 상식과 지혜가 요구된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감정적 충동이나 자기만의 고집에 따라서가 아니라 구체적인 행동의 결과를 고려해서 행동해야 한다. 특정한 정치인이나 정부기구, 또는 특정 기업에게 분노가 솟구칠 때도 있겠지만, 모든 폭력은 기업정치에 의해 권위주의적 통제를 강화하는 구실로 이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시위와 항의와 행진은 무기이므로 다른 모든 무기와 마찬가지로 신중하게 써야 한다.
마지막 경계선을 넘어
미국에서 흑인 노예제가 철폐되기 10년쯤 전까지 미국인들 대다수는 ‘노예제 철폐’라는 구호는 실현 불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에이브러햄 링컨조차도 노예제 막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라는 의구심을 품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10년도 채 지나지 않아 미국의 노예제는 폐지되었다. 이것은 예상 밖의 역사적 사건으로 불가능해 보이던 일이 가능한 일로 바뀐 대표적인 사례였다. 역사를 보면 불가능해 보였던 일들이 현실이 되고, 필연적으로 보였던 일들이 필연이 아니게 되는 모습이 보인다.
나 역시 처음에는 불가능해 보였던 일이 예측 불가능한 변수의 영향으로 현실이 되는 경우를 여러 번 목격했다. 소련이 무너지기 직전까지도 미국인들은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소련 내부의 대중적 체념과 권력에 의해 통제되는 면만을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폴란드 단스크의 조선소 노동자들은 미국인들처럼 소련과 공산당 지도자들이 그렇게 강력한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폴란드 노동자들의 ‘자유노조’는 싸움을 포기하지 않고 버티면서 동유럽 전역에 강력한 사기 증진제를 제공했다. 그와 동시에 여러 가지 역사적 사건들이 소련의 힘을 약화시켰다.
폭압적이고 비인간적인 권력은 겉보기보다 취약할 때가 많으며, 시간과 행운과 사기가 맞아 떨어지고 사람들에게 기회를 포착할 능력이 있다면 세상에 불가능한 일이란 없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역사적 변수들이 어우러져 전에는 불가능해 보였던 변화의 기회를 만들어 내고 있다 할지라도 그런 사건이 실제로 일어나기 전에는 아무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혹은 우리 아이들이 살아 있는 동안에 기업정치와 싸워 이길 현실적인 기회가 올지도 모른다. 그런 기회가 정말로 온다면 승리 여부는 우리 중에 몇 명이나 기회를 포착해서 행동을 시작할 수 있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그러니 지금 당장이라도 우리 각자가 자존감 회복을 시작해야 하지 않겠는가? 지금이 아니라면 언제 우리의 집단적 자신감을 회복하겠는가? 지금 당장, 시작하자. <“Get up Stand Up(깨어나라 일어나라)”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브루스 E. 레빈 지음, 역자 안진이님, 베이직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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