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2/한시 및 고전

초행서작품 일부 감상

[중산] 2009. 9. 11. 09:33

 

 

<작품감상> 작품속에 蘇는 초서가 잘못 되은 것 같네요!! <중산>


楓橋夜泊(풍교야박) 풍교에서 묵으며 張繼(장계)

月落烏啼霜滿天(월락오제상만천) 달 지자 까마귀 울고 하늘가득 서리 차가운데,

江楓漁火對愁眠(강풍어화대수면) 강가의 단풍 고깃배의 등불도 시름겨워 잠 못 든다.

姑蘇城外寒山寺(고소성외한산사) 고소성 밖 한산사,

夜半鐘聲到客船(야반종성도객선) 한 밤중에 종소리 객선까지 들려온다.


장계(년대 미상): 대략 성당(盛唐)시 시인. 천보년간(天寶年間:742~755)에 진사가 되었다 전해진다. 하남성(河南省) 남양(南陽)사람이라고도 하고, 호북성(湖北省) 양주(襄州)사람이라고도 하는데 확실치 않다. 안록산의 난 이후 당시의 백성들의 생활상을 잘 반영한 시를 붓 가는대로 가감 없이 사실적으로 묘사한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작품집으로 장사부시집(張詞部詩集)이 있다. 시인은 과거시험을 응시하기위해 당시의 수도 장안(長安)을 여러 번 오르내렸다 한다. -기록에 의하면 그는 2·3번의 과거시험에 고배를 마셨다고 한다.― 그때를 당해 지은 시로 이 시는 그 이후로 대단히 유명하게 되어 한산사 풍교하면 바로 이 시를 연상하리만큼 유명하다. 하여, 중국은 초등학교 교과서에 일본에선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대단히 인기 있는 당시(唐詩)중 하나이다.

그저 담담한 여행객의 여수(旅愁)를 아무 장식 없이 그려낸 아주 담백한 시이다.

 

 

  

서예의 성인, '서성(書聖)'이란 별명의 왕희지는 대표작으로 '난정서(蘭亭序)' 등을 남겼으나 전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특히 '난정서'는 당 태종과 여 황제 무측천 등이 탐을 내 무덤에 함께 매장했다는 설이 전해집니다.

 

永和九年, 歲在癸丑, 暮春之初, 會於會稽山陰之蘭亭, 修?事也. 群賢畢至, 少長咸集. 此地有崇山俊嶺, 茂林修竹; 又有淸流激湍, 映帶左右. 引以爲流觴曲水, 列坐其次; 雖無絲竹管弦之盛, 一觴一詠, 亦足以暢?幽情.


영화구년, 세재계축, 모춘지초, 회어회계산음지난정, 수계사야. 군현필지, 소장함집. 차지유숭산준령, 무림수죽; 우유청류격단, 영대좌우. 인이위류상곡수, 열좌기차; 수무사죽관현지성, 일상일영, 역족이창서유정


영화9년 계축년 3월초 회계군 산음현의 난정에 모여 "수계"행사를 열었다. 많은 선비들이 모두 이르고 젊은이와 어른들이 다 모였다. 이곳은 높은 산과 고개가 있고 깊은 숲과 울창한 대나무 그리고 맑은 물이 흐르는 여울이 좌우로 띠를 이루었다. 흐르는 물을 끌어 잔을 띄우는 물굽이를 만들고 순서대로 자리를 잡으니 비록 성대한 풍악은 없어도 술 한 잔에 시 한 수씩 읊으며 또한 그윽한 정회를 펼칠 만 하였다.



是日也,天朗氣淸, 惠風和暢; 仰觀宇宙之大, 俯察品類之盛; 所以游目騁懷, 足以極視之娛, 信可樂也.


시일야, 천랑기청, 혜풍화창; 앙관우주지대, 부찰품류지성; 소이유목빙회, 족이극시지오, 신가락야.


이 날은 맑은 날씨에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는데, 머리를 들어 세상의 넓음을 우러르고 고개를 숙여 사물의 흥성함을 살피니, 경치를 둘러보며 정회를 펼침은 족히 보고 듣는 즐거움을 다하기에 참으로 기쁘기 한이 없었다.


夫人之相與, 俯仰一世, 或取諸懷抱, 悟言一室之內; 或因寄所託, 放浪形骸之外. 雖趣舍萬殊, 靜躁不同; 當其欣於所遇, 暫得於己, 快然自足, 不知老之將至. 及其所之旣倦, 情隨事遷, 感慨係之矣. 向之所欣, ?仰之間, 以爲陳迹, 猶不能不以之興懷; ?修短隨化, 終期於盡. 古人云: "死生亦大矣. " 豈不痛哉!


부인지상여, 부앙일세, 혹취제회포, 오언일실지내; 혹인기소탁, 방랑형해지외. 수취사만수, 정조부동; 당기흔어소우, 잠득어기, 쾌연자족, 부지노지장지. 급기소지기권, 정수사천, 감개계지의. 향지소흔, 면앙지간, 이위진적, 유불능불이지흥회; 황수단수화, 종기어진. 고인운: "사생역대의. " 개불통재!


무릇 사람들이 서로 어울려서 한 평생을 살아가되, 어떤 사람은 벗을 마주하여 서로 회포를 나누고, 어떤 사람은 정회를 대자연에 맞기며 유람을 한다. 비록 나아감과 머물음이 서로 다르고, 고요함과 시끄러움도 같지 않건만, 자신의 처지를 만족하며 잠시나마 득의 하면 기쁘고 흡족하여 장차 늙어 죽으리라는 것도 모르는 법이다. (그러나) 흥에 겨우면 다시 권태롭고, 감정이란 세상사에 따라 변하는 것이니, 감흥이란 단지 그에 따라 일어나는 것이다. 예전의 기쁨도 잠깐사이에 곧 시들해지니 더더욱 감회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하물며 사람 목숨의 길고 짧음이 비록 하늘에 달려있다 해도 결국에는 죽어야 할뿐임에랴. 옛사람이 이르기를 "삶과 죽음은 역시 중대한 일이다" 라고 했으니 어찌 비통하지 않은가.



每覽昔人興感之由, 若合一契; 未嘗不臨文嗟悼, 不能諭之於懷. 固知一死生爲虛誕, 齊彭敵爲妄作. 後之視今, 亦由今之視昔, 悲夫! 故列?時人, 錄其所述, 雖世殊事異, 所以興懷, 其致一也. 後之覽者, 亦將有感於斯文.


매람석인흥감지유, 약합일계; 미상불림문차도, 불능유지어회. 고지일사생위허탄, 제팽상위망작. 후지시금, 역유금지시석, 비부! 고열서시인, 록기소술, 수세수사이, 소이흥회, 기치일야. 후지람자, 역장유감어사문.


매번 옛사람들이 감흥을 일으켰던 까닭을 살펴보면 마치 계약문서가 들어맞 듯 일치하여, 그들의 문장을 보면 탄식을 하지 않은 적이 없었고 가슴에 와 닿지 않음이 없었다. 그런즉 삶과 죽음이 하나라는 말이 얼마나 헛된 것이며 장수와 요절이 똑같다는 말이 거짓임을 알겠다. 후세 사람들이 오늘의 우리를 보는 것 또한 오늘의 우리가 옛사람을 보는 듯하리라. 슬프도다. 오늘 모임을 가졌던 사람들이 모두 그 술회를 시로 적었으니 비록 후세에는 세상이 달라져도 정회가 일어나는 까닭은 한가지인즉 뒤엣 사람이 이 글을 보면 또한 느끼는 바가 있으리라.

 

중국 붓글씨의 최고봉인 왕희지(王羲之:307~365)의 글씨)가 약 3000만~4000만 홍콩달러(약 36억~48억원) 선일 것이라고 하네요. 위의 사진에 있는 글씨인데요

이번 홍콩 크리스티경매에 나올예정인데 그 예상가격이라고 하네요

세로 길이는 25.3㎝, 너비는 5.3㎝에 모두 17자에 불과한 '매지첩(妹至帖)'이란 작품입니다. 더구나 본인의 필적이 아닙니다. 7세기께에 왕희지의 진필을 베껴 쓴 모작에 불과하다. 현재 왕희지의 진필은 없고, 진필을 직접 베낀 모작도 20여 점만 남아 있습니다. 일본 감정가에 의해 보관돼 오던 작품은 1973년에 그 존재가 처음 알려졌습니다.

 

 

 

                                                                                         이민위천

                                                                           

                                                                                    함석헌옹의 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