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해질 필요가 없다고 굳게 믿을 수 있게 된 그날부터 내 마음속에 행복이 깃들기 시작했다. 그렇다, 행복해지기 위해서 내게 필요한 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굳게 믿게 된 그날부터. 이기주의를 곡괭이로 내리찍고 나자 곧 내 심장에서 기쁨이 어찌나 넘치도록 뿜어 나오는지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도 그 기쁨의 물을 마시게 해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가장 훌륭한 가르침은 모범을 보이는 것임을 나는 깨달았다. 나는 나의 행복을 천직으로 받아들였다.
매일 나로 하여금 신을 발견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감사하는 내 마음이다. 아침에 잠을 깨어나자마자 나는 존재한다는 사실에 놀라고 끊임없이 경탄을 금치 못한다. 고통의 끝이 가져다주는 기쁨은 왜 기쁨의 끝에 오는 아픔보다 더 크지 못한 것인가?
그 까닭은, 슬플 때는 그 슬픔 때문에 누리지 못하는 행복을 생각하지만, 행복에 잠겨 있을 때는 그 행복 덕분에 면하게 되는 고통들을 조금도 머리에 떠올리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대에게 행복하다는 것이 당연하게만 느껴지기 때문인 것이다.
내가 존재하기 전에는 내가 생명을 요구했는지 어떤지 알 수 없지만 내가 태어나 살고 있는 지금은 모든 것이 나의 몫으로 주어진 것이다. 그러나 감사하는 마음은 너무나도 감미롭고 사랑한다는 것이 내겐 너무나도 당연하게 감미로워서 지나가는 바람의 조그만 애무도 내 마음속에 감사하는 마음을 불러일으켜 준다. 감사하는 마음의 필요성은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하라고 가르쳐준다.
남을 타락시키는 자들, 남의 마음을 어둡게 하는 자들, 남을 약하게 만드는 자들, 퇴행적인 자들, 성실치 못한 자들 - 나의 개인적인 적들이 되었다. 나는 인간을 축소시키는 모든 것을 미워한다.
즉 인간을 지혜롭지 못하게 만들고 자신을 잃게 하거나 민첩하지 못하게 만드는 모든 것을 미워한다. 나는 지혜가 항상 느림과 의혹을 수반하게 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으니까. 그것이 흔히 노인들보다 어린아이에게 더 많은 지혜가 있다고 믿는 이유이기도 하다.
인간이 좀 덜 무모할 경우 전쟁으로 야기되는 고통들을 면할 수 있었고, 남에게 덜 잔인하게 굴 경우, 빈곤으로 야기되는 고통들을 면할 수 있다. 이것은 결코 가공적인 유토피아가 아니라 우리 인간들의 고통 대부분은 결코 숙명적인 것도 필연적인 것도 아니며 다만 우리들 자신 탓으로 생긴 것일 뿐이라는 단순한 확인이다.
지금 나는 나의 과거로 인하여 온통 구속을 받고 있다. 오늘 어느 행동 하나도 어제의 나에 의하여 결정되지 않는 것이 없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의 돌연하고 덧없고 그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존재인 나는 손아귀에서 빠져나가 버리고∙∙∙∙∙∙,
아! 나 자신에게서 빠져나갈 수만 있다면! 나 자신에 대한 존중으로 인하여 내가 묶여 있는 이 구속의 저 너머로 도약하고만 싶다. 아! 닻을 올리고 그리하여 가장 무모한 모험을 향하여∙∙∙∙∙∙, 그리고 그렇게 해도 내일에는 아무런 상관이 없게 되기를.
육체의 즐거움들이여, 풀잎처럼 연하고
산울타리에 핀 꽃들처럼 귀여워라.
초원의 개자리 속보다도,
건드리면 잎을 떨구는 서글픈
조팝나무 속보다도
더 빨리 시들거나 낫에 베이는 그대들.
쾌락이 감싸고 있는 단맛 가득한 과일이여, 싹이 트려면 너는 너 자신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러니 그것은 죽어야 하리! 너를 감싸고 있는 그 단맛은 죽어야 하리.
그 기막히고 달콤하게 넘치는 살은 죽어야 하리! 그것은 땅의 것일지니. 그대를 살리기 위해 그것은 죽어야 하리. “과일이 죽지 않으면 홀로 남을 것*”임을 나는 알고 있다.
정다운 눈부심이여
나의 깨어남을 맞이해 다오!
내가 바라는 것은
비물질의 세계가 아니다.
그러나 내 그대를 사랑하노라, 흠잡을 데 없는 창공이여.
아리엘처럼 가벼워도
하늘의 한구석에 애착을 가지면
나는 죽고 마느니.
내가 알기로는, 더 이상의
본질적인 것은 없으니.
그대에게 귀 기울임은 곧 그대의 소리를 듣는 것.
이 꿀을 음미하기 위하여
나는 더 이상 기다리지 않으리.
* : <요한복음> 12장 24절과 거의 동일한 말. 지드는 이 말을 자신의 ‘회고록’의 제목으로 삼았다.
<‘지상의 양식’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앙드레 지드지음, 김화영님 옮김,민음사 출판>
* 앙드레 지드 : 1869년 파리 법과 대학 교수인 아버지와 루앙의 유복한 사업가 집안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격정적인 성격에 몸이 허약했던 지드는 열한 살에 아버지가 사망하자 어머니와 외사촌 누이 등 여자들에 에워싸인 채 엄격한 청교도적 분위기 속에서 성장하는 동안 신경 쇠약에 시달렸다.
1893년 북아프리카 여행 중 결핵으로 신음하다가 회복되면서 처음으로 삶의 희열과 동성애에 눈을 뜨고, 마침내 모든 도덕적∙종교적 구속에서 해방되어 돌아온다. <지상의 양식>은 시, 일기, 여행기록, 허구적인 대화 등 다양한 장르가 통합된 형식으로, 이때의 해방감과 생명의 전율을 노래한 작품이다.
<좁은 문>.<교황청의 지하도>,<전원 교향곡>.<위폐 제조자들>,<소련 기행>등 작품 20세기 프랑스 문단에 막강한 영양력을 행사했다. 1938년 아내가 사망한 후 일생동안 꾸준히 써온 여러 권의 <일기>를 발표하기 시작했고, 1947년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1951년 파리의 자택에서 폐 충혈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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