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의 다양성을 통해서 어떤 불변성을 분명히 느낀다. 내가 다양하다고 느끼는 것은 언제나 나 자신이다. 그러나 그 불변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느끼는데 무엇 때문에 그 불변성을 얻어내려고 애쓰는 것일까? 나는 내 일생을 통해서 나를 알려는 노력을 거부해왔다. 다시 말해서 나를 찾는 것을 거부해 왔다.
내가 보기에 그러한 탐구,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해서 그런 성공은 존재를 제한하고 빈약하게 만들 것 같았다. 아니 어쩌면 자신에 대하여 안다는 것은 존재와 그 발전을 제한한다고 생각되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다음에는 자신의 모습과 닮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자기가 발견한 그 모양 그대로 남아 있게 될 테니 말이다.
그러니 오히려 미래의 기대를, 영원히 손에 잡히지 않는 생성 변화를 끊임없이 지켜나가는 것이 나을 것이다. 나에게는 어떤 식으로 확고하게 이치에 맞는 것보다, 자기 자신과 일치된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어떤 식의 의지보다, 자신과 단절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보다. 모순이 덜 거부감을 일으킨다. 사실 나는 그 모순이 외견상으로만 모순일 뿐 더 실제로는 깊이 감추어진 어떤 연속성과 관련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나는 이 경우도 다른 경우와 마찬가지로 언어의 표현이 우리를 속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언어는 실제 삶에서 보다 더 많은 논리를 우리에게 요구하는 경우가 잦고, 또 우리들 내면의 가장 귀중한 것은 표현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는 부분이니 말이다.
나는 가끔, 대개는 심술궂은 마음을 가지고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남에 대해 나쁘게 이야기하고, 비겁한 마음을 가지고 많은 작품에 대하여 실제 생각 이상으로 좋게 말했다. 책이든 그림이든 그 작품의 작가들을 실제 생각 이상으로 좋게 말했다.
책이든 그림이든 그 작품의 작가들을 나의 적으로 만들어 놓을까 봐 두려워서 말이다. 나는 때때로 조금도 재미있다고 여기지 않는 사람들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고, 어리석은 말을 무척 고상하다고 느끼는 척도 했다. 또 때로는 따분해 죽을 지경인데도 재미나는 척했고, 사람들이 “좀 더 있다가 가시죠∙∙∙∙∙∙.” 하는 말 때문에 자리에서 일어설 용기를 못 내고 앉아 있기도 했다. 나는 너무나 자주 마음의 충동을 이성으로 제지했다.
나는 가끔 남들의 동의를 얻기 위하여 어리석은 짓을 했다. 반대로 내가 반드시 해야 한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남들이 동의해 주지 않을 것을 알기에 감히 하지 못한 일도 많다.
‘돌이킬 수 없는 과거’에 대한 후회는 늙은이들이 마음 쓰는 가장 부질없는 일이다. 생각은 그렇게 하면서도 나는 그걸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당신은 그 후회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신의 뜻을 되돌리게 하는 것이라고 믿기에 나를 그쪽으로 부추긴다.
그러나 당신은 나의 후회, 나의 회한의 성질에 대하여 오해하고 있다. 지금 나를 괴롭히는 것은 ‘행해지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 젊은 시절에 내가 할 수도 있었고 했어야 옳았으나 모랄 때문에 하지 못한 모든 것에 대한 후회다. 지금은 더 이상 신뢰하지도 않는 모랄, 자신의 육체를 만족시키는 것을 거부하는 데서 긍지를 느낄 정도로 나에게 거추장스러운 것이면서도 거기에 순종하는 것이 좋다고 믿었던 그 모랄 때문에 말이다.
영혼과 육체가 사랑하기에 가장 알맞고 사랑하고 사랑받기에 가장 어울리는 나이, 포옹이 가장 힘차고 호기심이 가장 강하고 배울 것이 많으며 쾌락이 가장 값진 나이, 바로 그 나이에 영혼과 육체가 다 사랑의 요구에 저항하는 최대의 힘을 갖추기 때문이다.
당신이 ‘유혹’이라고 불렀던 것, 내가 당신과 함께 유혹이라고 불렀던 것, 내가 애석하게 생각하는 점은 바로 그것이다. 오늘 내가 후회하는 것이 있다면 몇 가지 유혹에 졌기 때문이다. 뒤늦게 그 유혹들이 이미 매력을 잃고 나서 사고에 별 도움이 되지 못하게 되었을 때 나는 그것을 찾아 헤매었던 것이다. 나는 나의 청춘을 어둡게 만든 것을, 현실보다 공상을 더 좋아했던 것을, 삶에 등을 돌리고 있었던 것을 후회한다.
오! 우리가 하지 못한 모든 것, 그러나 우리가 할 수도 있었을 모든 것∙∙∙∙∙∙하고 이승을 떠나려는 순간 그들은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하지 못한 모든 것! 체면 걱정 때문에, 기회를 기다리다가, 게을러서, 그리고 “제길! 시간이 좀 먹나.” 하는 생각만 줄곧 하고 있다가,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매일 매일, 두 번 다시 잡을 수 없을 때 순간을 놓쳐버렸기 때문에. 결심, 노력, 포옹을 뒤로 미루었기 때문에∙∙∙∙∙∙.
지나가는 시간은 지나가 버리고 만다. 오! 뒤에 올 그대는 보다 민첩해져서 순간을 놓치지 말라! 하고 그대들은 생각할 것이다.
<‘지상의 양식’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앙드레 지드지음, 김화영님 옮김,민음사 출판>
* 앙드레 지드 : 1869년 파리 법과 대학 교수인 아버지와 루앙의 유복한 사업가 집안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격정적인 성격에 몸이 허약했던 지드는 열한 살에 아버지가 사망하자 어머니와 외사촌 누이 등 여자들에 에워싸인 채 엄격한 청교도적 분위기 속에서 성장하는 동안 신경 쇠약에 시달렸다.
1893년 북아프리카 여행 중 결핵으로 신음하다가 회복되면서 처음으로 삶의 희열과 동성애에 눈을 뜨고, 마침내 모든 도덕적∙종교적 구속에서 해방되어 돌아온다. <지상의 양식>은 시, 일기, 여행기록, 허구적인 대화 등 다양한 장르가 통합된 형식으로, 이때의 해방감과 생명의 전율을 노래한 작품이다.
<좁은 문>.<교황청의 지하도>,<전원 교향곡>.<위폐 제조자들>,<소련 기행>등 작품 20세기 프랑스 문단에 막강한 영양력을 행사했다. 1938년 아내가 사망한 후 일생동안 꾸준히 써온 여러 권의 <일기>를 발표하기 시작했고, 1947년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1951년 파리의 자택에서 폐 충혈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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