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두려움이다.
- 몽테뉴, <두려움에 대하여>(1580)
지나간 것과 아직 오지 않은 것은 모두 지금 없습니다. 우리는 둘 다 느끼지 못하지요.
우리는 느끼지 않는 것에는 고통을 느낄 수 없습니다.
- 세네카, <서한집>74.34
나이가 들면 벌어지게 되는 일들!
약속을 깜빡 잊거나 장갑, 우산, 모자 등을 엉뚱한 곳에 둘 때마다 잠시 패닉에 빠진다. 이제 막 일흔 살이 되었는데, 피할 수 없는 노화의 내리막길에 접어든 것이 아닌가 불안감이 든다.
이제 치매를 겪는 사람은 전 세계적으로 5000만 명이 넘는다. 최근 잉글랜드와 웨일스에서는 치매가 심장병을 제치고 가장 흔한 사망 원인이 되었다. 치매의 절반이상은 알츠하이머병이다.
1900년경 이 병의 특징을 밝힌 독일의 정신과 의사 알로이스 알츠하이머의 이름을 딴 병명이다. 병이 깊어지면 가족과 친구조차 심지어 자기가 누구인지조차 잊어버린다.
파킨슨병이나 픽병pick disease 등 다른 신경 질환도 마찬가지다. 이병들은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나이가 들수록 생기기 쉽고, 단백질이 기능을 잃기 때문에 생긴다.
단백질에 결함이 생기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단백질은 리보솜에서 탄생한다. 올바른 리보솜이 잘못 읽기도 한다. 이렇게 되면 아미노산 배열순서가 어긋나 새로 만들어진 단백질이 기능을 수행할 수 없다.
신제품을 주문했지만 제조 과정에서 뭔가 잘못된 것이다. 나이가 들면 당 분자가 무작위로 단백질에 추가되는 일이 생긴다. 이 과정은 무소화 당화glycation라 하여 질서정연하게 일어나는 정상적인 당화와 다르다.
무소화 당화는 흔히 노화에 동반되는 수많은 건강 문제의 원인이다. 예컨대 수정체나 망막의 단백질에 당 분자가 결합해 성질이 변하고 정상적인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면 백내장이나 황반변성 같은 눈의 질병이 생긴다.
이런 단백질 또한 문제를 일으키기 전에 찾아내 제거해야 한다. 제대로 접히지 않은 단백질이 너무 많이 축적되면 조치가 필요하다. 둘째, 비정상 단백질에 꼬리표를 붙여 제거한다.
세포가 스트레스를 받거나 굶주리면 자기포식이 활발해진다. 어려운 시기를 견디고 살아남기 위해 단백질과 기타 구조물을 분해해 부품을 재활용하는 것이다.
비정상 단백질이 많이 쌓이면 재활용 기전이 쫓아가기 어렵다. 이때 세포는 단백질 합성을 신속히 중단한다. 단백질은 꼭 필요한 순간에 꼭 필요한 만큼 만들어져야 하며, 만들어진 후에는 올바른 형태를 갖추어야 한다.
오케스트라의 모든 악기가 맡은 부분을 조화롭게 연주하는 것과 같다. 이런 조절 단백질 자체에 결함이 생기면 문제가 크게 증폭된다. 바로 이것이 나이가 들 때 벌어지는 일이다.
<‘우리는 왜 죽는가 - 노화, 수명, 죽음에 관한 새로운 과학’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 베니 라마크리슈난 지음, 강병철님 옮김, 김영사출판> * 베니 라마크리슈난 : 미국과 영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분자생물학자. 1952년 인도 태생으로, 인도 바로다 대학 물리학,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에서 물리학 박사를 취득했다.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생물학을 또 공부했고, 미 유대 대학을 거쳐, 영국 캐임브리지 MRC분자생물학 연구소에 합류해 지금까지 그룹 리더를 맡고 있다. 2009년 노벨 화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유전자 기계>, <인공지능은 무엇이 되려 하는가> 등의 공동 저서가 있다.
철학자 산책 - “만일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신을 만들어내야 한다.” - 볼테르
계몽주의의 영주인 볼테르는 밝음과 명료함의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극히 혼란스런 삶을 살았다. 그의 작품은 너무 대담하고, 반종교적이고, 파렴치하다는 소리를 들었고, 신을 모독한다는 비난을 들었다.
쓸모가 있을 것으로 보이면 이따금 가톡릭 신앙을 받아들이고 심지어는 성사聖事를 받기도 했다. 이 모든 점에서 그는 이중성을 보인다.
이런 온갖 혼란 속에서도 그의 명성은 높아져만 갔다. 거의 30년 동안이나 그는 유럽의 정신적인 지배자였다. 오늘날에도 철학자 딜타이는 그를 가리켜 ‘모든 사람들 중에 가장 생동하는 사람“이라고 찬양한다.
볼테르는 모든 교회 권력에서 그런 광신주의의 냄새를 맡았기 때문에 “너무나도 믿기 잘하는 민중을 지도하는 자들, 하늘의 이익이라는 말 뒤에 숨어 실제로는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자들‘에 마주 섰다.
“분별 있는 모든 사람, 선의를 가진 모든 사람은 역겨움을 품고 기독교 종파들을 관찰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볼테르는 어던 종류의 신을 존중했던가?
구약성서와 신약성서의 신은 물론 아니다. 볼테르는 이렇게 썼다. “가장 높은 존재의 영원한 지혜가 너의 가슴 가장 깊은 곳에 순수 자연적인 종교를 새겨 넣었음을 생각하라.”
신의 생각은 여기에 뿌리를 두고 있다. 신의 생각은 “감정”에서, 그리고 “자연적인 논리”에서 나온다. 그러니까 인간은 본성에서 신을 인식할 능력이 있다.
볼테르는 일종의 신 증명을 남겼다. ‘무언가가 있다. 그러니까 영원한 무언가가 있다.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는 아무것도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은 “우리 정신이 거기 의지하는 안전한 진리”다. 그러나 신의 여기있음에 대해서는,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도 거의 완전한 확실성을 지닌 또 다른 통찰들도 가능하다.
“창조하고, 이끌어주고 보상해주고, 복수해주는 최고 본질의 생각이 뇌리에 깊이 각인되는 것은 영주들과 민족들에게 꼭 필요한 일이다.” “사회는 이런 관점이 필요하다.” “민중은 종교가 필요하다.” 이런 맥락에서 그 유명한 말이 나온다.
“만일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신을 만들어내야 한다.”
세계의 재앙과 인간의 비참함 앞에서 명료함을 잃다.
신과 세계의 관계를 관찰할 때면 볼테르는 신을 인식한다는 것이 가능한가 하는 질문에 나타나는 일반적인 회의를 훨씬 더 넘어선다. 특히 리스본 대지진이 있은 다음 볼테르는 이런 생각에 몰두했다.
“자연은 매우 잔인하다. ‘모든 가능한 세계들 중 가장 좋은 세계’에서 어떻게 (뉴턴의) 운동의 법칙들이 그렇게 끔찍한 재앙을 만들어 낼 수 있는지 거의 상상도 되지 않는다. (…) 우리는 그들을 건물더미에서 끌어내지 못한다. 인간 존재라는 놀이는 그 얼마나 불쌍한 우연의 게임이란 말이냐!”
신에 의해 창조된 세계에 그토록 많은 무의미함이 있다면, 신의 선의를 믿을 수 있을까? 볼테르는 신을 옹호하려는 이 변신론 문제를 풀어보려고 절망적인 시도를 한다.
“우선 그 많은 재앙도 신의 섭리와 합치된다고 생각해본다. ”열이 난다고 신을 부인해서야 되겠는가?“ ”신에게는 재앙이 존재하지 않고 오로지 우리에게만 존재한다.“
그러나 이것도 해결책은 아니다. 그래서 마지막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선과 악의 질문은 정직한 탐구자로서는 풀 수 없는 카오스다.” 그래서 결국 이성의 앎에 대해 회의주의자가 승리를 거둔다.
“너의 주변의 모든 것, 너희 안의 모든 것은 수수께끼다. 그것을 푸는 일은 인간에게 주어진 일이 아니다.” 오직 체념만 남는다. “그 많은 탐구 끝에 내가 어디서 왔는지, 내가 무엇인지, 어디로 가는지, 어떻게 될지를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이따금 나는 절망에 빠진다.”
“내가 보고 행동한 그 모든 것에는 단 한 줄기 지성의 빛도 없다. 내가 겪고 행한 어리석음들로 가득 찬 60년 세월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니, 세상이라는 게 구역질 나는 한 더미 공허처럼 생각된다. 지루함과 허풍떨기, 그것이 삶이다.
늙으나 젊으나 우리는 그저 비눗방울(허풍)이나 만들고 있다. 우리는 운명의 손길이나 떠미는 대로 밀려가는 풍선일 뿐이다. 우리는 그저 몇 번 껑충거리고 뜀박질한다. 어떤 이들은 대리석 바닥 위에서, 어떤 이들은 거름더미 위에서, 그러고 나면 영원히 끝난다.“
인간의 비참함을 보면서 볼테르의 절망은 이따금 온갖 체념이 된다. “나는 이 세계에서 매우 늦게야 행복하게 되었다. 그러나 마침내 행복해졌다.
극소수의 사람만이 자신에 대해 그렇게 말할 수 있다.” “이제 나는 평생 원하던 것을 얻었다. 얽매이지 않음과 평화를.” 하지만 다시 시간과의 싸움에 빠져들지 않을 수가 없다.
결국 “나는 활동을 위해 글을 쓴다.” 그에게는 철학하기의 의미도 이런 것(노년의 평화 속에서, 매일 운동하듯 글을 쓰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근심이 다시 그를 사로잡는다. “모든 것은 사라진다. 인간 자신도 마침내 아무것도 찾지 못하고 사라진다.” 오직 고요히 생각에 잠기는 철학만이 도움이 된다.
“나는 큰 여행(죽음)을 매우 철학적으로 준비하고 있다. 철학은 무언가 좋은 점이 있으니까, 그것은 위안을 준다.” 그것은 “영혼의 평화를 만들어 낸다.
” 인간은 단호히 철학하기로 들어가야 한다. “무언가를 감행할 줄 알아야 한다. 철학은 인간이 용기를 낼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다.”
<‘철학을 만나는 지름길 - 철학의 뒷 계단 - 위대한 철학자 34인의 생애와 사상’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빌헬름 바이셰델 지음, 안인희님 옮김, 김영사 출판> *빌헬름 바이셰델 (1905~1975) : 1905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암마인에서 태어나, 마르부르크 대학에서 개신교 신학, 철학, 역사학을 전공했다. 1932년 프라이부르ㅡ 대학에서 하이데거의 지도하에 <책임의 본질>이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튀빙겐 대학 교수를 거쳐 1935~1970년까지 베를린 자유대학 교수로 재직했다.<사회적 윤리학> ,<철학자들의 신> 등의 주요저서를 남겼다.
피라미드
나는 ‘피라미드’를 인간의 쾌락이 채워질 수 없는 것임을 보여주는 기념비로 여긴다. 무한한 권력을 지니고 현실과 상상의 모든 필요를 능가할 재정을 지닌 왕이 피라미드를 세워 통치의 권태와 쾌락의 무미건조함을 달래며, 수천 명이 끝없이 노동하고 돌 하나가 아무 목적 없이 다른 돌 위에 쌓이는 광경을 지켜보는 일을 퇴락하는 지루한 인생의 낙으로 삼을 수밖에 없었다.
적당한 환경에 만족하지 못하고, 웅장한 왕궁의 행복을 상상하며 권력이나 부로 새로운 욕망을 영원히 만족시킬 수 있다고 꿈꾸는 그대, 그대가 누구든 피라미드를 바라보며 자신의 어리석음을 시인하라. - 새뮤얼 존슨, <라셀라스>(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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