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도움으로 당신은 불쾌하지 않은 삶을 살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장소와 일에서 즐거움을 추출해내는 법을 배우기 때문이다. 부유하다면 많은 사람의 도울 수 있으니 행복할 테고, 가난하다면 걱정할 일이 별로 없으니 행복할 것이다. 명성을 얻는다면 명예로우니 행복할 테고, 무명으로 산다면 질투의 위협이 없을 테니 행복할 것이다.
- 플루타르코스, <덕과 악덕에 대하여>에서.
신비주의 철학 - 신이란?
철학이란 남자들을 위한 특권이라고 사람들은 오랫동안 생각했다. 그러나 벌써 650년 전에 어떤 사람이 그에 반기를 들었으니, 마이스터 에크하르트(1260~1327)다.
그는 착실한 수녀들에게 자기가 가진 신학과 철학의 이념을 일러주었다. 한 수녀는 임종의 자리에서 에크하르트에게서 본질적인 자극을 받았노라고 고백했다. “높고도 알 수 없는 일들”을 경험했기에 자기의 이해력과 감각이 정지했다고 말했다.
신비주의 철학 - 체험의 방식
신비주의 철학이란 무엇인가? 단순히 특이함이나 이해할 수 없음, 어두운 사변, 몰롱한 몽상 등이라고 여기는 것으론 충분치 못하다.
신비주의 철학은 일종의 체험방식이라고, 말 그대로의 체험이라고 보아야 한다. 이 길은 맨 먼저 현실 전체에 대한 거부로 우리를 데려간다. 그를 통해 인간은 “고립”에 이른다. 이것은 에크하르트의 기본개념이다.
에크하르트의 신비주의의 길은 맨 먼저 작별, 곧 고별의 길이다. 인간은 삶의 외적인 일을 돌보지 않고 그로 인해 근심하지도 않는다.
그는 “모든 피조물에서 벗어나 비어버리고 ” “모든 사물에서 벗어나” 있어야 한다. “모든 피조물을 완전히 잊음”의 상태에 이르러야 한다.
신비적 체험의 처음에 자기를 잊은 초감각(엑스터시)의 상태로 넘어가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그런 상태는 극소수의 선택된 사람들에게만 나타난다.
그에 반해 고립은 모든 사람의 과제다. 이것은 내면의 행동이나 일상의 삶에서 실제로 실행되어야 한다. 세계 한복판에서 인간은 사물들에 종속된 상태에서 벗어나야 하는 것이다. “불 곁에서, 그리고 마구간에서”말이다.
이런 의미에서 에크하르트는 이렇게 말한다. “삶의 대가(大家)한 사람이 지식의 대가 천 명 보다 중요하다.” 세상에서 멀어지는 이런 자유를 성취한 사람은 순수한 내면성을 얻는다.
신비주의적 태도란 “산만하게 흩어진 사물들에서 모든 힘을 도로 불러들여 내적인 작용을 하게 하는 것”이다. “인간은 모든 참을 본질적으로 자기 안에 지니기” 때문이다.
이런 신비주의 길의 두 번째 단계가 나타난다. 그것은 자기 자신으로부터의 고립, 즉 자기 체념이다. 인간은 자신의 애착과 소망과 의지를 단념하고 자기 자신에게서 벗어나야 한다.
“자신을 놓아버리고” 그럼으로써 “온전히 평온하게”되어야 한다. 이는 영혼의 고요함을 뜻할 뿐만이 아니라 원래 자신을 놓아버림을 뜻하는 것이기도 한다.
여기서 인간은 “정신의 가난”에 이른다. 정신은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갖지 않은” 상태에 있다.
이 길은 물온 특별한 위험성을 지닌다. 인간이 바라는 것, 아는 것, 가진 것을 모두 놓아버려야 한다면 그의 무엇이 남는단 말인가?
에크하르트가 말하는 신비주의의 길은 결국 순수한 허무에 이르지 않겠는가? 그런데도 에크하르트는 대담해지라고 요구한다.
“고립은 아무것도 없음이 되고자 한다.” 그것은 “없음 위에 서 있다.” “없음에 아주 가까이 다가서서 완전한 고립과 없음 사이에 어떤 사물도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이 상태에서 인간 본래의 본질이 실현된다는 점에서 에크하르트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의 모든 본질은 없어져버림과 없음에 들어 있다.”
이제 에크하르트는 영혼의 가장 깊은 내면으로부터 신학의 문제로 생각을 돌린다. 인간이 자기의 깊은 곳으로 내려간다면 그곳 영혼의 바탕에서 신과 직접적인 관계를 찾게 된다. “신 말고는 아무도 영혼의 바탕을 건드리지 못한다.” 이것이 에크하르트의 기본 체험이다.
이것은 그가 영혼에 대해 펼치는 이미지를 규정한다. 영혼은 바탕이 신적인 종류의 것이다. 영혼에는 신과 연관된 무엇이 있다. 영혼은 제 안에 “신적 본성의 모습”을 지닌다.
“신이 영혼의 바탕에 숨어 있는”한, 영혼은 신적인 종류의 것이다. 그래서 영혼의 바탕은 영혼이 신을 인식할 수 있는 장소다.
“영혼의 작은 불꽃이 신의 빛을 파악한다.”
이런 신의 인식은 오로지 고립의 체험에서만 성취될 수 있다. “신의 바탕으로 가고자 하는 사람은 자신의 바탕으로 가야만 한다.”
그렇게 완벽한 고립상태에 도달한 사람은 “신 가까이”, 신과 “순수하게 합쳐진 상태”가 된다. 에크하르트는 지치지 않고 영혼의 바탕이 신과 완전히 하나가 되는 것을 찬양한다.
“신과 영혼은 서로 가까움, 실로 전혀 차이가 없다.”
“어떤 하나 됨도 이보다 더 크지 않다.”
“여기서 신의 바탕이 나의 바탕이 되고, 나의 바탕이 신의 바탕이 된다.”
“신과 나, 우리는 하나다.”
공식교회는 이런 진술들을 다시 이단이라고 낙인찍지 않을 수 없었다. 나와 신과 없음이 하나다. “영혼은 이제 완전히 신의 본질 안에서 신의 탄생이 이루어진다.
이때 ”영혼의 바탕에서, 영혼의 본질 안에서 아버지 신(聖父)은 아들(聖子)을 낳고, 영혼은 하나가 된다.“신의 탄생으로 생기는 이런 하나 됨이 아주 완벽하기에 에크하르트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신은 “나를 낳아 자신(신)이 되고, 자신을 낳아 내가 되고 자신의 본질과 본성이 된다.” 이런 신비주의 기본 체험으로부터 에크하르트에게서 철학적 신학이라 부를 수 있는 것, 곧 신에 대한 사색이 펼쳐진다.
신이 “있음 자체”라는 말은 신이 “모든 것의 기원”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에크하르트는 기독교 사유에서 지극히 자명하게 여겨지는 이런 생각을 넘어선다.
에크하르트는 대담하게도 범신론적인, 그래서 이단으로 들리는 명제를 말한다. “사물들은 모두 신 자신이다.” 여기서 에크하르트는 한 가지 어려움에 부딪힌다.
신을 단순히 사물들과 같은 것으로 여기지 않으려면, 신의 있음을 창조된 사물들의 있음이라는 의미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에크하르트는 그래서 - 앞서 인용한 문장과는 언뜻 반대로 보이는데 - 이렇게 말한다. “신에게는 있음이 주어지지 않으며, 신은 있는 것도 아니다. 신은 있는 것보다 더 높은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가는 신이 사물들과 같아지기 때문이다. 더 높은 것이란 정신적인 것을 뜻할 수밖에 없다. 곧 “들여다 봄(통찰)”, “지성intellectus"이다. 기독교 전통에서 신은 본질적으로 정신으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신은 이름이 없다. 그에 대해서도 누구도 무어라 말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가장 극단적인 것을 파악하려는 사유는 신의 개념도 넘어서야만 한다. 신을 인식하는 본질적인 방식은 역설적이게도 “우리가 신을 벗어나 있다”라는 사실에 근거한다.
“내가 신을 사랑한다면 신이 어떻게 신이고, 어떻게 정신이고, 어떻게 인격이고, 어떻게 모습인지 등등의 이 모든 것이 다 없어져야 한다.”
“너는 신 그대로를 사랑해야 한다. 신이 아닌, 정신이 아닌, 인격이 아닌, 모습이 아닌 신을, 그 이상이다. 신이 ‘둘로 있기’와는 거리면 순수하고 깨끗하고 맑은 하나라는 것, 그 하나 속에서 우리는 없음Nichts에서 없음으로 영원히 가라앉는다.“
이로써 고립은 극단의 가능성에 도달한다. “인간이 놓아버릴 수 있는 가장 높고도 가장 가까운 것은, 신이기 때문에 신을 놓아 버리는 일이다.”
* 에크하르트 (1260~1327) : 그는 스트라스부르와 쾰른 대학에서 공부했고 자기가 속한 수도원의 부원장이 되고, 파리에서 신학 공부를 계속하여 1302년 마기스터(석사)를 받았다.
파리로 돌아온 그는 도미니크 수도회 작센 교구 지도자가 되었다. 이어서 쾰른 대학에서도 강의했다. 수많은 종교재판에서 두드러진 활약을 펼친 지도자의 한 사람인 그가 종교재판을 받아야 했다는 것은 참으로 흥미로운 일이다. 물론 그를 향해서는 곧장 덤벼들지는 못했다.
처음에는 그의 사상에 자극받아 비슷한 생각을 말하는 평신도들을 추적해 물에 빠뜨려 죽이거나 장작더미에 불태워 죽였다. 마침내 쾰른 대주교가 교황에게 에크하르트를 고발했다. 종교재판이 열렸지만 처음에는 사면을 받았다. 그 자신은 절대로 이단의 견해를 가진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에크하르트가 죽은 다음 교황은, 에크하르트의 28개 명제들 일부는 이단이고, 일부는 극히 오해받기 쉬운 것이라는 선언이 담긴 교서를 발부했다.
에크하르트는 신비주의 방식으로 생각한 최초의 인물은 아니다. 그보다 앞서 3세기에 플로티노스, 5세기에 디오니소스 아레오파기타 등이 있었다.
후기 철학자 피히테나 셸링, 그리고 헤겔의 사유는 에크하르트가 모범적으로 대변하는 이런 철학의 방식이 없이는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철학을 만나는 지름길 - 철학의 뒷 계단 - 위대한 철학자 34인의 생애와 사상’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빌헬름 바이셰델 지음, 안인희님 옮김, 김영사 출판> *빌헬름 바이셰델 (1905~1975) : 1905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암마인에서 태어나, 마르부르크대학에서 개신교 신학, 철학, 역사학을 전공했다. 1932년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하이데거의 지도하에 <책임의 본질>이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튀빙겐 대학 교수를 거쳐 1953~1970년까지 베를린 자유대학 교수로 재직했다.<회적 윤리학> ,<철학자들의 신> 등의 주요저서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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