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조선의 위대한 학자 퇴계 이황의 사상 중에서 인성교육에 해당하는 ‘마음공부’의 내용을 담고 있다. 퇴계는 누구보다 인성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는데, 그 핵심으로 ‘함양(涵養)’과 ‘체찰(體察)’을 언급했다. 함양이란 학식을 넓혀 심성을 닦는 것이고, 체찰은 몸으로 익혀 실천하는 것을 일컫는 말인데, 퇴계는 알기만 하고 행동이 따르지 않는다면 그것은 참된 공부가 아니라고 보았고, 날마다 반복하여 그 앎이 완전히 자기의 것이 될 때까지 몸으로 익혀야 함을 강조했다.
자성록 - 몸과 마음의 공부법
1. 공부를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공부에 대한 조급증’이 마음의 병을 부른다 - 남시보(한국 양명학의 시조로 불리는 조선 명종ㆍ선조 때의 학자)에게 답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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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병은 세상의 이치를 바르게 살피지 못하는 데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부질없이 꼬치꼬치 캐어서 억지로 이치를 찾 으려 하거나, 어리석은 마음으로 “싹을 억지로 잡아당겨 성장을 도우려” 하게 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스스로를 괴롭 히게 되고 기운을 소진하게 됩니다. 이는 공부를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공통된 병통이기도 합니다. 내 평 생의 병줄도 다 여기에 있습니다. 그대도 알겠지만, 병을 치료하려면 무엇보다 마음에 괴로움을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곤궁함, 출세, 이득, 상실, 명예, 치욕, 이익, 손해 등 모든 것을 너무 깊이 마음에 담아 두지 마시고, 정서적으로 조화롭 고 편안한 상태에 머물러 있도록 하세요.
☞ ‘마음공부의 적’ 출세ㆍ명예욕에 대해 충고하다
무르익지 않은 공부로 높은 관직을 바라지 말라 - 기명언(이름은 대승이고 호는 고봉. 퇴계 문하에 왕래하며 퇴계와의 사단칠정논변(四端七情論辨)을 통해 학문 체계를 완성함)에게 답함
-“아직 공부가 무르익지 않았는데 섣불리 정치에 나섰다가 벼슬 때문에 뜻을 빼앗길까 두렵고, 돌아가서 끝까지 공부를 해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바람이야말로 옛사람들도 실행하기 어려운 일이었지요. 내가 그대에게 옷깃을 여미고 깊은 경의를 표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고, 그대를 위하여 근심하고 두려워하는 마음 또한 이 때문입니다. 오늘날의 선비는 정치에 나아가고 물러나는 법도를 잊어버렸고, 벼슬을 그만두는 예를 잊어 버렸습니다.
2. 앎과 행동은 함께 굴러가는 두 바퀴다
가.몸으로 부딪치는 모든 일이 공부다
☞집안일이 공부에 방해된다는 생각을 버려라 - 정자중(이름은 유일이며 호는 문봉. 퇴계의 제자)에게 답함
편지에서 “집안일을 맡아 처리하다 보니 그것이 공부에 방해가 된다. 하지만 일을 하면서 깨닫는 것도 있다. 그래서 행동을 과감하게 바꿔야겠다”라는 언급은 아주 옳은 생각입니다. 그러나 그 말에는 조금 미진한 부분이 있는 듯합니다. 옛 사람들은 공부의 근본을 다음과 같은 점에 두었습니다. 어버이를 비롯한 윗사람을 잘 대하고, 동료들을 존중하는 동시에 원만한 관계를 이루며, 자신에게 충실하고 다른 사람을 신뢰하며 성실하게 대하는 일, 그 다음에 세상의 여러 가지 일에 나아가 자신의 자질을 다하고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하는 일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집안사람끼리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며 대화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근본이 확립되어야 도가 생긴다”고 했던 것입니다.마음에 있는 것과 사물에 있는 것이 본래 두 가지가 아님을 분명하고 확실하게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이치에 대해 참으로 알 수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됩니다.
나. 공부에는 마침표가 없다
☞공부는 끝이 없으며 평생 계속되는 사업이다 - 정자중에게 답함
공부란 한번 껑충 뛰어서 도달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전에 1, 2년 만에 공부를 완성할 수 있다고 기약한 적이 있는데, 뜻을 그렇게 가졌다면 참으로 거칠고 잘못된 생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공부는 평생을 걸쳐 해야 하는 막중한 사업입니다. 이른바 마음을 잡고 보존하는 조존(操存)과 돌아보고 살피는 성찰(省察)의 공부에 지나치게 매이지 말고, 날마다의 생활에서 분명한 곳을 바라보면서 마음을 여유롭게 가지도록 하세요. 그런 가운데 깊이 잠기어 마음을 텅 비우고 편안하게 하면 저절로 마음이 함양될 것입니다.
다. 마음을 붙들어야 참다운 공부가 완성된다
☞휴식할 때도 마음이 흩어지지 않도록 하라 - 김돈서(이름은 부윤이고, 호는 운월당. 어릴 때부터 퇴계의 제자로 입문하였음)에게 답함
사람이 공부를 할 때는 일이 있을 때나 없을 때나, 의도함이 있을 때나 없을 때나 막론하고 오직 경(敬)을 핵심으로 삼아야 합니다. 이렇게 한시라도 경을 잃지 않게 된다면, 어떤 사념이 사라지고 마음이 텅 비어 밝고 순수한 본성이 나타나게 됩니다. 또 생각을 하면 그 올바른 이치가 환하게 드러나 보입니다. 또 물질에 대한 욕심이 사라지며 번거로운 근심은 차츰 그 정도가 줄어듭니다. 이러한 노력을 쌓고 쌓을 때 얻는 바가 있습니다. 이것이 공부의 주요한 방법입니다.
주자는 일에 얽매여 연연해 하게 되면 개인의 사사로운 뜻이 되어 마음이 흩어지고 제멋대로 굴게 되는 결점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좋은 일이나 나쁜 일, 또 큰일이나 작은 일 무엇이든 마음에 두지 않도록 하세요.
라. 함양과 체찰을 거듭 강조하다
☞인의예지를 체득하라 - 기명언에게 답함.
사단(四端)ㆍ칠정(七情)을 리(理)와 기(氣)로 나누는 데 대한 첫 번째 변론
인간의 본성(性)과 감정(情)에 관한 설명은 옛 선비들이 자세히 밝혀 놓았습니다. 그러나 사단(四端)과 칠정(七情)에 대해서는 그것이 정(情)이라고만 말하였을 뿐, 리(理)와 기(氣)로 나누어 설명한 것은 볼 수 없습니다. 사단(四端)은 정(情)이며, 칠정(七情)도 또한 정(情)입니다. 다 같은 정인데 어찌하여 사단칠정이라는 다른 이름이 있게 되었는지요? 그대가 말한 대로, 그것은 사단과 칠정에 대해 말할 때 근거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원래 리와 기는 밀접하게 관련되면서 본체가 되기도 하고 작용이 되기도 합니다. 리가 없는 기는 없으며, 기가 없는 리도 없습니다. 그러나 말하는 근거나 관점이 다르면 리와 기를 구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性)이라는 하나의 글자만 보더라도 그러합니다. 자사가 말한 ‘하늘이 내려준 성-천명(天命)의 성’과 맹자가 말한 ‘본성은 착하다, 라고 할 때의 성-성선(性善)의 성’에서, 이 두 성이라는 글자가 가리켜 말하는 근본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바로 리와 기가 모두 있는 곳에서 리의 근본, 즉 본래 그러한 곳만을 가리켜 말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 가리키는 것이 리에만 있고 기에 있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악이 없는 ‘순수한 선’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나는 정에 사단과 칠정의 구분이 있는 것은 성에 본연의 성과 기질의 성이라는 구분이 있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성에서 리와 기로 나누어 말할 수 있는데, 어째서 정에서는 리와 기로 나누어 말할 수 없겠습니까? 가슴 깊이 불쌍히 여기고, 부끄러워하고, 양보하고, 옳고 그름을 가리는 마음, 그런 정은 인간이 지닌 인(仁)ㆍ의(義)ㆍ예(禮)ㆍ지(智)의 성으로부터 펼쳐지는 것이 아닐까요? 기뻐하고 화내고 슬퍼하고 두려워하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무언가를 하고자 하는 마음은 바깥 사물이 사람의 형기(形氣)에 닿아서 마음을 움직인 후 상황에 따라 나타나게 된 것이 아닌가요?
마. 폭넓게 보라, 교류하라, 그리고 통하라
☞ 겉핥기식 공부를 꾸짖다
성현의 말을 앵무새처럼 읊지 마라 - 권호문(호는 송암. 퇴계의 제자)의 편지에 답하여 요산요수를 논함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한다”는 이른바 ‘요산요수(樂山樂水)’에 관한 성인의 말은, 산은 어짊이 되고 물은 지혜로움이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또한 사람의 본성이 산수의 본성과 본래 동일하다고 한 말도 아닙니다. 어진 사람은 산과 같기 때문에 산을 좋아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물과 같기 때문에 물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산과 물에 나아가 어짊과 지혜를 구하라는 것이 아니라, 두 가지 즐거움의 뜻을 알려면 마땅히 어진 사람과 지혜로운 사람의 기상과 뜻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보내 온 편지에서 말한 것을 자세히 읽어보니, 사람과 산수의 본성이 본래 동일하다는 것만 알고 구분되어 다른 것은 알지 못하고 있으니 이것이 첫 번째 오류입니다. 두 번째 오류는 산수의 움직임과 고요함을 몸소 체득하고 어짊과 지혜의 도리를 행한다고 하였는데, 이는 성인이 말한 본래의 뜻이 아닙니다. 이 두 가지 오류를 깨닫고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이제 또한 어짊과 지혜의 실체를 논의하는 태도에 관해 말해 보겠습니다. 평소에 사사로운 마음으로 억지로 찾고 집착하여 안배하는 습관을 버려야 합니다. 성현이 말씀하신 어짊과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마음의 상태를 편안히 하여 깊이 읽고, 자세히 생각하며, 거듭 몸에 익힘으로써 인과 지 두 글자의 뜻을 분명히 알아 행해야 합니다. 그래야 성현의 뜻이 나의 몸과 마음, 본성과 감정에 합치되어 의심이 없게 될 것입니다.
바. 나만의 지식 감옥에 갇히는 것을 경계하라
☞진솔한 벗을 사귀어 유익함을 구하라 - 기명언에게 답함
그대는 “정직하고 성실한 벗을 사귀어 유익함을 구하는 까닭은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우치기 위한 것으로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는 벗을 사귀는 일을 매우 진솔하게 나타내는 대목입니다. 그것은 정말 가볍게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신창호 지음, 미다스북스(요약정리 및 인용)--
<퇴계 이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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