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와 전쟁의 여신 - 아테나
아테나는 제우스의 이마가 갈라지면서 투구와 갑옷으로 무장한 채 튀어나와 트리톤의 바다 속으로 뛰어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아테나 신은 ‘아버지의 딸’이라 불리면서 “나는 모태를 통하지 않고 아버지를 통해 태어났기 때문에 만사가 아버지 편이다.”라고 공언하게 되었다. 이것은 여신으로 하여금 아버지를 옹호하게 만들어 놓고 남성 우위 사회의 기반 굳히기에 대해 마치 여성의 동의를 얻은 것처럼 착각하도록 강요한 증거로서 주목할 만하다.
‘아테나’는 글자 그대로 현대의 아테네, 고대 도시 아테나이의 이름으로 아테나가 이 도시의 수호신이 된 경위는 포세이돈 신과 관련이 있다. 아테나와 포세이돈은 누가 도시의 수호신이 될 것인가를 놓고 경쟁을 벌였다. 그들은 서로가 생각하는 최고의 선물을 도시에 하기로 했다.
포세이돈은 물을 선물하기로 하고 삼지창으로 아크로폴리스의 산 위에 샘을 분출시켰는데 그 물은 소금물이었다. 이에 비해 여러 모로 쓸모 있는 올리브를 싹트게 한 아테나가 이긴 것은 당연했다. 이때부터 도시는 아테나이라고 불리기 시작했고, 아테나는 올리브나무의 수호신이 되었다.
지혜의 여신과 전쟁의 여신이 같은 신이라는 사실은 좀 모순되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고대가 대규모의 전쟁은 물론이고 크고 작은 경계 분쟁, 약탈, 보복 등 온갖 종류의 싸움이 그칠 새 없는 나날의 연속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렇듯 크고 작은 싸움에서 이기기 위한 지혜가 꼭 필요했을 것이다. 전쟁의 신으로 군신 아레스가 있기는 하지만 아레스는 힘만 셀 뿐 그다지 영리하지 못했다고 하는 것으로 봐서 고대는 여성의 지혜를 크게 인정했던 것으로 보인다. 아테나 신을 낳은 메티스의 지혜를 두려워한 남편 제우스가 메티스를 삼켜 버리고 말았다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아테나 신전>
젊은이들의 신 - 아폴론
아폴론은 올림포스 신들 가운데 가장 그리스적인 미를 구현하고 있는 신이라 평가되고 있다. 올림포스 신화의 형성기였던 B. C. 8세기에는 남성적인 젊음이 이상적으로 여겨졌는지 아폴론은 헤파이스토스나 헤르메스 등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의 많은 존경과 흠모의 대상이었다. 올림피아의 아폴론상으로 대표되는 수려한 이목구비를 가진 얼굴과 균형 잡힌 몸매가 아폴론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데 이 아름다움은 여성의 아름다움에 비해 좀더 강한 동경의 대상으로 그려지고 있다.
아폴론은 수금을 뜯는 예술의 신이면서 눈부신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태양신으로 헬리오스가 있었는데도 종종 태양신에 견주어졌으며, 거의 그리스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사실 아폴론은 순수한 그리스 민족의 신이 아니라 소아시아 계열의 외래신이다.
아폴론 신은 제우스와 레토 사이에서 태어났다. 레토는 소아시아계의 대지모신으로 아폰론은 대지모신과 그 아들신이라는 신앙 형태가 바닥에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지모신과 그 아들신이라는 형태는 대지와 그곳에서 탄생하는 식물을 의미하는 신앙의 형태로 남성 우위 사회가 성립되기 이전의 전승이다. 이는 원주민들이 가지고 있는 전승을 전쟁 등으로 새롭게 진출해 온 그리스 민족이 자신들의 전승과 혼합시켜 올림포스 신화를 형성해 나간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 영향 때문인지 몰라도 호메로스의 노래에 나오는 아폴론 신은 트로이아 전쟁에서 한결같이 트로이아 편에 서서 싸웠다.
<아폴론 신전>
<"여성을 위한 그리스 신화"에서 일부 요약 발췌, 사에구사 가즈코 지음/한은미옮김, 시아출판사 >
이 책은 소설가로서 여성문제에 관한 독자적인 시각으로 고전 다시 읽기 작업을 시도하고 있는 저자가 우연히 그리스 여행을 떠나기 전 느꼈던 석연치 않은 점에 의문을 품으면서 시작되었다. 저자는 전 세계의 문학과 예술을 지배하다시피 한 고대 그리스 신화를 통해 역사와 문학을 여성의 입장에서 재정립해야 할 필요성을 피력하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은 로마인들의 취향에 맞춰 각색된 것이 아닌 진정한 고대 그리스 신화를 소개하며, 남성들의 관점이 아닌 여성의 눈으로 그리스 신화를 이야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