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거총론(卜居總論)」
무릇 살 터를 잡는 데는 첫째, 지리(地理)가 좋아야 하고, 다음 생리(生利)가 좋아야 하며, 다음으로 인심이 좋아야 하고, 또 다음은 아름다운 산과 물이 있어야 한다. 이 네 가지에서 하나라도 모자라면 살기 좋은 땅이 아니다. 그런데 지리는 비록 좋아도 생리가 모자라면 오래 살 수가 없고, 생리는 좋더라도 지리가 나쁘면 이 또한 오래 살 곳이 못 된다. 지리와 생리가 함께 좋으나 인심이 나쁘면 반드시 후회할 일이 있게 되고, 가까운 곳에 소풍할 만한 산수가 없으면 정서를 화창하게 하지 못 한다.
지리(地理)
집터를 잡으려면 반드시 수구가 꼭 닫힌 듯하고, 그 안에 들이 펼쳐진 곳을 눈여겨본 후 구해야 한다. 또한 무릇 사람은 양명한 기운을 받아서 태어나므로 양명한 빛인 하늘이 조금만 보이는 곳은 결코 살 곳이 못 된다. 이런 까닭에 들이 넓을수록 터는 더욱 아름답다. 해와 달과 별빛이 항상 환하게 비치고, 바람과 비와 차고 더운 기후가 고르게 알맞은 곳이면 인재가 많이 나고 병 또한 적다. 높은 산중이라도 들이 펼쳐진 곳이라야 바야흐로 좋은 터가 된다.
생리(生利)
재물은 하늘에서 내리거나 땅에서 솟아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땅이 기름진 곳이 제일이고, 배와 수레와 사람과 물자가 모여들어, 있는 것과 없는 것을 서로 바꿀 수 있는 곳이 그 다음이다. 땅이 기름지다는 것은 땅이 오곡 가꾸기에 알맞고, 또 목화 가꾸기에도 알맞은 것을 말한다. 논에 볍씨 1말을 종자로 하여 60두를 거두는 곳이 제일이고, 40~50두를 거두는 곳이 다음이며, 30두 이하인 곳은 땅이 메말라서 사람이 살 수 없다. 나라 안에서 가장 기름진 땅은 전라도의 남원·구례와 경상도의 성주·진주 등 몇 곳이다.
인심(人心)
어찌하여 인심을 논하는 것인가. 공자는 “마을 인심이 착한 곳이 좋다. 착한 곳을 가려서 살지 않으면 어찌 지혜롭다 하랴”하였다. 또 옛날 맹자의 어머니가 세 번이나 집을 옮긴 것도 아들의 교육을 위한 것이었다. 옳은 풍속을 가리지 않으면 자신에게만 아니라 자손들도 반드시 나쁜 물이 들어서 그르치게 될 염려가 있다. 그러므로 살 터를 잡음에 있어 그 지방의 풍속을 살피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 팔도 중에 평안도는 인심이 순후하기가 첫째이고, 다음은 경상도로 풍속이 진실하다. 함경도는 지역이 오랑캐 땅과 잇닿았으므로 백성의 성질이 모두 굳세고 사나우며, 황해도는 산수가 험한 까닭에 백성이 사납고 모질다.
보통 사대부가 사는 곳은 인심이 고약하지 않은 곳이 없다. 당파를 만들어 죄 없는 자를 거둬들이고, 권세를 부려 영세민을 침노하기도 한다. 자신의 행실을 단속하지 못하면서 남이 자기를 논의함을 미워하고, 한 지방의 패권 잡기를 좋아한다.
산수(山水)
산수는 어찌하여 논하는 것인가. 산수는 정신을 즐겁게 하고 감정을 화창하게 하는 것이다. 살고 있는 곳에 산수가 없으면 사람이 촌스러워진다. 그러나 산수가 좋은 곳은 생리가 박한 곳이 많다. 사람이 자라처럼 모래 속에 살지 못하고, 지렁이처럼 흙을 먹지 못하는데, 한갓 산수만 취해서 삶을 영위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기름진 땅과 넓은 들에 지세가 아름다운 곳을 가려 집을 짓고 사는 것이 좋다. 그리고 10리 밖, 혹은 반나절 길쯤 되는 거리에 경치가 아름다운 산수가 있어 생각이 날 때마다 그곳에 가서 시름을 풀고, 혹은 유숙한 다음 돌아올 수 있는 곳을 마련해 둔다면 이것은 자손 대대로 이어나갈 만한 방법이다.
시냇가에 살 만한 곳으로는 영남 예안(禮安)의 도산(陶山)과 안동(安東)의 하회(河洄)를 첫째로 삼는다. 도산은 양쪽의 산이 합쳐져서 긴 골짜기가 되었는데 산이 별로 높지 않다. 양쪽 산발치는 모두 석벽이며 물가에 위치하여 경치가 훌륭하다. 물은 거룻배를 이용하기에 족하고, 골복판에는 고목(古木)이 매우 많아 조용하고 시원하다. 산 뒤와 시내 남쪽은 모두 좋은 밭과 평평한 밭골이다. 하회는 하나의 평평한 언덕이 황강 남쪽에서 서북쪽으로 향하여 있는데, 서애(유성룡)의 옛 고택이 있다. 황강 물이 휘돌아 출렁이며 마을 앞에 모여들어 깊어진다. 수북산(水北山)은 모두 석벽이고 돌빛이 차분하고 수려하여 험악한 모양이 전혀 없다. 그 위에 옥연정(玉淵亭)과 작은 암자가 바위 사이에 점점이 잇달았고, 소나무와 전나무가 덮혀 있어 참으로 절경이다.
안동 동남쪽에 있는 임하천(臨河川) 상류인 청송(靑松)은 큰 냇물 두 가닥이 읍 앞에서 합치고, 들판이 제법 틔어 있다. 흰 모래와 푸른 물이 벼와 기장 심은 밭골 사이에 띠처럼 어울린다. 사방 산에는 모두 잣나무가 우거져 있는데, 사시로 늘 푸르러서 시원스럽고 아늑한 것이 거의 속세의 풍경이 아닌 듯하다. 영천(榮川) 서북쪽 순흥부(順興府)에 죽계(竹溪)가 있는데, 소백산에서 흘러나오는 물이다. 들이 넓고 산은 낮으며 물과 돌이 맑고 밝다. 이 두 고을의 시내와 산의 형세와 토지가 비옥한 것이 안동 여러 곳의 유명한 마을과 비슷하다. 까닭에 소백산과 태백산 아래와 황강 상류는 참으로 사대부가 살 만한 곳이라고 한다.
<“택리지(擇里志)”일부 요약 발췌 , 저자 이중환(李重煥)>
조선 후기의 실학자. 1713년(숙종 39) 증광문과(增廣文科) 병과(丙科) 급제. 성호(星湖) 이익(李瀷)의 실사구시(實事求是) 학풍 계승. 영조 즉위 후 신임사화에 연루되어 1726년 절도로 귀양. 계속되는 유배 생활과 이후의 방랑 생활 가운데 지리•사회•경제를 연구하여 실학사에 길이 남을 공적을 세웠다. 『택리지』는 실학사상에 바탕을 둔 대표적인 인문지리서로서 조선시대 최고의 베스트셀러다. 그 중 살기 좋은 곳을 논한 「복거총론」에서 이중환은 사람이 살 만한 이상적인 땅의 네 가지 조건으로 지세가 좋은 곳, 생업이 풍부한 곳, 인심이 좋은 곳, 산수가 좋은 곳을 꼽았다. 일제 때 ‘조선팔도비밀지지’라는 이름으로 출간되어 풍수지리서라는 오해도 받았지만, 일찍이 육당 최남선은 『택리지』를 “우리나라 지리서 중에서 가장 정요(精要)한 인문지리학의 시초”라고 평한 바 있다.
<안동 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