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자료

선 과 악!

[중산] 2010. 11. 23. 08:30

선악의 피안

사상적으로 가장 완벽에 가까운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를 이론적으로 반박한다는 것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더욱이 스스로 반그리스도(The Antichrist)라고 선언한 그의 무신론은 가장 난해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가 신은 죽었다고 말한 것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그 말에 담긴 의미를 이해하는 사람은 그리 많다. 따라서 그 유명한 『선악의 피안』(1886)을 통해 니체의 사상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이 책에 담긴 주장은 앞서 마키아벨리에서부터 밀까지의 여러 주장 가운에 일치하는 부분이 있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들에게 선과 악의 고려에서 벗어나 권력을 움켜쥐고 유지하는 데 무엇이 효과적인지를 집중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한편 홉스선악은 쾌락과 고통과 같은 특정한 선호로 존재할 뿐이라고 정의했다. 즉 사상가들의 선악에 대한 이해에는 항상 욕망을 향한 주관적 선호가 잠재되어 있었다. 이러한 개념이 니체에 이르러 권력을 향한 의지라는 그의 초창기 개념과 합쳐졌다.

 

 

니체는 신이 인간을 창조했다는 믿음 대신에 인간의 존재는 순전히 진화에 의해 발생했다는 믿음을 가졌다. 조물주, 즉 위버멘쉬(űbermensch, 초인)가 되고픈 니체의 희망은 다윈에게서 유래했다. 따라서 다윈의 기여를 다시 한 번 살펴보면, 자연 상태는 투쟁, 전쟁 그리고 잔혹한 적자생존에 따라 이루어진다. 다윈은 이러한 특징들이 동물뿐만 아니라 인간에게도 어떤 특징을 부여하는지 설명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그러나 니체는 단순한 생존의 투쟁을 넘어서 인간의 가장 중요한 생물학적 본능, 즉 권력을 향한 의지를 표현하고자 했다.

 

니체는 삶이란 본질적으로 갈취나 손상, 상실을 반복적으로 경험하게 되는 나약함과 억압, 고난을 통한 개개인 혹은 전체에 의한 착취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러한 생존 요소들을 왜 굳이 악(惡)이라고 불러야 하느냐고 반문하면서 문제는 선과 악, 혹은 참과 거짓에 대한 판가름이 아니라 어떤 극한의 한도가 삶을 촉진하고 마침내 종을 발전시키는가이다라고 했다. 궁극적으로 적자생존에서 다윈은 생존에 중점을 두었고 니체는 적자에 중점을 두었다.

 

 

우리는 마침내 니체가 진정으로 주장하고 싶어 한 무신론의 핵심으로 다가서고 있다. 그는 이 지상의 모든 고등한 문화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반문해보아야 한다면서 귀족 사회로의 회귀를 주장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태초에 강인한 의지와 권력에 대한 욕망이 있었던 인간들이 상대적으로 더 약하지만 더 문명화되고 평화적인 다른 인간들을 내쫓음으로써 귀족 계급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들의 강인함은 단순히 육체적 강인함이라기보다는 영혼의 강인함이었고 어떻게 보면 그들이야말로 본성에 가장 가까운 순수한 인간이었다.

 

여기서 니체는 생존을 위한 본질에 있어서 윤리를 두 가지로 구분했는데, 주인과 노예의 윤리가 바로 그것이다. 주인의 윤리는 강자들이 약자들을 상대로 지배권을 차지하고자 한 인간 본성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한 윤리이다. 반면 노예 윤리는 강한 자에게서 자신을 보호하고자 하는, 또 가능한 편안하게 살고자 하는 약자들에 의해 생성된 윤리이다.노예윤리는 고분고분하고 친절하며 인내, 근면, 겸손 등의 가치를 지니는데, 이러한 미덕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미덕과 놀랄 만큼 닮았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니체는 기독교가 일종의 노예 윤리라고 해석하면서 서구 문명을 퇴보시킨 궁극적인 이유로 간주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초기의 기독교는 금욕주의, 고행, 절제 등의 개념을 담았으나 점차 공리주의적 자유주의로 탈바꿈했다. 니체는 밀이 이야기한 다수를 위한 최대의 행복이란 실은 다수의 인간이 진정으로 원하는 행복을 배제한 가장 동물다운 쾌락이라고 해석했다. 그는 기독교가 일종의 자선단체로 탈바꿈하면서 더욱 편안한 삶을 보장하는 또 다른 에덴동산을 초래했는데, 그 초원에서는 두 가지 교리, 바로 평등동정이 무언가를 위해 감수해야 하는 고통을 철폐시켰다고 했다.

 

신은 죽었다는 니체의 외침은 끝을 모르고 추락하는 인간의 존엄성과 또 동물보다 조금 나은 수준의 마지막 인류를 이끌어가는 하찮고 나약해져버린 문명에 대해 내뱉은 절망이었다. 그는 쾌락과 편리만 추구하는 공리주의의 잠에서 깨워 유럽을 궁극적인 퇴화로부터 지키게 될 귀족 사회의 요소들을 부활시키고자 했다. 하지만 그의 이론은 히틀러와 같은 자들의 이상에 접목되었다. 니체가 그러한 추종자들의 문제 해결 방식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겠지만 그들에게 암시를 준 장본인이 바로 니체 자신이었다. <세상을 망친 10권의 책, 벤저민 와이커 지음,눈과마음>

 

 

 

인류의 유래

 

찰스 다윈은 『종의 기원』(1859)으로 진화론을 주장하면서 인간에 대해서는 생략했다. 이미 진화론으로 충분히 논란이 된 상황에서 인간에게 적자생존을 적용하면 큰 반발이 있을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었다. 다윈의 진정한 목적은 침팬지나 고릴라에게서 인간의 선조를 찾으려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종의 기원』의 명백한 결론, 즉 바로 적자생존을 적용한 우생학이었다. 우생학은 한마디로 최고의 품종만 번식시키고 부적합한 종은 도태시킨다는 발상의 응용과학이다.

 

이를 적용하면 강한 존재(적자)만 살아남고 약한 자(부적격자)들은 제거되어야 한다. 그러나 인간세상은 고군분투 속에서도 강한 자들과 더불어 (병약한)반사회적인 자들도 함께 공존한다. 그래서 다윈은 동정이라는 애매한 윤리적 개념을 빌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인간은 타인의 고통에 대해 슬픔 또는 불편함을 느끼는 본성을 갖고 있다. 더욱이 사회적 진화에 의해 점차 악습과 미신들을 버릴 수 있는 지적 능력을 얻게 되었고 윤리적 의식 또한 점점 높아졌다. 그래서 자신의 복지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행복까지 고려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인간세상에서는 강자와 더불어 사회적 약자들까지 공존하게 되었다.

 

다윈의 말에서 동정은 마치 싱그러운 향기가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그는 진화가 때로는 해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바로 동정과 같은 윤리의 도입으로 필요 없는 존재들까지 공존하게 되어 사회에 악영향을 끼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윈은 언제나 반대자들과 맞서는 걸 꺼려했다. 그는 약자들이 사회에 미치는 악영향에 대해 불평하지 말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도 적어도 더욱 약하거나 열등한 사회 구성원들(정신지체장애인 등)이 자유롭게 결혼하는 것만큼은 규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리고 태연하게 우생학을 백인종과 흑인, 호주 원주민 등에 대입했다. 말하자면 그는 가장 문명화된 인종으로 초(超)백인화를 내세웠다. 문제는 이러한 우생학이 거의 반세기 동안이나 타락한 무신론자들에 의해 왜곡되어 정치적 급진파들과 연관 지어졌다는 점이다. 무엇보다도 나치와 같은 자들이 그것을 실행에 옮겼다는 점에서 모든 과학적 이론이 그것을 너무도 쉽게 숙명으로 몰아간다는 점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세상을 망친 10권의 책”에서 일부 요약 발췌, 벤저민 와이커 지음, 눈과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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